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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rriage life of JINNSSAM

영숙이의 결혼 생활 제 1화 ~ 출발

by 영숙이 2021. 5.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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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숙이의 결혼 생활 제 1화 ~ 출발>

 

 

 

 

 

 "철면피" 

 "뭐?"

 "석두들을 어떻게 버텨내? 사랑은 1도 모르는 사람들." 

 "아직도 나한테 싸대기 10대 맞을거 있다는 거 알지?"

 "절대로 잊을 수 없어.".

 

 

 ~

 영숙이는 철희를 사랑한다.

 순수한 감정으로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의지 + 감정의 생산물이다.

 

 지금의 상태가 좋다.

 

 집 앞에 있는 백다방에 안가려고 애쓰다가 아파트 출입구 좋아하는 길을 따
라가 따뜻한 라떼를 산다.

 
길을 건너 파리바켓에 가서 단호박검은깨 식빵 하나와 달콤한 옛날왕슈크림 도넛
을 한개 산다.

 

  4100 + 2500 = 6600원.

  이 정도는 써도 돼.

  이 정도는 쓰고 살아도 될 만큼 살고 있어.

 

  소설을 쓰고 싶다. 

  평생을 작가로 살고 싶다.

  어느 한 순간도 놓치고 싶지 않다.

시간은 지나가고 글쓰는 일은 점점 더 멀어져 간다.

 

   문득 깨달았는데 영숙이는 소설 쓰기에 상상력이 부족
한 사람이다.

   
아니, 상상력이 부족한 사람이 되어 갔는지 모른다.

   
어쩌다 뭔가를 쓰기 시작
했는데,
가만, 어머니가 치매로 요양병원에서 점점 더 기억을 잃어 버리는 것을 보면서,
그런일이 누구에게나 온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더 늦기 전에 상상력이 넘치 는 소설까지는 아니라도, 살
아온 이야기라도 써보자.

   
꼭 사실 그대로가 아니어도 좋다.

  머리 속에서 사실 그대로 기억하지 않을 수도 있다.

  내가 원하는 것만 남아 있
을 수도 있다.
꼭 그때 그 그림 그대로가 아니라도 그려 보도록 애써
보자.

 
이래 저래 어린 시절 이야
기와 학창 시절 이야기를 적었다.
이제 결혼 생활을 적어 보려
고 한다.

   
사실이 아니면 어떻고 또 사
실이면 어떨까

뭔가를 쓴다는게 중요하다
고 생각한다.


결혼 생활 중에 어떠한 어려
움을 겪었다 할지라도,

 또 부끄럽기 짝이 없는 생
활 이었을지라도

지금은 잘 지내고 있다.

가장 중요한건 현재, 지금, 잘 지내고 있다는 것이다.

 
영화를 좋아해서 자주 보는
데 얼마전 로맨스 드라마 시리즈를 한편 본적이 있다.

1%의 어떤 것이란 제목의 드라마다.

거기에 이런 이야기가 나
온다.

남들이 다 나쁘다고 해도
10가지 중 한가지만 매력
적으로 느낀다면,
그 한가지 1% 어떤 것이 좋 다고 생각된다면 유지가 된다고

 
반대로 모든 사람이 다 좋다
고 하여도, 10가지 중에 매력적으로 느끼는, 좋다고 느낄 한가지가 1%가 없다
면, 유지가 안된다고.

     
결혼이나 연애는 그런 것이
다. 

 

 

~

결혼.

원래 결혼같은 것은 하고싶 지 않았다.

 

 남편?

 생각해 보지도 않았다.

 

 구속되고 싶지도 않았고, 결혼에 매이고 싶지 않았고, 책임지는 것도 싫었고, 하고 싶은 것을 하면서 사는게 영숙이의 꿈이었다.

 
그런 생각을 하게 된 이유가 이기적인 성격 때문이기도 했다.

 
어떻게 영숙이의 생각이 바
뀌었더라?

 

 우선 객지에서 7년 동안 혼 자 살다보니까 너무 외로워
서 병이 들었다.

