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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얼마 전 

 엄마가 담낭에 염증이 생겨서 수술을 하셨다.

 쓸개에 돌이 생기면 얼마나 아픈지 모른다.

 지인이 담석증 때문에 가끔씩 떼굴떼굴 구르다가 결국은 수술하는 걸 보았다.

 

 담석증 때문에 주위에 염증이 퍼졌으니 고통이 심했을 텐데 동네 병원에선 항생제에 진통제를 처방을 해주어서 염증을 키웠다.

 염증이 터지지는 않았지만 터지기 직전에 병원에 가서 선생님이 하루만 늦었어도 큰일 날 뻔했다고 혀를 차셨다.

 다행히 좋은 의사 선생님을 만나서 잘 수술하고 이래 저래 고생은 하셨지만 회복 후 집에서 요양 중이시다.

 

 엄마는 코로나 때문에 오지 말라고 하지만 한달에 한 번씩 가서 식료품을 사드리는데 거의 두 달이 다 되어 가서 코로나를 뚫고 엄마한테 갔다.

 

  황토소금으로 만든 된장을 등에 짊어지는 가방에 넣고 갔더니 제법 무게가 나간다.

  어쩔 수 없이 ~

  스위스 여행 가서 마트에서 오천원을 주고 산 굵은 마로 된 천으로 만든 시장 가방에 일부의 짐을 넣어가지고 갔다.

 

  디자인이 좋아서 몇년 동안 애용했더니 한쪽 귀퉁이가 너덜이는데도 불구하고 커다란 비닐에 물건들을 묶어 가방에 넣고

 

  친청 엄마를 향하여

  출바알 ~ ~ ~

 

  사실 귀찮기도 하고, 티스토리도 써야 하고, 엄마도 오지 말라 하고, 돈도 들고, 가기 싫다는 마음이 슬금슬금 보이지 않는 연기처럼 올라와서 이러다간 추석 전에 못 가겠다 싶어 억지로 스스로를 다잡아 미뤄두었던 집안일을 바지런 ~

 바지런하게 치우기 시작했다.

 

 집안일이라야 정리 ~ 설겆이 ~ 빨래 ~ 돌리고 ~ 걷고 ~ 개고

 카페물건 마지막 정리 ~

 

 땀을 뚝뚝 흘리면서 일하다 중간에 점심 먹고 나니 저녁이다. 

 

 짐을 짊어지고 나왔는데 저만큼 걷다 보니 교통카드가 주머니에 없다는 생각이 났다.     다시 집으로 돌아가야 해?

 말아야 해?

 다시 집으로 돌아가서 교통카드를 챙겨 가지고 나왔다.

 

  드뎌 출발 ~

 

  다 저녁에 울산역에 도착해서 자동 발매기로 표를 끊으니 15분 정도 여유가 있길래 울산역 2층으로 올라갔다.

  울산역에 올때마다 2층에 있는 롯데리아로 가서 따뜻한 아메리카 한잔을 사고 아래층에 내려와서 플랫폼으로 진입하는 입구에 있는 던킨 도너츠를 산다. 

  커피를 마시기 위해서

 

  오늘은 다 저녁 때가 되어서 저녁 겸 테이크 아웃으로 세트를 주문하고 앞에 앉아 기다렸다.

 

 "왜 여기서 안드시고?"

 "시간이 없어서요. 아, 가져갈 시간은 있어요.".

 

 중학교 근무할 때 근처에 살던 청소년 조카를 4년 동안 방학 때 빼고 일주일에 한 번씩 롯데리아로 가서 햄버거 세트를 사 가지고 만나러 갔었다. 그때 조카네 집 근처 롯데리아 매장에 근무하던 직원이다. 

 어느 날 기차 타고 어디로 가려는데 습관처럼 롯데리아로 찾아들어갔더니 울산역 롯데리아 매장으로 옮겨서 근무한다고 하였다.

 만날 때마다 즐거운 얼굴로 서로 아는 체를 한다.

 

 그 롯데리아 직원을 볼 때마다 드는 생각은 우리가 동시대에 살고 있는 이상 언제 어디서 만나게 될지 모르니 나쁜 짓 하면 안 된다는 생각이다.

 

 햄버거를 받아 들고 시간이 다 되어서 기차를 타러 가면서 생각이 났다. 

 

 '요즘 코로나 때문에 기차에서 햄버거 먹으면 안된다는 ~ ~ ~'

 

 어쩌랴 플랫폼에 나가니까 기차가 도착해서 기차표에 있는 좌석에 앉으려는데 손에 있어야 할 마트 가방이 없다.

 

 ㅋ 롯데리아 ~~ ~

 

 두 번 생각 안 하고 그대로 기차에서 내렸다. 

 대단한 물건이 들어 있는 건 아니지만 ~.

 

 움직이는 계단을 두 칸씩 건너뛰면서 이층에 있는 롯데리아로 가니 직원이 웃으면서 가방을 꺼내어 준다.

 

  "들고 바로 따라 내려갔는데 1층에 안 계시더라고요. 부산행 기차를 타는지 서울행 기차를 타는지 몰라서 못 나갔어요."

  " 아예, 감사합니다. 기차를 탔는데 생각이 나서 내렸어요."

 

 수수료 15% 룰 떼고 표를 반환하고 다음 기차를 끊었더니 30분이 남는다.

 다시 롯데리아로 올라가서 먹을까 하다가 띄엄띄엄 사람들이 앉아있는 역구내에서 사람들하고 멀리 떨어져서 먹기로 한다.

