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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rriage life of JINNSSAM

영숙이의 결혼 생활 2 ~ 길들이기

by 영숙이 2021. 5.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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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숙이의 결혼 생활 2 ~ 길들이기>

 

1.
 

 퇴근해서 앉더니 발을 쑥 내밀었다.

 "양말 벗겨줘."
 "???"

 남편 얼굴을 표정없이 바라 보다가 손가락을 양말 목에 걸어 쓱 잡아다녔다.
 두짝을 다 벗길때까지 발을 내밀고 있었다.

 "회사에서 마누라 길들여야 한다고 퇴근하면 양말 벗겨 달라고 말해보라 잖여. 벗겨주나 안 벗겨주나 해보라해서."
 "엥? 왠?"

 그날 양말을 처음이면서 마지막으로 벗겨 주고 지금까지 벗겨준 적이 없다.
 본인이 깔끔 하기도 하거니와 부지런해서 남의 손을 빌리는 사람이 아니다.

 그냥 재미로 벗겨주나 안벗겨주나 시험해 본 것이다.

 주변에서 새신랑이라고 이러니 저러니 말들을 해주었었나 부다.
 동갑내기이니까 아무래도 28살짜리 새신랑에게 해줄 말이 많았을 것이다.

 

2.
 새벽마다 일어나면 꼭 창문을 열었다.
 일찍 일어 나야 한다고.

 코고는 소리에 잠을 못들이다가 겨우 잠들었는데 깨기가 쉽지 않았다.

 원래 늦게 잠들고 늦게 일어나는 스타일이다.
 은퇴하고 제일 좋은게 아침에 늦게 일어나도 되는게 정말 행복하다.

 창문을 열어 놓아서 찬바람이 들어와도 절대로 일어나지 않았다.
 웅쿠리고 자다가 남편한테 밥상차려 줘서 먹고 출근 해야할 시간이 되어서야 겨우 일어났다.

 남편은 그때나 지금이나 새벽 5시와 5시 30분 사이에 어기없이 일어난다.
 잠이 깨면 영숙이처럼 이불 속에서 뭉기적 뭉기적 거리면서 눈을 감고 비몽사몽 헤매는 적이 없다.
 벌떡 일어나서 침대 밖으로 빠져 나간다.

 그러던 어느날 드디어 사단이 났다.

 

 아가씨 때 부터 자취하면서 옷을 벗고 이불을 돌돌 감고 자는 버릇이 있었다.
 지금이야  입고 자지만 젊을 때는 그렇게 벗은 몸에 감기는 이불 촉감이 좋았고 자유를 느낄 수 있었기 때문이다.
  나름 이불 속에서의 자유를 찾았다.

 그날도 남편은 새벽같이 일어나서 창문을 활딱 열어 젖혔다.
 영숙이는 이불을 돌돌 감고 이불 속에서 누에고치처럼 구부리고 자고 있었다.

 남편은 새댁이를 길들이려고 창문을 활딱 열어 젖혀도 안 일어나니까 돌돌 감고 있는 이불을 확 걷어 젖혔다.
 이불을 걷었거나  말거나 바짝 오구리고 자고 있는데 어쩐지 기분이 이상해서 고개를 들고 열려진 창문을 바라 보았다.

"으악 ~저기 ~ 저기."

 젖혀진 이불을 끌어 당겨 덮었다.
 창문으로 옆집 옥상에서 내려다 보는 남자 눈과 딱 마주쳤기 때문이다.
 그후로 다시는 창문을 열지 않았고, 영숙이를 일찍 일어나게 한다는 야심찬 길들이기는 실천하지 못했다.

 이후로 깨워 달라고 말할 때 외에는 일어나라고 말하지 않는다.
 옆집 아저씨가 옥상에 올라가서 옆집 새댁이를 열려진 창문으로 본 이후 남편한테 약간의 화를 보태서 말을 했기 때문이다.

 

  "아니, 어른인데 알아서 일어 날때 되면 일어나서 할일 하겠지. 그렇게 강제로 일으킨다고 고쳐져요? 자기는 초저녁부터 코를 골면서 자는데 그옆에서 코고는 소리 때문에 잠못드는 사람 입장을 생각해줘야지."