 
어느 날 학교 현관에 서 있 는데 반 아이가 찾아왔다.

학교 근처에서 자취를 했었
는데 시골에 있는 집에서 버 스를 타고 다니려고 한다고 했다.

 

 "왜?"

 "외로봐서 못살겠어요. 좀 힘들어도 집에서 다녀야겠
어요."

 "집이 멀어서 어떻게 다니
려고."

 "새벽에 일찍 나와서 버스 타야 해요. 버스 타는데까지 오는데 한 20분 걸려요. 그
래도 외로운 것 보다는 나아
요."

 

 외롭다는 말을 그렇게 쉽게 하는 아이를 보면서 얼마나 부러웠는지.

 
집에서 다닐 수 있다는 것도 엄청 부러웠다.

 

 반아이가 자취를 하고 싶은
데 형편이 안된다고 하여서 얼마동안 아이와 같이 자취 한적도 있었다.

 
영숙이는 아침 밥을 하고 같이 먹고 설겆이를 하고 그런 것을 잘 못했다.
오히려 아이가 반찬이나 살림을 더 잘했다.

 
결국은 한달도 같이 있지 못
하고 아이는 자취를 하는 딴 아이를 찾아서 옮겨갔다.

 

 지금 같으면 어림도 없을 이
야기지만 40년 전이니까 가
능했던 이야기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때의 아
이들은 정말 순수 했다.
선생님이라고 무척이나 어
려워하고 무조건 존경해 주
었었다.

 
지금 그 아이들이 57살.
세월이 얼마나 흘렀는지를 인식하게 된다. 

 

 객지에서 외롭다는 생각을 하면서 눈에 띄이는게 부부
가 아이와 같이 다니는 모습
이었다.

 
선생님들하고 결혼한 샘 집
들이 다녀 오다가 아파트를 올려다 보았다.

 
많고 많은 아파트들.

집집마다 불이 다 켜져 있
었다.

 

'모두들 저렇게 아파트를 차지 하고 살고 있구나.'   

 '언제까지 집도 없이 떠
돌이 생활을 해야 하는 거
지?'

  '결혼을 하면 남편하고 둘이 버니까 더 빨리 아파트
에 들어가서 살게되지 않을
까?'

 

 생각해보니까,
영원히 혼자 살거 아니라
면,

 언제인가는 결혼 할거라
면,

 어쨌건 조금이라도 어릴 때 하는게 유리하지 않을까?

 

 그때부터 소개도 받고,

 선도 보고,

 열심히 쫓아 다녔던 것 같
다.

 

 뚱땡이 이모가 소개해서 동
두천에 사는 대위를 만난 적
이 있다. 

 

  - 서울 시청 앞에 있는 호텔 로비에서 만났다. -

   

  그날 하필이면 북한에서 비
행기가 날아와서 서울 시내
에 비상이 내렸다.
비행기를 몰고 와서 귀순을 한 것이다.

 사이렌이 미친듯이 울었다.

 

  "경계태세. 경계태세."

  "적기의 공습이 있습니다."
"이건 연습이 아닙니다. 실
제 상황입니다."

  "부대에 지금 전화를 해야
겠어요."

  "부대로 빨리 복귀 하라
네요."

 

호텔 커피 숖을 나와서 지
하철 역 개찰구 앞으로 갔는 데 군인아저씨가 말했다.

 

  "앞으로 저랑 더 안만날거
지요? 갑니다."

 

  그때까지는 군복에 가려서 사람이 안보였었다. 

  개찰구를 지나서 지하철로 가는 군인 아저씨를 바라보
자니까 뚱뚱하고 키는 작고 배가 나온 사람이었다.

  물론 나보다는 키가 컸지만 개찰구 앞에서 냉소를 머금

 

  - 저랑 더 안만날거죠? -

 

  그 말을 듣는 순간 그냥 낯
선 사람이었는데 싫은 사람
으로 결론이 내려졌다.

 

 담임반 학생이 소개한 적도 있다.

