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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브라함을 본받아 <커플큐티>

영혼의 닻을 찾아서 2024. 5. 19. 10: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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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브라함을 본받아 >

창세기 13장은 가족 간의 문제로 분쟁을 겪고 있는 모든 사람들에게 믿는 자가 취해야  할 삶의 원칙을 제시해 준다.
사실 아브라함은 족장으로서 모든 면에서 우선적인 권리를 가졌다. 하지만 자신의 일꾼들과 조카인 롯의 일꾼들이 목초지의 문제를 놓고 서로 다퉜을 때, 아브라함은 자신의 권리를 주장하지 않고, 조카인 롯에게 우선권을 양보했다. "네가 좌하면 나는 우하고, 네가 우하면 나는 좌하리라."(창 13:9) 이처럼 아브라함은 가족 간의 싸움에서 더 많이 취함으로써 이기는 것보다 가족 간의 우애와 인간 관계를 더 소중히 여겼다.
믿는 자로서 오늘날 우리들도 아브라함이 보여 준 양보의 원리를 삶 속에서 실천해야 한다. 가족 간에 어떤 문제로 분쟁과 갈등이 생겼을 때, 분쟁에서 이기는 것보다는 인간 관계를 더욱 중시해야 한다. 분쟁을 해결하는 과정에서 상처를 주어서는 안된다.
그 결과를 보라! 아브라함은 자신이 스스로 양보했던 것보다 더욱 많은 축복을 하나님에게서 받았다. 그러므로 양보하는 것이 결국에는 더 많은 것을 얻는 길임을 깨닫도록 하자.    

           창세기 13장
    커플성경 17 ~ 18쪽에서
                   🌈

형제간의 경쟁은 성장하면서부터 함께 했었던 것 같다. 결혼 하면서는 부부 간의 경쟁은 머리 싸움이라고 말한다. 본능적으로 경쟁에서든 부부 간의 서열 싸움에서든 이기려고 하는 것이 사람의  본능이다. 고부간의 갈등도 그렇게 시작되는 것이 아닐까? 새로운 사람이 자리잡을 때까지 쉽지 않을 것이다.
신혼 때 생각이 난다. 시댁으로 첫 신행을 가서 하루 밤을 자고 일어나서 한복을 입고 안방으로 아침인사를 하러 갔다. 그렇게 하라고 시켰기 때문이다. 아버님이 말씀 하시기를 "먹는게 남는 것이다." 사실 그말을 이해하지 못했다. 태백산맥을 읽고 전라도 사람들을 이해하기 전에는 이해가 안되는 말씀이었다. 그 다음 하신 말씀은 "너네 친정 하숙친다며? 하숙해서 먹고 살았냐?"  
왜 그런 말씀을 하시는지 이해 하지 못했다. 지금 생각하면 새로 들어 온 식구를 함께 하기 보다는 이기시고 싶으셨던 것 같다. 아버님의 성향이셨다. 모두를 아우르기 보다는 당신의 지배 아래 두고 싶으셨던 것이다. 이후 시댁과의 갈등은 극에 달했고 겨울 방학에 혼자 오라고 해서 백일된 아이를 업고 육아용품을 들고 시댁으로 들어가는 시장을 지나가고 있었는데 아버님과 어머님이 어디선가 갑자기 나타나 달려들어서 업고 있는 아기와 아기 용품을 빼앗았다. 안뺐기려고 메달리는데도 질질 끌면서 막무가네로 빼앗았다. 물론 jinnssam이 잘못 한것도 많다는 것을 안다. 어쨌거나 이혼 위기를 넘기고 잠잠해졌지만 그일은 화인 맞은 것처럼 가슴에 상처로 남아 지워지지 않았다. 남편은 그 상황을 못봤으니 상처의 크기가 어떠한지도 잘모른다.
"그런 일이 있었다고? 말도 안돼."

왜 그랬을까?
아버님은 당신 마음대로 휘두르고 싶었던 것이다. 이기고 싶었던 것이다. 모르는 사람을 서로 처음 소개하는 자리에서 '이 사람이 ※※대학교를 나왔습니다.' 이렇게 말하는 것도 같은 맥락이 아닐까?

한가족이 된다는 것은 마음을 열고 받아들인다는 것이다. 동물처럼 단순 무식한 무조건적인 지배가 아니라 마음으로 서로를 이해하고 받아들이며 운명공동체로 함께 한다는 것이다.

교회 공동체는 어떤가?
처음 교회를 옮겼을 때 교회에서 철야하느라 너무 추워서 벌벌 떨고 있다가 성전에 붙어있는 모자방에 들어 가려고 방문을 열었다. 따뜻한 곳에서 코를 골면서 자던 사람들 중에 한사람이 벌떡 일어나더니 소리를 질렀다.
"어디를 들어오려고 해요?"
그 추웠던 겨울 밤의 철야는 잊을 수 없다. 그건 겨울 밤 아무도 없는 성전에서 추워서 벌벌 떨면서 철야를 해본 사람만이 이해할 수 있다.
그때 그렇게 소리 질렀던 사람은 어디서 어떻게 무엇을 하면서 살고 있는지 모른다.

교회 공동체는 지배를 하는 곳이 아니다.
누가 누구에게 이렇게 저렇게 하라고 지시하는 곳이 아니다.
모두들 오직 예수님만 바라보며 사는 곳이다.

그때도 지금도 항상 예수님은 우리를 보고 계신다. 그래서 아무리 많이 드려도 예배가 부족하다고 생각이 드는  이유는 예수님을 온전히 바라보지 못했기 때문이다. 기도를 아무리 많이 드려도 부족하다고  생각이 드는 이유는 기도는  오직 성령님의 인도 함으로 기도를 드려야 하기 때문이다.

포도원 교회 새벽기도 표제처럼 말씀으로 길을  묻고 기도로 답을 얻고 찬송으로 숨을 쉬고 섬김으로 힘을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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