 40여년 동안 직장 생활을 했었어도 아침에 일어나는 일은 힘들었다.
 굳이 변명하자면 저혈압에 토끼잠 그리고 눈이 건조해서 따갑기 때문이라고 변명하지만 은퇴 전에 한번은 스스로 한탄을 한 적이 있다.

  "아. 40년 동안 직장 생활을 했어도 아침에 일어나는게 이렇게 힘드네 "

 

 그래도 길들여진게 있다.

 남편이 코고는 소리가 이제는 잘 안들린다.

 아니 들려도 잘만 잔다.

 

 그렇게 옆에서 코를 골다가 거기에 잠꼬대까지 하면 그 잠꼬대까지 다 듣고 잊어 버리지 않고 아침에 말하려고 머리 속으로 말한 내용을 되새김질까지 하면서 잤던 영숙이다.

 
평생을 토끼잠을 자면서 아직도 잠귀가 밝은데도 코고는 소리에는 반응을 안하니 스스로가 생각해도 신기하다.

 

아니 오히려 코를 골다가 조용하면 신경이 쓰인다.

 무호흡 때문에 밀거나 잡아 다녀서 옆으로 자도록 자세 를 바꾸어 준다.

 

 

3.   

 영숙이는 동생들이 4명이나 있는 집에서 성장해서인지 잘 때는 옆에 누가 있어야 하고 만지작 거려야 한다.

 
친정 아버지가 여자를, 여자 만지는 걸 유난히 좋아해서 평생 바람을 폈는데  그 유전인자를 쬐께 물려 받았나부다
.

(친정아버지 바람기때문에 친정 엄마는 20살에 영숙이
를 낳고 이후 2~3년마다
남.여.남을 낳고 영숙이와 12살 차이인 막내를 낳은 다음 30대에 집에서 야매로 이쁜이 수술까지 하셨다.)

그래서 혼자 자취할 때는 만질 사람이 없어서 이불을 돌돌 감고 잤었다.

 

 남편은 누가 옆에 붙어 있으 면 싫어하는 사람이었다.

 땀도 많고 덥다고 귀찮아
하면서 좋아하지 않았다.

 

 "돈을 얼마나 들여서 시집
을 왔는데 옆에 붙어서 자지도 못해요? 잠들 때까지는 옆에 붙어 있을 테니까, 잠들면 떨어져
나가요. 난 붙어 있어야 잠이 드니까 어쩔 수 없어."

 

 

4.

 여름 방학이 되니까 시댁에 가라고 하였다.

 시댁에 가서 일주일동안 있으면서 반찬하는 것을 배우라고 하는 것이다.

 안갈 수가 없었다.

 

 시댁에는 일하는 여자애가 있었다.

 그애한테 반찬하는 것을 배웠다.

 

 어머니한테도 배웠다.

 그중에서도 냄비나 후라
이펜 바닥에 두툼하게 썬 무우를 깔고 위에 고등어를 올린 다음 양념을 넣어 푹 끓이는 방법을 가르쳐 주셨는데 진짜 맛있었다. 

 
당근과 오이를 꽃모양을 동동 띄운 물김치는 정말 일품이었다
.

그런 어머니가 지금은 요양원에 계시면서 아들 이름도 얼굴도 몰라본다
는게 참 슬프다.

인생의 슬픔.
마지막 가는 인생의 슬픔.
누구도 예외는 아니겠지.

살 동안 바람을 느끼며, 바
람 소리를 들을수 있는데
까지 들으며 살다 가야 한
다.

인생, 뭐 있나?
살아 있다는 것을 느끼며 사는 날까지 열심히 살다가 하나님이 오라고 부르면 가야지.

어쨌든 어머니는 반찬도 잘 만드시고 금은방에서 금과 은을 넣는 주머니를 만드는 일도 잘 하셨다.

  손재주도 있으시고 부지런 하신분이라서 몸무게도 얼마 안나가시는 작은 키로 하루종일 집안을 종종 거리면서 다니셨다.

  입도 부지런하셨다.

 
5월 8일에 결혼하고 7월 25일이 되어 이제 겨우 2달 2주된 새댁.

 
그 사이에 허니믄 베이비가 있었는데 유산을 했다.

 
아직은 서먹하고 낯설 때 였으니까그저 이뻐라만
해도 어려울 때.

 

  "뒷집에 아가씨가 있었는
데 아파트 사가지고 시집 온다고 했는데 안했어."

 "버는 자랑보다 쓰는 자랑을 하라고 했어."
"너희들이 우리보다 일찍 아파트 사면 안된다."

