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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rriage life of JINNSSAM

여보 마누라 내 발 한번만 씻어주오

by 영숙이 2020. 11.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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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보 마누라 내 발 한번만 씻어주오>

                                                            ( 송철호. 변호사. 처용수필. 제2호. 1996. 겨울)

1. 

  내가 청년 시절 때쯤 영국에 히드라는 이름의 수상이 있었다. 그는 당시만 해도 그런 대로 힘이 있어 보이던 대영 제국의 평범한 수상이어서 내가 특별히 그를 기억할 만한 이유는 없다.

 그러나 요즈음 변호사로서 수많은 이혼 사건을 상담하면서 자꾸만 그를 떠올리는 것은 그에 대한 유별난 기억이 있어서이다.  

 그가 어느날 갑자기 사임을 했고 그 이유가  "가정을 위해서" 라는 짤막한 것이었다. 나라와 민족을 위해서라면 가정만이 아니라 목숨까지도 우습게 뒷전에 둘 수 있다고 생각하던 젊은 시절의 나로서는 그것은 이해 불가 정도가 아니라 용서 자체가 되지 않았다. 세상에 이런 쪼다 같은 친구가 있나. 

 그는 수상을 그만둔 얼마 뒤 우리나라를 방문한 일이 있었다. 그것도 런던 심포니오케스트라를 이끌고 와 지휘하기 위해서였으니 그는 끝까지 나를 햇갈리게 만든 셈이다. 

  철이 들면서 가정과 사회 활동과의 관계에 대해서 어느 정도 판단 기준이 서게 되자, 히드수상에 대해서도 약간은 이해가 되는 것 같다. 히드는 용서받지 못할 자도, 헷갈리게 하는 사람도 아니었다. 그는 우리 모두에게 참으로 옳은 삶이 무엇인가를 삼광처럼 보여준 것이다. 그는 사업 때문에, 정치 때문에, 향락 때문에, 휴거 때문에 가정을 내팽개 친 모두에게 충고를 보낸 것이다. 가정을 불행하게 하는 어떤 선택도 그것이 가족의 동의가 없는 한 변동이 될 수 없다. 용서 될 수도 없다. 

 우리의 정치문화에서 언제 지도자라는 사람이 그의 모습을 만분의 일이라도 닮을 수 있을까. 

  문민정부가 막 들어서던 시점에 한 정치인이 아들의 대학 부정 입학이 문제되어 곤경에 처한 일이 있었다. 그때 그는 전국민을 상대로 "민주화 운동을 열심히 하다 보니 가정을 돌볼 틈이 없었다. 그러다 보니 아들이 공부를 못하게 되어 어쩔 수 없이 그렇게 된 것이니 이해해 달라"고 동정을 구했고 요즈음 그가 차기 대권주자로 이름이 오르내리는 데 그 문제를 거론하는 사람은 하나도 없다. 

2.

  결혼한지 일주일만에 이혼 상담을 해 온 여성이 있었다. 제주도에서 신혼 첫날밤을 잘 지내고 아침에 여행을 떠나게 되었다. 각자 차림을 마치고 호텔방을 나설 무렵 그들에게 난감한 문제가 생겼다. 신부는 최고의 차림에 높은 구두를, 신랑은 최대로 간편한 복장에 운동화를 각각 선택하여 착용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들은 처음에는 서로에게 자기 차림의 정당성을 설명했다. 그러나 시간이 가면서 그냥 이성적이지만은 않았다. 첫싸움에 지면 평생 쥐어 산다는 친구의 충고가 생각났다. 신랑은 "이제 너도 가장이 되었으니 병신처럼 행동하지 말고 아내를 확실히 다스려라"는 어머니의 엄한 당부가 떠올랐고, 신부는 어제까지만 해도 곰살궃게 굴면서 자기 뜻에 전적으로 따라 주던 남편이 하룻밤 사이에 돌변하여 완강한 태도를 취하는 것을 이해할 수가 없었다. 

