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홀로 선 버드나무15

스물세살의 수채화 25. 따스한 겨울 겨울은 여전히 따뜻하기만 했다. 아마도 시간의 흐름을 잊어버린 모양이다. 밀려 버린 시간 때문에 겨울이 지난봄에나 추워지려는가보다. 유난히 따뜻하고 포근한 겨울. 영숙이는 무엇인지 잘 알 수 없지만 어렸을 적 외갓집에서 외할아버지가 소리하시는 것을 들으며 따뜻한 아랫목에서 아슴히 잠들 때처럼 보이지는 않지만 아늑하고 기분좋게 무엇인가가 영숙이를 감싸주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창 밖으로 조용히 눈이 내려 온다. 하늘하늘 ~ 영숙이는 창문앞에 서서 초록색 원피스 양쪽 주머니에 손을 찔러 넣고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생상스 첼로 협주곡 1번( Saint - Saens - Cello Concerto No. 1)을 듣고 있었다. 섬세하게 떨려 나오는 고은음색이 창밖의 눈과 어울려 따뜻한 실내를.. 2022. 9. 2.
스물세살의 수채화 24. 풍성한 눈 푸짐한 눈 내리는 소리. 눈을 받아들일 준비가 없는 영숙이에게는 정말 쓸쓸하고 차갑기만 한 눈발들. 창 밖에는 여전히 바람 소리가 몰려다니고 홀로 선 아름드리 버드나무에 그 긴 가지들이 바람에 맞추어 눈송이 사이사이에서 춤을 춘다. 창문 앞에서 영숙이는 여전히 가슴을 앓으면서 무엇인가 목마르게 기다리며 서 있다. 그러나 아무것도 없는 가슴으로 텅 비어 쓰라린 가슴으로 자신의 작은 숨소리를 듣는다. 저쪽 길로 잔뜩 웅크린 선생님의 모습이 나타났다. 땅을 보며 급히 걷는 걸음으로 면사무소 문을 들어서서도 이쪽은 바라볼 생각도 안 하고 여전히 땅을 내려다보며 걷는다. 그 모습을 유리창을 통해 바라보며 미소 짓고는 돌아서서 영숙이는 책상 앞에 가 앉았다. 책을 들고 이쪽 사무실로 건너온 선생님.. 2022. 9. 1.
스물세살의 수채화 19. 만명리 치과 진료 월요일 아침. 바람이 몹시 부는 아침이다. 출근하는 몸이 바람에 불려 어디로 인가 날아갈 것만 같은 그런 아침이다. 영숙은 전날 밤 마신 술 때문에 아직도 띵한 머리로 부지런히 사무실을 향하여 걸었다. 술이 자신을 위로해 줄까! 기대했던 어리석음을 후회하지 말자. 생활의 쳇바퀴를 돌리다 보면 자연스럽게 쓸데없는 고통 따위는 사라지리라! 영숙은 문득 마음속으로 파고드는 바람의 냄새를 맡는다. 아침 햇살만큼이나 투명하고 아린 바람의 냄새. 고독과 우울한 어두움이 스쳐 지나간 자욱은 바람이 영숙이 마음을 스치고 지나갔을 때처럼 아무 표시 없이 아리고 아프고 그리고 텅 빈 공백 만이 남을 것이다. 치과 진료차가 와서 모두들 만명리로 출장을 갔다. 지금 지난밤과는 상관없이 까닭 없이 기분.. 2022. 8. 27.
스물세살의 수채화 18. 나목이야기 잠을 청하려 하였지만 벽 하나로 잇 닿아 옆으로 2칸짜리로 된 신혼부부 방에서 새어 나오는 소리 때문에 신경이 쓰여서 잠이 오지 않았다. 읽다가 접어 둔 박완서 씨의 "나목" 을 펼쳐 들었다. 전쟁으로 인한 주인공들의 삶의 변화. 주인공의 사랑. 안방 유다락으로 피하게 한 두 오빠의 폭격으로 인한 죽음 등이 영숙이의 가슴을 젊은 가슴 잠못 이루고 서성이는 가슴을 환상으로 적셨다. "나도 언젠가는 박완서씨처럼 이런 소설을 쓸 수 있게 될 거야."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수면에는 도움을 받지 못했다. 영숙이는 일어나 옷을 걸치고 밖으로 나갔다. 가게에 가서 맥주 3병과 안주로 땅콩을 사 가지고 왔다. 삼단요에 엎드려 맥주와 땅콩과 나목을 펴 놓고 책과 맥주와 신혼부부의 신음 소리에 취했다.. 2022. 8.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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