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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리핀 민다나오 섬의 다바오 단기선교 다녀와서

by 영숙이 2020. 5.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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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일 먼저 이 모든 일에 태초부터 저를 택해 주시고 개입하신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드립니다.

  또한 예수님의 사랑이 아니었다면 어찌 다녀올 수 있었을지 먼저 감사의 기도로 시작합니다.

 

  우리 팀의 시작과 끝까지 모든 이의 하루 만보 걷기 훈련부터 여권까지 챙기셨던 최부성 전도사님과 조충현 목사님 그리고 현지에서 모든 수고를 마다하지 않으셨던 김영진, 최은경 선교사님과 준준 기사님과 똔똔 현지 사역자님의 도우심에 감사드립니다.

 

  저는 선교 사역이 처음이라서 나름 영적 싸움이 있었습니다.

  먼저 2학기동안 중학교 자유학기 동아리 활동을 월, 4시간을 해야 하는 일정이 잡혀 있었습니다.

  책임감으로 갈등이 생겼지만 빠지기로 결심하고 결석에 대비한 준비를 했습니다.

 

  새벽 기도 시간에는 계속 안 좋은 제 모습이 환상으로 보이는 것이었습니다.

  예를 들면 비행기를 내려서 앰뷸런스를 타고 가는 내 모습이 보였지만 계속 감사함으로 기도하다가 일주일 전쯤 살아도 감사하고 죽어도 감사합니다라고 기도하자 사르 박과 메삭과 아벳느고의 하나님이 보호하신다고 잘 알지도 못하는 다니엘서의 세 친구의 이름이 생각나면서 풀무불에서도 건지시는 하나님이라는 하나님의 응답과 함께 마음에 평강이 자리 잡았습니다..

 

  “필리핀은 불구덩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나중에 현지에 가보니 정말 불구덩이처럼 치열한 영적 전투 현장이었습니다.

  도시 내에는 가톨릭이 자라 잡아 있고 박물관에는 이단인 신천지가 코너 한 개를 차지하는 충격을 보았습니다.

  또 이단이라는 이글레시아라는 깨끗한 교회가 여기저기 흩어져 있고 산지에는 이슬람교가 자리 잡아 있었습니다.

 

  이제 무장 투쟁은 다바오 시장이 대통령이 되면서 토벌 작전으로 무장 세력이 없어져서 더 이상 하지 않는다고 하였지만 이슬람교 자치법이 통과되어 앞으로의 선교 활동에 어려움이 있을 거라는 선교사님의 설명이었습니다.

 

  기도하지 않으면 안되는 영적인 불구덩이였습니다.

  그렇지만 보이는 환경이나 상황은 힘들고 가난한 사람들이 80-90 프로가 되어도 평화롭기만 하고 실제로 행복지수도 세계 2위일 정도로 높은 나라였습니다.

 

  다음에는 불신자인 남편이 치안이 안 좋다 하는데 뭐하러 가느냐고 제 귀에다가 계속 속삭였습니다.

  담임 목사님 말대로 대꾸를 안 하고 아무 말도 안 했더니 멈추었습니다.

  드디어 짐 들고 나서는데 뒤에서 자유야하면서 좋아한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남편들이 부인이 어디 가면 하루 정도는 좋다고 하더군요.

 

  “기도해줘요

 

  떠나면서 말했더니 보통 부정적으로 대답하는데 뭐라 대답하고 싶기는 한데 평상시처럼 길 떠나는 사람을 향하여서 뭐라고 못 하고 우물거리더군요.

 

  냉장고 벽에 기도 카드를 붙여 놓았습니다.

  냉장고 문을 열다가 한 번이라도 읽어 보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멈추지 않는 하나님의 열심

                               -2018 성일교회 필리핀 단기선교 기도 카드-

<기도 제목>

1. 도시 빈민들, 산지 부족 교회들 안에 부흥이 이루어지도록

2. 기독 교사로 무장될 수 있는 공동체 처소가 예비 될 수 있도록

3. 이번 단기선교팀의 성령 충만과 하나 됨, 안전한 여정을 위해

 

  현지로서는 겨울 날씨라 필리핀 사람들이 감기에 잘 걸리는 기온이라고 하였지만 4계절이 있는 우리에게는 최적의 날씨로 아침 저녁에는 23도 내외 낮에는 약간 따뜻한 정도의 습기 없는 28도 내외로 다니는 동안 한 방울의 비도 맞지 않았습니다.

  준비해 간 우산이 짐스럽게 걸리적 거릴 정도였습니다.

 

  어느 교회에서 단기 선교팀이 8월에 갔을 때에는 낮에는 무더위에 밤마다 비가 내려 길이 질척거리는 진흙이라서 신이 계속 길바닥에 빠졌었다고 하였습니다.

 

  마지막 날 게스트하우스에 도착하여 가방을 정리하는데 창문 밖에서 쏴아 하고 힘찬 소리가 들리는 것이었습니다.

 

  ‘설마 비가?’

 

  비소리가 맞았습니다.

  30여분 동안 소나기가 내리다가 그쳤습니다.

 

  이 모든 과정에서 하나님의 개입하심이, 함께 하셨음에 정말 감사합니다.

  특히 16명의 사람들과 하나의 팀원이 될 수 있었다는 것이 얼마나 감사한지요.

  모두들 하나 되어 어떤 일에도 일사불란하게 움직 일 수 있었고 하나 되어 기도하고 하나 되어 봉사할 수 있었음에 감사합니다.

  한 사람의 낙오자도 없이 끝까지 함께 할 수 있었음에 전도사님이 그토록 걱정하시던 한 사람의 여권 문제도 없이 잘 다녀올 수 있어서 감사합니다.

