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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이비붐 세대 탐구 생활/또순이 어렸을 적에

또순이 어렸을 적에 113

by 영숙이 2020. 7.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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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8. 경옥이 이야기>   

  경옥이는 생물과 박창배 선생님이 담임이었던 1학년 때 같은 반이었다.

  같은 반이라고 다 친구가 되는 것은 아니고 친구가 되는 계기가 있다.

 

  학교에서 무슨 봉사활동인가? 거리 휴지 줍기인가?

  대전 시청 앞을 줄 맞추어 걸어가고 있었는데 

  경옥이와 나란히 걷게 되었다.

 

  "어디 사니?"

  "인동 사거리."

  "그래? 아버지는 뭐하셔?"

  "우리 아버지 안 계셔. 엄마가 쌀 집하고 있어."

  "그래? 우리 아버지는 맨날 술 마시고 와서 술주정하는데 우리를 나란히 ~ 나란히 세워놓고 잔소리하다가 어떤 때는 때려."

 

  아버지로 인한 상처로 동질감을 가지게 되어 그날부터 친구가 되었다.

  만나서 자주 이야기도 나누고 경옥이네 집에 자주 놀러 갔었다.

 

  인동사거리 신호등을 건너가면 바로 앞쪽에 조그마한 쌀집 간판을 걸어놓고 가게에서 쌀과 잡곡 등을 팔고 있었다.

  경옥이는 너그러운 인상이었고 바로 밑에 남동생이 한 명 있었는데 경옥이와 달리 샤프하게 생긴 중학생이었다.

  가게에 딸린 작은 방에 세식구가 살았는데 사람들이 늘 왔다 갔다 하는 가게를 해서 그런지 또순이도 경옥이네 집에 쉽게 들락거렸었다.

 

  아주 드문 일이었지만 한번은 경옥이와 빵집을 간 적이 있었다.

  경옥이가 빵집에서 팥빵을 앞에 두고 빵가게 안에서 빵을 먹고 있는 부녀를 바라보다가 한마디 했다.

 

  "저기 봐봐."

  "응? 뭐?"
  "저기 아빠랑 빵먹는 아이."

  "왜?"

  "나는 저렇게 아빠랑 둘이 빵집에 와서 빵 먹는 아이가 제일 부러워."   

 

  또순이는 아버지 때문에 상처가 있었지만 아버지랑 빵 먹는 아이가 눈에 보이지 않았었고 또 아버지랑 빵 먹는 아이가 부러운 적도 없었다.

  경옥이는 아버지의 부재 때문에 그런 장면이 보였고 또 부러웠었나 부다.

  우리 아버지가 아이들한테 자상하거나 무얼 어떻게 친절하게 해 주신 적은 없지만 아버지가 집에 계신 거하고 안 계신 상황은 전혀 다른 거였다.

 

  '아버지가 집에 계시는 것이 중요한 거구나.'

 

  경옥이네 아버지가 왜 안계신지 물어 보지도 않았고 경옥이도 설명해 주지 않았지만 '아버지의 부재'란 문제에 대해서 실제적인 경험을 했었다.

  때문에 아버지가 술마시고 술주정하는 게 좋을 리 없었지만 그런 아버지가 집에 계시다는 게 정말 중요한 거라는 걸 알았다. 

 

  한번은 경옥이네 집에 가려고 저녁 어스름 녘에 대전고등학교를 지나서 인동사거리 쪽으로 가고 있었다.

  혼자 가고 있는 또순이에게 어떤 키가 작고 예쁘장한 30대의 아저씨가 말을 걸었다.

 

  "충남대학교가 어디죠?"

  "제가 지금 가는 방향하고 반대로 가야 하는데요?"

  "서울에서 왔더니 어디가 어딘지 방향감각이 없어서 모르겠네."     

  "저쪽 길을 따라서 쭉 올라가면 나와요."

 

 

 

  "몇 학년?"

 

 

  "고등학교 1학년인데요."   

 

  "그래? 혹시 참고서 필요하지 않아? 내가 서울에서 학원을 하고 있는데 참고서가 많이 있거든. 나 따라 가면 줄 수 있는데."

  "어디에 있는데요?" 

 

  "출장 와서 유성 모텔에서 지내고 있는데 가면 참고서가 많이 있거든. 목욕도 하고 참고서도 줄게."

  "안돼요. 유성까지 갈 수 없어요. 지금 친구가 기다리고 있거든요. 충남대학교는 이리로 쭉 올라가면 되니까 안녕히 가세요."   

 

  사람 좋은 착한 얼굴을 하고서 여고생을 그런 식으로 꼬시는 것이다.

  나, 지금부터 너 잡아먹을게 하는 얼굴로 나쁜 짓을 하는 사람은 없다.

  무서운 사자를 보면 재빨리 도망치지만 귀여운 토끼 얼굴에는 깜빡 속아 넘어가는 것이다.   

  그날 경옥이네 집에 도착해서 또순이는 얼마나 나쁜 놈을 만났었는지 흥분해서 떠들었는지 모른다. 

 

  그 후 또순이가 간호학교에 진학한 후

  학교 앞을 지나가다 경옥이를 만난 적이 있다.

