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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순이 어렸을 적에 80

영등포 한강성심병원 2

지금도 영등포 한강성심병원 현관 앞의 44년전 계단이 생각난다. 바쁘게 종종거리며 병원의 넓은 현관 계단을 오르내리던 20살 또순이는 학생 간호사 옷을 입고 아직 까만줄이 그어져 있지 않은 실습용 간호사 캡을 쓰고 있었다. 지금은 어떤지 모르겠는데 그때는 항상 사람들이 붐비고 많은 사람들이 왔다 갔다하는 복잡한 곳이었다. 병원은 안에도 밖에도 항상 사람이 많았다. 당시에 병원은 아직 의료보험 시스템이 만들어지기 전이라서 보통 사람들이 쉽게 들락날락 할 수 있는 곳이 아니었다. 아프다 아프다 마지막으로 오는 곳이 큰 병원이었다. . 병원 계단을 내려오다 보면 병원 바로 옆에 있는 전파사에서 틀어 놓은 뉴우스가 흘러 나오기도 하고 포크 송이 굴러다니는 낙엽따라 나오기도 하였다. 그 시절에는 재능있는 학생이 ..

영등포 한강 성심 병원

간호학교 입학 후 2학년 1학기를 마친 다음 서울 실습을 마친 A반이 내려 오고 우리 B반이 서울 영등포 한강 성심 병원에 실습을 갔다. 간호학교로 진학 한 이후 서울에 있는 병원에서 6개월 서울 청량리 국립 정신병원에서 2개월 실습하는 날을 정말 많이 기대했었다. 말은 제주도로 사람은 서울로 ~ 서울에 가보고 싶다는 바램. 영등포 한강 성심 병원에서 실습하기 위해 병원 앞에 있는 여관이 숙소로 잡혀 있었다. 큰방은 5~6명 작은 방은 3명 정도 배정받아 함께 생활하면서 day, evening, night 이렇게 3교대로 8시간씩 스케쥴에 따라 실습하였었다. 처음 영등포역에 도착 했을 때 그리고 여관에 도착하여 짐을 풀고 교수님이 배정하는 대로 숙소에 짐을 정리하고 우리 6명은 쮸쮸바를 사다가 방에 길게..

또순이 어렸을 적에 115

223. 자율학습과 숙직교사 고3이 되어 이제 대학 진학이 코앞에 닥쳤다. 열심히 해야겠다는 각오로 자율학습이 끝나고 나서도 아이들이 다 가고 남은 교실에서 혼자 공부를 하였다. 3월초. 아침에 일찍 등교하고 자율학습을 9시까지 해서 독서실은 끊고 10시까지 교실에 혼자 남아서 공부를 했다. 그날도 10시까지 교실에 남아서 공부를 하다가 집에 가려고 교실 앞 신발장에서 운동화를 들고 평소에 학생들이 다니는 양쪽 끝에 출입문이 캄캄하게 닫혀 있어서 선생님들이 출입하는 중앙현관으로 가기 위해 가운데 계단을 내려갔다. 그때 숙직 선생님이 나오셔서 뭐라고 말씀하시는데 또순이는 자기 생각에 빠져 있어서 또순이한테 말한다고 생각도 안 하고 현관으로 나가서 신발을 신으려고 바닥에 내려놓았다. 갑자기 또순이 뒤에서 "..

또순이 어렸을 적에 114

대단한 각오를 했던 봄이 지나고 슬슬 긴장이 풀어질 때쯤부터 담임 선생님들은 자율학습이라고 했지만 저녁에 교실로 오셔서 아이들이 있는지 어떤지 출석을 부르고는 하였다. 수업이 끝나고 저녁시간에 도시락을 먹고 나면 자율학습 시작 전에 교감 선생님 지시대로 운동장에 나가서 한바탕 체력장을 하였다. 생각해보면 체력장 점수 차이는 얼마 안날 뿐 아니라 거의 다들 만점을 맞기 때문에 그렇게까지 열심히 할 필요 없었는데도 아이들의 건강을 위해서 체육과 출신의 교감 선생님의 특별 지시 사항으로 체육복으로 갈아 입고 저녁마다 운동장에 나가서 체조를 하고 달리기를 했었다. 저녁먹고 운동장 뛰고 오면 자연히 졸리다. 자율학습 한다고 앉아서 책상에 머리를 대고 졸기 일수이고 선생님이 지켜볼 때에는..

또순이 어렸을 적에 108

200. 여고시절 여고시절 여고 2학년 사람은 어떤 사람을 만나느냐에 따라 인생이 달라지게 되어 있다. 최근에 셀트리온이라고 바이오 제약으로 시가 총액 6위에 오른 사장이 나와서 한말이 기억에 남는다. 가족에게 진심을 다해서 성심으로 마음을 다해서 잘해라. 어떠한 경우에도 절대적인 내편이 될 수 있도록 잘해라. 친구들에게는 밀어내고 싶은 사람이 아니고 만나고 싶은 사람이 되어라. 고2. 열등반에 갔다. 2학년 3 1반과 2반은 실업반이었고 3,4,5반은 열등반. 6,7,8반은 우수반이었다. 2학년 3반 담임 이강일 선생님이 좋아서 우리 집에 이층 방에 세 얻어서 사는 청란여고 3학년에 다니는 언니한테 선생님 자랑했는데 얼마나 미남인지 사진 좀 보자고 해서 사촌 어니한테 졸업앨범까지 빌려서 보여주었더니 언..