 

  교회에 도착하니 남편이 차를 타고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사이드 백을 차에 갖다 놓으러 가니 남편이 손을 내밀었습니다.

  나름 반갑다는 표현이었습니다.

  원래 그런 표현을 잘 안 하는 사람인 줄 알고 있는데 내미는 손을 잡으면서 얼마나 감사하였는지요.

 

  짐 가방에서 다른 사람이 부탁한 물건을 꺼내서 주고 닫은 다음 차에 가져가는데 백 팩 가방을 어쨌느냐고 묻더군요.

  대답 못 하고 머뭇거리는데 가방에 있느냐고 하면서 더 이상 묻지 않더군요.

  알면서 모르는 척 해 주는 것에 정말 감사했습니다.

 

  집 안에 들어 왔을 때 낯익은 물건들과 풍경들에 감사했습니다.

  더불어 필리핀에 사는 현지인들의 열악한 환경과 화장실과 주거 환경 특히 산지인 중에는 평생 그곳에서 태어나서 그곳에서 살다가 그곳에서 죽는 사람들이 있다는 소리를 들었습니다

  여행은 꿈도 못꾸고 산 아래에 한번 내려와 보지도 못하고 그렇게 산에서만 산다는 이야기였습니다. 

  그들은 그곳이 어떤 환경인지조차 모르고 그렇게 사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하면서 평생 살다가 생을 마감한다는 생각을 하니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고 그들을 위해서 기도를 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물 뜨러 2시간 이상 산길을 걸어야 하는 그들에게 수도를 연결해주게 되어서 감사합니다.

  이제 빨리 공사가 마무리 되어 그들이 속히 마을에 있는 물통에서 물을 받아 쓸 수 있게 되기를 기도합니다.

 

  국립 병원에 방문했습니다.

  병원 방문했을 때 병원에서 사역하시는 목사님 설교 시간이었습니다.

 

  우리는 몇 사람씩 짝을 지어 예배에 초청하기 위하여 병실을 돌아다녔습니다.

  우리 팀은 소아암 환자 병동에 갔습니다.

  병동의 나무문은 언제 칠을 했는지 알 수 없이 낡아 있었고 여기 저기 구멍과 낙서가 되어 있는 문들이었습니다.

  그 문들을 열고 들어가니 아픈 어린이들이 눈도 못뜨고 힘 없이 누워 있었고 그 곁에 누워 있는 어른들도 무기력하게 누워 있었습니다.

  복음 팔찌를 보여 주고 프레센트라고 설명하고 연결하면서 비즈에 대한 설명을 해 주고 팔에 끼워 주었습니다.

  그 다음 손을 잡고 기도해 준다고 하니 고개를 끄덕입니다.

  영어 대신 한국말로 기도를 시작하였지만 아멘 하면서 마주 본 그들의 눈에는 눈물이 고여 있었습니다.

  하나님도 한 분, 예수님도 한 분, 성령님도 한 분 삼위일체 하나님의 역사하심을 다시 한번 느끼는 순간이었습니다.

 

  이들이 산 넘어 물 건너 며칠씩 걸어와서 이곳에 있어도 진료받는데 한 달이 걸리고, 진료를 받고 운이 좋아 수술을 받는다 해도 적어도 2-3달을 기다려야 한다고 하였습니다

  우리나라만큼 의료시설이 잘 되어 있는 곳도 없다고 하였습니다.

  우리는 마음만 먹으면 언제 어디서든 저렴한 비용으로 진료받고 치료받을 수 있음을 감사합니다.

 

  또 다른 건물로 들어가니 아픈 어른들이 복도에 있는 낡은 나무 침상에 누워서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그들을 위해서 무언가 해줄 수 없다는무력감이 들었지만 예수님이 계시니 힘을 내서 복음 팔찌를 전하고 홀에서 워십 예배드린다고 전하였습니다.

 

  목사님이 기타 치고 청년들이 앞에서 율동과 더불어 찬양을 하고 전도사님이 영어로 설교를 하시면 옆에서 현지 병원 목사님이 번역을 하였습니다.

  준비해간 스킷 드라마는 그곳에서 큰 인기를 끌었습니다.

  대사가 없었지만 모두들 전하는 뜻을 알 수 있었고 큰 반응을 보였습니다.

  좋아하면서 박수 치고 감탄할 때 감사의 마음이 저절로 들었습니다.

 

  예정에 없었지만 안수하면서 기도하는 기도 시간이 되자 기도를 받으려고 모여드는 환자와 환자 가족들을 보며 무력하게 병실에 누워 있던 그들에게 복음을 전할 수 있었고 그들 중에 적극적으로 기도받으러 나와서 다가오는 것을 바라보며 기도할 때 왜 그런지 모르지만 눈물이 났습니다.

  그만큼 간절하고 애절한 그들을 위하여 하나님의 사랑으로, 예수님의 은혜로, 성령님의 도우심으로 기도할 수 있음에 감사하였습니다.

  그곳에 있던 많은 환우들과 환우 가족에게 하나님의 기적이 임하여 치료의 역사가 나타나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다바오에 있는 유일한 기독교 학교인 신학교에 갔습니다.

  신학교라고 하기에는 소규모였지만 남녀 기숙사가 있었고, 강의실이 있었고, 도서관이 있었으며, 식사를 만드는 주방이 있었습니다.

  신학교 학생은 1학년 14? 2학년도 그 정도인데 2학년은 현지 교회에 실습을 나갔다고 하였습니다.

  대학을 가서 공부를 하고싶지만 여건이 안 되는 학생들이 이곳에서 공부를 하고 태어난 고향으로 돌아가 사역을 하는데 미치는 영향력이 매우 크다고 하였습니다.