 

 나이 든 아줌마가 햄버거와 콜라를 냠냠 먹는 게 보기 좋을 리 없을 텐데 ~ 

 그럼에도 불구하고 상관없이 햄버거는 맛이 있다는 게 문제다.

 카페에서 와플 장사에 와플 햄버거도 만들고 콜라도 팔았지만 이맛을 이기기는 힘들다는 생각이다.

 ㅠㅠㅠ ~~~

 

 먹으면서 보니 수소차 광고 코너가 눈에 띈다.

 울산시에서 밀어주고 특히 3400만 원의 혜택을 준다고 쓰여있으니까 뭘까하고 관심이 간다.

 햄버거 먹어 치우고 재빨리 광고 종이를 종류별로 챙겨서 둥글게 말아 가방 옆에 끼우고 W.C 향해서 움직인다.

 기차를 탄다.

 

 먹고 나면 잠이 오는 법.

 한숨 자고 나니 현재 엄마가 살고 계시고 내가 성장한 도시 대전이다.

 

 대전에 내리면 무조건 성심당 앞을 지나가야 한다.

 

 대전 역사가 재 단장하고 처음엔 들어가는 입구 쪽에 성심당이 있었는데 사람들이 기차타러 가느라 바빠서 빵을 들여다 보질 않았다.

 그러자 성심당은 도착해서 나가는 쪽으로 위치를 바꾸었다.

 처음에 출발하는 입구쪽 위치에서 역사 내로 들어왔다가 사람들이 너무 긴 줄을 서있는 데다 기름 냄새도 많이 나서 지금의 위치로 바꾸었는데 항상 길게 줄이 늘어서 있다.

 

 튀김 소보르. 

 튀김 부추빵.

 

 정말 튀김은 최고의 맛이다.

 튀김은 이 시대에 절대 진리의 맛이고 무조건 정답인 맛이다..

 

 내 나이에는 함부로 먹으면 안 되는

 튀김요리~. 

 튀김을 맘대로 먹던 시절은 지났지만 먹고 싶은 마음은 여전하다.

 그래도 참는다.

 

 빵집 앞을 지나는데 빵을 만드는 4명의 사람들이 쇼윈도 안에서 하얀 옷을 입고 하얀 모자를 쓰고 바쁘게 움직이고 있다.

 하얀 밀가루와 반죽을 정신없이 굴리고 자르고 문지르고 모양을 성형하여 튀김기로 보낸다.

 쇼윈도우 안에서 멋있는 쇼를 하는 것처럼 보인다.

 어떻게 보면 하얀 옷을 입은 인형들이 움직이는 것도 같다.

 

 쇼윈도우 안에서 빵 만드는 걸 30초만 바라보며 서 있으면 그냥 성심당 안으로 빨려 들어갈 것 같다.

 들어가기만 하면 맛있는 빵을 자기도 모르게 잔뜩 사 가지고 나올 것이다.

 외면이 최고다.

 

 앞으로 대전의 성심당은 과연 어디까지 진화할까?

 

  성심당이 처음 시작되던 성당 앞의 작은 팥 아이스케키와 앙꼬 팥빵 집에서 이젠 그 블록 전체를 차지하는 대단한 빵집이 되었다.

  아직도 기억이 난다.

  친구랑 성당에 갔다가 성심당 문을 열면 바로 앞에 있는 아이스크림 냉장고 옆에 서 계시던 아직은 젊은 노인 한분이 돈을 받고 아이스케키를 꺼내 주었다.

 

 나의 사랑. 나의 도시. 대전 ~

 이런 광고 문구가 쓰여있는 빵 봉투는 바뀌었다. 대전이 성싱 담 것만은 아니니까 ~

 그래도 그런 배짱 멋있다.

 조그마한 동네 빵집을 이렇게 대단한 기업으로 키운 빵집 아들은 과연 어떤 사람일까?

 

 입지전적 인물이다.

 트럼프처럼 영세하던 건축업자인 아버지의 사업을 물려받아 대단한 회사를 만들었고 그리고 대통령까지는 안되었다 해도

 성심당을 이루어 간 것을 보면 대단한 사람이다.

 

 빵이라는 외길로 쭈욱 걸어갔으니까.

 원래 있는 집 자식이 있는 재산 지키고 키워 가는게 어렵다고 하였다.

 

 한때는 친정에 오면 성심당 생크림 케이크를 안 사면 큰일 날 것처럼 생각하던 때도 있었다.

 지금이야 일반화된 생크림 케이크이지만 그때는 대전에서 오직 성심당에서만 만들었었던 시절도 있었다.

 빵 유학을 다녀온 그 집 아들이 만든다고 소문이 났었다..

 

 지하철을 찾아 내려가서 오룡역에 내려 출구를 찾아가니 정말 비가 ~

 비가 미친 듯이 퍼붓고 있었다.

 발을 못 내디디고 서 있는데 몇 사람은 우산을 꺼내들고 가고 몇사람은 서 있다가 누군가가 우산을 들고 마중 나와서 데려간다.

 

 바로 옆에 서 있던 이쁘게 차려 입은 젊은 아낙네가 

 

 "고마워"

 

 하면서 우산 들고 찾아온 젊은 남정네한테 정말 반색을 하면서 반가움과 고마움을 표시하고 우산을 펴서는 사이좋게 걸어 나간다.

 

 친정에 전화를 걸었는데 전화를 받는 남동생에게

 

 "비가 억수로 퍼붓네. 도저히 못 가겠네.'

 "어디인데?"

 "오룡역 지하철 역사 3번 출구"

 "대전이라고?"