 그들은 점점 격앙되어 갔다. 한쪽은 고함치고, 한쪽은 찔찔 짜고 ..., 결국 그들은 바다에 가지 못했다. 성산 일출봉도 오를 수 없었고, 유채밭에서 뽀뽀하는 폼으로 사진도 찍지 못했다. 오후 늦게 그들은 각자의 비행기를 타고 말았다. 

 그리고 새댁은 고민 끝에 변호사인 나를 찾은 것이다. 나는 우선 이런 일로 이혼을 시켜서는 안되겠다는 생각부터 했다. 변호사가 아무리 "당신의 불행은 나의 행복"을 외치며 살아가는 불행의 사자라지만 이건 너무 심하다고 느꼈다. 설득을 시도했다. 

 "사람간의 관계를 가장 궁극적으로 파탄시키는 것은 오해도 분노도 생각  차이도 아니다. 대화 부족이다."

 새색시에게 괴테의 명언까지 들먹여 가며 화해를 권유했다. 두사람 주장은 모두 옳은 것이었다. 여성은 꿈과 추억을 추구하고, 남성은 탐험과 개척을 선호한다. 그들은 이러한 근본적 차이를 이해했어야 했다. 

 "둘 사이에 대화가 부족했다. 어떤 경우에도 돌아 앉아서는 안된다. 그보다는 부부 싸움이 낫다. 부부 싸움도 대화의 한 형태가 될 수 있다..." 이렇게 부부 싸움을 권장까지 해가면서 새댁을 꼬실 때는 내가 내 스스로에게 감격했다. 

 '너도 제법 철이 들었구나. 천날만날 마누라하고 쌈박질하더니 그것을 교묘하게 합리화할 줄 아는구나.'

 그러나... 새색시의 단 한마디의 질문에 내 미사여구는 여지없이 무너졌다. 

 "아무리 설득해도 그 사람이 양보하지 않는데 대화가 무슨 소용이 있지요?"

 나는 순식간에 말문이 막혀 버렸다. 그래, 아무리 서로를 이해하고 대화에 진력해도 해결이 안될 때에는 과연 누가 양보를 해야 한단 말인가.

3.

 만약 이러한 모습을 우리 선조들이 보았다면 그들은 어떻게 받아들였을까. 아마 기절초풍했을 것이다. 어디 감히 안사람이 남편을 향해 악다구니를 쓰고 달려든단 말인가. 

 선조들의 대답은 간단명료했다. 여필종부!

  이 한마디는 수천년간 우리 땅의 부부 관계를 규율해 온 금과옥조다. 나 자신도 이러한 분위기 속에서 태어났고, 또 성장하지 않았던가. 내 눈앞에는 지금도 퇴근한 아버지를 마루에 앉히고 발을 정성스레 씻어 주던 어머니의 모습이 어른거린다. 마누라의 잔소리에 숨이 막히고 분한 마음에 씩씩거릴 때는 더욱 그렇다. 

 세상이 변했다지만 부부 관계만큼 많이 변한 것이 또 있을까. 얼마전 TV에서 신혼부부를 상대로 한 심야 대담프로를 본 일이 있다. 사회자가 신혼부부에게 물었다. "결혼 후 얼마만에 첫 싸움을 했지요?" 신부가 대뜸 대답했다. "예, 3개월만에요. " 그리고 이어지는 문답 "무엇 때문에 싸웠어요?" "글쎄, 저이 가요. 아침에 저보고 밥을 하라잖아요. 그래서 싸웠어요." "어떻게 끝났나요?" "처음에는 기가 찼지만 봐주는 셈치고 밥을 했지요. 그런데요. 진짜 웃기는 것은 밥을 해주었더니 다음에는 국까지 끓여 달래요."