  이들이 고향으로 돌아가 미셔너리의 영향력이 점점 더 확장되는 놀라운 역사가 일어난다고 하였습니다.

 

  신학교의 존재는 매우 의미가 있었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미셔너리의 영향력이 적은 곳에 이렇게 신학교가 있다는 자체가 기적이었습니다.

  열악한 환경 속에서도 하나님을 향한 뜨거운 열정 하나로 이겨내고 기도하고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의지하며 눈에 보이는 환경을 초월한 신학생들의 한 사람 한 사람이 너무도 소중하였습니다.

 

  한 여학생 기숙사 한 칸에는 침대가 5개 정도 놓여 있는데 메트리스도 없이 그냥 나무판자로 만들어진 것이었습니다.

  흙바닥 위에 나무 판자 침대로 봐서는 정말 여학생 기숙사가 맞을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습니다..

 

  신학생들의 찬양을 시작으로 한 집사님의 간증을 옆에서 다른 집사님이 영어로 번역하면서 간증하였습니다. 

  그 후에 신학생 2명과 우리 선교팀 4명이 한 팀이 되어 서로 이야기 나누는 시간이 있었습니다.

  시작하기 전에 기도하자고 하면서 손을 잡고 기도하는데 왜인지는 모르지만 눈물이 났습니다.

  선교팀이 왜 울리냐고 하면서 모두들 웃으면서 눈물을 흘리고 있었습니다.

  입과 마음은 웃고 있는데 눈에서는 눈물이 왜 그렇게 하염없이 흐르는지 모를 일이었습니다.

  저도 왜 우는지 정말 모르겠습니다.

  기도 마치고 저에 대한 간증을 했습니다.

  옆에 있던 경미 성도님이 영어로 전해 주고요.

  그 다음 신학생들의 간증을 들었습니다.

  처음에는 쑥스러워하더니 경미 성도님이 간증하는데 그들의 얼굴 표정이 정말 진지해졌습니다.

  수정 선생님까지 간증하고 신학생들의 간증을 다 듣고 났을 때 모두들의 얼굴이 환해졌습니다.

  처음 신학생들의 얼굴은 생각에 잠긴 얼굴들이었었는데 환해진 모습을 보니까 정말 행복했습니다.

 

  그곳에서 자라는 야생의 나무에서 나오는 노니와 찻잎과 차 가루를 판매하고 있었습니다.

  우리는 선교하는 마음으로, 신학교에 도움을 준다는 마음으로 모두들 구입할 수 있을 만큼 구입하고 그곳을 떠났습니다.

 

  이 모든 것이 다 하나님과 예수님과 성령님의 삼위일체 하나님 때문에 이루어진 일이었습니다.

  감사합니다.

 

  신학교 방문 이후 출발하는 차 안에서 어떤 집사님이

 

  `핸드폰 두고 왔어.`

 

  하는 바람에 차가 후진했지만 자신의 무릎 위에서 찾는 작은 에피소드도 있었습니다.

  저녁을 먹기 위해 평소 선교사님이 신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돌아가는 길에 식사를 해결한다는 단골 식당을 찾았습니다.

  셀러드와 치킨이 정말 맛있는 가게였습니다..

  그런 가게는 현지에서 사역하시는 분이 아니면 절대로 알 수 없는 그런 가게였습니다..

  추가 몇 인분을 해치우고...

 

  다바오의 바닷가에 살고 있는 바흐족이란 극빈층을 찾아갔습니다..

  그들이 살고 있는 지역에 다다르면서 인력거로 바꾸어 탔습니다.

  자전거 인력거를 세워 놓고 기다리는 그들에게 하루의 수입이 주어지게 되어 다행이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우리가 들어간 바흐족들이 사는 바닷가 극빈촌은 그야말로 쓰레기 천지에 썩어가는 나무로 위태위태하게 세워져 있는 원두막 같은 판자촌이었습니다.

  자다가 바닥에 판자가 부러져서 바닷가 뻘에 떨어지지 않을까 하는 걱정이 드는 집에서 빵빵한 가요 같은 소리가 고막이 터져라고 들려왔습니다..

  대소변과 오물을 그대로 집 밖으로 버리고 쓰레기도 그대로 버려서 과자봉지에 비닐에 뻘에 뒤죽박죽인데도 사람이 걸어 다닐 오솔길이 있다는 게 신기하였습니다.

  그나마 날씨가 받쳐줘서 그렇지 만약 그전날에 비가 왔던지 지금 비가 오는 상황이라면 그나마 다니는 오솔길도 뻘이 될게 뻔했습니다.

  그러면 신발이 바닥에 박혀서 빼내기 힘든 상황이 될 수 있는 그런 곳이었습니다.

 

  저 멀리로 아이들이 들마루 같은 데에서 엄마의 젖을 물고 있기도 하고 그 옆에서 잠들고 있는 아이도 있고 손가락을 입에 넣고 서서 우리를 바라보기도 하였습니다.

 

  그곳에 교회가 있다는게 정말 기적이었습니다.

  깨끗한 바닥에 깨끗한 지붕에 계단이 제대로 있는 교회는 여기에서 태어나고 자란 소녀가 신학교에서 신학을 공부한 후에 이곳에 돌아와 교회를 세운 곳이라고 하였습니다.

 

  이곳에서 교회를 세워서 이곳에 아이들에게 복음을 전하는데 그분의 아버지가 이곳의 유지로서 많은 협력을 하시고 크게 도움을 주고 계신다고 하였습니다.

  3층의 건물에 2층에는 타일까지 깔려 있었습니다.