 "응, 비가 너무 와서"

 "우산 가지고 나오라고?"

 "아니면 택시 타고 갈까? 가을비라서 비 맞으면 안 될 거 같은데"

 "그냥 택시 타고 와"

 

 결국 카카오 택시 앱을 다시 깔아서 택시를 불러 타고 들어갔다.

 

 엄마 ~ 

 

 "오지 말랬더니 왔네."

 "추석인데 사람들 많이 다니기 전에 다녀가려고"

 "고마워"

 

 무거운 된장을 어깨에서 내려놓는다.

 이 나이에도 엄마라고 부를 수 있는 분이 계셔서 너무 조오타 ~ ~ ~

 

 계속 계속 즐거운 마음으로

 감사 감사하는 마음으로 다녀야겠다.

 한 달에 한 번이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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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정 엄마 방문기  (6) 11:51:22
코로나 블루  (48) 2020.09.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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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순이 베이비 붐 영숙이

베이비 붐 세대의 혜택과 축복을 받고 성장한 세대입니다. 우리나라에 복음이 들어온 이후로 대한 민국이 성장하는 동안 가장 많은 복음의 혜택을 받아 잘 성장한 세대로 지금까지 쉽지 않았지만 잘 지냈고 잘 성장했고 잘 이겨 냈습니다. 현재의 상황도 쉽지 않습니다만 잘 이겨 낼 것입니다. 베이비 붐 세대가 이제 은퇴 세대가 되었습니다. 은퇴한 베이비 붐 세대들이 앞으로 얼마나 주어질지 모르지만 남아 있는 은퇴 이후 제 2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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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 블루>> 

 

  불안 ~ 분노 ~ 우울로 발전......"볕 드는 곳에서 운동해야" 

  주춤하던 코로나 19 지역감염이 다시 확장되고 있다. 자유로운 외부 활동이 다시 어려워진 것인데 이로 인해 사람들이 심리적 어려움을 겪을 위험이 커졌다. 코로나로 인해 자신의 감정이 불안, 분로, 우울로 발전할 수 있다며

  "마음 건강을 잘 챙겨야 한다."

  고 한다. 코로나 블루를 모르는 사람이 없다. 코로나 19와 우울감(blue)의 합성어다. 코로나 19 확산으로 일상에 큰 변화가 닥치면서 생긴 우울감이나 무기력증을 뜻한다

   신종 코로나 감염 자체가 해결해야 할 문제가 되고, 불필요한 외출이나 출근도 자제할 것을 요구받는다. 코로나 감염 확대에 따라 붕괴된 우리의 일상은 실직이나 불경기 등 어려운 상황으로 내몰리고 이런 상황이 되면 우리는 불안감을 갖게 된다.

  사람들이 가장 어려움을 느끼는 부분이  "일상생활의 중단"이다.

  꾸준히 해오던 취미활동, 운동, 사람과의 어울림이 한순간에 중단된 경우가 많다.

  감염사태가 장기화 국면에 접어들었음에도 불구하고 좋아지거나 호전되는 소식은 점점 멀어지고 연일 조심하라고 하거나 대규코 감염 사태가 다시 발생했다는 등의 미디어 보도는 불안감을 극대화시킨다. 

  야외활동이 제한되면서 집에만 머물며 코로난 관련 뉴스를 계속해서 보게 되는데 심리 방역에 가장 안 좋은 경우라고 한다. 우리에게는 이른바 ‘공감 능력’이라는 것이 있어 좋은 이야기에는 기분이 좋아지지만 나쁜 소식에는 모두를 불편하게 한다.

  우울증 환자가 텔레비전에서 어두운 소식을 듣고 증상이 악화될 수도 있는 것이다. 

  종일 앉아 뉴스만 보면, 햇빛을 보지 못하고 자연스레 운동량이 저하되면서 스트레스를 이겨내는 힘도 결국은 몸에서부터 비롯되기 때문에 최소한 실내에서 창문을 열고 햇볕 드는 곳에서 운동하기를 권장한다고 하였다.

  햇볕을 쬐면 행복을 느끼게 하는 호르몬 세로토닌 분비량이 늘어난다고 한다.

 타인과 '소통'을 유지하는 것도 중요하다.

 자신이 생각하기에 소중한 사람, 믿을 수 있는 사람과 전화, SNS 등을 이용해, 어려움을 솔직히 털어놓는다. 

  우울증의 진단 기준으로 2주 이상의 ‘우울한 기분의 지속’이라는 항목이 있다. 2주 이상이라는 기간은 병적 반응으로 볼 수 있는 기준 중 하나다.

   자신이 정신적인 안정을 건강하게 유지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불안이 지속되고 기분이 침체되며 아무것도 하지 않는 상태라면 우울증으로 발전될 수 있다.  

  슬픔과 불안 같은 감정은 가득 차면 넘치게 된다.

 

  정보를 받아들이는 데에 신중해야 한다.

  사람이 모이거나 혼잡한 장소를 가능한 가지 말아야 하고 손을 자주 씻고 마스크를 착용하는 것, 양치질이 도움이 된다.

  무엇보다 규칙적인 생활이 중요하다.

  수면이 부족하다면 몸과 마음에 좋지 않은 영향을 받게 된다.

  소통이 줄어든 시기에는 전화나 화상통화와 같은 직간접적인 대화의 기회를 늘려 보면 좋겠다.

  코로나 19는 장기적으로 사회 구조와 생활 방식을 완전히 바꾸어 버릴지 모른다고 예측하는 사람들이 많다.

  이러한 변화에 대한 예측과 가능성은 우리에게 큰 스트레스이다.

