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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rriage life of JINNSSAM 10

곰국이야기

길을 잘 못찾는 사람을 길치라고 한다. 요리를 잘못하는 사람을 부르는 호칭은? 요리치라고 해야하나? 요알못이라고 하나? 아무튼 요리를 잘못하는 jinnssam 이다. 아이들을 한창 키울 때는 요리를 해야 먹고 사니까 열심히 요리를 해서 먹을만하게 만들었던 것도 같다. 그러다 나이가 들고 은퇴하고 요리 할 일이 없어지면서 원래 요리도 잘못하는데다 관심도 없고 할일도 없어지니 점점 더 요리를 못하게 되었다. 그냥 '남이 한 맛있는 음식이 쵝오' 하면서 맛집을 찾아 다닌다. 이런 요리치에게도 아가씨때부터 지금까지 평생 해오는 요리가 있다. 환절기마다 끓이는 곰국. 아가씨때 객지에서 살면서 누군가 이야기를 나눌 사람도 없고 혼자 삭혀야하는 일도 많고 거기에다 민감한 성향이라 속이 쓰렸다. 밥..

진샘의 결혼 생활 ~ 최고야.

신혼 시절. 신혼 사진을 볼 때마다 말했었다. "와우 ~ 정말 잘 생겼네? 이렇게 잘 생긴 사람이 누구야?" "잘생기기는 했지." 말할 때 마다 좋아하는게 느껴져서 가끔씩 말해 주었다. 그렇게 말할 때마다 좋아하면서 영숙이에 대한 표현은 반대로 말했다. "못생겼어." 그러면서 신체에 대한 단점도 말했다. 텔레비젼 보면서 "와우 ~ 저 여자 가슴 크네." "나도 무대에 올라가서 흔들면 저렇게 보일걸?" "가슴이 작아서 안돼." "가슴 대신 궁딩이 흔들면 되지." 한번씩 가슴이 작다고 말하길레 어느 날 정색을 하고 반박을 했다. "자꾸 단점만 들춰서 말할래요? 듣기 좋은 꽃노래도 한두번이라 했는데 듣기 좋은 소리도 아닌데 왜 자꾸 말해요? 나도 자기 단점을 자꾸 말하면 좋겠어?" 그 다음부터는 그런 말은 안..

진샘의 결혼생활과 시몬느 드 보봐르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은 짧다. 때로 지루하게 느껴질 때도 있지만 그건 느낌일 뿐, 분명 사랑만 하기에도 모자라는 시간들이다. 미워하는 대신 사랑만 가득 담아도 모자라는 시간을 사랑 이외의 것으로 낭비하는 시간이 아까운 것이다. 그런데도 미워한다. 그게 인간이다. 생각해보면 그 집에 아이들도 2명 있었다. 아이들이 안 보였던 것을 보면 작은 방에 들어 가서 나오지 말라고 하였나보다. 그 아이들이 그 소리들을 안들었을까?. 그렇게 어른 6명이 모여서 세상이 끝난 것 처럼 5시간 ~6시간을 자신들이 최고인 것처럼 온갖 욕을 하면서 퍼부었어도 그분들은 지금 세상에 안계신다. 시이모는 바람이 나서 살고 있던 이모부랑 이혼하고 다른 남자랑 울릉도에가서 살고 계신다는 소리를 20년 전 쯤에 들었다. 시외숙모는 시댁에..

영숙이의 결혼 생활 5 ~ 미움과 사랑

영숙이의 결혼 생활 5 ~ 미움과 사랑 사랑해도 시간은 간다. 미워해도 시간은 간다. 사랑하고 미움의 차이는 사랑은 자신을 더 나은 사람으로 만들고 미움은 스스로를 더 힘들게 할뿐만 아니라 못난 사람으로 만든다는 차이가 있을 뿐이다. 돈을 사랑함은? 성경에는 돈을 사랑함은 일만 악의 근본이라 되어 있다. 그럼에도 돈에 대하여 욕심을 부릴 때가 많다. 부자라고 욕심을 부리고 가난하다고 돈에 대하여 청빈하다는 것은 아니다. case by case로 사람마다 다 다르고 사람의 성향에 따라 다 다르다. 알뜰하다고 다 부자가 될까? 돈을 모으려고 다 부자가 될까? 그렇지 않다고는 해도 쓰는 손은 절대 이길 수가 없다. 벌지 않으면서 관리하지 않고 낭비하는 사람을 어떻게 할 수 있을까. 세상에는 대책없는 사람도 있..

영숙이의 결혼생활 4. ~ 혁신과 가난

한번도 가난하게 살거라고 생각해 본적도 없었다. 어려서부터 왠지 모르지만 부자로 살 거 같았다. 부자로 사는 것이 나의 운명이라고 생각하고 성장했으며 아직 취직하지 않았을 때에도 부자로 살 것을 확신했었다. 결혼 했다. 물론 잘 살거라고 생각했다. 혼자 버는 것도 아니고 둘이 버는데 못 살것도 없었다. 혼자만의 생각이었다. 열심히 벌고 알뜰살뜰 모으면 잘 살거라고 생각한건 혼자만의 생각 신혼 초에는 시댁에서 필요한건 다 드릴 수 있다고 생각했었다. 그렇지만 그건 오산이었다. 한도 끝도 없이 그냥 밑빠진 독에 물붓기였다. 결혼 후 3년. 이렇게 살다가는 가난을 면치 못할 거라는 것을 깨달았다. 왜 사람들이 가난하게 사는지 알 것 같았다. 영숙이는 가난하게 살 생각은 눈꼽만큼도 없었다. 결혼해서 3년이 지났..