 

  이곳의 아이들은 학교에 다니지 않기 때문에 주일에는 이곳 아이들이 300명가량 모인다고 하였습니다.

  이렇게 복음이 전해지고 하나님을 알게 된 아이들이 성장하여서도 하나님 아버지를 붙잡고 살아가게 된다면 그것 이상 좋은 일이 있을까요?

  이 열악한 환경에도 엇나가지 않고 사회의 부랑자로 전락하지 않고 자신의 주어진 삶 안에서 최선을 다해 성실하게 살아가면서 앞날에 대한 소망 속에서 또 다른 사람에게 예수님의 사랑을 전한다면 그것이 곧 가장 큰 복음이요 그것 또한 예수님의 큰 사랑이라고, 예수님의 사랑 때문에 일어난 기적이라고 생각합니다.

 

  바흐족 교회의 바닥에 엎드려 기도하는데 왜 그렇게 눈물이 나올까요?

  정말 알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알지도 못하는 이 필리핀 다바오에 와서 알지도 못하는 사람들이 사는 동네에 와서 알지도 못하는 사람들을 위해 기도하고 있다는 것은 예수님이 아니었다면 절대로 나에게 우리에게 있을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미로 같은 바닷가 빈민가 바흐족이 사는 지역을 빠져나오면서 짓눌리는 무거운 마음이었지만 이곳에 신학을 공부한 사역자가 교회를 세우고 그 교회를 도우는 한국의 교회들과 이렇게 복음으로 이곳에 변화의 바람이 일어나고 있다는 생각을 하면서 조금은 가벼워졌습니다.

 

  선교사님이 안내하는 식당에서 저녁을 먹고 ~~~

 

  김영진 선교사님과 최은경 선교사님이 준비하신 식사는 항상 최저의 비용에 최고의 질과 양의 식사로 가성비 최고의 식사였습니다.

  식당에서 주문한 다음 준비해서 나오는 시간이 보통 1시간 가까이 되기 때문에 항상 미리 최은경 선교사님이 가셔서 우리 도착 시간에 맞춰서 주문해놓고 기다리셨습니다.   16명의 다양한 입맛을 고려해서 한 사람도 못 먹는 사람이 없도록 배려하신 놀라움에 다시 한번 감사드립니다.

 

  “최은경 선교사님 감사합니다.”

 

  현지식을 못 먹기는커녕 우리 팀은 먹어도 너무 잘 먹었습니다.

  한 사람도 빠짐없이

 

  참치 훈제와 참치 회로 만든 저녁이었습니다.

  이곳 다바오는 바닷가 도시이기 때문에 각종 해산물이 풍부한 곳이었습니다.

  사실 필리핀은 섬이기 때문에 바다에서 나는 해산물이 풍부하고 일 년 내내 더운 날씨로 산에서는 각종 과일들이 자연적으로 주렁주렁 열리고 쌀은 다모작으로 먹을 것이 풍부한 데다 추운 날씨가 없어서 얼어 죽을 일이 없는 행복한 동네입니다.

 

  참치 훈제 식사 후에 야시장을 들어갔습니다..

  야시장 입구에서는 우리의 가방을 검사하였습니다.

  이곳에서는 작년에 이슬람교 폭탄테러로 구덩이가 커다랗게 파졌고 100100여 명의 사상자가 났던 지역이었습니다.

  그렇지만 우리의 눈에는 화려한 불빛 아래에 정말 많은 사람들이 움직이고 있었고 많은 사람들이 노상에 마련된 테이블에서 식사를 하고 있었습니다.

  옷과 액세서리와 청바지와 티셔쓰와 신발 그리고 각종 먹을 것에 각종 꼬지가 풍성하게 깔려 있는 야시장을 빠른 걸음으로 통과해 만나기로 약속한 지역으로 20여분 만에 도착했습니다.

  만나기로 한 일행들이 빨리 오지 않아서 기다리고 있는데 두리안 사느라 시간이 지체됐다고 했습니다.

  냄새나는 두리안이 차에 타니까 냄새가 얼마나 심각한지.

 

  게스트 하우스에 돌아와 식당에서 모임을 했습니다.

  오늘 아침 출발하기 전에도 예배를 드리고 출발했지만 저녁에 돌아와서 소감을 발표하는 시간에

 

  ‘왜 울었냐고

 

  물었을 때 뭐라고 대답할 수 있을까요?

 

  ‘저도 모르겠습니다. 왜 우는지 모르겠습니다.’

 

  라고 밖에 표현할 수 없었습니다.

 

  룸에 돌아와서 문집사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였습니다.

  신학생들과 이야기할 때 어떻게 예수를 만나게 됐는지 이야기했었습니다..

  방에서는 아직 예수를 영접하지 않은 친정 동생에 대하여 이야기하였습니다..

  고등학교 다닐 때 주일 학교 학생회 회장까지 맡았던 동생, 하나님이 부르시는데도 하나님 앞으로 나아가지 않고 있는 동생의 불쌍한 모습을 이야기했습니다..

  선생님은 선생님의 어려운 이야기를 하였습니다.

 

  아침에 룸메가 시간이 안 되었는데 일찍 나가더군요.

  따라서 역시나 조금 일찍 1층 모임 장소인 식당으로 내려가니 룸메가 담임 목사님 옆에서 둘이 심각하게 이야기하고 있었습니다.

  시간을 약속했는지는 모르지만 어쩌면 남편 있는 경기도로 가야 하는지 아님 계속 여기 있어야 하는지에 대해 물어볼 수도 있고...... 순간...... 당황했습니다..

  마음속으로.

  아마도 어제저녁 했던 친청 동생 이야기 때문이었겠지요..

