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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23살의 수채화

스물세살의 수채화

by 영숙이 2022. 8.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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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물세살의 수채화>

  

 

5. 청자의 완성

 

 점심을 먹으러 집으로 올라가서 쌀 한주먹을 솥에다 올려놓았다.

 

 방에 들어가서 책을 읽다가  비록 반찬은 김치와 고추장과 참기름뿐이었지만 방금 지은 따스한 밥을 정말 맛있게 먹었다.

 점심상을 치우고 마루 끝에 앉아 따스한 햇볕을 쪼이면서 처마 끝에서 낙수가 떨어지는 모양을 바라보고 있었다.

 연탄재가 부엌 옆에 나 앉아 있는 모양을 가늘어진 눈으로 쳐다보고 있는데 안방에서 누군가 빠꼼이 문을 연다.

 

   

      "희영이 아니니?"

      "밖에 안 나갔었어?"

      "예 재미없어서 들어왔어요."

      "영재는 어디 갔는데?"

      "애들하고 초등학교에서 놀아요."

      "너 심심하겠다."

      "좀 심심해요."

   

   희영이와 마루 끝에 나란히 앉아서 닭 한 마리가 마당을 가로질러 빈 헛간으로 가서 헤집는 것을 바라보았다.

  그곳 처마에서도 낙수가 잊지 않고 있다는 듯이 떨어지고 있었다.

 

        "희영아! 우리 사무실로 놀러 갈까?"
        "가도 돼요?"

        "그럼 아무도 없는걸?"

        "가요."

 

 빨간 겨울 잠바를 입은 희영이와 함께 교회 옆으로 면사무소 옆에 있는 보건지소를 내려다보며 면사무소 담 사이의 뒷문으로 들어 가 펌프가로 해서 보건지소 사무실로 갔다.

   

 선생님은 점심 식사하러 가셔서 아직 돌아오시지 않은 모양이다.

 보건소 사람들이 와서 같이 청산으로 식사하러 나갔다.

   

 난로 앞에 자리잡고 앉아 희영이에게도 의자를 내주면서 앉으라고 하니까 얌전히 앉아 있다.

 사무실이 점점 낯익어지니까 이쪽저쪽 둘러보며 들여다 보기도 하고 이리저리 기웃 거린다.

   

 눈을 머물게 할 것이 없을 걸?

 냉장고를 열어 본다.

   

  희영이에게도 허브 차를 한잔 주고 밖을 내다보니 정말 겨울이라고 이름 하기에는 부끄러울 정도로 따뜻한 날씨가 부드럽게 버드나무를 감싸고 있다.

   

 한옆으로 치워진 눈더미들은 녹아서 눈물을 흘리고 있다..

 

       "희영아! 재미없지? 심심하고."

       "난로 위에다 고구마나 구워 먹으면 좋겠어요."

       "고구마? 고구마가 있어야지."

       "제가 할머니 집에 가서 고구마 가져올게요!"

       "그래? 우리 같이 가서 할머니한테 고구마 좀 달라고 하자."

 

 고구마를 가져다가 난로 위에다 올려 놓고 앉아있는데 선생님이 오시는 모습이 보인다. 

 선생님께서는 곧장 이쪽으로 오셔서 꼬마 손님이 누구인가를 물으신다.

 

       "희영이 인데요, 우리 할머니 외손자예요."

       "그래? 어디에서 왔니?"

       "울산에서요."

       "울산이 어디 있더라?"
       "이게 뭐지?"
       "고구마 굽고 있어요."
       "고구마를? 어디서 났는데?"

       "할머니 집에서 가져왔어요. "

 

 잠시 침묵.

   

 선생님은 청산에 가셔서 술을 한잔 하셨나보다.

 평소의 창백한 얼굴에 핏기가 떠올라 있어 다른 때보다 오히려 보기 좋았다.

   

 잠시 각기 자신의 생각 속에 침잠하여 있었다.

   

 선생님은 선생님의 생각 속에,

 영숙이는 영숙이의 생각 속에.

   

 조용하니까 희영이가 답답한가 부다.

 희영이가 선생님 얼굴을 빤히 바라보다가 영숙이에게 집으로 가자고 보챈다.

 

         "언니, 우리 이제 집에 가요. 네?"

 

 영숙이는 선생님의 시선을 느끼면서 난로 위에 떨어트렸던 얼굴을 들어 희영이를 바라보았다.

 

       "왜? 여기가 싫어?"

       "심심해요."

       "심심하기는? 고구마 구워 먹고 가야지!"

 

 윤선생님이 눈을 동그랗게 뜨고

 

      "못써, 희영아. 내가 언니를 얼마나 좋아하는데 데려갈려고 그래?

       갈려면 혼자서 가.

       언니 데려가면 내가 심심하잖아!"       

 

 영숙은 웃는 얼굴로 선생님을 바라보았다.

 윤선생님이 알코올 때문에 평소 제동 장치를 해주던 나사 하나가 빠져 버렸는가 부다.

   

 난로에 빨갛게 된 볼이 보기에 좋다.

 선생님은 우리가 갑자기 바라보자 공중으로 시선을 띄운다.

   

 우리가 아무 말 없이 선생님 얼굴을 바라보자 우리의 시선이 쑥스러운지 선생님은 일어 나서 진료실로 건너갔다.

   

 희영이가 작은 목소리로 속삭였다.

 

        "언니. 언니. 선생님하고 언니는 서로 좋아하는 것 같아요."

        "그렇게 보여?"

        "예. 서로 사랑하는 거 같아요."

        "네가 그런 걸 어떻게 알아?"

        "왜요? 보면 알아요."

        "참 쪼그만 게 못하는 말이 없어요."