< 또순이 학창시절 ~ 로맨스 >

1. 남산에서 오늘은 남산에 올라갔습니다. 서울 생활 시작한 지 얼마 안 되어서인지 혼자 남산에 가본 적이 없습니다. 이래 저래 서울 생활 끝나면 63 빌딩 옆에 살면서 63 빌딩에 가본 적 없는 사람처럼 남산 구경 한번 못할지도 모르겠습니다.. 먼저 아무 때나 갈 수 있다는 것 때문에 두 번째는 언제인가는 갈 거라고 미루었기 때문일 것입니다. 오늘은 무조건 남산으로 발걸음을 옮겼습니다. 지하철을 타고 남산에서 내려서 하염없이 걸었습니다. 1년 전에 함께 걸었던 그 길을 다시 한번 걸어 보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남산으로 올라가는 도로를 따라 걸었더니 그때처럼 남산으로 올라가는 계단이 보이기 시작합니다. 도로를 건널 때 이 또순이의 팔을 잡고 뛰었지요. 그 일을 기억하실지 모르겠지만 실은 여자 친구 아닌 ..

< 또순이 어렸을 적에 > 105 - 홀치기와 갈포

191. 홀치기와 갈포 외갓집에 놀러 가면 그 즈음에는 아녀자들이 모여서 홀치기를 하였다. 홀치기는 천을 아주 작게 실로 묶어서 표면을 올록 볼록하게 만드는 방법이었다. 갈포보다는 단가가 높아서 모두들 갈포대신 홀치기를 하였다. 또순이는 갈포는 할 수 있었지만 홀치기는 어려워서 할 수가 없었다. 홀치기 한 천을 원피스 허리 쯤에 고정하여 잘록한 허리를 강조하는 효과와 자글자글한 무늬가 예뻐 보였다. 어쩌다 최근에 아이들의 옷을 보면 그런 무늬를 가진 옷을 볼 수도 있다. 아무튼 손이 빠르거나 재주가 있는 아낙네들은 훨씬 수입이 좋았다. 여인네들의 삶이 아주 고달프던 시절이다. 밭이나 논농사도 거들고 집안 일도 해야 하고 일하는 일군들을 위해서는 아침과 점심 사이의 새참 점심과 저녁 사이의 새참 이렇게 하..

또순이 어렸을 적에 104 - 참 고은 언니

187. 마리아 상 성당으로 올라 가는 길은 매우 가파라서 40도 가까운 각도의 계단을 200개 이상 올라가면 바로 정면에 마리아 상이 서 있었다. 사람들은 계단을 벅차게 올라가서 마리아 상 앞에 서면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성호를 긋고 그 앞을 지나서 이번에는 비스듬히 시멘트로 이루어진 길을 따라 올라 갔다. 마리아상 옆쪽 둔덕에는 잔듸가 잘 가꾸어져 있고 그 앞 시멘트 길 옆으로는 무궁화 꽃이 잘 심겨져 무궁화 꽃이 사시사철 피고 지고, 피고 지고, 피고 지고 ...... 시멘트 길이 끝나는 곳에서 본당에 들어가는 입구로 가던지 아니면 아래쪽 화단으로 가는 길이 있는데 그 화단 한가운데에 작은 마리아 상이 있었다. 고등학교 때 단체 영화를 갔는데 영화의 한 장면에 여주인공이 마리아상을 눈물로 ..

< 또순이 어렸을 적에 > 103 - 앨범

185. 수학여행 중학교 때 수학여행을 경주로 갔었다. 지금이야 누구나 쉽게 여행을 가고 여행이 일상사 중에 하나일 정도로 다니는 사람도 많지만 . 또순이 어렸을 적에는 여행이라는 단어는 알았어도 여행의 개념은 없었다고 해도 무방하다. 그만큼 여행 가는 일이 없었으니까. 외식이란 걸 해본 기억이 없는데 여행까지??? 최초의 외식은 고등학교 졸업식 때 대전역 앞 길건너에 있던 유명한 곰탕 집에서 곰탕 먹은 일이다. 몇년 전 추억을 더듬어 곰탕 집을 찾아 갔더니 당시 사람이 항상 바글바글하던 제법 컸던 음식점이 이제는 초라한 몰골로 나이드신 할머니가 겨우 지탱하는 걸 보고 세월을 이길 장사가 없다는 말이 실감났다. 50년도 안됐는데 ......100년 이상 된 기업을 운영한다는건 결코 쉬운 일은 아닌거 같다..

< 또순이 어렸을 적에 > 102 - 문화원

183. 문화원 중학교 3학년 때 문화원으로 공부하러 다녔다. 학교 가기도 그렇고 달리 다닐 데도 없어서 공부하러 옥천 문화원으로 가면 커다란 책상에 의자가 있는 자습실이 있었다. 아이들이 별로 오지는 않았지만 무료였고 조용한 곳이라서 열심으로 공부하지는 않았지만 노는 날이면 공부하러 문화원으로 갔었다. 그때가 봄철이었나 부다. 무슨 일인가 학교가 일찍 끝나서 . 문화원에 갔더니 누군가 옥천 중학교 소풍 갔다고 말해주었다. 초등학교 동기들이 옥천여중에는 또순이 포함해서 3명이었지만 옥천중학교에는 초등학교 동기가 20명정도 입학했다. 집안에 대표로 아들들은 공부를 시켜서이다. 초등학교 동기들을 만나 보지는 못했지만 동기들은 어쩌고 있는지는 관심이 쏠릴 수 밖에 없었다. 오후 늦게 문화원에 아이들이 다 가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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