 

 

  벌써 손목에 있는 복음 팔찌를 보며 필리핀 다녀온 일이 아득하게 느껴집니다.

  복음 팔찌를 볼 때에야

  ‘그래 필리핀에  다녀왔지! ㅋ ’

 

 

  이외에도 다바오 해변가의 빈민촌에 자리 잡고 있었던 현지 사역자의 놀라운 교회의 모습과 산지 교회에서 명랑하게 현지 사역자의 기타 소리에 맞춰서 찬양하던 5050여 명의 어린이들.

  다바오 센터에 모여 있던 마을 사람들.

  우리 선교팀이 일사불란하게 그곳에서 움직였던 일들 하나하나 모두 간증이 될 일이지만 다 적을 수 없어서 부족하지만 살아 역사하시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에 감사하며 간증문으로 대신할까 합니다.  <아멘>

 

<필리핀 다바오 단기선교 다녀와서>

 베이비붐세대성장소설  2018. 9. 26. 23: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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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일 먼저 이 모든 일에 태초부터 저를 택해 주시고 개입하신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드립니다. 또한 예수님의 사랑이 아니었다면 어찌 다녀 올 수 있었을지 먼저 감사의 기도로 시작합니다.
   우리 팀의 시작과 끝까지 모든 이의 만보부터 여권까지 챙기셨던 전도사님과 목사님 그리고 현지에서 모든 수고를 마다하지 않으셨던 선교사님과 준준 기사님과 똔똔 현지 사역자님의 도우심에 감사드립니다.
   저는 선교 사역이 처음이라서 나름 영적 싸움이 있었습니다. 먼저 2학기동안 중학교 자유학기 동아리 활동을 월,  4시간을 해야 하는 일정이 잡혀 있었습니다. 책임감으로 갈등이 생겼지만 빠지기로 결심하고 결석에 대비한 준비를 했습니다.
   새벽 기도 시간에는 계속 안 좋은 제 모습이 환상으로 보이는 것이었습니다. 예를 들면 비행기를 내려서 앰블런스를 타고 가는 내 모습이 보였지만 계속 감사함으로 기도하다가 일주일 전쯤 살아도 감사하고 죽어도 감사합니다라고 기도하자 사르박과 메삭과 아벳느고의 하나님이 보호하신다고 잘 알지도 못하는 다니엘서의 세친구의 이름이 생각나면서 풀무불에서도 건지시는 하나님이라는 하나님의 응답과 함께 마음에 평강이 자리잡았습니다.
   “필리핀은 불구덩이라고 말씀 하셨습니다. 나중에 현지에 가보니 정말 불구덩이처럼 치열한 영적 전투 현장이었습니다. 도시 내에는 캐톨릭이 자리 잡아 있고 박물관에서는 이단이 코너 한 개를 차지하는 충격을 보았습니다. 또 이단이라고 규정 지어진 이글레시아라는 깨끗한 교회가 여기 저기 흩어져 있고 산지에는 이슬람교가 자리 잡아 있었습니다.
   이제 무장 투쟁은 다바오 시장이었던 로드리고 두테르테가 대통령이 되면서 토벌 작전으로 세력이 없어져서 더 이상 하지 않는다고 하였지만 이슬람교 자치법이 통과되어 앞으로의 선교 활동에 어려움이 있을거라는 선교사님의 설명이었습니다.
   기도하지 않으면 안되는 영적인 불구덩이였습니다. 그렇지만 보이는 환경이나 상황은 힘들고 가난한 사람들이 80-90 프로가 되었지만 평화롭기만 하고 실제로 행복지수도 세계 2위일 정도로 높은 나라였습니다.

   다음에는 남편이 치안이 안 좋다 하는데 뭐하러 가느냐고 제 귀에다가 대고 계속 속삭였습니다. 담임 목사님 말대로 대꾸를 안 하고 아무 말도 안 했더니 멈추었습니다. 드디어 짐 들고 나서는데 뒤에서 자유야 하면서 좋아한다는 느낌이 들더군요. 남편들이 부인이 어디 가면 하루 정도는 좋다고 합니다.
   “기도해줘요 떠나면서 말했더니 보통 부정적으로 대답하는데 대답하고 싶어 하면서도 길 떠나는 사람을 향하여서는 뭐라 못 하고 우물거리더군요.
   냉장고 벽에 기도 카드를 붙여 놓았습니다. 냉장고 문을 열다가 한 번이라도 읽어 보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멈추지 않는 하나님의 열심
-2018 필리핀 단기선교 기도 카드- <기도 제목>
1. 도시 빈민들, 산지 부족 교회들 안에 부흥이 이루어지도록
2. 기독 교사로 무장될 수 있는 공동체 처소가 예비 될 수 있도록
3. 이번 단기선교팀의 성령 충만과 하나 됨, 안전한 여정을 위해