 

 그말을 듣고 시댁에서 일주일이 지난 다음 친정에 갔을 때 친정엄마 한테 일렀다.

 역시 친정엄마는 딸 편이다.
기가 죽어서 그말을 하니까

 

 "아니 직장 다니면서 평생 돈 벌면 아파트 한채만 살까봐?"

 

 

5. 남편 철희를 어떻게 만났지?

 

 보건실에서 배우자를 위한 기도를 3개월 동안 했다.

 여기 저기 쫓아 다녀봐도 안되니까 택한 방법.

 

 겨울방학이 되고 별일없이 지나갔다. 

 겨울방학이 끝나고 봄방학이 되기 전에 대학 동기한테 놀러 갔다.

 
대학동기를 만난 것은 추석 때 대전 집에 다녀오면서 버스터미널에서 만났다.

 

 그때 버스 터미널은 돈 찍어 내는 동네.

 
누구든지, 다른 도시로 가려면 고속버스를 타던지 아니면 일반버스를 타던지 해야 하는 시절이었기 때문이다.

  지금처럼 자가용이 흔하던 시절이 아니니까 특히 명절 때면 귀성 전쟁을 치러야 했다.

 

  명절 때 버스표가 예약이 되었었나?

 
명절때 기차표를 예약하기 위해서는 역 광장에서 이리 저리 사람들에게 치이고 밀리면서 줄을 서서 몇시간이고 대기했다가 사야 했었다.

 

 그때나 지금이나 준비성이라고는 1도 없는 영숙이는 울산으로 내려오기 위해 버스터미널로 갔다.

 
당연히 버스표가 없었다.

 
고속 버스 앞에 돈을 들고 서 있다가 표를 가지고 있는 검표원이 좌석 몇개 있습니다. 말하면 

  손을 미친듯이 흔들어 검표원한테 버스표를 받아야 했었다.

 

 지금 생각하면 웃읍다.

 

 그렇지만 그때는 그게 아무렇지 않은 당연한 일.

 추석 연휴가 끝나고 표를 어떻게 하면 살 수 있을까 초조하게 검표원을 바라보고 있는데 앞쪽에 대학 동기가 한무데기로 서있는 우리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영숙이 아니니?"

 "응. 혜영이?"

 "어디가는데?"

 "울산."

 "표있어?"

 "아니, 없어."
 "신랑 울산가는 표 한장 있지? 쟤 줘."

 
지난해 추석때 혜영이 부부하고 울산 내려오는 버스를 함께 타고 왔었다.

 
같은 회사에 다니는 직원하고  내려오기로 약속이 되어서 몇일전 표를 구매했는데 그 직원이 누군가의 자가용에 같이 타고 내려 간대서 표가 남았다고 했다.

 

  정말 우연히 대학동기를 만났고, 겨울 방학이 끝나서 만나러 갔다.

 

  대학동기는 전에도 방어진에서 다방을 한다는 빨간 티샤스의 총각을 소개한 적이 있었고 동기 부부와 그 총각과 동기가  친하게 잘안다는 총각 누나와 영숙이와 해군사관학교에 다니던 영숙이 남동생과 부곡 하와이로 봉고차를 빌려 타고 놀러 갔다 온 적도 있었다.

 
삐걱 거리는 방어진 나무 계단을 밟고 온 뒤로는 한번도 그 빨간 티셔스 총각 이야기를 한 적이 없다.

 

 "우리 아파트 5층에 사는 아줌마네 집에 조카가 자주 놀러 온다는데 한번 만나볼래? 언제 만날까?"

 

 그렇게 약속을 하고 철희씨를 동기네 집에서 만났다.

 서로 어색하게 앉아서 별말없이 동기가 주는 과일을 먹고 차를 마시고 철희씨는 외숙모네 집으로 올라갔다.

 30분쯤 지났을까?

 

 "띵똥"

 "누구세요?

 

 아파트 문을 여는데 철희씨가 칠성사이다 병을 들고 있다가 쓱 내밀었다.

 

 "외숙모가 음료수 좀 사다 드리라고 해서요."

 

 그 말을 하는 남자의 얼굴이 무척 순하고 착해 보였다.

 

  "그래. 이 남자하고 결혼하면 평생 속은 안썩겠네. 말 잘 듣고 순한 남자네"

 

 그리고 몇일 후에는 동기생 옆집 아주머니의 남동생을 다방에서 만났다.