영숙이의 결혼 생활 3 ~ 콩깍지와 기도

주전에서 차를 세워서 몽돌 해수욕장까지 이리 저리 옮겨 다니며 영화 "어거스트 러쉬" 와 "어부의 딸"을 보고 라떼도 한잔 사서 나눠 마셨다. 라떼를 짤끔거리면서 영숙이의 결혼 생활 3 ~ 콩깍지와 기도의 서론을 썼다. 쓰다보니까 치우쳐서 깊이 들어가는 것 같아 좀 쉬고 다른 각도로 쓰려고 "그만 쓰고 영화나 마져 봐야지." 저장하고 발행하고 영화를 보았다. 생각보다 어부의 딸이 재미있었다. 특히 여성 노벨 평화상을 최연소로 수상한 파키스탄 여성 말랄라 유사프자이의 말 "교사 하나" "책 한권" "그리고 연필 한자루면 세상을 바꿀수 있다." "남자 하나가 세상을 파괴할 수 있다면 여자 하나가 세상을 바꿀 수도 있다." 힘이나 물질보다는 펜의 힘이 강하다는 이야기. 영숙이는 어려서 부터 책을 좋아했고 책을..

영숙이의 결혼 생활 2 ~ 길들이기

1. 퇴근해서 앉더니 발을 쑥 내밀었다. "양말 벗겨줘." "???" 남편 얼굴을 표정없이 바라 보다가 손가락을 양말 목에 걸어 쓱 잡아다녔다. 두짝을 다 벗길때까지 발을 내밀고 있었다. "회사에서 마누라 길들여야 한다고 퇴근하면 양말 벗겨 달라고 말해보라 잖여. 벗겨주나 안 벗겨주나 해보라해서." "엥? 왠?" 그날 양말을 처음이면서 마지막으로 벗겨 주고 지금까지 벗겨준 적이 없다. 본인이 깔끔 하기도 하거니와 부지런해서 남의 손을 빌리는 사람이 아니다. 그냥 재미로 벗겨주나 안벗겨주나 시험해 본 것이다. 주변에서 새신랑이라고 이러니 저러니 말들을 해주었었나 부다. 동갑내기이니까 아무래도 28살짜리 새신랑에게 해줄 말이 많았을 것이다. 2. 새벽마다 일어나면 꼭 창문을 열었다. 일찍 일어 나야 한다고...

영숙이의 결혼 생활 제 1화 ~ 출발

"철면피" "뭐?" "석두들을 어떻게 버텨내? 사랑은 1도 모르는 사람들." "아직도 나한테 싸대기 10대 맞을거 있다는 거 알지?" "절대로 잊을 수 없어.". ~ 영숙이는 철희를 사랑한다. 순수한 감정으로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의지 + 감정의 생산물이다. 지금의 상태가 좋다. 집 앞에 있는 백다방에 안가려고 애쓰다가 아파트 출입구 좋아하는 길을 따 라가 따뜻한 라떼를 산다. 길을 건너 파리바켓에 가서 단호박검은깨 식빵 하나와 달콤한 옛날왕슈크림 도넛 을 한개 산다. 4100 + 2500 = 6600원. 이 정도는 써도 돼. 이 정도는 쓰고 살아도 될 만큼 살고 있어. 소설을 쓰고 싶다. 평생을 작가로 살고 싶다. 어느 한 순간도 놓치고 싶지 않다. 시간은 지나가고 글쓰는 일은 점점 더 멀어져 간다. ..

<베이비 붐 세대의 주식 이야기>

86년 아시안 게임때 주식을 시작했다. 그때 당시 아파트 22평 한채 값이 800만원이었다. 옆집에 사는 같은 회사 직원 집에서 600만원을 빌려서 그때 당시 핫했던 증권주를 샀다. 88이 끝나고 3배 올라서 아파트 2채값이 되었다. 그때 우리가 주식을 따라했던 멘토가 말했다. "나 주식 팔아서 태화강에 있는 땅 샀어." 아니 저렇게 주식이 뛰는데 왜 팔지? 그리고 옆자리에 있던 청와대 비서실에 아는 사람이 있다는 사람이 금융주를 전부 팔았다고 영숙이한테도 팔라고 하였다. 왜 팔라고 하는거지? 영숙이 올케가 퇴직금 300만원을 주면서 주식을 해달라고 하였다. 당연히 금융주인 국민은행을 전부 샀다. 그 사람들 말이 전부 옳았다. 난 팔지 않았고 끝까지 들고 있었고 올케 주식도 끝까지 팔지 않았다. 장기 저..

여보 마누라 내 발 한번만 씻어주오

( 송철호. 변호사. 처용수필. 제2호. 1996. 겨울) 1. 내가 청년 시절 때쯤 영국에 히드라는 이름의 수상이 있었다. 그는 당시만 해도 그런 대로 힘이 있어 보이던 대영 제국의 평범한 수상이어서 내가 특별히 그를 기억할 만한 이유는 없다. 그러나 요즈음 변호사로서 수많은 이혼 사건을 상담하면서 자꾸만 그를 떠올리는 것은 그에 대한 유별난 기억이 있어서이다. 그가 어느날 갑자기 사임을 했고 그 이유가 "가정을 위해서" 라는 짤막한 것이었다. 나라와 민족을 위해서라면 가정만이 아니라 목숨까지도 우습게 뒷전에 둘 수 있다고 생각하던 젊은 시절의 나로서는 그것은 이해 불가 정도가 아니라 용서 자체가 되지 않았다. 세상에 이런 쪼다 같은 친구가 있나. 그는 수상을 그만둔 얼마 뒤 우리나라를 방문한 일이 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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