   현지로서는 겨울 날씨라 필리핀 사람들이 감기에 잘 걸리는 기온이라고 하였지만 4계절이 있는 우리에게는 최적의 날씨로 아침 저녁에는 23도 내외 낮에는 약간 따뜻한 정도의 습기 없는 28도 내외로 다니는 동안 한 방울의 비도 맞지 않았습니다. 준비해간 우산이 짐스럽게 걸리적 거릴 정도였습니다. 어느 교회에서 단기 선교팀이 8월에 갔을 때에는 낮에는 무더위에 밤마다 비가 내려 길이 질척거리는 진흙이라서 신이 계속 길바닥에 빠졌었다고 하였습니다.
    마지막 날 게스트하우스에 도착하여 가방을 정리하는데 창문 밖에서 쏴아 하고 힘찬 소리가 들리는 것이었습니다. ‘설마 비가?’ 비소리가 맞았습니다. 30여분 동안 소나기가 내리다가 그쳤습니다.
    이 모든 과정에서 하나님의 개입하심이, 함께 하셨음을 정말 감사합니다. 특히 16명의 사람들과 하나의 팀원이 될 수 있었다는 것이 얼마나 감사한지요.
    모두들 하나 되어 어떤 일에도 일사분란하게 움직 일 수 있었고 하나 되어 기도하고 하나 되어 봉사 할 수 있었음에 감사합니다.
    한 사람의 낙오자도 없이 끝까지 함께 할 수 있었음에 전도사님이 그토록 걱정하시던 여권 문제도 없이 모두들 잘 다녀올 수 있어서 감사합니다.
    교회에 도착하니 남편이 차를 타고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사이드 백을 차에 갖다 놓으러 가니 남편이 손을 내밀었습니다. 나름 반갑다는 표현이었습니다. 원래 그런 표현을 잘 안 하는 사람인 줄 알고 있는데 내미는 손을 잡으면서 얼마나 감사하였는지요.
    짐 가방에서 다른 사람이 부탁한 물건을 꺼내서 주고 닫은 다음 차에 가져가는데 백 팩 가방을 어쨌느냐고 묻더군요. 대답 못 하고 머뭇거리는데 가방에 있느냐고 하면서 더이상 묻지 않더군요. 알면서 모르는 척 해 주는 것에 정말 감사했습니다.
    집안에 들어 왔을 때 낯익은 물건들과 풍경들에 감사했습니다. 더불어 필리핀에 사는 현지인들의 열악한 환경과 화장실과 주거 환경 특히 산지인 중에는 평생 그곳에서 태어나 그곳에서 살다가 그곳에서 죽는 사람들이 있다는 소리를 들었습니다. 그들은 그곳이 어떤 환경인지조차 모르고 그렇게 사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하면서 평생 살다가 생을 마감한다는 생각을 하니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고 그들을 위해서 기도를 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물 뜨러 2시간 이상 산길을 걸어야 하는 그들에게 수도를 연결해주게 되어서 감사합니다. 이제 빨리 공사가 마무리되어 평소에는 수도 호수 파이프로 건기에는 마을에 만들고 있는 물통에서 물을 받아 쓸 수 있게 되기를 기도합니다.