 남자는 나이가 들어보였다.

 영숙이보다 4살 많은데다 나이가 들어 보이는 얼굴이었다.

 

  남자는 적극적으로 공세를 펼쳤다.

 만난 그 주 토요일에 거제도에 사시는 어머니를 모시고 와서 만나자는 것이었다.

 깜딱이야.

 빨랑 이야기를 해줘야 했다.

 

 외대 출신으로 다니던 직장을 나와서 집에서 잠시 쉬고 있다고 했다.

 

 "직장 없어서 안되겠어요. 어머니 모시고 오면 부담이 되니까 모시고 오지 마셔요."

 

 동기를 통해서 옆집에 사는 누나에게 전달 하였다.

 

 "철희씨가 직장도 울산이고 괜찮은것 같아."

 

 그때 말은 안했지만 철희는 영숙이랑 동갑에 동안이어서  끌렸고 옆집 누나가 소개한 총각은 나이가 들어 보이고 여자 경험도 많은 것 처럼 보였고  엄청 생각도 많이 하는 사람으로 보였다.

  영숙이가 생각을 많이 하는 여자라 본능적으로 생각 많이 하는 남자가 싫었나부다. 

 

  소개라고 하지만 다 알아보고 시작하는 터이라 일이 빨리빨리 진행되었다.

  외숙모네 집에 철희씨 부모님이 오셔서 영숙이더러 올라오라고 하였다.

  그때 어머님, 아버님, 시 이모님, 시 이모부님, 시 외숙모 등이 모여서 영숙이를 구경하였다.

 

 그 조합이 평가단이기도 했고 결혼 후에는 특단 조치 위원회가 되었다.

 좀 그랬지만 철희씨가 마음에 들었기 때문에 외숙모네 집에 올라가서 어른들이 구경하도록 하였다.

 일이 일사천리로 진행되어 철희씨와 토요일 날 우리 집에 가기로 약속하고 공업탑 로타리에서 만나기로 하였다. 

 

 그날 철희는 영숙이를 만나러 나오지 않았다.

 안나왔다고 약속을 미룰 영숙이가 아니다.

 다방에서 카운터에 놓여 있는 그 검은 전화기에 손가락을 넣어 다이얼을 돌려서 외숙모네 집에 전화를 했다.

 

 "오늘 다방에서 만나서 대전에 가기로 했는데 안나왔네요."

 "저번에 우리 집에서 어머니가 보시고 반대하신대."

 "그럼 그렇다고 나와서 얘기를 해줘야죠. 만나기로 약속해 놓고  아무말 없이 안나오면 어떡해요."   

 

 몇일 후에 학교 교무실로 전화가 왔다.

 

 "지난 번에 안 나와서 미안해요. 이따 6시에 원다방에서 만나요." 

 

 다방에 앉았을 때 먼저 사과부터 했다.

 

 "미안해요. 지난 번에 아무말 없이 안나와서요. 우리 엄마가 반대해서요. 그날 그래서 못나온거예요.  ~ 호박이 덩쿨째 굴러왔다고 ~ 외숙모는 자꾸 만나라 하고 저도 어째야 할지 모르겠어요."

 "본인 생각은 어때요? 어머니나 외숙모 생각 말고요."
 "저도 외숙모랑 같은 생각입니다."

 

 로타리 근처 중공업에 다니는 젊은 부부가 사는 청기와 아파트에 방한칸을 빌려 살고 있었던 영숙이는 알았다면서 집에 가겠다고 일어섰다.

 

 "집까지 바래다 줄께요."

 

 남자랑 영숙이가 자취하는 아파트 근처까지 왔다.

 아파트 문으로 곧장 들어가지 않고 영숙이는 돌아서서 큰 도로까지 데려다 주겠다고 했다.

  둘이 가로등도 없는 어둑어둑한 길을 걸어서 도로쪽으로 가고 있었다.

 

 갑자기 남자가 마주 보더니

 

 "정말 미안합니다."

 

 하고 말했다.

 큰 도로로가 보이는 곳이었다.

 그 말하는 남자 얼굴을 가만히 바라 보다가 영숙이는 남자 입술에 뽀뽀를 했다.                    그 뽀뽀로 100일만에 철희랑 결혼식을 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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