 나는 처음에는 이것이 코미디 프로인 줄 알았다. 그래서 실없이 웃었다. 그런데 그게 아니었다. 끝까지 보니 이것은 진담이었다. 결국 웃을 수도 울 수도 없게 되었다. 

 요즘 직장인들은 집에서도 밖에서도 서리맞은 배추처럼 풀이 죽어지낸다고 말들이 많다. 밖에서는 불경기, 감원, 명예퇴직에 쫓기고 집에서는 월급 통장마저 움켜쥔 마누라 눈치보기 바쁘다. 곡간에서 인심 난다던데, 곡간 열쇠를 마누라에게 넘기고서야 어떻게 친구한테 체면 차리고, 자식들에게 큰소리 칠까.

 얼마 전에 친구 부부 몇 쌍이 모인 자리에서 부부 싸움에 대해 토론을 벌인 일이 있다. 안 싸우는  집이 없었다. 내친김에 우리 각자 돌아가면서 가장 최근에 싸웠던 그 상황을 재현해 보자고 의견을 모았다. 일종의 사이코 드라마인 셈이다. 따찌고 보면 별일도 아닌데 난리라도 난듯 법석을 떨었다. 

 문제가 생겼다. 연극으로 시작한 과거 회상이 다시 실전 상황으로 번져가는 것이었다. 극단적 파탄이 두려워 마지못해 덮어 버렸던 불씨가 다시 살아난 것일까. 결국 연극 자체도 허겁지겁 덮어 버릴 수 밖에 없었다. 

 주도권 쟁탈전! 이것은 이삼십대 만의 것이 아니다. 이미 전 세대가 겪고 있는 숙명적 대결 양상을 띠고 있다. 

 법과 제도도 많이 변했다. 1991년까지 시행된 민법에는 대체로 남성 우위의 사상이 담겨 있었다. 부부 재산 관계, 자녀에 대한 친권, 양육권, 상속 제도 등에 있어서 남성이 우월한 대접을 받았다. 그러나 현행 민법은 다르다. 

 이혼 할 때 옛날에는 당연히 남편 몫으로 하던 재산, 자녀 등을 모두 스스로 가르거나 법원에서 정해 주는데로 따라야 한다. 상속 지분도 시골에서 농사 지으며 부모 모시고 제사 지내던 큰 오빠나 울산에 시집와 사는 막내딸 간에 차이가 없다. 

 요즈음 많이 받는 질문 중에 이런 것이 있다. 

"이번에 딸 시집보내면서 많이 해 보냈는데, 다음에 친정 재산 욕심 안내게 할 방법 없나요?"

4.

 자, 다시 신혼 직후 이혼 당담하러 온 새댁으로 돌아가 보자. 과연 누가 양보해야 하는가. 높은 삐딱구두나, 편편한 운동화냐를 놓고 평생 약속도 우습게 걷어치울 수 있을 정도로 전의에 불타는 맹렬하고 팔팔한 전사들에게 나는 과연 무슨 답을 줄 수 있는가. 나는 이 분분에 관한한 속시원한 해답을 주지 못했다. 좀 더 참고 화해해서 잘 살아보라고 구슬려 보냈다. 그러나 그 새댁이 던진 질문은 길이길이 가슴 속에 살아 남았다. 과연 누가 양보해야 한단 말인가. 

 그 얼마 뒤 브라질에서 외교관으로 일하는  친구의 초대를 받았다. 그곳에 있는 동안 아마존 지역을 안내하고 싶다는 것이었다. 

  바다처럼 드넓은 아마존 강가에 형성된 마나우스라는 도시 -.

 그곳 어느  야외 식당에서 여기서 함께 떠난 친구 부부, 우리 부부, 현지 부부 이렇게 둘러 앉아 이런저런 얘기 끝에 나는 새댁 얘기를 꺼냈다. 

  "...이럴때 누가 양보해야 하는거지? "많은 논란이 일었다. 하지만 그날 나는 조그만 답을 얻었다.