   국립 병원을 방문했습니다. 병원을 방문했을 때에는 병원에서 사역하시는 목사님 설교 시간이었습니다. 우리는 몇 사람씩 짝을 지어 예배 초청을 위하여 병실을 돌아다녔습니다. 우리 팀은 소아암 환자 병동에 갔습니다.   
  병동의 나무문은 언제 칠을 했는지 알 수 없이 낡아 있었고 여기 저기 구멍과 낙서가 되어 있는 문들이었습니다. 그 문들을 열고 들어가니 아픈 어린이들이 눈도 못 뜨고 힘 없이 누워 있었고 그 곁에 어른들도 무기력하게 누워 있었습니다. 복음 팔찌를 보여 주고 프레센트라고 설명하고 연결하면서 비즈에 대한 설명을 해 주고 팔에 끼워 주었습니다. 그다음 손을 잡고 기도해 준다고 하니 고개를 끄덕입니다. 영어 대신 한국말로 기도를 시작하였지만 아멘 하면서 마주 본 그들의 눈에는 눈물이 고여 있었습니다. 하나님도 한 분, 예수님도 한 분, 성령님도 한 분 삼위일체 하나님의 역사하심을 다시 한번 느끼는 순간이었습니다.
    이들이 산 넘어 물 건너 몇일씩 걸어와서 이곳에 있어도 진료받는데 한달이 걸리고 진료를 받고 운이 좋아 수술을 받는다 해도 적어도 2-3달을 기다려야 한다고 하였습니다. 우리나라만큼 의료시설이 잘 되어 있는 곳도 없다고 합니다. 우리는 마음만 먹으면 언제 어디서든 저렴한 비용으로 진료받고 치료받을 수 있음을 감사합니다.
    또 다른 건물로 들어가니 아픈 어른들이 복도에 있는 낡은 나무 침상에 누워서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그들을 위해서 무언가를 해줄 수 없다는 무력감이 들었지만 예수님이 계시니 힘을 내서 복음 팔찌를 전하고 홀에서 워십 예배 드린다고 전하였습니다.
    목사님이 기타 치고 청년들이 앞에서 율동과 더불어 찬양을 하고 전도사님이 영어로 설교를 하시면 옆에서 현지 병원 목사님이 번역을 하였습니다. 준비해간 스킷 드라마는 그 곳에서 큰 인기를 끌었습니다. 대사가 없었지만 모두들 전하는 뜻을 알 수 있었고 큰 반응을 보였습니다. 좋아하면서 박수치고 감탄 할 때 감사의 마음이 저절로 들었습니다.
    예정에 없었지만 안수하면서 기도하는 기도 시간이 되자 기도를 받으려고 모여드는 환자와 환자 가족들을 보며 무력하게 병실에 누워 있던 그들에게 복음을 전할 수 있었고 그들 중에 적극적으로 기도 받으러 나와서 다가오는 것을 바라보며 기도할 때 왜 그런지 모르지만 눈물이 났습니다. 그만큼 간절하고 애절한 그들을 위하여 하나님의 사랑으로 예수님의 은혜로 성령님의 도우심으로 기도할 수 있음에 감사하였습니다. 그곳에 있던 많은 환우들과 환우 가족에게 하나님의 기적이 임하여 치료의 역사가 나타나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다바오에 있는 유일한 기독교 학교인 신학교에 갔습니다. 신학교라고 하기에는 소규모였지만 남녀 기숙사가 있었고 강의실이 있었고 도서관이 있었으며 식사를 만드는 주방이 있었습니다. 신학교 학생은 1학년 14? 2학년도 그 정도인데 2학년은 현지 교회에 실습을 나갔다고 하였습니다. 대학을 가서 공부를 하고 싶지만 여건이 안되는 학생들이 이곳에서 공부를 하고 태어난 고향으로 돌아가 사역을 하는데 미치는 영향력이 매우 크다고 하였습니다. 이들이 고향으로 돌아가 미셔너리의 영향력이 점점 더 확장되는 놀라운 역사가 일어난다고 하였습니다.
    신학교의 존재는 매우 의미가 있었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미셔너리의 영향력이 적은 곳에 이렇게 신학교가 있다는 자체가 기적이었습니다. 열악한 환경 속에서도 하나님을 향한 뜨거운 열정 하나로 이겨내고 기도하고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의지하며 눈에 보이는 환경을 초월한 신학생들의 한 사람 한 사람이 너무도 소중하였습니다.
    한 여학생 기숙사 한 칸에는 침대가 5개 정도 놓여 있는데 메트리스도 없이 그냥 나무판자로 만들어진 것이었습니다. 흙바닥 위에 나무 판자 침대로 봐서는 정말 여학생 기숙사가 맞을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 였습니다.
   신학생들의 찬양을 시작으로 우리 교회 집사님의 간증을 옆에서 다른 집사님이 영어로 번역하면서 예배 시간이 끝나고 신학생 2명과 우리 선교팀 4명이 한팀이 되어 서로 이야기 나누는 시간이 있었는데 시작하기 전에 기도하자고 하면서 손을 잡고 기도하는데 왜인지는 모르지만 눈물이 났습니다. 우리 선교팀에서 왜 울리냐고 하면서도 모두들 웃으면서 눈물을 흘리고 있었습니다.
   입과 마음은 웃고 있는데 눈에서는 눈물이 왜 그렇게 하염없이 흐르는지 모를 일이었습니다. 저도 왜 우는지 정말 모르겠습니다. 기도 마치고 저에 대한 간증을 했습니다. 옆에 있던 성도님이 영어로 전해 주고요. 그다음 신학생들의 간증을 들었습니다. 처음에는 쑥쓰러워 하더니 옆에 성도님이 간증하는데 그들의 얼굴 표정이 정말 진지해졌습니다
    마지막 집사님까지 간증하고 신학생들의 간증을 다 듣고 났을 때 모두들의 얼굴이 환해졌습니다. 처음 신학생들의 얼굴은 생각에 잠긴 얼굴들이었는데 환해진 모습을 보니까 정말 행복했습니다.
   그곳에서 자라는 야생의 나무에서 나오는 노니와 차잎과 차 가루를 판매하고 있었습니다. 우리는 선교하는 마음으로 신학교에 도움을 준다는 마음으로 모두들 구입할 수 있을 만큼 구입하고 그곳을 떠났습니다.
   이 모든 것이 다 하나님과 예수님과 성령님의 삼위일체 하나님 때문에 이루어진 일이었습니다. 감사합니다.
   신학교 방문 이후 출발하는 차 안에서 어떤 집사님이 `핸드폰 두고 왔어.` 하는 바람에 차가 후진했지만 자신의 무릎 위에서 찾는 작은 에피소드도 일으키고 점심을 먹기 위해 평소 선교사님이 신학교에 학생들을 가르치고 돌아가는 길에 식사를 해결한다는 단골 식당을 찾았습니다. 셀러드와 치킨이 정말 맛있는 가게였습니다. 그런 가게는 현지에서 사역하시는 분이 아니면 절대로 알 수 없는 그런 가게였습니다.
