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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rriage life of JINNSSAM

진샘의 결혼생활과 시몬느 드 보봐르

by 영숙이 2021. 6.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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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샘의 결혼생활과 시몬느 드 보봐르>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은 짧다.

 

 때로 지루하게 느껴질 때도 있지만 그건 느낌일 뿐, 분명 사랑만 하기에도 모자라는 시간들이다.

 미워하는 대신 사랑만 가득 담아도 모자라는 시간을 사랑 이외의 것으로 낭비하는 시간이 아까운 것이다.

 그런데도 미워한다.
 그게 인간이다.

 

 생각해보면 그 집에 아이들도 2명 있었다.

 아이들이 안 보였던 것을 보면 작은 방에 들어 가서 나오지 말라고 하였나보다.

 

 그 아이들이 그 소리들을 안들었을까?.

 그렇게 어른 6명이 모여서 세상이 끝난 것 처럼 5시간 ~6시간을 자신들이 최고인 것처럼 온갖 욕을 하면서 퍼부었어도 그분들은 지금 세상에 안계신다.

 

 

 시이모는  바람이 나서 살고 있던 이모부랑 이혼하고 다른 남자랑 울릉도에가서 살고 계신다는 소리를 20년 전 쯤에 들었다.

 시외숙모는 시댁에 무척 잘 하는 편이었다고 생각이 드는데, 무슨 잘못을 어떻게 했는지 모르지만 어머니를 비롯한 시누이들과 사이가 틀어져서  명절 때마다 그렇게 인사를 가라하더니 가지 말라 하였다.

 

 그렇게 왕래가 끊어진 시외숙모는 10년 전 쯤에,

 비교적 젊은 나이인 60대 초반에 유방암으로 돌아 가셨다.

 

 시 외삼촌은 3~4살 정도 차이나는 여성이랑 같이 거리를 다니는 것을 만나고는 하였었는데, 

 2년 전 버스 정류장에서 만나서 인사를 하였더니 몰라 보셨다.

 심각한 치매가 오신 듯,

 이후로 뵌적이 없다.

 

 15년 전인 2005년 쯤.

 외숙모가 살아계실 때 하도 간곡하게 시외조카 중매를 부탁하기에 행정실 직원을 문자로 중매했다가,

 시외삼촌이 중대사안을 문자로 보냈다고 전화를 걸어서 노발대발.

 시외삼촌의 시계는 1990년대에 머물러 있었다.

 

 아버님은 이제 돌아가신지 6년.

 

 10년전 75세에 뇌출혈을 일으키셔서 그때는 수술하고 회복하셨었다. 

 

 이번에도 뇌출혈을 일으키셔서 수술을 하셨는데 다행히 수술은 잘 되었지만 100키로가 넘는 거구이시라 회복하는 동안 요양원에 가 계셨다.

 

 요양원에 계시면서도 같은 호실을 사용하시는 분하고 끊임없이 다투시고 간호사와 의사들을 의심하시고 병실을 한달에 한번씩 옮기셨다.

 

 우리가 면회하는 동안에도 간호사와 의사에 대한 불평을 끊임없이 늘어 놓으셨다.

 

 감사가 만사형통.

 

 병실을 여러번 옮기시다가 설사가 났는데 간병인이 잘 치워주지 않았고 또 온전한 정신에 치워 주는게 자존심 상하셔서 설사 멈추는 약을 달라했는데 이제 변비가 되어 오래 머물러 있던 배설물에서 독이 온몸에 퍼져서 돌아가셨다.

 

 

 건강하다는 것은 먹고,

 싸고,

 자고가 잘되어야 하는데 싸고가 잘 안되신 것이다.

 

 지금 살아계시면 90이시다.

 

 어머님은 아버님 돌아가시고 요양원에 들어가신지 5년째.

 

 신체 상태는 오르락 내리락 하시고 이제 90이신데 전혀 사람을 몰라 보신다.

 어머님 쪽 계보에서 치매가 많이 나타났는데 6분의 형제 자매들이 거의 치매 때문에 요양원에 계신다.

 

 

 결혼해서 얼마 안되어 있었던 그 일이 35년이 넘은 지금도 잊히지 않는다.

 

 시외숙모네 집으로 올라가던 아파트 계단.   

 

 젊은 남편 모습.

 

 "대꾸하지 말고 조용히 듣고 있어."     

 

 문간에 쪼그리고 몇시간 동안 듣고 있던 젊은 영숙이 모습.