 

  현대계열 학교에 다니시는 남선생님이셨는데 그분도 체격이 좋은 분이셨다.

  혼자서 뭐라고 너무 열심히 말을 했는데 그 앞에 앉아서 들으면서

 
'왜 저렇게 열심히 말할까?'

 

 그런 생각을 하면서 듣고 있
었던 기억이 난다.

 혼자 열심히 이야기 하는 걸 듣고 있다가 옥교동 강변에 있는 지하 다방을 나섰던 기
억이 난다.

 
영숙이가 이미 27살이었으
니까 대부분의 남자들이 30
대였고 뚱뚱하고 배가 나온 사람들이 많았다.

 

 한번은 대전에서 엄마가 아는 분이 소개를 하셨다.

 

 서대전에 있는 집 앞에서 조금 떨어진 지하다방에서 만났다.

 

 키가 작달막하고 단단하게 생긴 노가다 느낌의 남자였
다.

 현대 중공업에 다닌다고 했다.

 

 남자는 다부진 체격만큼 이 나 말도 어찌나 다부지게 하
는지. 

 
아마도 영숙이는 물어 보는 말에만 짧게 대꾸하면서 흥
미 없어 하는 얼굴로 앉아 있
었을 것이다.

 
몇가지 기초조사를 하더니 안될거라 생각했는지 전화
번호도 안주고 이렇게 말했
다.

 

 "울산에서 올라 오느라 밥
을 못먹었거든요. 밥먹으러
가려고 하는데, 같이 갈래
요?"

 
다방에서 이것 저것 호구조
사를 하더니 밥 먹으러 가자
는데 누가 선뜻 따라갈까나.
집에서 얼마 전에 나왔는
데.

 

 "아니요. 전 됐어요."

 

 선을 보고 이리 저리 소개를 받고 했는데도 잘 안됐다.

 두살 차이의 남동생에게 물
었다.

 

 "왜, 잘 안되지?"

 "누나가 그렇게 금테 안경 쓰고 도도한 얼굴로 차갑고 냉담한 태도를 보이니까 남
자들이 접근을 못하는 거
야."   

 "좀 허술한 구석이 있어야 편하게 말도 붙이고 그러
지."

 

 그때는 그게 무슨 소리인지 몰랐다.

 

 '뭐가 완벽하다는 거지?'

 '난 가만히 있는데 다들 혼자 떠들다 가는구만.'

 

 그랬다.

 영숙이가 그냥 가만히 있었
던게 문제였다.

 남의 말에 장단을 맞출줄을 몰랐다.

 상냥하지도 않았다.

 

 그래서 연애도 못했다.
연애를 할 수 있는 사람이 아니었다..

   

 상대편의 말에 호응을 해주
고, 들어주고, 웃는 얼굴로
미소를 띄우고, 눈빛으로 이야기를 할 줄 몰랐다.

 

 좋게 말하면, 아기들이 낯
을 가리듯 낯을 가리는 거였
고,

 

  나쁘게 말하면, 이쁘지도
않은 뚱한 얼굴로 차갑고 냉정한 표정으로 잘난체 하
면서 앉아 있는 사람이 바로 영숙이 였다.

요즘 아이들 말로 하면 재수
탱이.

 

아무도 상냥한 사람이 되어
야 한다는 이야기를 해주지 않았다.

 
사람을 대할 때는 친절하게 대해야 한다는 것도 몰랐다.

 

 선배 선생님이 샘 남편이 다니는 회사 사람을 한사람 소개 한적이 있다.

 어머니 이야기를 해보라고 했더니

   

 '우리 어머니는 학교도 안
다녀서 학력도 없는 무식한 사람이지만 아버지랑 결혼
해서 여유가 있다보니까 교양을 갖추더라구요.'

 

 본인의 엄마를 그런 식으로 표현하는게 싫었다.

 아버지 이야기를 하라니까

 

 '이름만 대면 누구나 알 수 있는 사람입니다. 얼마전 까지만 해도 정부에서 일을 하던 사람이었습니다.'