  지금까지 우리가 알고 생각했던 방식을 뛰어넘는 변화가 있을 수도 있기 때문에 틈틈이 우리가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기 위해서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생각해 보자.

  우리는 상황에 맞게 변화하여 새로운 환경에 적응할 수 있다는 기대를 가지고 말이다.

 

  견뎌내고 생존하는 것이 우리의 노력이다.

  이번 사태가 한 개인의 문제일 수는 없다. 전 세계가 전례 없던 감염병을 경험하고 있으며 이는 세계인이 동참하여 해결해야 할 과제이다.

  그리고 언젠가는 끝이 날 것이다.

  그때까지 견뎌내고 생존하는 것이 우리가 노력할 일이다.

  이타적인 경험을 한 사람은 훨씬 더 이런 상황을 잘 이겨 낸다고 한다. 

  힘들게 살아가는 우리는, 자기 관리를 잘하고 마음의 소리에 귀를 기울여야 할 것이다.

블로그에 이런 글이 있었다.

  <<금요일 퇴근길>>

  약 2주간 굉장히 힘이 들었어요. 이게 코로나 19 때문에 야외 활동이 적어지면서 받는 스트레스가 쌓인 건지 뭔가 아닌 거 같은 일을 계속하고 있어서 받는 스트레스가 쌓인 건지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금요일 퇴근길.

  늦은 시간 지하철에서 혼자 아무 생각 없이 멍하니 있다가 이번 정차역 수원역이라는 소리를 듣고 일어났는데 각 지하철 칸 문들이 다 열려 있고 한산한 모습. 그 지하철 속 모습이 나랑 비슷한 거 같아서 바로 찍었습니다.

  이적의 달팽이 노래가 흐른다. ~ 집에 오는 길은 때로 너무 길어 ~ 나는 더욱더 지치곤 해 ~ 언젠가 먼 훗날에 저 넓고 거친 세상 끝 바다로 갈 거라고 ~ 

  나도 한때는 언젠가 바다로 갈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이제는 그런 바다는 가지 못할 거라는 생각을 더 하게 되는 거 같다.

방문객들 답글

1. 그냥 지하철인데 일자로 쭉 뻗은 게 예쁘네요 ^^ 작품되었습니다.ㅋ 근데 커브를 움직이면 멀미 난다고 하던데. 모두 겪고 있는 코로나 블루. 불안과 짜증이 함께 오니까 속상하죠....

2. 저는 금요일이라 그런지 어제 지하철에 사람이 많아서 불안하더라고요. 아직 지하철에서 뭐 먹거나 제대로 안 쓰시는 분들이 꽤나 보여요 ㅠ

3. 짧은 글이지만 담덕 님이 휴식을 필요로 한다는 게 느껴지네요 ㅠㅠ 저는 주변에 일상이 지치고 힘들어하는 사람들에게 여행을 권유하는 편인데 요즘 같은 코로나 시대에는 어디 잠깐 일상을 벗어나 기분전환을 하는 것도 쉽게 용납되지 않으니... 답답함을 풀기가 더 어려워진 요즘이에요 ㅜㅜ 주말 동안이라도 푹 좀 쉬시고 다음 주는 이번 주, 저번주보다 더 나은 일주일을 보내셨으면 좋겠습니다.

4. 오랜만에 이적 노래 좋네요~잘 보고 공감하고 갑니다^^ 좋은 주말 보내세요~~ 바다를 꼭 가야 하나요 뭐... ㅎㅅㅎ 토닥토닥, 주말은 푹 쉬세요-

5. 항상 활력 넘치는 포스팅만 봤어서 그런지 마음이 쓰이네요. 코로나 블루는 아닌지요? 일이 힘드신 건가요?? 맛있는 거 많이 드시고 쉬엄쉬엄 활동해보세요. 응원합니다!

6. 힘내세요.  20대에는 "자 떠나자 동해 바다로" 란 노래가 유행했어요. 전 일주일이나 이주일에 한 번씩 제로 콜라 제일 큰 거 사다 놓고 밤에 홀짝홀짝 마셔요. 그럼 못 마시던 콜라 마신 것 때문에 기분 좋아져요. 아님 차 타고 아님 기차 타고 아님 지하철 타고 실제로 바다를 다녀와요. 혼자도 좋고 가족과 같이도 좋고 마스크 쓰고 그냥 바다만 바라보다 와도 기분이 좋아져요. 저는 한 시간 정도면 바다 다녀올 수 있어서 차 타고 바닷가에 세워놓고 그냥 가만히 바라만 보고 와도 훨 기분이 좋아지더라고요.. 넘 많이 썼나요? ㅋㅋㅋ

7. 저는 바다는커녕 개울가라도 갈 수 있을까.. 싶습니다. 그냥 하루하루 사는 거죠, .

8. 금요일 오후 퇴근길에서 인생에 대한 깊은 사유를 하셨네요. 지금은 지쳐서 그랬어도 얼마 있으면 다시 저 넓은 바다를 향해 갈 수 있다는 희망적인 감정이 다시 찾아올 거라 믿어요.

9. 이적의 달팽이 노래 어렸을때 많이 들었죠~예전엔 시골에 사니 사람이 북적이는 게 좋았는데 지금은 엘베도 같이 타면 부담스러운 사이가 됐죠^^ 지하철 느낌이 지금 세상을 대변하는 것 같군요~~

10. 코로나 시작되고 대중교통을 한 번도 이용한 적 없거든요. 금요일 퇴근길이라 그런지 보기만 해도 모두 지쳐 보이네요 2주간 힘드셨다니 주말에 푹 쉬셨기를요~^^

11. 바다는 가지 못하더라도 바다를 향해 가다 보면,새로운 희망을 만날 수 있지 않을까요? 저는 인생은 힘이 아니라 방향이라 생각합니다. 우리 모두 힘내 보아요.. ^^

  블로그만 읽어도 많은 걸 알게 된다.