 

 영숙이가 40살에 예수를 믿게 되었을 때,

 성령님이 제일 먼저 말씀하신 것이 시부모를 위해서 기도하라는 것이었다.

 

 시부모를 위해서 어떻게 기도하라는 것인지 잘 몰랐지만 무조건 시부모를 위해서 기도 했었다.

 

 기도 하면서 깨달은 것은 영숙이의 마음 안에 가득 차 있었던 시부모에 대한 미움을 털어내는 것.

 그것이 곧 기도라는 것이다.

 

 그동안 그렇게 미워하면서 살았던 일들이 다 영숙이에게 독이 되어 영숙이의 뼈를 마르게 하고 있었다. 

 

 마음과 뜻과 정성을 다해 기도를 하고 미움을 털어 냈어도 안타깝게 그분들을 사랑하는 것은 잘 안 되었다.

 

 그것이 영숙이의 그릇 크기다.

 

 남편은 사랑하게 되었는데 시부모님을 사랑하지 못한 것은 순전히 영숙이의 그릇이 작고 모자라는 탓이라고 생각할 수 밖에 없다. 

 

 예수 믿고,

 자신을 내려 놓고,

 예수님의 사랑을 따라가야 하는데도 완전히 내려 놓지 못한 탓이다.

 

 시부모님에 대한 미움도 없고,

 애착도 없고,

 사랑도 없고,

 그냥 불쌍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시누이하고는 왕래하지 않는다.

 시동생하고도 덤덤하다.   

 

 지금 친정엄마와 친정여동생과 남동생들에 대해서도 덤덤한 거 보면 영숙이의 나이가 덤덤해지는 나이인가보다.

 

 1985년에서 1992년까지

 20대 후반과 30대 초반이 그렇게 흘러갔다.

 

 

 영숙이가 결혼하기 전 객지에서 문학을 꿈꾸며 홀로 버티어 갈 때 가장 영향력을 많이 받은 작가가 시몬느 드 보봐르다. 

 

 학교에서 책을 제일 많이 읽는다는 소리를 들을 정도로 많은 책을 읽었지만 그중에서도 인생에서 가장 왕성한 시기인 20대 중반에 가장 큰 영향력을 받았던 책은 시몬느 드 보봐르의

 

 '인간은 모두 죽는다'

 

 란 소설이다.

 

 

 우리 모두는 유한한 존재이기 때문에 영원히 살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한다. 

 영원히 살지는 않는다 해도 장수에 대한 바램은 누구에게나 있다.

 

 건강하게 오래오래 잘 살기를.

 정말 많이 듣는 덕담.

 

 그런데 영원히 사는 인간이 있다면 정말 삶에 의미가 있을까?

 인생에 의미가 없다면 어떻게 살아갈까?

 

 시몬느 드 보봐르 말처럼,

 우리 인생이 유한하니까 안타깝고 소중하고 귀한게 아닐까?

 

 바라보기에도 아까운 사람들이 되는 것이 아닐까?

 옆에 있어도 그리워하는 인생이 되는 것이 아닐까?

 

 아버님이 대전에서 사시다가 울산에 내려 오셨을 때 가장 많이 하신 말씀이 있었는데 그 말을 아버님이 하실 때마다 정말 듣기가 싫었었다.

 

 "이제 죽을 날만 기다리고 있어.

  죽을 날만 기다리며 살고 있네."

 

 

 초등학교 6학년 때 담임 선생님이 하신 말씀이 생각난다.

 

 선생님이 하루는 칠판에 그림을 그리셨다.

 웅덩이를 그리고 웅덩이에 나무 뿌리를 그린다음 그 나무 뿌리에 사람이 매달려 있는 그림이었다.

 

 "나무 뿌리에 사람이 매달려 있는데 웅덩이 바닥에는 독사가 기다리고 있지.    나무 뿌리는 개미가 갉아 먹고 있어.

  보이는 곳에 꿀이 있어서 매달린 사람은 열심히 따먹고 있어.

  이게 뭘까?"

 

 "인생이야.

  언제 죽을지 모르면서 꿀이라는 쾌락을 쫓느라 죽음을 잊고 매달려 있는거지."

 

 초등학생이 무엇을 알까.

 선생님이 이야기하는 내용을 잘 알지는 못했지만 오랫동안 잊지 못했다.

 

 영원히 풀수 없는 숙제.