 현지 친구가 상파울로 교민교회 목사한테 들었다는 얘기가 그것이다. 

 "어느 누구도 양보할 수 없을 때에는 강한 자가 양보해야 한다. 자기가 생각이 깊고 주도권을 쥐고 있다고 생각하는 자가 양보해야 한다. 약자에겐 양보가 없다. 패배 뿐이다." 뭔가 확 와닿는 그런 기분이었다. 

 하지만 조금더 생각하면 또 답답해진다. 과연 누가 강자란 말인가. 나는 붙었다 하면 양보하고 마는데 과연 내가 강자였기 때문인가. 

  30.40대 주부들이 모인 여성 강좌에서 이 신혼 부부 얘기를 하면서 질문을 해 보았다. 

  "이 신혼부부의 경우 서로 지기 싫다는 생각에 이성을 잃어서 그렇지 사실 타협의 여지는 있었다. 그러나 현실적으로는 절충할 수 없는 대립이 얼마든지 있을 수 있다. 자, 그런 경우 남편과 아내 중 어느 쪽에서 양보해야 하는가?"

  남편이 양보해야 한다는 쪽에 손드는 사람이 압도적으로 많았다. '그러면 그렇지' 한발 더 나아가 물어 보았다. 

  "만약 아들이 그런 상황에 빠졌을 때 아들에게 양보하라고 충고할 사람 손들어 보십시요."

  손 드는 사람이 거의 없었다. 뻔뻔스럽기 짝이 없다. 본인은 양보 받고 싶고 아들에게는 양보를 말리고 싶은 이중적 심리구조를 지닌 거대한 아줌마 군단! 이것이 현대 한국여성의 자화상은 아닌지...

  이제 결론을 내려야겠다. 버트란트 러셀경은 이런 말을 했다. 

  "젊은이여, 우리 노인들을 가엾게 여기지 마라. 우리는 세월을 보내면서 욕망을 서서히 버려 왔단다. 욕망이 죽었으니 불만도 없을 밖에..."

  40대 이상의 남성을 대표해서 동년배 여성들에게 말하고 싶다. 

  "아줌마들이여, 남편들을 가엾게 여겨 주시요. 그들은 2.30대와는 달리 아버지의 발을 씻어 주던 어머니의 잔영을 아직도 지우지 못하고 있다오. 욕망이 살아 있으니 불만이 얼마나 크겠소."

  내친 김에 우리 마누라에게도 한마디 꼭 하고 싶다. 

  "여보, 마누라 내 발 한번만 씻어주오 - "

 

◐ 본문 중에 써 있는 내용

 ---그는 우리 모두에게 참으로 옳은 삶이 무엇인가를 섬광처럼 보여준 것이다. 그는 사업 때문에, 정치 때문에, 향락 때문에, 휴거 때문에 가정을 내팽개 친 모두에게 충고를 보낸 것이다. 가정을 불행하게 하는 어떤 선택도 그것이 가족의 동의가 없는 한 변동이 될 수 없다. 용서 될 수도 없다. ---

 지금의 세대는 점점 더 1인 가족이 늘고 있다. 물론 혼자 사는 것이 편리한 것도 있지만 그만큼 잃는 것도 많다. 영숙이도 처음 결혼 할 때에는 학교에서 배우는 것과 전혀 상관없는 결혼 생활에 대해서 참 힘들어 했었다. 몸이 힘든 것은 이겨낼 수 있었는데 마음이 힘든 것과 부당한 처우에 대해서는 자존감이 떨어져서 정말 힘이 들었었다. 무너지는 정신세계와 자존감에 대해서는 일으켜 세울 방법이 없었다. 가계에 흐르는 우울증도 한몫해서 우울증이 재발하여 더 힘이 들었었다. 그러다 만난 분이 예수님이다. 예수님을 만나는 축복으로 다시 자존감을 일으켜 세우고 우울증을 떨쳐 버릴 수 있었다.

