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마루 끝에 앉은 하루"녹우당을 찾은 건,바람이 유난히 부드럽던 봄날의 오후였다. 오래된 담장과 푸른 숲 사이로,낡은 기와지붕이 소박하게 고개를 내밀고 있었다. 나는 조심스레 신발을 벗고,낮게 깔린 마루 끝에 앉았다.주변은 고요했다.멀리서 새 한 마리가 나뭇가지를 스치며 날아갔고,바람이 대나무 숲을 가볍게 쓰다듬는 소리가 들려왔다.처음에는 무엇을 해야 할지 몰랐다. 사진을 찍을까,메모를 할까,이런저런 생각을 하다가 문득 모든 걸 내려놓았다.그리고 그저 바라보았다.마루 앞에 펼쳐진 초록 들판.바람 따라 일렁이는 나뭇잎.햇살에 부서지는 먼지 한 알까지.그 순간,깨달았다. '바라본다는 건 소유하려는 욕심을 버리고,존재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일' 이라는 것을.고산 윤선도는 아마,이 마루에 앉아 세상과 자연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