 

 이렇게 유한한 인생,

 아쉬운 인생,

 귀하고 귀한 인생인데

 사랑하고,

 축복하고,

 긍정적인 말만 한다해도 다 못채울 인생이다.

 

 그 무한한 사랑을 제일 잘 보여주신 분이 예수님.

 예수님을 따라 사랑을 실천하는게 우리 삶의 목표.

 

 어떻게 사랑하고 어떻게 사랑을 실천해야 할까.

 

 

 시몬느 드 보봐르가 쓴 책을 출판사 서평을 가져와서 여기에 올려본다. 

 

 

 시몬느 드 보봐르의    

                                          ~ 모든 인간은 죽는다.

                                      원제 : Tous les Hommes Sont Mortels           출판사 : 삼인

출판사 서평

 "포스카는 무감각에 시달린다. 항상 상대적인 까닭에 하찮은 모든 행위의 의미는 죽지 않는 그의 시선 아래에서 녹아버린다.

 야망, 희망은 더 이상 아무런 의미가 없다.

 계속되는 사랑들은 뒤섞여버린다.

 그의 우정들은 그것에 의미를 부여할 만한 생기 있고 특별한 공감이 없어서 죽어버린다.

 시간적 한계를 상실함으로써 그의 실존은 인간성을 잃는다.

 특권처럼 보이던 불멸성은 저주임이 드러난다.

 그 때문에 그는 영원히 인간적 조건 밖으로 내던져진 것이다."

죽음을 마주하기에, 인간은 살아간다

 이 책은 20세기 프랑스를 대표하는 여성 작가인 시몬 드 보부아르의 세 번째 소설 작품[모든 인간은 죽는다Tous les Hommes Sont Mortels](1946년 갈리마르Gallimard 출판사 간행)를 우리말로 옮긴 것이다.

 영원을 꿈꾸는 인간의 욕망과, 좌절을 거듭하는 인간의 이상주의를 치열하게 묘사하면서, 유한한 생명의 의미를 묻고, 쳇바퀴처럼 반복되면서도 아주 느리게 전진하는 역사를 되비치는 소설이다.

 사람은 ‘죽음’에 대한 두려움을 안고 산다.

 혹은 애써 잊고 산다.

 작가는 ‘죽음’이라는 문제를 전면에 내세워, 지금 살고 있는 나의 삶, 우리의 삶, 대대로 목숨을 이어온 인류 역사의 의미를 격랑처럼 펼쳐 보인다.

 현대의 새로운 인간형을 개척하며 온몸으로 ‘진보’를 실험해온 보부아르의 작품들은 1970년대부터 국내에 번역 출간되어왔다.

 [제2의 성]과[노년],[아주 편안한 죽음](두 군데 출판사에서 각각 ‘죽음의 춤’과 ‘편안한 죽음’이라는 제목으로 출간한 한국어판을 시중에서 구할 수 있다) 외에 자전적 소설과 에세이 여러 권이 출간되었으나, 오늘날 보부아르에 대한 한국인의 인식은 흔히, 사르트르와 ‘계약 결혼한’ 자유 여성(방종한 여자?) 정도에 그친다.

 그 사상의 깊이와 유장한 필력을 담은 이 책,[모든 인간은 죽는다]는 오랫동안 한국인의 기억 저편에 묻혀 있었다.

 ‘人間은 모두가 죽는다’라는 제목으로 1979년(수문서관)과 1986년(풍림출판), ‘모든 인간은 죽는다’라는 제목으로 1990년(학원사)에서 출간된 바 있지만 모두 절판된 상태다.

 이제 도서출판 삼인에서 2014년의 감각과 문체로 새 번역판을 내놓는다.

 [모든 인간은 죽는다]는 주어진 여건과 관습에 따라 기계처럼 존재하고 작동하는 데 그치지 않고, 자신을 투신하여 주어진 한계를 초월함으로써 존엄한 개인으로서 ‘실존’하려는 인간의 투쟁을 긴 호흡으로 그려낸, 실존주의의 문학적 형상화다.

 작가는 이 작품을 평생의 동반자였던 실존주의 사상가 장폴 사르트르에게 헌정했다.

책 내용

 촉망받는 여배우 레진은 지방 공연을 다니던 중 머무르던 호텔에서, 언제나 정원의 긴 의자에 누워 먹지도 마시지도 않고 늘 허공을 응시하고 있는 한 남자를 만난다.

 세상을 등진 듯한 이 남자에게 호기심을 품은 레진은 그를 일깨워 평범한 생활인으로 만들어보려고 한다.