   추가 몇 인분을 해치우고 다바오의 바닷가에 살고 있는 바흐족이란 극빈층을 찾아 갔습니다. 그들이 살고 있는 지역에 다다르면서 인력거로 바꾸어 탔습니다. 자전거 인력거를 세워 놓고 기다리는 그들에게 하루의 수입이 주어지게 되어 다행이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우리가 들어간 바흐족들이 사는 바닷가 극빈촌은 그야말로 쓰레기 천지에 썩어가는 나무로 위태위태하게 세워져 있는 원두막같은 판자촌이었습니다. 자다가 바닥에 판자가 부러져서 바닷가 뻘에 떨어지지 않을까하는 걱정이 드는 집에서 빵빵한 가요 같은 소리가 고막이 터져라고 들려 왔습니다.  
   대소변과 오물을 그대로 집밖으로 버리고 쓰레기도 그대로 버려서 과자봉지에 비닐에 뻘에 뒤죽박죽인데도 사람이 걸어 다닐 오솔길이 있다는게 신기하였습니다. 그나마 날씨가 받쳐줘서 그렇지 만약 그 전날에 비가 왔다던지 지금 비가 오는 상황이라면 뻘이 될게 뻔했습니다. 그러면 신발이 바닥에 박혀서 빼내기 힘든 상황이 될 수 있는 그런 곳이었습니다.
   저 멀리로 아이들이 들마루 같은 데에서 엄마의 젖을 물고 있기도 하고 그 옆에서 잠들고 있는 아이도 있고 손가락을 입에 넣고 서서 우리를 바라보기도 하였습니다.
    그곳에 교회가 있다는게 정말 기적이었습니다. 깨끗한 바닥에 깨끗한 지붕에 계단이 제대로 있는 교회는 여기에서 태어나고 자란 소녀가 신학교에서 신학을 공부한 후에 이곳에 돌아와 교회를 세웠다고 하였습니다. 이곳에서 교회를 세워서 이곳에 아이들에게 복음을 전하는데 그분의 아버지가 이곳의 유지로서 많은 협력을 하시고 크게 도움을 주고 계신다고 하였습니다. 3층의 건물에 2층에는 타일까지 깔려 있었습니다.
    이곳의 아이들은 학교에 다니지 않기 때문에 주일에는 이곳 아이들이 300명가량 모인다고 하였습니다. 이렇게 복음이 전해지고 하나님을 알게된 아이들이 성장하여서도 하나님 아버지를 붙잡고 살아가게 된다면 그이상 좋은 일이 있을까요? 이 열악한 환경에도 엇나가지 않고 사회의 부랑자로 전락하지 않고 자신에게 주어진 삶 속에서 최선을 다해 성실하게 살아간다면 또한 앞날에 대한 소망 속에서 또 다른 사람에게 예수님의 사랑을 전한다면 그것이 곧 복음 중에서 복음이요, 예수님의 큰 사랑 때문에 일어난 기적이라고 생각합니다.
    바흐족 교회의 바닥에 엎드려 기도하는데 왜 그렇게 눈물이 나올까요? 정말 알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알지도 못하는 이 필리핀 다바오에 와서 알지도 못하는 사람들이 사는 동네에 와서 알지도 못하는 사람들을 위해 기도하고 있다는 것은 예수님이 아니었다면 절대로 나에게, 우리에게 있을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미로같은 바닷가 빈민가 바흐족이 사는 지역을 빠져 나오면서 짓눌리는 무거운 마음이었지만 이곳에 신학을 공부한 사역자가 교회를 세우고 그 교회를 도우는 한국의 교회들과 이렇게 복음으로 이곳에 변화의 바람이 일어나고 있다는 생각을 하면서 앞날의 작은 소망의 불꽃을 기대해 봅니다.
    선교사님이 안내하는 식당에서 저녁을 먹고(선교사님이 준비하신 식사는 항상 최저의 비용에 최고의 질과 양의 식사로 가성비 최고의 식사였습니다. 식당에서 주문한 다음 준비해서 나오는 시간이 보통 1시간 가까이 되기 때문에 항상 미리 선교사님 사모님이 가셔서 우리 도착시간에 맞춰서 주문해놓고 기다리셨습니다. 16명의 다양한 입맛을 고려해서 한 사람도 못 먹는 사람이 없도록 배려하신 놀라움에 다시 한번 감사드립니다. “선교사님 감사합니다.” 현지식을 못 먹기는커녕 우리 팀은 먹어도 너무 잘 먹었습니다. 한 사람도 빠짐없이)
    참치 훈제와 참치 회로 만든 저녁이었습니다. 이곳 다바오는 바닷가 도시이기 때문에 각종 해산물이 풍부한 곳이었습니다. 사실 필리핀은 섬이기 때문에 바다에서 나는 해산물이 풍부하고 일 년 내내 더운 날씨로 산에서는 각종과일들이 자연적으로 주렁주렁 열리고 쌀은 다모작으로 먹을 것이 풍부한데다 추운 날씨가 없어서 얼어 죽을 일이 없는 행복한 동네입니다.
    참치 훈제 식사 후 야시장으로 들어갔습니다. 야시장 입구에서 우리 가방을 검사하였습니다. 이곳에서 작년에 이슬람교 폭탄테러로 구덩이가 커다랗게 파졌고 100여명의 사상자가 났던 지역이라고 합니다. 그렇지만 우리의 눈에는 화려한 불빛 아래에 정말 많은 사람들이 움직이고 있었고 많은 사람들이 노상에 마련된 테이블에서 식사를 하고 있었습니다.
    옷과 악세사리와 청바지와 티셔쓰와 신발 그리고 각종 먹을 것에 각종 꼬지가 풍성하게 깔려 있는 야시장을 빠른 걸음으로 통과해 만나기로 약속한 지역으로 20여분 만에 도착했습니다. 만나기로 한 사람들이 빨리 오지 않아서 기다리고 있는데 두리안 사느라 시간이 지체됐다고 했습니다. 냄새나는 두리안이 차에 타니까 그 냄새가 얼마나 심각한지.
    게스트 하우스에 돌아와 식당에서 모임을 했습니다. 오늘 아침 출발하기 전에도 예배를 드리고 출발했지만 저녁에 돌아와서 소감을 발표하는 시간에 왜 울었냐고 물었을 때 뭐라고 대답할 수 있었을까요? ‘저도 모르겠습니다. 왜 우는지 모르겠습니다.’ 라고 표현 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룸에 돌아와서 룸메 집사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였습니다. 신학생들과 이야기 할 때 어떻게 예수를 만나게 됐는지 이야기 했었습니다만 아직 예수를 영접하지 않은 친정 동생에 대하여 이야기 하였습니다. 고등학교 다닐 때 주일 학교 학생회 회장까지 맡았던 동생, 하나님이 부르시는데도 하나님 앞으로 나아가지 않고 있는 동생의 불쌍한 모습을 이야기 했습니다. 집사님은 집사님의 어려운 이야기를 하였습니다.
    이외에도 산지 교회에서 명랑하게 현지 사역자의 기타 소리에 맞춰서 찬양하던 50여명의 어린이들. 다바오 센터에 모여 있던 마을 사람들.
    우리 선교팀이 일사분란하게 그곳에서 움직였던 일들 하나하나 모두 간증이 될 일이지만 다 적을 수 없어서 부족하지만 살아 역사 하시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에 감사하며 이것으로써 간증문을 대신할까 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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