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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이비붐 세대 탐구 생활/또순이 어렸을 적에

영등포 한강성심병원 2

by 영숙이 2020. 11.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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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금도 영등포 한강성심병원 현관 앞의 44년전 계단이 생각난다.   

 바쁘게 종종거리며 병원의 넓은 현관 계단을 오르내리던 20살 또순이는 학생 간호사 옷을 입고 아직 까만줄이 그어져 있지 않은 실습용 간호사 캡을 쓰고 있었다.

 지금은 어떤지 모르겠는데 그때는 항상 사람들이 붐비고 많은 사람들이 왔다 갔다하는 복잡한 곳이었다.

 

 병원은 안에도 밖에도 항상 사람이 많았다.

 당시에 병원은 아직 의료보험 시스템이 만들어지기 전이라서 보통 사람들이 쉽게 들락날락 할 수 있는 곳이 아니었다.   

 아프다 아프다 마지막으로 오는 곳이 큰 병원이었다. .

 

 병원 계단을 내려오다 보면 병원 바로 옆에 있는 전파사에서 틀어 놓은 뉴우스가 흘러 나오기도 하고 포크 송이 굴러다니는 낙엽따라 나오기도 하였다. 

 그 시절에는 재능있는 학생이 병원에서 수술을 해야 하는데 수술비가 없어서 수술을 못할 때에는 방송을 타기도 하였었던 시절이었다. 

 

 "독지가의 도움을 기다립니다. S대 대학생 3학년 김모군이 수술비가 없어서 수술을 못하고 있습니다. 독지가의 도움을 애타게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런 방송이 심심찮게 나오는 게 전혀 이상하지 않은 시절이었다. 그런 방송을 들을 때마다 그런 생각이 들었었다.

 

 "아프지 않고 건강해서 얼마나 다행이야."

 

 때로 잘생긴 또래의 남자가 응급실에 갑작스런 고열이 나서 오는 경우가 있다.

 학생 간호사라도 간호사이기 때문에 기본적으로 체온과 혈압과 호흡을 재고 맥박을 재기 위해서 손목을 잡기도 하고 열이 너무 많이 나서 이마에 손을 올려 보기도 한다.

 또래의 남자아이를 보면 자연스럽게 마음이 가는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스쳐가는 응급실이다.

 

 다음 실습은 외과였다.

 지금은 어떤지 모르지만 그때에는 인턴으로 들어온 선생님들이 인턴과정을 끝내고 과를 선택할 때 제일 먼저 외과를 선택하던 시절이였다. 외과 다음이 내과 그리고 산부인과나 정형외과 등등 ...

 그때에도 의사는 인기있는 사위감이었고 의사와 결혼 하고 싶으면 열쇄 3개가 필요하고 의사들은 중매쟁이 소개로 재력있는 집의 딸을 만나 마음에 들면 결혼하면서 동시에 집과 차와 병원이 생길 때였다.

 

 외과의들은 최고의 사위감들이었다.

 

 외과의들 중에는 체격 좋고 잘생기고 이쁜 부인에 실력있는 의사들이 많았지만 그만큼 스트레스가 많은지 신경질을 잘내는 성격이 안좋은 의사들이 많았다. 

 심지어는 아침 회의에 들어갈 때마다 진정제를 먹고 들어가는 약물 중독인 선생님도 있었다.

 물론 어느 곳에서나 이런 사람 저런 사람이 있기  마련이지만 의사 선생님들 중에서는 외과 의사 선생님들이 성격이 안좋은 경우가 꽤 많이 있었다. 

 그래도 정말 멋진 의사 선생님도 계셨다.

 보통 키에 걸음걸이가 빠르고 손도 빠르고 간호사 선생님들이 좋아하는 깔끔하고 까칠한 성격을 가진 선생님도 계셨다.

 

 아직 20살이었지만 많은 사람들 중에서 그 어려운 의사 공부를 하고 병원에 근무하는 레지던트 1년이나 2년차 선생님들 뒷모습에 설레기도 하였다.

 그냥 그뿐이다.

 의사들은 절대로 간호사들과 친분을 섞지 않았다.

 경계를 하기 때문에 인간적으로는 절대로 친해지지 않으려고 하였다.

 그렇지만 간호사로서 의사 선생님들을 존경하기도 하였다.

 그건 같은 분야의 직업에 좀더 전문적인 지식을 가졌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또 의사의 지시를 따라야 하는 간호사이였기 때문이기도 할 것이다. 

 

 그렇다해도 누군가 주위에서 의사 선생님을 한다고 하면 말리고 싶다.

 배우는 것도 그리고 일하는 것도 너무 힘들고 매이고 안좋은 상황을 많이 겪기 때문이다.