 남자는 레진의 노력에 반응을 보인다.

 남자의 이름은 레몽 포스카.

 죽지 못하는 저주를 받은 남자.

 포스카의 비밀을 알게 된 레진은 영원한 시간 앞에서 너무도 하찮아 보이는 자신의 존재에 절망하고, 자신의 실존을 파괴적으로 증명하려는 충동에 사로잡힌다.

 레진이 더 망가지지 않도록 포스카는 그녀를 떠나려 한다.

 자신을 붙잡는 레진에게 그는 긴 이야기를 들려준다.

 포스카는 1279년 이탈리아의 공작령 도시인 카르모나에서 귀족으로 태어났다.

 정정은 불안했다.

 1311년, 포스카는 마침내 정적들을 물리치고 카르모나의 군주가 된다.

 그는 카르모나의 번영과 영광을 위해 모든 것을 희생할 각오가 되어 있었고, 실제로 그렇게 한다.

 하지만 그는 시간적, 공간적으로 한정된 자신의 행동이 의도치 않은 결과를 가져오고, 자신이 이뤄낸 업적은 예기치 못한 천재지변과 외세의 영향으로 변질되어버린다는 것을 곧 깨닫게 된다.

 그는 (알려진) 세계 전체로 발판을 넓혀야만 자신의 노력이 의미 있는 결실을 맺을 수 있으리라고 생각한다.

 그렇게 하는 데 인간의 수명은 너무 짧았다.

 그래서 불사의 영약을 마실 기회가 주어지자, 포스카는 망설이지 않는다.

 포스카의 야망은 느리지만 냉혹하게 부서져간다.

 인간이 모험하고, 정복하고, 파괴하고, 건설하고, 또 파괴하고, 다시 또 건설하면서 걸어온 700여 년의 역사와 함께.

 그는 모든 사람이 행복하게끔 지배하고자 하는 ‘선의’를 품고, 자신의 선의에 만인이 복종하기를 바랐지만, 순교자들은 이런 말을 남기며 화형대로 걸어간다.

 "오직 한 가지 선(善)이 있을 뿐입니다. 그것은 자신의 양심에 따라 행동하는 것입니다."

 그는 제국을 이끌었으나 제국은 단 한 번도 통일되지 않았고, 아메리카 식민지를 발판으로 완벽한 세계를 건설해나가려 했으나 다만 식민지에서 아름답고 온전했던 한 세계를 파괴했을 따름이다.

 혁명이 되풀이 시도되고 되풀이 좌절된다.

 사랑은 시간 앞에서 스러져간다.

 그의 옆에서 사람들은 죽고, 역사는 거의 제자리에서 도는 쳇바퀴처럼 아주 느리고 무겁게 굴러간다.

 오늘의 투쟁에 헌신하고 오늘의 승리를 즐기기에 그의 시간은 너무 길다.......

 보부아르는 이 소설에서, 어쩌면 인간에게 가장 중요한 문제로 꼽을 수 있는 죽음의 문제를 심도 있게 제기한다.

 인간에게 주어진 숙명적 조건 중 하나가 분명 죽음이다.

 인간으로 태어났다는 것은 언젠가 죽을 수밖에 없다는 선고(宣告)를 받은 것과 같은 말이다.

 하이데거의 표현대로 인간은 ‘죽음을 향한 존재Sein zum Tode’다.

 인간은 자신이 필멸할 존재라는 사실로 인해 종종 절망한다.

 하지만 인간은 유한성이라는 도저히 피할 수 없는 실존적 조건에 굴하지 않고 그것을 극복하고자 불가능한 시도를 하기도 한다.

 요컨대 인간은 불멸하는 존재가 되고자 하는 것이다.

 과연 불멸하는 존재가 된 인간은 마냥 행복할까?

 반대로, 인간은 죽음을 피할 수 없다는 사실 때문에 마냥 불행할까?

 인간은 죽음이라는 ‘매듭’이 지어지는 삶을 영위하기 때문에 오히려 그 삶에 더 큰 의미가 있는 것은 아닐까?

 다시 말해 인간은 필멸하는 존재이기 때문에 오히려 그 자신에게 삶의 매 순간이 유일하며 절대적인 의미를 갖게 되는 것은 아닐까?

 이 책을 통해 독자들도 이를 고민해 보길 바란다.

 

본문중에서

 정원의 남자는 눈도 깜박이지 않았다.