  마스크 쓰지 않았다고 이야기했다고 버스나 지하철에서 큰 소리가 나거나 심지어는 심한 폭행까지 이어지는 요즘 세태다. 우리 동네에도 한밤중에 싸우는 소리나 고함지르며 지나가는 사람들이 예전보다 2배 정도 많아졌다.

  그만큼 힘들다는 소리이다. 이럴 때일수록 혼자 놀기 고수가 되어야 한다.

  장경동 목사님이 이렇게 말한 것을 들은 적이 있다.

  ~ 살만 빼도 성공이고 입만 다물어도 훌륭합니다. ~

  난 여기에 하나 더 보태고 싶다.

  ~ 혼자서도 잘 놀아야 살아 남는다. ~

  처음 코로나가 닥쳤을 때 우리는 이것도 메르스나 인푸루엔자나 사스 때처럼 한때 지나가면 괜찮겠지 했는데, 지금 상황이 그렇지 않다.

  이럴 때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일까나.

  ~ 혼자서도 잘 놀아야 한다.~

  사실 나는 혼자 노는 것이 힘들 것 같아서 은퇴하면서 주니어 미니블록 카페를 열었다. 결국 일주일 전에 폐업하고 말았지만......

 

<<실패한 이유>>

  1. 열심히 안 했다. 절박하지 않았다. 남들 쉴 때 쉬었다. 문 닫은 날이 많았다.

  2. 손님을 왕으로 섬기지 않았다. 손님을 가르치려 들었다. 손님을 통제했다. 

  3. 음식 하는 거 좋아하지 않는다. 커피도 좋아하지 않으면서 커피를 팔았다. 손이 빠르지 않다. 

  4. 끝까지 장사할 마음이 부족했다. 글 쓰는 것이 장사하는 것보다 좋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5. 아이들을 사랑한다면서 진정으로 사랑했을까? 500원으로 사러 온 아이를 돌려보냈다. 

  

<<카페를 하고 싶었던 이유>>

  1. 주니어를 위한다면서 장사로 더 벌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2. 복음을 곁들이면 하나님이 축복하시리라 생각했다. 

  3. 아이들을 위해서보다는 내가 나가 있을 곳이 필요했다. 

  4. 아이들에 대한 접대보다는 내가 놀기 위한 곳이 필요했다. 

  5. 하나님의 허락을 받지 않고 하고 싶다는 이유로 오픈했다. 

  6. 하나님 나라를 위한다면서 나를 위한 곳이었다. 

  그래도 폐업할 때에는 끝까지 기도해서 응답 후에 폐업을 할 수 있어서 다행이다.

  미련 없이 폐업할 수 있어서 감사하다.

  이제는 혼자서도 잘 놀 수 있을 것 같아서 감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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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정 엄마 방문기  (6) 11:51:22
코로나 블루  (48) 2020.09.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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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순이 베이비 붐 영숙이

베이비 붐 세대의 혜택과 축복을 받고 성장한 세대입니다. 우리나라에 복음이 들어온 이후로 대한 민국이 성장하는 동안 가장 많은 복음의 혜택을 받아 잘 성장한 세대로 지금까지 쉽지 않았지만 잘 지냈고 잘 성장했고 잘 이겨 냈습니다. 현재의 상황도 쉽지 않습니다만 잘 이겨 낼 것입니다. 베이비 붐 세대가 이제 은퇴 세대가 되었습니다. 은퇴한 베이비 붐 세대들이 앞으로 얼마나 주어질지 모르지만 남아 있는 은퇴 이후 제 2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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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원룸을 짓기까지>> 

 

  경제적 자유를 위해서 달리고 ~ 달리고 ~ 했지만 쉽게 얻어지지 않았다. 욕심이 많아서 악착같이 저축하고 발버둥 쳐도 요원했다.

  돈이 좀 모일만 하면 어딘가로 사라졌다. 그 참 ~~~

  나중에는 찾을 수 없는 공제회에 넣을 수 있는데까지 넣었다.   

 

  울산 시내에 있는 토지공사에서 분양하는 땅을 사고 싶어서 땅이 보이는 건물에서 사고 싶다. 사고 싶다 하면서 바라보고는 했다.

  어느 날 할부로 판매한다고 하기에 뻔히 형편이 안되는 걸 알면서도 무조건 계약금을 들고 가서 계약을 해버렸다.

  일을 저지르면 어떻게해서든 해결이 된다.   

 

   IMF 직전 친정에 힘든 일이 생기니까 모든 걸 내려놓을 정도로 힘이 들었다. 동생들 중에서 제일 잘 나가던 친정 둘째 남동생이 하늘에 별이 된 것이다.

 

  돈이 무슨 소용이랴.

  의지만 있으면 무슨 일이든 해낼 수 있다고 생각한 어리석음

  열심히 살면 된다고,

  노력하면 된다고,

  할 수 있다고,....... 다 헛된 것인걸.

 

  추스르지 못해서 허덕허덕 ~

  영혼은 어디론가 가출하고 ~

  하루는 도로에서 미친 듯이 꺼이꺼이 울고 있는데 누군가 신고를 했다고 경찰이 찾아왔다. 