 
대단한 집안이구나. 그런건
그렇다 하고 결정적으로 싫
다고 느낀 계기.

 

 '제가 키가 작아요. 그래서 키 높이 구두를 신어요.'

 

 키가 작으면 작은 대로, 키 높이 구두를 신으면 신은대
로, 그걸 또 굳이 말해야 했
을까?   

 그러고 보니 구두를 터덜터
덜 끌고 다니고 있었다.

 이왕 키높이 구두를 신는다
면 꼭 맞는 구두로 잘 신고 다닐 것이지.

 

 '저 사람 속에는 열등감이 많구나.'.

 

 그렇게 헤어지고 나서 가타 부타 말이 없었고,

 영숙이도 소개해준 선배한
테 아무런 말도 꺼내지 않았
다.

 

 한번은 대전 엄마 쪽에서 소개를 했는데 현대 자동차 다니는 남자였다.

 
마음에 들었다.

 그런데 질문이 이랬다.

 

 '등산 좋아 하나요?'

 

 그럼 왜 묻는가고 물어보고 대답해도 되는데, 그자리에
서 대답했다.

 

  "저는 등산 싫어 합니다."

  "저는 등산을 좋아해서 등
산 좋아하는 사람을 만나고 싶습니다."

 

 그래서 물건너 갔다.

 등산을 싫어 하지만 등산은 잘하는데 사람이 마음에 들


"등산 좋아합니다"

하고 대답할 수도 있었다.
어짜피 등산이 목표가 아니
고 결혼이 목표였으니까.

 
한번은 학교 선생님이 교생 실습 온 현대 중공업 다니는 남자를 소개했다.

 
결혼을 하려고 생각하고 만
나러 다니고 있었으니까 직
업이 있고, 평범하고, 크게 이상한 사람만 아니라면 어
떻게 잘해보려고 할 때 였
다.

 

 남자는 학교에서 멀지 않은 다방에서 만났는데 이것 저
것 호구조사를 했고 영숙이
도 성실하게 대답했던 것 같
다.


회사 기숙사에서 살았는데 연락이 안오길레 회사 기숙
사에 전화를 했더니 외출중
이라고 하였다.

 전화 받은 사람한테 전화 왔
었다고 전해 달라고 했는데 아무런 연락이 없었다.

 

  나중에 물어 보니까 소개를 받은 영숙이보다는 그 남자
가 부담임 배정을 받았던 반
의 담임샘(체육샘)이 더 마 음에 든다는 거였다.

이왕이면 다홍치마라고 그 샘이 더 예쁘고 더 젊고 성격
도 더 좋기는 했다.

그 선생님하고 잘되지는 않았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남자도 본인 나이를 생각했어야 했
는데.

"기숙사에는 위로 34살 35
살이 꽉 있어서 31살은 많지도 않은 나이입니다."

그렇기는 하지만 25살 짜리 여선생님하고는 차이가 많
이 날뿐만 아니라 전혀 결혼 생각이 없는 여샘한테 무조
건 들이댔던 것 같다.

넘 자신감이 과한 남자?.

결론적으로 영숙이가 마음
에 들면 그쪽에서 싫타고 하
였고 그쪽에서 마음에 들어
하면 영숙이가 싫타는 상황
이 계속 되었다.

 
한번은 울산에서 만난 친구
가 소개한 남자는 고등학교 나왔는데 그쪽에서 서둘러
서 다같이 부곡 하와이를 다
녀 왔었다.

 
같이 어울리던 샘한테 이야
기를 했더니

 

 "왜요. 고등학교 나왔으면 어때요? 계속 만나봐요."

 "네?"

 

 그때 그 남자가 일한다는 다
방까지 가봤던 기억이 난다.

 
방어진까지 가서 삐걱 삐걱 거리는 나무 계단을 올라가
니까 그 남자가 빨간 티샤스
를 입고 혼자 앉아 있었다.


놀라서 뒤돌아 섰던 기억이 난다.


이후 학력은 보지 말아야 하
는가부다 생각하게 되었다.