 그는 아무것도 보지 않고 아무 소리도 듣지 않는 것 같았다.

 ‘저 사람이 부러워.

 그는 지구가 아주 넓고 인생이 아주 짧다는 것도, 다른 사람들이 존재한다는 것도 몰라.

 그는 자기 머리 바로 위에 있는 네모진 하늘로 만족하고 있어.

 그런데 나는 그 무엇이든 마치 내가 이 세상에서 오직 그것만을 좋아하는 것처럼 내 소유가 되었으면 하지.

 게다가 난 모든 것을 다 원해.

 그래서 내 손은 늘 비어 있어.

 저 사람이 부러워.

 저 사람은 분명 권태가 무엇인지 모를 거야.’ (/ p.19)

 내가 사랑한 사람들 모두가 죽었으며, 나는 계속 살아 있었다.

 나는 거기 있었고, 수 세기 전부터 똑같았다.

 한순간 내 심장은 동정으로, 반항으로, 비탄으로 뛸 수 있었지만, 나는 잊었다.

 나는 손가락을 땅에 박고 절망하며 말했다.

 ‘나는 원치 않아.’ 죽음을 면할 수 없는 인간은 누구나 자신의 길을 이어나가는 것을 거부할 수 있고, 그 반항을 영원한 것으로 만들 수 있었다.

 하지만 나는 나 자신을 무관심과 망각을 향해 끌어당기는 삶의 노예였다.

 저항해도 소용없었다. (/ p.501)

 아이는 미소를 지었다.

 나는 그 미소를 절절히 내 가슴속에 넣어뒀다.

 아이의 얼굴에 떠오른 그 빛 때문에 기계의 웅웅 소리, 도료 냄새, 그 모든 것이 바뀌어 시간은 더 이상 편편한 덮개가 아니었다.

 땅에는 희망과 후회가 있고, 증오와 사랑이 있었다.

 결국 죽겠지만 우선 그들은 살고 있었다.

 개미도 돌도 아닌 사람들이었다.

 그 미소를 통해 마리안이 다시 내게 신호하고 있었다.

 ‘그들을 믿고, 그들과 함께 있고, 사람으로 남아 있어.’ (/ p.525)

 
 "나는 과거에 카르모나가 자유로워지기를 원했어요.

 하지만 내가 피렌체와 제노바의 속박으로부터 카르모나를 구했기 때문에, 카르모나는 피렌체, 제노바와 함께 패망했어요.

 당신들은 공화국과 자유를 원하죠.

 그런데 그 결과가 가장 나쁜 폭군의 등장으로 이어지지 않는다고 대체 누가 장담할 수 있죠?

 만일 인간이 충분히 오래 산다면, 인간은 모든 승리가 어느 날 패배로 변한다는 것을 알게 돼요."

 내가 말했다.
 내 말투에 화가 났는지 그가 맹렬하게 말했다.

 "오! 저도 역사를 겉핥기 정도는 알아요.

 당신에게서 제가 뭘 배우겠어요.

 만드는 것 모두가 해체되고야 말죠.

 나도 알아요.

 그리고 태어나는 그 순간부터 죽어가기 시작하고야 말죠. 그러나 탄생과 죽음 사이에는 삶이 있어요."(/ p.573)

 

저자소개

시몬 드 보부아르(Simone de Beauvoir) 1908.01.09~1986.04.14 프랑스 파리

 소설가이자 철학자인 시몬 드 보부아르는 현대 프랑스에서 가장 뛰어난 작가 중 한 명이다.

 실존주의 철학자 사르트르와의 계약결혼으로 일약 여성해방운동의 아이콘이 되었으며, 여성에 대한 사회적 억압을 역사적, 철학적으로 고찰한 [제2의 성]은 20세기 페미니즘의 성경과도 같은 여성학 개론서가 되었다.

 [초대받은 여자], [레 망다랭] 등의 소설과 자서전을 썼다.

 [모든 사람은 혼자다]는 1944년에 쓴 실존주의 윤리학에 대한 첫 철학 에세이다. 

 이후 그녀는 이 주제와 관련된 글을 계속 쓰게 되었는데, 이 책과 더불어 [그러나 혼자만은 아니다-애매성의 윤리학]은 프랑스 실존주의에 입문하기 위한 가장 쉬운 책일 것이다.

 간명하고 이해하기 쉽게 쓰여진 이 책들은 사르트르의 [존재와 무]의 난해함과 대비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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