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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홀로선 버드나무

< 홀로 선 버드나무 > 5. 바그너에의 환상

by 영숙이 2019. 12.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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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바그너에의 환상 >

   

   영숙이는 책상 앞에 붙어 있다가,

   창 밖을 바라보다가,

   심심해서

   < 바그너에의 환상 >이란 글을 썼다.

   

   바그너의 사랑을 읽고 현실에서는 이루어지지 않겠지만,

   또 이렇게 써서 보낼 곳도 없지만,

   소설 연습이라 생각하고 써 보았다. 

   굳이 바그너라고 이름 붙인 것은 실제 음악가 바그너는 남다른 사랑을 하였고 또 바그너라고 이름 붙이면 왠지 멋있어 보여서다. 

 

 

   바그너의 부드러운 음률 속에 민스터는 파고들었다.

 

   바그너가 민스터를 처음 본 것은 그녀 남편인 백작의 초청을 받아들여 별장에 오던 날이었다.

   백작의 별장은 그리 크지 않았지만 아담하고 견고 했다.

   장식이 고풍스러운 응접실에 들어섰을 때 바그너를 향해 걸어오는 백작과 그의 부인 민스터를 보는 순간 가슴이 뛰는 소리를 들었다.

   아름다운 금발을 늘어뜨린 하얀 드레스의 청초한 여인.

   백작의 환영 인사 후에 바그너는 정중하게 답하며 응접실로 들어갔다.

 

   그날 민스터는 참으로 아름다웠다.

   침착하게 갈아 앉은 실내 분위기와 그녀의 날개처럼 가벼워 보이는 하얀 비단 드레스.

   즐거워 보이는 미소.

   부지런히 눈망울을 남편과 이제 막 도착한 음악가를 향해 굴리며 생긋 웃고 있는 그녀.

   갈색 선반 위에 하얀 장미가 투명한 꽃병에 꽂혀 있는 느낌이랄까?
   

   이미 이 별장에 온지도 두 주일이 지났다.

   백작은 어제 아침 3일 예정으로 도시에 나가고 집안에는 마그너, 민스터, 그리고 부엌 하녀인 나이 먹은 올렛트, 그의 남편 마부 링과 정원지기 즈바, 그리고 백작의 조카가 와 있었는데 오늘 아침 집으로 갔다.

   바그너는 창가에 앉아 정원의 꽃 사이로 이리저리 다니고 있는 민스터를 내다보고 있었다.

   부드러운 음률이 바그너의 가슴을 채우고 있었다.

   바그너가 하고 있는 작품

   그리고 민스터.

   

   민스터는 바그너가 창으로 쳐다보고 있는 것을 알고 있을까?

   가슴 가득 장미꽃을 안은 민스터.

   꽃 밭 속에서 민스터는 가장 크고 화려한 활짝 핀 한송이 꽃이었다.

   노크 소리에 대답을 하였으나 조용하여 바그너는 고개를 들고 문을 바라보았다.

 

   민스터.

   한아름의 장미꽃이 담긴 꽃병을 가슴에 안고 문간에 서 있는 민스터.

   그녀의 얼굴은 꽃에 가리어 살포시 웃고 있었다.

   아무 말 없이 들어와서 탁상 위에 꽃병을 내려놓은 민스터는 역시 소리도 없이 문 밖으로 사라졌다.

   그녀가 남기고 간 한아름의 장미꽃.

   그녀의 환한 모습만큼이나 밝은 그 꽃에서는 싱싱하고 짙은 향기가 방안 가득 퍼져 오르고 있었다.

   

   숲 속.

   말을 나무에 메어 놓고 둘은 풀밭 위에 앉았다.

   너무 멀리 달려와서인지 옆에 앉은 민스터는 숨을 달 삭이며 들이쉬고 있었다.

   그녀에게서 청결한 향수 냄새가 기분 좋게 풍겨 나오고 있었다.

   바그너를 향해 생긋 웃는 민스터.

   그녀의 부드러운 머리칼 몇 개가 얼굴 위로 흩날리어

   바그너는 머리카락을 손가락으로 머리 뒤로 넘겨주었다.

   민스터는 작고 하얀 손을 들어 바그너의 손 위에 얹었다.

   민스터의 어깨 위에 두 개의 손이 포개졌고 그녀의 눈은 바그너의 부드러운 시선 사이로 또렷이 들어왔다.

   바그너의 부드러우면서도 견고한 음률이 둘의 주위를 감싸고 있었다.

 

   바그너의 어깨에 기대어 있는 부드러운 금발.

   꿈꾸듯한 그녀의 시선이 허공을 헤매고 있었고,

   바그너는 반쯤 열려 있는 그녀의 모양 좋은 입술이 햇볕에 비 치이는 것을 바라보며 생각했다.

 

      ㅡ 이 모든 것이 영원 하기를 ㅡ

 

   꿈결 같은 시간들.

   벌써 이 별장에 온지도 3개월.

