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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료4

< 홀로 선 버드나무 > 42. 대단원 마지막 음악. 선생님은 얼굴이 많이 상해 있었다. 침울한 얼굴로 진료실에서 마지막 사무 정리를 하고 계시는가 부다. ㅡ 선생님 마지막 음악 소리가 들리죠? 우리는 어차피 이별을 전제로 한 만남이 아니었나요? ㅡ ㅡ 언젠인가는 헤어져야 할 사람들이기에 모든 것이 제자리에 있는 지금 이대로 헤어져 가야 해요. ㅡ 마음의 한구석에 손가락에 찔린 아주 작은 가시랭이처럼 남아 있어서 문득 느끼면 아프고 없애려 하면 잘 없어지지 않고 애먹이는 가시. 영숙이는 달뜬 모습으로 제자리를 맴도는 연못 위에 작은 물방개처럼 서류를 들고 빙글빙글 돌아가는 환상 속에 해방감을 느끼고 있었다. 서류 더미를 있는 대로 끌어 내놓고 정리할 것은 정리하고 없애 버릴 것은 없애 버리고 그러다가 갑작스러운 충동에 못 이겨 서류를 든 체 .. 2020. 1. 28.
< 홀로 선 버드나무 >38. 나목이야기 잠을 청하려 하였지만 벽 하나로 잇 닿아 옆으로 2칸짜리로 된 신혼부부 방에서 새어 나오는 소리 때문에 신경이 쓰여서 잠이 오지 않았다. 읽다가 접어 둔 박완서 씨의 " 나목 "을 펼쳐 들었다. 전쟁으로 인한 주인공들의 삶의 변화, 주인공의 사랑, 안방 유다 락으로 피하게 한 두 오빠의 폭격으로 인한 죽음 등이 영숙이의 가슴을, 젊은 가슴을, 잠못 이루고 서성이는 가슴을 환상으로 적셨다. " 나도 언젠가는 박완서 씨처럼 이런 소설을 쓸 수 있게 될 거야! "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수면에는 도움을 받지 못했다. 영숙이는 일어나 옷을 걸치고 밖으로 나갔다. 가게에 가서 맥주 3병과 안주로 땅콩을 사 가지고 왔다. 삼단요에 엎드려 맥주와 땅콩과 나목을 펴 놓고 책과 맥주와 신혼부부의 신음 소리에 취했다. .. 2020. 1. 24.
< 홀로 선 버드나무 > 34. 사랑의 주제가 " 유아 비누가 한 달에 한 상자씩이나 쓰이는데? " " 기저귀를 유아 비누로 빠니까 그런가 본데! 신생아의 피부는 약하거든! 그래서 유아 비누를 안 쓸 수도 없고! " 영숙이는 선생님의 얼굴을 힐끗 올려다보았다. 윤선생님은 집 생각을, 새로 태어난 아가야 생각을 하고 있었다. " 내가 여기 내려온다니까, 따라 내려온다는 걸 말렸었지! 여동생이 만삭 된 몸으로 시골 갔다가 택시 안에서 몸을 틀기 시작하여 시골집에 도착하자마자 애를 낳았거든. 칠칠치 못하게끔. 곧 아기 낳을 사람이 버스 타면 흔들려서, 잘못하면 버스 안에서 아기 낳기 십상이거든. 우리 아기가 태어난 지 벌써 세 달이나 됐군. " 그 순간, 윤선생님은 아가야 아빠였다. 다만, 아가야 아빠 일 뿐. 영숙이와는 상관없는 이방인, 먼 존재인 것이.. 2020. 1. 20.
< 홀로 선 버드나무 > 15. 만명리 치과 진료 월요일 아침. 바람이 몹시 부는 아침이다. 출근하는 몸이 바람에 불려 어디로 인가 날아갈 것만 같은 그런 아침이다. 영숙은 전날 밤 마신 술 때문에 아직도 띵한 머리로 부지런히 사무실을 향하여 걸었다. 술이 자신을 위로해 줄까! 기대했던 어리석음을 후회하지 말자. 생활의 쳇바퀴를 돌리다 보면 자연스럽게 쓸데없는 고통 따위는 사라지리라! 영숙은 문득 마음속으로 파고드는 바람의 냄새를 맡는다. 아침 햇살만큼이나 투명하고 아린 바람의 냄새. 고독과 우울한 어두움이 스쳐 지나간 자욱은, 바람이 영숙이 마음을 스치고 지나갔을 때처럼 아무 표시 없이, 아리고 아프고 그리고 텅 빈 공백 만이 남을 것이다. 치과 진료차가 와서 모두들 만명리로 출장을 갔다. 지금 지난밤과는 상관없이 까닭 없이 기분이 좋은 까닭은 아직 .. 2020. 1.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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