  알았다고 말하면서 그자리를 떠나 무조건 걷고 걷는데 소리도 못 내고 철철철 ~

 

  결국 대학 때 다니던 교회를 찾았다.

 

  살기 위해서 ~

  이겨 내기 위해서 ~

  예수님을 알기 위해 간 것은 아니었다.

 

  교회 가서 예배를 드리는데 교회 이층에 목매달려 있는 내 모습이 보였다.

  새벽기도를 다녀야 하는가부다.

 

  새벽에 교회가 무서워서 교회 문을 밀고 못 들어갔다.  죽으면 교회에서 죽지 하면서 용기를 내어 들어가 날마다 울고 또 울었다.

 

  제일 먼저 시댁을 위해서 기도하라는 말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십일조 하라는 말.

 

  귀에 들리는 대로 시댁 위해서 기도하고 십일조 하고 ~

  그렇게 3년이 흘렀다.

 

  돈 욕심이 내려졌다. 

  시댁 식구에 대한 증오심이 사라졌다.

 

  예전에는 생활비 드리는 것을 미워하면서 드렸는데 십일조도 하는데 시댁에 드리는 생활비는 당연한 것으로 여겨졌다.

 

  한 달에 2권씩 아이들한테 성경책을 사주고 있었는데 어느 날 봄 기도하면서

 

  `수입이 더 많아지면 더 많이 사줄 수 있을 텐데요.`   

  `무엇으로 벌게 할꼬`

  `주식은 싫어요. 하나님 잊어버릴까 무서워요.`

 

  5월 어느 날 남편이 황당하게 퇴직당하여 집에 돌아와 거실에 멍한 표정으로 앉아 있었다.   

 

  "나 잘렸어."

  "저번 주에 승진할 거라고 말했었잖아?"

 

  우리도 처음엔 다른 사람들처럼 문구점을 해야 하나? 그러면서 돌아다녔었다.

  기도를 하니 건물을 지으라고 하였다.

 

  "땅도 절반은 다른 사람 것인데요. 돈도 한 푼도 없는데요."

 

  뭐가 뭔지 모르는 상황에서 어느 날 시티 은행에서 신용으로 대출해 준다는 홍보 종이가 눈에 띄었다.

  대출 이자가 13%이었지만 막 IMF를 빠져나와서 그동안 어림없던 대출이 시작되던 때였다.

 

  교회 건축하는 걸 매일 지켜보던 때라서 누구나 건축을 할 수 있다는 걸 알게 되었고 교회 건축하던 김집사님한테 남편이 건축하는 걸 도와 달라고 하였다.

 

  '천만 원을 달라'

 

  고 하였다.

  기도하니까

 

  '오백만 원만 주라'

 

 는 기도응답이 있었다 하니까 오백만 원 받는다고 하였다. 결국 다 짓고 나서 집사님한테 오백만원 드린다고 계좌 번호 달라고 하니까 삼백만원만 달라고 하셔서 삼백만원 드렸나? 약속대로 오백만원을 드렸나? 잘기억이 안난다. 

 

  집사님도 우리가 집 짓는 것을 보고 자극을 받아서 원래 집을 짓거나 토지조합을 만들어서 50%는 땅주인에게 주고 50%는 회사에서 가져가는 일을 하셨었는데 이후로 여러채의 집을 지으셨고 바쁘셨고 이익을 많이 보셨고 또 집사님은 사람을 소개하는 일머리만 틀어 주셨고 남편이 집짓는 일을 다했기 때문에 삼백만원만 달라고 하신 것 같다. 

 

  집사님은 목수를 소개해주었다.

  철골로 4개월 만에 건축을 해서 세를 주었다.

 

  각 공정 때마다 업자를 소개해 주었었는데 설비 업자가 말했다.

 

  `울산에 원룸을 너무 많이 지어서 남는다`

 

   고 ~ 그렇게 건축을 했다.

 

  부자가 되고 싶다고 부자가 되는 게 아니고 ~

  돕는 손길이 있어야 하고 ~

  경제적 자유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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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순이 베이비 붐 영숙이

베이비 붐 세대의 혜택과 축복을 받고 성장한 세대입니다. 우리나라에 복음이 들어온 이후로 대한 민국이 성장하는 동안 가장 많은 복음의 혜택을 받아 잘 성장한 세대로 지금까지 쉽지 않았지만 잘 지냈고 잘 성장했고 잘 이겨 냈습니다. 현재의 상황도 쉽지 않습니다만 잘 이겨 낼 것입니다. 베이비 붐 세대가 이제 은퇴 세대가 되었습니다. 은퇴한 베이비 붐 세대들이 앞으로 얼마나 주어질지 모르지만 남아 있는 은퇴 이후 제 2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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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페를 폐업하면서>>

 

  만 3년 8개월 전 2017년 1월 주니어를 위한 주니어 미니블록 카페를 오픈하였다.

 

  달동이라는 동네가 술집과 음식점으로 가득해서 아이들이 갈 곳이라고는 피시방 밖에 없었다.

  아이들을 위해 특히 초등학교 고학년과 중학생들을 위해서 할 수 있는 게 없을까 궁리하다가 오픈한 카페다. 

 

  냉장고 벽에

 

  '중학생을 사랑하는 방법'

  '중학생의 사랑을 받는 방법'

 

  이란 글을 써붙인 지가 10년쯤 된다.

  이젠 실행할 기회가 됐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그냥 음료수만 마시는 것은 시간 보내기가 힘드니까 미니블록을 사다가 비치하고 사서 조립할 수 있도록 했다.