   그동안 그녀의 남편인 백작은 가끔 들러 바그너의 작품에 대해 묻고는 하였다.

   민스터는 몇 번 남편과 함께 집으로 돌아갔다가 그녀의 어린 동생과 함께 이튿날이면 돌아오고는 하였다.

   백작에게는 동생이 별장에 가기를 원해서 데리고 갔다 오겠다고 하면서.

   어제 정오에 백작을 따라나서는 그녀의 뒷모습을 배웅하며 내일이면 역시 돌아올 것을 믿고 있었다.

   그러나 그녀는 아직 돌아오지 않고 있었다.

   벌써 밖은 어두워지는데

   홀로 창가에 서서 바그너는 맑은 햇볕이 내려 쪼이던 숲 속에서,

   혹은 저 멀리 정원 한쪽의 벤치 위에서 있었던 그녀와의 부드러운 긴 입맞춤을 생각했다.

   그처럼 밝았던 달빛.

   둘의 가슴에 새기고 있었던 서로의 영상.

 

   B.

   당신을 잊지 못하여 남편이 잠깐 외출한 틈에 이 서신을 띄웁니다.

   남편을 따라 집으로 오면서 전 곧 당신 곁으로 달려 가리라는 것을 믿어 의심치 않았습니다.

   그러나 집에 도착하고 난 후에야 그건 헛된 생각이었음을 곧 깨달았습니다.

   남편은 저에게는 한마디의 말도 없이 이미 여행 준비를 끝마쳐 놓고 있었습니다.

   전 그것도 모르고 파티에 참석해야 한다는 말만 믿고 마차를 탔습니다만 마차는 밤새 쉬지 않고 달렸고 곧 저는 배에 실렸습니다.

   그동안 남편은 한마디의 말도 없이 창밖만 지켜보고 있었습니다.

   그런 남편에게 당신한테 돌아가야 한다는 것을 말할 수 없었습니다.

   마음만 터질 듯 입안에서 말들이 뱅뱅 맴돌고 있었습니다.

   

   B.

   벌써 바다 건너 이곳에 도착한지도 일주일이 지났습니다.

   이렇게 겨우 편지를 쓰는 저의 마음.

   비록 이곳에 있지만 저는 당신의 음성을 듣고 있습니다.

   당신의 숨결을 귓가에 느끼고 있으며 당신의 품 속에 저는 안기어 있습니다.   

   

   그립고 보고픈 이 저를 용서하셔요.

   언젠가는 당신 곁에 돌아가고 싶은 제 마음을 이해하실 줄 믿습니다.

   남편이 돌아오기 전에 어서 편지를 끝마쳐야 합니다만

   당신을 향한 뜨거운 마음에 필을 놓기가 어려워집니다.

   뜨거운 키스를 담아 보내며

   당신을 향한 제 마음을 이만 띄울까 합니다.

                              ㅡ 이탈리아에서 민스터 ㅡ

 

   그녀 없는 별장에서 바그너는 더 머무를 수 없었다.

   편지가 온 지 꼭 일주일 만에 바그너는 전에 있던 곳으로 되돌아왔다.

   바그너는 민스터를 잊기 위해서 작품에 열중했다.

   

   작품.

   작품.

   작품.

   

   그녀는 지금 베니스에서 뱃놀이를 하고 있을까?

   별장을 떠나 올 때 바그너가 지닌 것은

   민스터에 대한 뜨거운 사랑과 이룰 수 없는 사랑에 대한 차가운 바람 소리였다.

   이제 고뇌하는 바그너에게는 늘 함께 있어주고 위로해 주는 음악 만이 있을 뿐.

   

   음악은 바그너의 생활이고 생명이며 안식이고 위안이었다.

   바그너의 영원한 연인 음악.

   오선지를 애무하며 비 그 너는 시름을 잊을 수 있었고 민스터에 대한 아픔을 지워 갈 수 있었다.

   

   작품에 몰두 한지 1개월. 

   바그너의 손에 지금 두툼한 봉투가 들려 있다.

   민스터 그녀에게서 온 편지.

   무슨 사연이 담겨 있을까?

   바그너는 조용히 팔딱이는 심장 소리를 들으며 봉투를 열었다.

   

   민스터의 편지.

   그것은 민스터의 ㅡ시ㅡ 였다.

   바그너를 생각하며 써나간 민스터의  ㅡ시ㅡ들이었다.

   그 시들을 읽는 바그너의 머릿속에는 아름다운 음률이 떠올랐다.

   바그너의 사랑은 이제 음악이 된 것이다.

   

   바그너.

   그의 깊은 음악의 눈동자에서 아름다운 사랑의 선율이 흐르고

   그의 오선지에서 사랑의 향기가 피어오르는

   아! 그것은 한 떨기 사랑의 만개였다. 

 

<청량함의 끝판왕 스위스 ~ 태어나면 꼭 가봐야 할 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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