 

 이렇게 시간이 흘러 가면서 결국 기도를 하게 되었다.

 
대학 다닐 때에 예수를 믿는 건 아니었지만 교회를 다녔
었고 학습세례까지 받았기 때문에 기도 할 줄은 알았
다.

   

지금도 기억이 난다.

   

 가을이 되어 찬바람이 서서
히 불기 시작할 무렵.

 
교회는 주일 날 어쩌다 심심
하고 하릴 없으면 가는곳이
었다.

 
당연히 교적을 둔 교회가 없
었다.

 

 시간이 날 때마다 양호실 침대에 앉아서 기도를 했
다. 

 

 "하나님 배우자를 만나게 해주셔요. 결혼하게 해주셔
요."

 

 그렇게 3개월을 기도했다.

 
날이 많이 추워졌었던 어느 날.

 
그날도 기도를 하는데 눈 앞에 어떤 남자한테 비누칠
을 해주는 모습이 창문 턱 쪽에서 보였다.

   

 너무 선명해서 꿈인지,환상
인지, 생각인지.

 눈을 뜨고 보았는지, 눈을 감고 보았는지.

 가만히 앉아서 보았는지, 움직이면서 보았는지.

 
거기까지 생각은 안나지만

어떤 남자를 비누칠 해주고 있었다.

나중에 결혼해서 철희를 친
정집 이층에서 비누칠 해주
면서 그때 보건실에서 보았
던 그 남자가 이 남자라는 것
을 알게 되었다.

 

   

 ~ 

 어제 철희하고 마트에 쌀을 사러 가는데  불이 난 주상 복합 아파트를 보더니 하는 말.

 

 "아직도 그대로네. 언제 수
리 할거지? 저기 살던 사람
들 다 어디서 살고 있남?"

 

 그때 생각이 났다.

 하나님이 말씀 하신 것을 다 생각하고 찾아 내어서 기록
해야 겠다고 생각한 다음 날
이다.

 

  "저 아파트 분양 할 때 가보
았는데 맨 꼭대기 층에 정원
이 만들어져 있는데 정말 이
뻤어요.
그 층에 50여평 아파트 2개
가 양쪽에 하나씩 있었는데 정말 좋아 보였어요.
기도했는데 사지 말라고
하더라고요."

  "칫 점쟁이여? 기도하면 알아지게?"

  "뭐라, 점쟁이라? 어떻게 말을 그렇게 해?
매주 금요 일마다 교회에서 철야하면서 밤새워 기도하
는데 다른 사람을 위한 축복 기도도 하지만 내 문제를 물
어 보기도 하지.
저 아파트 너무 좋아 보여서 분양할까요?
물어 보았더니 저 건물에서 검은 관이 줄에 매달려서 내
려 오더라구.
싸서 사볼까 했다가 포기했
다구."

 "결과적으로는 저렇게 불
이나서 아무도 살 수 없게 되었네."

 
오랫동안 기억이 안났었다.

 불이 날 때 티스토리에 올렸
었지만 전혀 1도 생각이 안
났었다.

 
하나님이 말씀해 주신 것을 기록해야겠다고 마음 먹었
더니 생각이 난 것이다. 

     

 분양 할 때 구경 갔던 영숙
이 눈에 정말 아름답고 예쁘
고 넓직한 정원이 좋아 보였
지만 그 정원에 환기구가 있
었다.

  그럼, 그 환기구로 나오는 모든 미세먼지가 집안으로 들락 거린다는 소리였다.

 또 이후에 TV에서 보았는데 주상복합 건물의 위험성 중 하나가 화재에 취약하다는 것이다.

 건물 가운데 뚫린 통로 때문
에 불이 갑자기 확 번질 수 있다는 것이다.

 

 아무리 예쁘고 좋아 보여
도,
또 넓직하고 살기 좋은 건물 일지라도,
위험에 노출 되어 있다면, 포기하는게 맞다.

 
그때 분명히 보여주셨다.

 

 

 ~     

 결혼 하겠다고 쓰던 모든 글
들을 아파트 뜰 화단에서 다 태우고 겨울 방학이 되기 전 아마 3개월 쯤 기도했을 것
이다.