 

  그냥 분식집, 떡볶이 집보다는 고급지게 만들고 싶어서 인테리어를 삼산의 고급 요릿집처럼 꾸미려고 애썼다.

  알아주던 알아주지 않던 아이들이 허름한 분식집에서 비위생적인 음식을 먹는 것보다는 좋지 않을까.   

  고객의 욕구를 만족시키는 게 아니라 그냥 혼자만의 생각이었던 것이다.

 

  "돈"

 

  얼마나 벌어야 만족할까나.

  돈은 소금 같아서 벌어도 벌어도 목이 마르고, 부족할 뿐이고, 더 벌고 싶은 게 돈이다. 있는 거로 만족하고 행복하면 최고다.

 

  어떻게 실패했는지는 블로그 중간중간 썼는데 결론은 인간관계 실패였다. 이번에 코로나가 오지 않았더라면 아마도 계속 카페를 운영했을 것이다. 손님이 있건 없건 아이들을 위해서 연 카페니까 아이들을 위한다고 생각하고 했을 것이다. 

 

  잘되면 좋지만 안된다 해도 일할 데가 있으니까

 

 '참 좋구나.'

 

 

 생각하고 계속했을 것이다.   

 카페를 하면서도 여름방학, 겨울방학을 하면서 재정비하고 새로운 마음으로 나서고는 했는데 작년에는 많이 힘들어서 좀 일찍 겨울방학을 하고 봄방학도 쉬었다.   

 

 개학이 되어서 오픈하려고 하는데 코로나가 터졌다.

 봄 방학 때도 건너뛰고 미적이고 있는데 코로나가 터져서 바로 꼬리 내리고 아예 문을 열지 않았다. 

 

 그동안 티스토리를 열심히 썼다.

 쓰고 싶은 티스토리를 쓰고 있으니 행복했다.

 쓰는 일은 누구의 눈치를 볼 필요도 없고 인간관계가 필요한 것도 아니고 돈이 드는 것도 아니다.

 

  오랫동안 써 놓은 것도 있지만 그동안 엄두를 못 내고 있었는데 샐프 인테리어를 마치면서 집안을 다 정리했고 쓰기 시작하니까 무엇을 쓰고 싶어 했는지 조금씩 정리가 되어 엄두를 이겨 나갔다.

 

  그래도 어쩌다 가게 나갈 일이 있어서 가면 만나는 아이들이

 

  `가게 언제 열어요.' 

 

  묻고는 한다.

  3년 ~ 카페를 다녀간 근처의 초등학교 고학년들과 중학생 아이들을 다 기억한다.

 

  '2학기 때에는 열거야.'

 

  집에 갇혀있으니까 갈데없는 아이들과 엄마들이 찾는다.

  썩 내키지는 않았지만 2학기에 맞춰서 오픈하려고 준비하면서 기도를 시작하였다.

 

  "계속할까요? 그만할까요?"

 

  환상으로 보여서 찜찜했지만 페인트를 칠하면서 준비해 갔다.

  페이트 칠하는 중에 확실하게 알게 해 주셨다.

  더 큰일을 하기를.

 

  가벼운 마음으로 카페 문을 닫는다.

  마음은 가벼웠지만 폐업은 결코 가벼운 게 아니었다.

 

  ~ 웬 물건이 그렇게 많은지

  ~ 버려야 할 유통기한 지난 음식은 얼마나 많은지 어차피 버려야 했지만

 

  3년 동안 했던 장사로 정말 많은 물건이 들어앉아 있었다. 꺼내고 꺼내도 또 나오고 또 나오고 ~ 슬로로 정리한다고 해도 참 많이도 나온다.

 

  이 근처 중학교에 근무할 때 아이들이 나를 부르는 별명이

 

  '빵상 아줌마'

 

  였었다.

 

  나는 이 동네에서 빵상 아줌마였다.

  무언가, 누구에겐가 좋은 일을 해보려 했지만 그건 혼자만의 생각이었다.

  그냥 빵상 아줌마.

 

  세상은 차곡차곡 돈 쌓은 것을 최고로 생각한다.

  무엇엔가 투자하고, 누군가에게 좋은 일 좀 해보려는 것은 별나라에서 온 사람으로 혼자 만의 생각인 것이다.   

 

  인터넷 세대에 고무신 신고 걷는 건 아니다.

  배고픈 세대도 아니다.

  그리움이 있는 세대도 아니다.

 

  모두들 눈 앞에 있는 인터넷을 들여다보느라 지나가는 경치와 풍경을 놓치고 지나간 세월과 앞으로 다가올 세월을 못 본다.

 

  무엇인가 잘못 흘러가도 긴 안목과 분별력 그리고 지혜와 명철이 필요한 순간에 다른 사람이 쓴 글을 훑어 보느라 무심코 흘러간다.

 

  미니블록 카페에 들어앉아서 들어오는 손님들에게 집중하고 와플 만드는데 집중하고 음료수 만드는데 집중하다 보면 많은 것을 놓칠 것이다.

 

  미니블록과 나오는 물건들을 당근 마켓에 올려 팔면서 속상할 때마다 이렇게 되물었다.

 

 '쓰는 게 좋아? 장사하는게 좋아? ~ 쓰는게 좋아.'

 '10년 동안 열심 장사해서 장사로 성공한다고 그 후에 남는 건 무얼까. ~ 앞으로 10년 동안 글 쓰는 게 복음에 더 유리해.`   

 

  이제 카페를 폐업한다.

  나오는 컵과 투명 그릇에 선인장을 키울 것이다.