 하나님을 경외하고 축복의 통로가 되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한계를 극복하고 많은 어려움을 이기고 지금의 영숙이가 있게 하였다. 문중의 한계를 뛰어 넘고 진정으로 가족을 사랑 할 수 있는 사람으로 거듭 난 것이다.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것이 되었도다.(고린도후서 5:17)'

 본문 중에 있는 내용

 ---어느 누구도 양보할 수 없을 때에는 강한 자가 양보해야 한다. 자기가 생각이 깊고 주도권을 쥐고 있다고 생각하는 자가 양보해야 한다. 약자에겐 양보가 없다. 패배 뿐이다---

 이말이 이해가 된다. 이런 모든 것 떠나서 가족 사이에 이기고 지는 게 있을 수 없으며 가족 사이에 자존심을 내세울 이유도 없다. 가족 사이에는 오직 사랑만이 유통되는 곳이다.

 영숙이가 아가씨때 학교에 정말 이쁜 아가씨가 있었다. 티비에 나오는 탤런트보다도 미모가 뛰어 났다. 키도 크고 날씬하여 그 아가씨 선생님과 거리를 지나가면 지나가던 남자들이 전부다 뒤돌아 보고는 하였다. 상과 선생님이었는데 그분은 교육청 장학사님이 소개하는 부잣집 집안으로 시집을 갔었다. 영숙이 남동생이 해군 사관학교 다닐 때 그 친구가 우연히 그 집에 여름방학 때 방문할 일이 있어서 갔었는데 왠 어마무시 멋진 미인이 그집에 있어서 정말 깜짝 놀랐다고 말했다. 결혼전에 친구 누나가 근무하던 학교에 근무했었다면서 아느냐고 물었다.

 "그 선생님 우리 학교에 근무하다가 그만두고 부잣집으로 시집갔지."

  그후 들리는 이야기로는 결혼한 남자가 따로 살림을 차리고 있었고 아이도 있었으면서 선생님이 욕심이 나서 결혼을 하였고 그 사실을 알고나서 그 선생님은 바로 그 집을 나와서 경기도에 가서 교사를 하고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몇년이 지나 영숙이가 지금의 hus와 겨우 결혼에 성공하여 제주도로 신혼 여행가서 서귀포 호텔에서 자고 일어나 창문을 열고 밖을 내다보고 있는데 그 미모의 여선생님을 닮은 여자분이  여전히 높게 후까시로 부풀린 머리 스타일과 높은 킬 슈즈를 신고 또 선그라스를 끼고 평범한 곤색 잠바를 입은 어떤 남자의 손을 잡고서 작은 바위들을 힘겹게 오르락 내리락 하면서 지나가는 모습이 보였다.  그 모습이 너무 웃겨서 영숙이는 바라보다가 저절로 웃음이 나왔던 기억이 있다. 그 사람들이 위의 저자가 말하던 부부였는지 아니면 같이 근무하던 그 여선생님이었는지는 알길이 없다. 그냥 그 상황이 웃겨서 웃었던 것 뿐이다. 

 살면서 가족끼리의 갈등이 왜 없을까. 오직 사랑으로 극복하는 것 뿐이다.  hus가 이유없이 화를 낼때 예수님이 말씀 하셨다.

 "나는 아무말도 안하고 조용히 있었다."

 그렇다.

 예수님은 그렇게 억울한 일을 당하셨는데도, 아무죄도 없이 십자가에 못박히셨는데도, 아무 말도 없이, 묵묵히, 조용히 있으셨다. 영숙이 처럼 아우성 치지도 않으셨다. 그 이후 영숙이는 무슨 억울한 말을 듣거나, 상황이 되어도 때로는 종알거리거나, 화를 내기도 했지만 그때마다 예수님을 기억하고는 하였다. '이에는 이, 눈에는 눈' 이런 마인드를 가졌던 영숙이가 하나님의 은혜를 입고 정말 많이 바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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