       

 말은 그렇게 하면서도 영숙은 그 소리가 싫지 않았다.

 거부감이나 저항감을 못 느낀다고나 할까?

   

 조용히 희영이 얼굴을 바라보았다.

 그때 선생님이 다시 건너오셨다.

 

      "고구마 어떻게 됐어?"

      "아직 안됐을 거예요."

      "한번 꺼내봐!"

 

 난로 뚜껑을 열고 고구마를 꺼내 보았다.

 고구마는 딱딱한 체 익을 생각도 안 하고 있었다.

 

      "이래 가지고는 익지도 않겠다."

      "조금 더 기다려 봐요."

 

 다시 난로에다 고구마를 넣었다.

 희영이는 기대를 가지고 고구마를 바라보다가 전혀 익지 않았으니까 실망이 대단하다.

   

      "저 집에 갈래요."

      "조금 있으면 언니 퇴근하는데 같이 가자."

      "아녜요. 지금 갈래요."

      "혼자 갈 수 있어?"
      "그럼요. 바로 요 위인데요. 뭐. 갈래요."

 

 희영이를 보내 놓고 버드나무가 가득 흔들리고 있는 창문 앞에 섰다.

 정말 날씨가 따뜻하다.

 선생님은 한잔 한 때문인지 무척이나 기분이 좋아 보였다.

 

       "김양! 김양! 난로에 고구마 굽다가는 안 익겠어!"

       "그럼 어디에 구워요? 할 수 없죠."

       "전기난로 있잖아."

       "아, 전기난로."

 

 전기난로를 벽에 붙어 있는 작은 학교 책상 위에 올려놓고 난로에서 고구마를 꺼내어 올려놓았다.

 

 영숙이는 선생님과 그 앞에 나란히 서서 말없이 고구마가 익는 것을 지켜보았다.

   

   저녁 어스름이 조금씩조금씩 시간을 몰고 온다.

   사무실의 불을 켰다.

   고구마 익는 냄새가 사무실에 퍼진다.

   

 그때 갑자기 사무실에 전기 불이 나갔다.

 정전이다.

   

   사위가 조용한 어둠에 묻혀 숨을 죽이고 있다.

   

   따뜻하다.

   겨울 날씨가 따뜻하다.

   

   겨울 날씨가 따뜻하고 사무실이 따뜻하고 오늘은 선생님도 따뜻하다.

   선생님은 바지 주머니에 영숙이는 자신의 원피스 주머니에 각기 자기 손을 깊숙이 집어 넣고는 나란히 서서 각자의 생각 속에 빠져 있다.

 

   말은 없지만 선생님이 머릿속에 무슨 생각을 하는지 모르지만 영숙이는 떨어져서 나란히 서 있는 선생님과 이 순간 체온이 일치한다는 생각을 한다. 

   호흡의 리듬이 같다는 생각을 한다.

   그리고 느끼는 감정도 하나라는 생각을 한다.

   

   좋다. 참으로.

   생각의 리듬이 감정의 뇌파가 같이 흘러가는 이 것은 참으로 깨끗하고 순결한 영혼의 일치감이다.

   

 선생님은 바로 영숙이 옆에.

 손을 내밀면 닿을 곳에 서 있었다.

 그러나 이 순간이 깨어질까 봐 감히 손을 내어 밀 수가 없다.

   

   가마 속에 있던 하나의 ' 청자 '가 완성되는 이 순간.

   

   조금만 더 열이 높아지면 그 청자가 깨어질 것 같은 그래서 그 값어치가 없어질 것 같은 지금 이 순간.

   

   감히 손을 내어밀거나 그리고 손안에 유형의 것을 잡아 보려고 시도하여서는 안 되는 무형으로 완성되는 시간의 정지.

   

   따뜻하고 편안한 느낌.

   

   밤의 짙은 어두움.

   조금씩 조금씩 시간을 몰고 온다.

   

   이제 고구마는 다 익으려 한다.

   

   정지된 시간 속으로 갑자기 환한 불이 들어섰다.

 

   그것은 갑작스러운 밝음이었다.

   생경스러운 밝음.

   

 그 밝음 속으로 멍청하게 제각기의 생각 속에 빠져 나란히 서 있는 한 남자와 한 여자가 보였다.

 현실이었다.

   

    현실의 모습은 각자 자기의 생활을 가지고 각자의 생활에 충실한 타인일 뿐.

   

    정전이 좀 더 길었으면. ~

    몸이 떨리는. ~

    아쉬움을 맛본다. 

 

 전기난로에 다시 불이 들어오고 영숙이는 힐끗 선생님의 옆얼굴을 바라보았다.

   

 차가운 옆모습.

 윤선생님 본래의 이지적이고 냉정한 얼굴.

 어둠 속에서 영숙이 혼자만의 생각 속에 빠져 있었나 부다.

   

 영숙이는 침묵속에서 다시한번 몸이 떨리는 아쉬움을 맛본다.

   

 창 밖은 완전히 어두워져서 버드나무도 보이지 않고 면사무소 불빛만 저 먼 곳에서 조을고 졸고 있는 듯 보인다.

   

   사무실은 어둠의 한가운데서 섬이 되어 있었다.

   섬이 되어 어둠 한가운데를 둥둥둥 떠간다.

   

   고구마 타는 냄새가 난다.

   

       "고구마 타네요."

       "다 익었을 거야."

       "자, 그럼 전기난로 끄고 이쪽 난로 위에다 갖다 놓고."

       "이야. 맛있겠어요."

 

 

 

 

 

출처: https://sjjtc1.tistory.com/2137 [베이비 붐 세대 - 또순이:티스토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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