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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ity life of Jinnssam

영혼의 닻을 찾아서 2022. 10. 4. 19: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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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ity life of Jinnssam>

1. 파마

처음 학교 갈 때에는 드라이 파마가 유행이었다.

어깨정도의 길이로 굽실거리는 파마를 해서 머리를 감고 드라이를 밖으로 하면 컬이 바깥으로 말리는 머리다.

어느날 동네 미장원에 갔다.

그때나 지금이나 외모 가꾸기에는 잼병.

관심도 없고 관심이 있다해도 잘 모른다.

동네 미용실 미용사도 동네 아줌마 파마를 하시는 분이었는가 보다.

빠글 빠글 빠글이 파마

지금도 그렇지만 유난히 머리 숱이 많아서 뽀글이 파마로 아프리카 사람 머리가 되버렸다.

아침에 머리를 감고 드라이도 잘못하니 머리가 한보따리 하늘로 솟았다.

교실에 수업하러 들어갔더니 아이들이 웃고 난리도 아니었다.

덕분에 한동안 Jinnssam의 별명이

"아프리카 원주민"

이었었다.

2. 선배 이야기

선배인 문자영 선생님은 정말 부지런 하시고 열심히 노력하시는 분이시다.

학교가 공립이 되면서 흩어졌지만 가끔 만나뵐 때마다
항상 공부를 하고 계셨다.

교육 대학원에 각종연수와 연구등등

끊임없이 노력하시
고 점수를 올려서 교감선생님이 되셨고 교장선생님이 되셔서 교장선생님으로 퇴임식을 하셨다

선생님이 지상렬씨
랑 결혼하실 때쯤에 Jinnssam은 공립학
교에 발령이 났다.

아직 공립학교로 넘어가기전 이후락 재단일 때였다.

장학사에게 전화를 받고 대전에 가려고 울산여상 교정을 막 나서는데 문자영 선생님을 만났다.

샘은 지상렬씨랑 결혼준비 하느라 매일 만나고 있었는
데 그날도 학교 앞에서 만났는지 두분이 같이 있었다.

"샘. 저 공립학교에 발령이 났어요"
"그래?"
"집에서 버스타고 한시간 반 걸린대요."
"오늘 대전갔다가 내일 발령난 학교에 가보려구요."
"내일 출근 못할거 같아요."
"개인사정으로 결근 한다고 말해주셔요."
"그래."
"발령난데로 가려
구?"
"모르겠어요."
"가지마."
"계속 여기서 나하
고 같이 근무하자."

중요한 상황이었다.

사립에 계속 근무할
것인지 아니면 공립
으로 갈건지.

그날 대전 갔다가 다
음날 발령이 난 합덕
여고를 방문하였다.

양장점에서 아래 위 보라색갈로 치마와 마의를 맞춰 입고 다니던 때 였다.

같은 색갈의 바지도 있었다.

합덕여고 교정을 걷고 있는데 어떤 여선생님이 교실에서 내려다 보고 있었다.

Jinnssam이 수업
시간에 밖을 내다 보
는 것처럼.

합덕군에 있는 합덕 여고.

전임선생님이 온다
간다 말도없이 그만
두었다는 것이 마음
에 걸렸다.

울산은 도시다.

도시에서 시골로?

결론이 날때까지 학
교 건물앞 교정을 왔
다 갔다 하였다.

오래된 나무와 벤치
가 있는 학교 건물 앞 교정은 매우 운치가 있어서 어느 영화에 나오는 한장면 같았
다.

깨끗하고 말끔히 청
소된 교정과 파아란 하늘에서는 풀냄새가 피어 오르는 것 같았
다.

교정을 천천히 왔다 갔다 했다.

결론은

"울산이라는 도시에 남아 있자."

였다.

교육청으로 포기각
서를 쓰러 갔는데 장
학사님이 말씀하셨
다.

"1~2년만 있으면 대전으로 나올수 있는데."
"울산에 애인 있지?"
"네에? 없는데요?"

그날 다시는 건널 수
없는 또하나의 강을 건넜다.

많은 주변 사람들이

"공립이 낫지. 사립
보다는 ~ 무조건 가
야지."

살면서 너무 힘들었
을때 문자영 선생님 한테 말한적이 있었
다.

"샘. 그때 왜 공립 발령났을때  가라고 안했어요?"
"왜 가지 말라고 말
렸어요?"
"난 그런 말 한적 없
는데?"

그렇다.

인생의 중요한 결정
에 대해서 말했다 하
더라도 말한 사람은 잊을수 있다는것을 그때 알았다.

결론은?

그때 안가길 잘했다.

평생 시골로만 다닐
수도 있었고 군에 있
는 여고는 거의 다 없
어지거나 중학교와 합병했다.

영동여고가 영동여
중과 영동중학교와 합쳐져서 영동 중고
등학교가 된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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