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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건지소24

스물세살의 수채화 24. 풍성한 눈 푸짐한 눈 내리는 소리. 눈을 받아들일 준비가 없는 영숙이에게는 정말 쓸쓸하고 차갑기만 한 눈발들. 창 밖에는 여전히 바람 소리가 몰려다니고 홀로 선 아름드리 버드나무에 그 긴 가지들이 바람에 맞추어 눈송이 사이사이에서 춤을 춘다. 창문 앞에서 영숙이는 여전히 가슴을 앓으면서 무엇인가 목마르게 기다리며 서 있다. 그러나 아무것도 없는 가슴으로 텅 비어 쓰라린 가슴으로 자신의 작은 숨소리를 듣는다. 저쪽 길로 잔뜩 웅크린 선생님의 모습이 나타났다. 땅을 보며 급히 걷는 걸음으로 면사무소 문을 들어서서도 이쪽은 바라볼 생각도 안 하고 여전히 땅을 내려다보며 걷는다. 그 모습을 유리창을 통해 바라보며 미소 짓고는 돌아서서 영숙이는 책상 앞에 가 앉았다. 책을 들고 이쪽 사무실로 건너온 선생님.. 2022. 9. 1.
스물세살의 수채화 23. 화해 보건소 차로 보건소 소장과 보건소 치료실 사람들 그리고 곽양 하고 안양도 집에 간다면서 가버렸다. 보건지소에 윤선생님과 영숙이만 내려놓았다. 진료실 난롯불이 꺼져서 윤선생님은 가족계획실로 건너와 유리 창 앞에서 어슬렁거렸다. 영숙이는 난로 앞에 의자를 끌어당겨 놓고 구두와 핸드백을 콜드 크림으로 닦기 시작했다. ~ 뭐라고 말을 한담.~ 말을 꺼내려하니 막상 할 말이 없다. 묵묵히 구두를 닦으며 무슨 말을 꺼낼까 생각해 본다. 늦가을 비가 멈춘 창밖이 차츰 흐릿하게 회색으로 변하여 간다. 영숙이는 난로 불에 빨갛게 익은 얼굴로 창 앞에 서있는 윤선생님 의 완강한 뒷모습을 바라다본다. 창밖에는 늦가을 바람 속에 버드나무의 긴 가지가 부드러운 머리 카락처럼 흩날리고 있다. "사실은 ~ 그 말때문이.. 2022. 8. 31.
스물세살의 수채화 15. 윤선생님 윤선생님이 오셨다고 청산으로 모두들 점심 먹으러 나갔다. 청산면에서 음식점을 찾아 걷는데 뒤에 오는 일행들의 시선 중에서 유독 선생님의 시선이 영숙이의 줄 나간 스타킹을 바라보는 것 같아서 할 수만 있다면 땅 속으로 스며들든지, 아니면 어디에라도 숨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줄 나간 스타킹이나 남의 시선 따위에는 무감각하던 영숙이가 갑자기 스타킹에 신경이 쓰이다니 별일이다. 음식점을 알아 놓고 양품점에 가서 스타킹을 사서 갈아 신고 돌아와 보니 음식은 아직 나오지 않았고 커다란 감나무가 있는 음식점 뒤뜰에서 한가한 농담들만 주거니 받거니 하고 있었다. 뒤뜰에는 커다란 개 한 마리가 감나무에 매여 있었다. 영숙이가 아무 생각 없이 나무 곁으로 다가섰더니 개가 짖으면서 달려드는 바람에 어찌나.. 2022. 8. 23.
스물세살의 수채화 13. 지소장의 떠남 가뭄을 달래는 오랜만의 단비로 이 작은 산골도 무척이나 바빠졌다. 모심으랴 물 대랴 농사일들이 태산이다. 사무실로 면사무소의 한서기가 면장님이 안양과 곽양 언니를 부른다고 데리러 왔다가 아직 출근하지 않은 것을 보고 영숙이랑 면사무소 이야기를 하다가 갔다. 새롭게 알게 된 사실은 영숙이랑 초등학교 동창인 김기남이 여기 청성 면사무소에서 근무하다가 군대를 갔다는 것이다. 아직 결혼은 안 했지만 이 동네 아가씨랑 사귀다가 군대를 갔는데 이번에 그 아가씨가 떡두꺼비 같은 아들을 낳았다고 한다. ~ 기남이가 여기 면사무소에 근무를 했었구나. 아들을 낳았구나. ~ 기남이는 옥천군 군서 초등학교 5학년 때 같은 반 반장이었다. 그 애가 아파 3월 한 달 내내 학교에 안 나와서 우리 반 아이들이.. 2022. 8.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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