 또순이도 직업을 갖기 위해서 간호학교를 나오기는 했지만 간호사로 평생 살 생각은 없었다.

 늘 우울하고 아픈 사람들을 돌봐야 하는 상황 때문이었다.   

 아픈 사람을 누군가는 돌보아야 하고 의술도 필요하지만 의사나 간호사는 정말 하늘이 주는 사명감을 가져야 하기 때문이다. 

 

 외과에 전신에 2도와 3도 화상을 입을 젊은 여자가 벌써 1년째 입원하고 있었다.

 일주일에 한번씩 월요일마다 화상 치료실에 들어가서 전신 치료를 하는데 화상 치료실에 들어 가기전에 진통제 주사를 맞고 약도 먹고 들어가지만 치료실에서 들리는 비명소리가 병동 가득 울려 퍼지고는 하였다.

 실제로 환자가 있는 화상 치료실에 들어가 보지는 못했지만 화상 치료사들이 소독약으로 전신을 소독하고 치료한다고 하였다.

 고통받으면서 치료받는 아가씨를 병실에서 볼때마다 그렇지 않은 우리 삶에 저절로 감사하는 마음이 들었다.

 

 참 세상에 많은 사람들이 태어나지만 장애인 수용 시설에 봉사하러 갈 때마다 느꼈던 감정은 어떻게 태어날 때부터 그렇게 힘든 모습으로 태어나 힘들게 평생을 살고 있을까 ~ 보통스럽게 태어나서 보통스럽게 살고 있는 것만 해도 얼마나 감사하고 행복한 일인지. . .

 

 위를 바라보면 끝이 없다.

 잘난 사람도 많고 똑똑한 사람도 많고 멋있는 사람도 많고 부자도 많고 대단한 사람도 많다.

 그때부터 평범한 사람 만나서 평범하게 사는 것이 꿈이 되었나부다.

 평범한 사람 만나서 평범하게 결혼하고 그리고 평범하게 살고 있어서 너무 좋다.

 평범한 삶이 너무 감사하다.

 평범하게 나눌 수 있어서 정말 감사하다.

 

 그외에도 외과에서 있었던 일 두어가지

 

 먼저 치질을 지나서 직장 탈장으로 입원했는데 종교적으로 몸에 칼을 대면 안된다고 세뇌되어서 수술 안한다고 버티다가 몰래 도망간 중후반 부인이 있었다. 

 그 부인의 탈장은 거의 15센티정도까지 대장이 항문 밖으로 튀어 나와 있어서 그대로는 절대로 일상생활을  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었다.

 그런데도 몰래 병원을 탈출한걸 보고는 종교적인 세뇌가 얼마나 무서운건지 . . . 

 

 또 하나는 페니실린때문에 주사를 맞고서 쇼크를 일으킨 일이었다.

 환자는 복막염 수술을 하고 중환자실에 있다가 병실로 와서 간호사가 항생제 주사를 놓았는데 반응 검사에서 분명히 괜찮았는데도 쇼크를 일으켜서 목숨이 경각에 달렸었다.

 간호사는 덜덜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아빌을 주사기에 뽑아 가지고 와요."

 "네."

 

 간호사실에 가서 쇼크를 풀어줄 아빌을 열고 주사기에 뽑은 다음 약병을 주사기 바늘에 덮어가지고 병실로 가지고 갔다.

 여전히 간호사가 덜덜 떨면서 의심하는 목소리와 표정으로 또순이를 올려다보며 물었다.

 

 "이거 아빌 맞아?"

 "네, 여기 약병 보이지요? 확인 시키려고 가지고 왔어요."

 "응.응.응. 잘했어."

 

 환자에게 링게르 줄을 통하여 아빌 주사약을 넣고 나서 조금 지나니까 환자의 호흡이 안정되었고 소변줄로 소변이 나왔다.

 당직의사가 다녀가고 옆에서 놀라서 지켜보던 보호자도 그리고 자는 척하는 병실에 있던 환자들도 안심하고 잠이 들었다.

 또순이가 나이트가 지나고 하루낮 하루밤 지나서 병실에 오니 환자는 침대에 일어나 앉아 그런일이 있었던 줄은 꿈에도 모르는채 퇴원하기 위해서 병원비 계산 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나이트 때 병실에 들어가면 환자들이 다 자고 있는데 자고 있는 환자의 맥박, 호흡, 체온, 혈압을 재는거는 정말 너무 힘들었다. 

 남들 다 자는 밤에 일하는 거 정말 쉽지 않았다.

 44년전에 간호학교는 다녔지만 병원에서 간호사를 평생 직업으로는 할 수 있을 것 같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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