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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ity life of Jinnssam
영혼의 닻을 찾아서
2022. 10. 7.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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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ity life of Jinnssam>
1. 슨생님 외로봐서 못살겠어요.
1학년 10반 아이 중에 정자에 사는 이쁘장한 아이가 있었다.
예쁘고 상냥하고 키는 중간쯤에 앉아 있었던 아이였다.
40년전만 해도 정자는 바닷가에 있는 정말 시골 어촌이었다.
정자에 살면 울산으로 나오는 버스를 타고 시간 맞춰 등교하면 되는데 정자에서도 한참을 걸어 들어가야 하는 동네였다.
너무 멀어서 자취를 하고 있었는데 어느날 자취를 그만두고 버스 통학을 하겠다고 말했다.
"왜?"
"새벽밥 먹고 나서야 하잖아."
"힘들지 않겠어?"
"네에 ~ 정자 나오려면 집에서 한 30분 걸어 나와야 해요."
"6시 첫차 타려면 5시 30분에 나서야해요,"
"울산에 도착해서 또 시내버스 타야해요."
"그럼 학교에 8시 좀 넘어서 도착해요."
"힘들텐데."
"아침이나 저녁에는 어른들이 바래다 줘야한다."
"시골이래서 위험하잖여."
"아버지가 데려다주고 데리러 온다했어요."
"힘든데 자취하는게 좋지 않을까?"
"그래서 자취 했었는데요."
"외로봐서 ~ 외로봐서 못있겠어요."
Jinnssam은 외롭다는 말을 그리 쉽게 말할 수 있는 아이가 정말 부러웠다.
먹고 살기 힘든 시대에 할일이 없어서 외롭다고 말하는 것 같아서.
외롭다고 말하는 것은 왠지 사치인 것 같아서.
외롭다는 말을 마음 바닥에 꾹꾹 눌러 담아야하는 감정이라고 생각했었다.
표현하지 않는다고 외롭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아프다고 말하지 않는다고 아픈데 아프지 않은게 안되는 것처럼.
Jinnssam은 담임 맡은 반 아이중에 정말 시골에 살아서 자취를 하지 않으면 학교에 다닐 수 없는 아이를 찾아냈다.
"형순아, 자취하지? 선생님이랑 같이 자취할래?"
"집에 물어볼께요."
형순이가 주말에 집에 다녀오더니 Jinnssam이랑 같이 자취하겠다고 말했다.
우수아파트의 그 작은 방에 형순이랑 같이 살기 시작하였다.
형순이는 키가 작고 포동포동한 귀여운 아이였다.
시골에서 자라서인지 형순이는 뭐든지 다 잘했다.
콩나물 국도 잘 끓였다.
Jinnssam은 콩나물 국을 끓이려면 콩나물을 하나씩 하나씩 가려내며 씻었는데 쓰윽 두어번 휑구고 끓였다.
"저렇게 씻어도 되는구나."
한번은 주말에 집에 다녀오더니 집에서 다래를 가져왔다.
머루와 다래가 산에 열리는 진짜 시골에 사는 아이였던 것이다.
Jinnssam은 머루를 처음 보았다.
참 신기한 열매였다.
다래에는 까아만 씨가 잔뜩 들어 있었는데 그렇게 달지는 않았다. 씨를 그냥 먹어도 된다고 했다.
그렇게 몇주를 살았는데 학생이랑 같이 지낸다는 것은 힘든 일이었다.
단순히 외롭다고 학생이랑 지낼 수 있는 문제가 아니었다.
더우기 부엌일이 서툰 Jinnssam이 아이를 데리고 있을 처지가 못되었다.
"형순아, 안되겠다. 같이 자취를 하는 건 무리인 것 같아."
"형순이가 이사했으면 좋겠는데 어떻게 해야하지?"
"알았어요. 한번 알아볼께요."
다음 주 형순이는 외로봐서 혼자 자취하기 힘들다는 그 아이와 같이 자취하기로 하고 그 아이가 얻은 방으로 들어갔다.
밤에 형순이의 이불 보따리를 들고 형순이가 들어 가기로 한 자취방에 따라갔다.
야음동에 있는 낮으막한 양철 지붕의 집이었다.
도착하니 방 앞에 그 아이가 나와 서 있었다.
이불 보따리를 형순이에게 주고 형순이가 그 아이와 방으로 들어 가는 것을 지켜 보고 돌아섰다.
안도의 숨을 쉬면서.
다들 지금은 어떻게 지내고 있을까?
한번은 감포에 놀러가서 화장실에 갔었다.
화장실 앞에서 키작은 통통한 아줌마을 만났다.
그러려니 지나치고 화장실에 다녀오니까 그 아줌마와 비슷한 또 한명의 아줌마와 함께 있던 두명의 아저씨들
이 Jinnssam을 유심히 바라본다.
"울산여상 졸업생이구만."
남편님들이 유심히 보고 있고 아줌마들은 쳐다보다 시선을 피하면 100% 울산여상 졸업생이다.
그정도의 눈치는 있다.
의외로 그때 졸업생
들이 사회적으로 성공한 경우가 많다.