 
눈 앞에 보여주던 남자.

 
그 남자하고 결혼하였다.
철희라는 남자하고.

 

 

 ~

 예수 믿고 나서 영숙이를 보고서는 아무도 예수님을 믿을 것 같지 않았다.
 그래서 기도하기 시작하였다.

 "한명만 전도하게 해주셔요."

 내심 한명이라도 전도를 해야지 다니고 있는 교회에도 부끄럽지 않을 것 같았고 또 그 다음은 쉽지 않을까 생각했던 것 같다.
 어느 날 같은 학교 다니는 진샘이 보건실로 영숙이를 찾아오더니

"샘. 샘이 다니는 교회 다닐께요"

 

 정말 기절하는 줄 알았다.
 신나서 샘을 데리고 교회를 갔었고 샘의 어려움을 해결하려고 기도하면서 애를 썼었다.

 지금도 기억이 선명하다.
 샘이 교회 다닌다고 하고는 그 주에 일이 있다고 교회 오지 않았을 때.

 밤마다 저녁을 해먹고 치운다음 남편과 아이들이 잠들고 나면 교회에 가서 혼자 기도 하던 때였다.

 캄캄한 교회에 혼자 앉아서

 "진샘 빨리 예수 믿게 해주셔요."

 갑자기 영숙이의 몸에서 불기둥이 솟는게 보였다.

 그 불기둥이 진샘한테 간다는게 알아졌다.

 진샘은 그 주부터 교회에 나오기 시작하였다.
 처음 예배 드리러 오던 날.
 진샘은 예배 드리다가 토했다.
 마치 지난 날의 잘못을 한꺼번에 토하듯.

 진샘이 남편하고 이혼 한다고 했을 때 이렇게 말했다.

 "이혼하고 더 좋은 사람 만날 자신있음 이혼하셔요.
 "아가씨때 만난 사람이 지금의 남편인데 아이 둘 딸린 이혼녀 되면 더 좋은 사람 만나기가 쉽지 않을 텐데요."

 

 당시 진샘은 이혼하지 않았고 남편하고 잘 지낼 방법을 연구하고 노력하고 열심 예배 드리고 기도하고 잘 지냈었다.

 영숙이도 마찬가지.
 시집 가려고 애를 쓰면서 어찌나 결혼하기가 어려웠었던지 남편을 만나고 결혼하고 나서는 남편이 얼마나 귀했던지 정말 남편의 발도 귀해서 남편 발에도 뽀뽀를 해주었었다.

 

 남편은 발에 뽀뽀를 하면 쑥쓰러워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무좀도 있었는데

 

 ~ 그때는 내 남자가 있다는게 정말 좋아서 남편의 발도 좋았었다.

 그만큼 좋아하고 또 귀하게 생각했었다. 

 원래 이야기 하는 걸 좋아하고, 이야기를 잘 했기 때문에 결혼하고 나서는 성격이 유해져서 옆자리에 앉은 남샘들하고 이런 이야기 저런 이야기 살아가는 이야기를 잘했었다.

 "이샘. 나의 이상형인데 내가 결혼만 안했다면 도전해 보겠는데."
 "아서요. 꿈에라도 그런 소리 말아요. 아가씨 때 시집 좀 갈라 하니까 으찌나 어렵던지 어찌어찌 남편 만나서 겨우 겨우 시집 갔구만.

 난 남편 아녔으면 지금도 혼자 살거예요.

 아마도.
 시집 갈라고 목을 매서 겨우 겨우 남편 만나서 갔으니까 그런 소리 꿈에도 하덜덜 말아요.
 애고 결혼 하기가 얼마나 힘들던지. ㅋㅋㅋ
 결혼은 평생 한번이면 족해요. 넘 힘들어서 두번은 절대로 못하겄드라구요."

 정말 그랬다.
 기도해서 어렵게 만났고
 그만큼 귀했다
 나한테는 그 누구보다 귀한 사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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