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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달래 ~ 사쁜이 즈려 밟고 ~>
무거천의 꽃비를 보고나서 점심을 먹었다.
가자미 조림.
문득 여고시절 소년에 대해서 영이 엄마에게 말하기 시작하자, 라떼이야기가 마구 실타래처럼 풀린다.
카페에 가서 쓰고 있던 벚꽃 터널, 밀면, 그리고 .....3을 쓰고 버스를 타려고 나와서 무거천 근처 굴화주공 버스정류장에서 타려고 천천히 걸어갔다.
조금 쓴다고 앉아 있었더니 다리가 뻣뻣해진 느낌인데 조금 걸으니까 혈액순환이 되어서 기분이 좋다.
길가에 있는 브랜드 옷집들을 들여다 본다.
80% 세일이라지만 그래도 가격이 비싸다.
이리 저리 훝어 보면서 걷다 보니까 어느사이 무거천에 도착해서 다시 벚꽃 앞에 섰다.
슬슬 배가 고파지고 마침 철이가 외식을 한다기에 무거천 입구 밀면 집에 들어섰다.
만두와 비빔 밀면을 먹었더니 배가 너무 부르다.
예전에 어떤 선생님이 배가 부르면 기분이 나빠진다고 했는데 이제야 그 이유를 알것도 같다.
체중 증가에 몸이 둔해지고 호흡도 가빠지고, 천천히 더 걷기로 했다.
걷다 보니까 도로를 따라 걷기 싫어서 도로 옆 산으로 난 길을 따라 올라갔다.
성광여고 옆으로 가는데 학생들이 말을 건다.
"안녕하셔요? 산책 하시나봐요?"
"응. 저녁시간인가보네."
"네."
"18살 최고"
"17살인데요."
"17살 최고 낙랑 18세 최고"
아이들이 철조망 옆 정자 마루에 올라 앉아서 이야기 삼매경중이다.
아까 철조망에 매달렸던 아이들은 그 철조망을 넘을 수 있으면 넘어가서 무거천 벚꽃 탐방에 나설텐데.....
영숙이가 보이니까 인사를 한 것일까?
지나가는데 남선생님 한분이 정자 쪽으로 올라 오신다.
그럼 그렇지 ~ .
비탈진 산길을 올라 가는데 마음껏 호흡을 하니까 기분이 좋다.
폐속 깊이 숨을 들이 마시고 내뱉어 본다.
계속 올라가니까 진달레 꽃과 철쭉 꽃이 활짝 피어 있는 것이 보인다.
차가 싱싱 달리는 도로에서는 절대로 만날 수 없는 꽃들이다.
이렇게 도로만 조금 벗어나도 도시의 소음이 멀리 들리고 도시에서는 볼 수 없었던 진달레와 철쭉이 잔뜩이다.
올라 갈 수록 더 많아서 끝에 쯤 가서 철쭉 두개를 꺾고 진달레를 두개 꺾어서 손에 쥔다.
동막골에 미친 소녀처럼 머리에 진달레 꽃을 꽂지는 않았지만 지금 아무도 없는 산길을 해가 넘어가는 아슴한 시간에 머리대신 손에 들고 가고 있는 것이다.
김소월 시 진달레 꽃을 학교 다닐 때 얼마나 외웠는지, 영숙이도 그런 시를 써서 언제인가는 교과서에 꼭 실리고 싶었었다.
Azaleas
Kim Sowol
translation by Alex Rose
When you leave
tired of me,
without saying anything, I shall gently let you go
From Yaksan in Nyongbyon,
I shall pluck an armful of azaleas
and scatter them on the path down which you go
As you make your way, step by step,
upon the scattered flowers lain before you,
Please tread gently as you go
When you leave
tired of me
Even in death shall no tears flow,
영역시로 외우려고 정말 열심히 읽었지만 결국은 못외웠다.
그래도 제목은 외웠었다.
그렇게 진달레와 철쭉 꽃을 손에 들고 학교 옆으로 난 산길을 따라서 허헉 거리면서 걸었다.
기분이 좋았다.
오늘 운동은 이것으로 하면 되겠다.
학교 옆에 있는 길을 따라 가다 보니까 제일 고등학교 뒷쪽으로 길이 이어져 있다.
학교 옆으로 있는 길로 나가려고 하니 그곳에 현수막이 걸려있다.
"이길은 제일 고등학교 안으로 들어가오니 다니지 마십시요." 남구청
어두워지기 전에 이 산길을 벗어 나려면 저 길로 내려 가야하는데 현수막으로 막아 놓아서 현수막을 들쳐내고 가지 않고 산등성이로 나 있는 옆길로 간다.
