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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출 백로 역정(가출 상경기 3)

by 영숙이 2020. 4.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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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0가지 잘해도 한 가지 잘못하면 삐뚤어진다 >>

 

  기차에서 내려 제일 먼저 찾는 것은 화장실.

  화장실은 은퇴한 진쌤에게는 필수 코스이다.

  으짤 수 없다.

  옛날 외갓집 외할머니처럼 길 가다가 도로가에 주저앉아 바지 내리고 볼 수도 없는걸,

  화장실이 있는 것을 다행으로 생각하면서 화장실 행.

 

  지금도 기억난다.

  하얀 머리를 쪽찐 외할머니가 한복 치마를 들고 홑바지를 내리고 치마로 주변을 덮은 채 동래 버스 정류장 바로 옆 큰 도로가 사람 많이 다니는 길 한옆 하수도를 덮은 시멘트 구멍으로 볼일 보는데 젊은 순경이 "여기서 이러시면 안 됩니다." 하면서 난처한 얼굴로 바라보다가 고개를 돌리던 장면.

  진쌤은 그때 23살인가?

 

 

  아직 그때의 외할머니 나이가 되지는 않았지만 언제인가는 그 나이가 될 것이다.

  원하던 원하지 않던 나이는 들게 마련이고 그건 자연의 이치이다.   

 

  다른 사람들처럼 지하도로 빨려 들어갔다.

  그 와중에도 지하철 유리창에 바뀌어 적혀진 시를 한 장 찍고 지하철 속으로 흡입되었는데 사람이 그리 많지는 않았지만 어디에 앉을까가 잠시 망설여진다.

  경로 우대석이 비어 있다.

 

  "나는 경로 받아야 하나?"

 

  어짜피 비어 가는 좌석.

  그곳에 가서 비어 있는 3개의 자리 가운데 자리에 허리를  곧추 세우고 앉는다. 

 

  환승 안했으면 큰일 날 뻔했다.

  지하철이 코로나 때문에 단축 운행되고 있었던 것.

  만약 직통 SRT를 탔다면 지하철이 끊어져서 택시를 탈 뻔.

  은퇴 이전에는 짐이 좀 크면 그냥 택시를 탔었다.

  이제는 택시 타는 걸 자제한다.

 

  지하철에서 내려서 계단을 오르락 내리락.

  여행가방을 끌고 계단을 내려 가기가 힘들어서 바퀴로 한 계단 한 계단 끌어내리고 있는데 그 꼴을 보던 잘생긴 젊은이가

 

  "들어 줄까요?"

  "아네~"

 

  미안한 얼굴로

 

  "감사합니다."

 

  처음에는 가벼운 마음으로 한 손으로 들더니 힘드니까 두 손으로 바퀴 2개를 하나씩 들고 내려간다.

  미안한 마음.

 

  "감사해요."

 

  지하철 역에서 지상으로 올라오는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와서 아파트 가는 버스를 찾는다.

  환승이 되는 것을 알면서부터 이용하는데 기억력을 믿을 수 없어서 전화를 해 타야 할 버스를 확인하고 탔다.

  타고나서 버스 창문으로 밖을 내다보니 진쌤이 알던 풍경이 반대로 가고 있다.

 

  "반대편 차선을 탔구나. 환승되어서 버스비 안 내는걸 너무 밝혔나 봐"   

 

 

 타는 순간 0이라 찍히는 게 너무 기분 좋았는데 어쨌든 다음 정거장에 내려야 한다.

 바쁘게 내려 건너편에 건너가니 다행히 진쌤이 타야 할 버스가 있어서 얼마 안 있다가 버스를 타는데 카드를 댔더니 2700원이 찍힌다. 

 

  "왜 2700원이 찍히지요?"

  "자리에 앉으세요. 차 출발하게"

  "자리에 앉는 거구나." 

 

  왈칵 큰 소리로 화내는 버스 기사에게 쫓겨 자리에 앉아서 왜 2700원일까를 생각해보니 아까 0원이었는데 내리면서 환승을 찍지 않아서 1350x2=2700원이다.

  또 수업료 낸 셈.

  환승을 위해서 내리면서 카드를 끊어야 했다.

  자꾸 하다 보면 익숙해지겠지.

 

  근처에 마트에서 자취하는 사람이 절대로 살 수 없는 고가의 과일을 사서 안고 무사히 찾아 들어갔다.

 

  그동안 남편은 잘해 주려고 나름 참 많이 애썼는데 한번 폭발한 거로 집 사람이 삐뚤어져서 가방 끌고 가출한 날이다.

  은퇴한 진쌤은 나름 잘해 주려고 애쓴 남편 외면하고 한번 폭발한 거로 쉽게 가출한 것.

  그래도 한 번씩 집을 떠남은 좋다.

 

  절대 떠날 수 없는 사람은 얼마나 힘들게 살았을까나.

  그래도 적응하고 살았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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