울산에서 공부좀 잘하고 똑똑한 아이들이 모여들던 울산 여상은 그때
당시에는 울산여고보다 입학 성적이 좋았었다.
아가씨때 같이 근무하던 영주 샘 딸이 서울에서 큰 로펌 회사에서 변호사로 근무하는데 거래하는 큰 블랜드 보험회사 부사장이 울산 여상 졸업생이라고 하였다.
마트를 해도 큰 규모로 하고 공인중개사로 100억대의 매물을 다루는 졸업생도 있다.
공인 중개사가 말했다.
"선생님들은 먹고 사는게 답답하지 않아서 부동산 투자를 안해요."
"부동산 투자를 안해도 먹고 사는게 답답하지
않는데 부동산 투자를 하겠어요?"
"사는게 답답해야 부동산 투자를 해요."
그런데 요즘 젊은 선생님들은 다르다고 한다.
주식때문에 수시로 모임을 하면서 정보 공유를 하고 부동산 투자로 모임을 하거나 같은 재테크 투자를 하는 사람들끼리 재테크에도 열심이라고 한다.
세대가 변했으니까.
2. 신생원
우수 아파트 앞에는 신생원이 있다.
지금도 있다.
지금은 예전처럼 유명
하지도 않고 주인 할아
버지도 돌아가셨다.
40년 전에는 울산에서 정말 유명한 중국집
이었다.
주인 할아버지가 정말 중국사람이었는데 회식이 있으면 대부분 신생원에서 회식을 할 정도였다.
아파트 앞에 있으니 Jinnsam은 자주 신생
원에서 짜장면을 먹거
나 짬뽕등을 먹었었다.
특히 집에 손님이 오면 배달을 시켰었다.
신생원 할아버지는 늘 가게 홀에 앉아서 지나다니는 사람들을 바라보고는 하였다.
Jinnssam은 할아버지를 잘 모르는데 할아버지는 Jinnssam 집에 손님이 오는 것을 다 알고 있었다.
"탕수욕 하나 배달 해주세요."
"손님 오셨지요?"
"아? 예."
손님은 대학 다닐 때 같은 써클 활동을 하던 충남대 남학생이었다.
충남대에 충남 고등
학교를 나온 애들과 Jinnssam 학교에 충남 여고를 나온 아이들이 모여 모임을 만들었다.
첫번째 행사로 단풍이 유명한 내장산 산행을
했었다.
내장산 산 꼭대기까지 낑낑 올라가서 카레라
이스를 만들어 먹고 내려와서 버스를 탔다.
버스 뒷자리에 앉았는
데 Jinnssam은 멀미가 나서 먹은 것을 다 토
했다.
그 다음부터 한참 동안 카레는 Jinnssam이 못 먹는 음식이 되었었다.
그때 그 모임의 회장이
었는데 대전에 갔다가 우연히 그 아이를 길에
서 만났다.
"너 뭐하니?"
"나? 울산에 있는 울산 여상 선생님 해."
"그래?"
"너는 뭐하니?"
"나? 취직 준비중
이야."
퇴근하려는데 전화가 왔다고 해서 받았더니 그 써클 회장이었다.
"나 포항 친척집 갈일
이 있어서 가는데 울산 들렸다 가도 될까?"
"응? 그래."
Jinnssam 집에도 드뎌 손님이 온다.
그날 몇십년만에 큰 눈이 내려서 서울서 출발했다는 그 애는 10시간 만에 울산에 도착했다.
신생원에 탕수육을 주문하는데 할아버지
"손님 오셨죠?"
탕수육을 먹고 나니 밤 9시가 넘었다.
"포항 친척집에 가려고 하는데 너무 늦어서 자고 가라고 하면 자고 내일 가려고 하려는데."
"여기서 못자. 어떻게 여기서 자니? 나혼자 사는데."
그날 밤 늦게 포항으로 간 써클 회장은 다시는 연락을 안했다.
그걸로 끝.
학교 다닐 때 써클 활동 하는라 얼굴 몇번 보고 길에서 두어번 만나서 다방에 함께 간적 있고 그 외에는 잘 모르는 아이였다.
가장 중요한 건 공돌이라서 그 애가 너무 무식해 보였다.
울퉁불퉁한 남성적인 것도 맘에 안들었다.
남성적인 성향의 Jinnssam에게 끌리는 스타일이 아니었다.
대흥동 집 뒷집애랑 친구여서 그 애가 뒷집애랑 집앞을 지나가면서 떠드는 소리도 들었었다.
"Jinnssam 아직도 여기 사냐?"
신생원에는 자취하는 동안 밥을 안했거나 집에 먹을게 없을 때면 가서 혼자서 짜장면을 먹고는 했었다.
그러다보니 음식 재료 만드는 것도 많이 보았었다.
신생원 할아버지는 결혼 이후에 갈 때에도 맛있는 짜장면을 만들어 주셨다.
오랫만에 신생원에 갔는데 연세가 90이라 주방에 안들어 가시고 홀에만 계신다던데 옛날 손님이 오셨다고 직접 주방에 들어가셨
다.
여전히 맛은 있었지만 너무 짜게 만드셔서 그후로는 못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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