이제 도시의 소음은 전혀 들리지 않는다.
원래 이맘 때 쯤이면 쏙독새가
"쏙둑 쏙둑"
하고 우는 소리가 들려야 한다.
몇년 전만 해도 들렸었는데 이제는 전혀 들리지 않는다.
언양에 있는 영남 알프스인 가지산에 지난주 주일날 오후에 갔더니
"쏙둑 쏙둑"
우는 소리가 들렸었다.
산길을 따라 가는데 다람쥐인지 후다다닥 마른 풀 속을 달려 나가는 소리가 들린다.
영숙이가 산에 있는 작은 짐승들을 무섭게 하나 보다.
새소리도 안들린다.
서서히 회색 공기가 다가온다.
"어두워지기 전에 내려가야 할텐데."
슬쩍 걱정이 된다.
사람이 하나도 없는게 무서우면서 또 사람을 만날까봐 더 무섭다.
얼마나 아이러니 한지.
사람이 전혀 없는 곳은 정말 무섭다. 그런데 사람이 없는 곳에서 사람을 만난다면 그것처럼 무서운게 또 없다.
온갖 무서운 상상이 밀려든다.
얼릉 내려가야겠다.
대공원 2.7Km 태화강 전망대 2.8Km
대공원 쪽으로 가면 대공원을 가로질러 내려가야 하기 때문에 더 멀까봐 태화강 전망대로 가는 길로 간다.
가다 보니까 전에 다녀 본길이 나온다.
길 옆에 고래를 닮은 땅에 붙어 있는 가로등이 있다.
'저 가로등이 불이 들어올까?'
이제 진달레와 철쭉도 보이지 않는다.
가다보니까 고래 모양 가로등에 불이 들어와 있다.
어느사이 서서히 어둠이 내려 앉고 있나보다.
아직 눈앞이 보이기는 한다.
산에서 내려 갈 수 있는 빠른 길을 찾아 건물 옆으로 나있는 길을 택한다.
경사가 심하다.
이런 곳에서 다치면 심각한 상황이 된다.
조심스럽게 나무 뿌리로 발디딤이 만들어진 길로 내려간다.
이제 조금 어두워져서 두려움이 밀려든다.
목을 빼고 아까의 여유와 즐거운 마음 대신 밀려드는 두려움때문에 재게재게 발을 놀리며 진달레와 철쭉을 손에 꼭 쥔채 내려간다.
갑자기 테니스장을 비추는 환한 불과 테니스를 치는 소리가 들린다.
멀지 않다.
부지런히 내려갔다.
법원 뒷담이다. 철조망이 사람 다닐 수 있도록 열려있다.
도착 ~ 휘우웅 ~ 모르는 곳을 개척하는 것 같던 마음은 이미 어디론가 날아가고 무사히 도착했다는 것에 감사. ~
정신없이 걸을 때는 몰랐는데 평지를 걸어가니까 허벅지가 아프다.
손에 잡고 있는 진달레 꽃은 여전하다.
이제 잘아는 길을 따라서 집에 도착 ~ 진달레를 투명한 컵에 물을 담아 꽂아 놓는다.
어떻게 김소월은 진달레 꽃을 바라보며
가시는 걸음 걸음
놓인 그 꽃을
사쁜이 즈려 밟고 가시옵소서.
이런 시를 쓸 수 있었을까.
오늘 영숙이는 동막골에 나오는 미친 여자애처럼 마음이 오르락 내리락 휘몰아쳤는데 김소월은 어떻게 그런 시를 쓸 수가 있었을까?
얼마나 다사, 다작, 다독을 하면 그렇게 쓸 수가 있을까?
영숙이는 멀고 멀 길을 걸어가는 느낌이 다시 든다.
진달레 ~ 사쁜이 즈려밟고 ~
그런 시를 쓸 수 없는 영숙이는 그런 시를 찾아서 멀고 먼길을 걷고 있는 것이다.
그 누구도 그런 시 귀절을 영숙이의 손에 쥐어 주지 않는다.
알려 주지도 않는다.
깨닫게 해주지도 않는다.
그렇지만 하나님은 영숙이에게 기회를 준다.
쓰고 싶은 마음을 준다.
감사 ~ 감사 ~ 감사 ~
"작가이신가요?"
"아뇨. 작가가 되고 싶은 사람입니다. 작가가 되려면 쓰고 또 쓰고 써야 하니까요."
"시인이신가요?"
"아뇨. 시인이 되고 싶은 사람입니다. 시인이 되려면 생각하고 또 생각하고 쓰고 또 쓰고 읽고 또 읽고 해야 하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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