  선인장을 키우면서 글을 쓸 것이다. 다른 사람을 도울 수 있는 글을 쓸 것이다.

 

  참 카페 하면서 한 명 건졌다.

  ~ 연이를 ~

  3년 동안 카페를 하면서 유일하게 건진 건 바로 연이 한 명 건졌다.

 

  만족한다.

  아파트에 이래저래 물건이 들어찼지만 만족한다.

  어제는 와플 만들던 밀가루 포대에 밀가루를 음식 수거함에 부으면서 남은 미련도 다 버린다.   

 

  무언가에 매이는 게 노예근성이라면 이제 카페를 버리고 날개를 단다.   

  좀 먹먹했던 마음을 비우고 가벼워진다. 

  하나님이 일으키는 새로운 물결 이 스마트 인터넷 시대에 하나님이 원하시는 날개를 단다.

 

 마지막으로 제일 먼저 정리했던 커피 머신을 당근 마켓에 팔았던 과정을 여기 적어본다.

 

 /사브 커피머신 판매/ 10만 원/

 /수리해서 사용하셔야 함. 가져가셔야 함/.

 

/어떻게 수리해야 합니까/

 /커피머신 전문적으로 수리 하시는 분 소개해 드릴 수도 있구요. 성광여고 근처 머신기 파는 곳에 수리 의뢰하시면 됩니다./

/제가 잘 몰라서 그러는데 수리비가 어느 정도 나올까요/

/제가 아이들을 상대로 하는 카페를 하다 보니 수입 전문 커피머신이 필요 없어서 팔아요. 다 필요없어서 선 하나는 죽였고 하나는 하나는 작동 잘 되어요. ~ 그래도 분해해서 청소한 다음 다시 재조립해서 쓰셔야 합니다./

/사브 커피머신은 인터넷 들어가 보시면 가격 나와 있어요./

/답변 너무 감사합니다. 생각해보고 연락을 드리겠습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원하시면 수리하시는 분 연락처 드릴 수 있어요. 그분한테 물어보시면 됩니다./

/저희 집 기계 그동안 수리해 주셨으니까 잘 아실 거예요/

/감사합니다./

/연락처 좀 부탁드리겠습니다./

/어디라고 할까요/

/기계가 이미 판매 예약되었습니다. 만약 불발인 경우 그때 이야기할게요./

/기계 수리하시는 분이 가져가셨으니까 수리해서 중고로 내놓으면 150일 텐데 그것도 금방 팔리더라고요/

/이런 기계 사서 완전 분해 청소해서 재 조립하는데 50 정도 들어요./

/카페 기계가 터무니없이 비싸지요? 거의 다 수입품이라서 그런데 이런 정도로 국산제품 새 거 사면 150이면 사는 줄 알고 있어요./

/너무 감사합니다. 세심하고 친절히 응대를 해주셔서 집  대 청소를 한다고 휴대폰을 볼 수가 없어서 이제서 챗을 봤어요. 가게 하시는 것 같은데 코로나가 아니더라도 몇 년 전부터 경기가 안 좋아서 힘드셨을 텐데 같이 힘내요. 좋은 하루하루 맞이 하시길 기도드리겠습니다. 감사합니다./

/~ 고마워요 /

 

/작동은 되나요?/

/우선 제가 찜하게요./

/작동은 되지만 전체 분해해서 청소하신 후 다시 재조립해서 쓰셔야 합니다./

/네네/

/중고 커피머신 판매하시는 분이 가져가시면 좋습니다./

/제가 살게요/

/네/

/딱 좋네요./

/언제 가지러 오실 거지요?/

/연락처 남겨주세요/

/다음 주 중 갈게요/

/언제 가지러 오실지 연락 주셔요/

/넵 거래 완료 해세용/

/네 알았습니다./

/혹시 못하시게 되면 속히 연락 주셔요. 다시 당근 마켓에 올리겠습니다./

/아닙니다. 제가 빨리 갈게요./

/네 알았습니다./

 

  울산 지역에 커피 머신 수리하는 분이 없어서 커피 머신이 고장 나면 대구나 부산에 수리업자를 불러야 하는데 이분들이 오시면 기본 출장비를 5만 원을 부른다.

  가벼운 연결줄 하나 바꾸어도 무조건 10만 원을 부른다. 매일 커피를 뽑아야 하는 입장에서는 비싸도 고치는 수밖에 없다.

  수리비가 정해져 있지 않으니 어쩔 수 없다.

 

  이번에 우리 커피 머신를 가져 가시는 분은 머신기 구조를 파악해서 고치는 법을 배우기 위해서라고 한다.

  체격이 커다란 두 남자가 와서 들어내야 할 정도로 무거운 기계를 들고 가는데 시원섭섭하다.

  부디 수리하는 법을 잘 익혀서 울산에 있는 많은 커피 머신들 수리가 필요할 때 즉각 수리해주실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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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순이 베이비 붐 영숙이

베이비 붐 세대의 혜택과 축복을 받고 성장한 세대입니다. 우리나라에 복음이 들어온 이후로 대한 민국이 성장하는 동안 가장 많은 복음의 혜택을 받아 잘 성장한 세대로 지금까지 쉽지 않았지만 잘 지냈고 잘 성장했고 잘 이겨 냈습니다. 현재의 상황도 쉽지 않습니다만 잘 이겨 낼 것입니다. 베이비 붐 세대가 이제 은퇴 세대가 되었습니다. 은퇴한 베이비 붐 세대들이 앞으로 얼마나 주어질지 모르지만 남아 있는 은퇴 이후 제 2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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