  모두들 집에 전화기가 없었던 시절이니까 서로 연락도 안되고 무엇을 하고 어떻게 살고 있는지 몰랐었다.

 

  "가게는?"

  "쌀가게가 안되어서 그만두고 아파트로 이사 갔어."

  "요새 뭐해?"

  "교육대학 진학했거든? 이제 졸업하고 발령 기다리고 있어."

  

 

<219. 성순이 이야기>

 

  성순이네 집은 신탄진이었다.

  어떻게 무슨 계기로 사귀게 되었는지는 모르지만 클래식을 좋아하고 적극적으로 친구 맺기를 하는 성숙한 아이였다.

 

  성순이네 집은 신탄진이었는데 그때는 그냥 시골이었다.

  집에 가면 염소를 키우기 때문에 염소젖을 짜서 주었다.   

 

  언니 오빠가 6명이나 있었는데 모두들 공부를 잘해서 중학교 때부터 서울에서 학교를 다녔다고 한다.

  다들 집안에서 학비를 대줄 형편이 안되어 고학으로 대학까지 졸업했다고 한다.

  고생해서 과외와 아르바이트 그리고 장학금으로 학교를 다녔기 때문에 학교를 졸업하고 취직하고 결혼을 하고 살기 바빠 고향인 신탄진에는 안 내려온다고 하였다.

  그리고 집안이 좋은 집하고 다들 결혼하는 바람에 시골에는 내려오는 일이 없다고 한다.

 

  성순이만 공부를 못해서 충남여고에 진학했고 대학은 보내줄 형편이 안되니까 고등학교 졸업하고 취업하려고 실업반에 있었다.

 

  성순이가 여름방학 때 꼭 ~ 꼭 ~ 꼭 자기네 놀러 와서 같이 유원지로 놀러 가자고 하였다.

  1학년 여름방학이 되고 약속한 8월 첫 주 토요일 날 성순이네 집에 가서 성순이랑 같이 비취 백을 들고 흑석리 유원지로 놀러 갔다.   

 

  성순이이네 집이 있는 골목길을 둘이 걸어 나오면서 하는 말.

 

  "나도 놀러 간다는 걸 동네 사람들한테 보여 주고 싶었어."

 

  흑석리 유원지에는 사람이 많지 않았고 둘이서 미리 옷 속에 입고 왔던 수영복 차림으로 수영을 하고 놀았는데 또래 애들이나 좀 큰 남학생들이 말을 걸기도 했었지만 무시하고 끝까지 둘이 놀다가 헤어졌었다.   

 

  성순이는 충남대학교 행정실에 근무했는데 또순이네 집 가까이에서 자취를 했고 다니던 교회에서 목사님이 소개해준 은행 다니는 남자와 결혼하고 또순이네 집 근처에 방을 얻어 살림을 했기 때문에 간호학교 다닐 때 자주 만났었다

  만나면 성순이네 언니들과 오빠들이 어떻게 살고 있는지  언니 오빠들 나라 이야기를 해주었었다.

 

  "나만 대전에 살고 있어서 자주 부모님 만나러 가거든, 부모님이 내가 최고래. 똑똑하고 공부 많이 했다고 한 번도 안 와서 얼굴 보기도 힘들고 부모님 어떻게 사는지 돌아보지도 않는다고."   

 

  아직 학교에 다니고 있던 또순이에 비해 성순이는 집안 살림이나 반찬이나 정말 어른처럼 잘하고 직장도 잘 다니고 한참 또순이보다 성숙한 아이였었다.

  손님 초대한다고 만들었던 잡채는 진짜 맛있었다. 

 

<220. 화숙이 이야기>

  화숙이는 같은 동네에 사는 바람에 하교 길에 우연히 동행하면서 사귀게 된 친구이다.    하얀 하복에 감색 여학생 가방을 들고 대전고등학교가 있는 오거리를 가고 있는데 같은  충남여고 교복을 입은 화숙이가 앞에 걷고 있었다.   

  자연스럽게 보폭을 맞추다가 말을 하기 시작하였다..

 

  "몇 반이야?"

  "5반."

  "나는 6반."

  "집이 어디야?"

  "이 근처야."

  "그래? 나는 성모 병원 뒤쪽 테미고개."

  "나는 대전고등학교 뒤쪽이야."

  "잘 가."

 

  그 후 3학년의 하교 시간이 비슷하기 때문에 자주 만나 졌다.   

  쿨한 성격의 화숙이가 맘에 들었고 또 화숙이는 친구가 없어서인지 둘은 이런저런 이야기를 많이 했었다.

 

  "전에는 너를 본 적이 없는데."

  "아, 나 3학년 되기 전 봄 방학 때 서울에서 전학 왔어."

  "서울? 서울서 살았어?"

  "응."
  "서울은 어때?"

  "말은 낳으면 제주도로 보내고 사람은 낳으면 서울로 보내라고 했잖아. 나는 서울로 가서 살고 싶어. 서울은 돈만 있으면 정말 살기 좋은 데야."

 

  그때 또순이는 서울로 가서 살아봐야겠다는 생각을 처음으로 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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