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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홀로선 버드나무

< 홀로 선 버드나무 >7.출장

by 영숙이 2019. 12.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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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장>

         

   여름.

   영숙은 여름이 좋다.

   땀을 흘리면 마음속에 쌓여 있던 잔티들이 땀 속에 섞여 몸 밖으로 빠져나가 버리는 것  같다.

   

   동글동글한 햇볕이 시멘트 위에 쏟아져 내리는 모양을 보노라면 어찔어찔 현기증을 일으키면서 살아 있다는 것에 희열을 느끼고 가장 좋은 것은 가을이 곧 올 것이라는 생각이,

   뜨거운 여름이 지난 후에야 비로소 결실이 있고 그 시원한 계절과 청량한 하늘을 더욱 절실히 느낄 수 있다는 것 때문에

   여름이 좋았다.

   

   아직 여름의 아우성이 한창인 8월이다.

   보건 지소에서는 한 달에 보름 이상을 출장 가야 한다..

   아무것도 모르는 초임 발령자가 만명리까지 혼자 자전거를 타고 출장을 갔다. 

   자전거를 타고 가는데도 날이 너무 더워서 땀이 비 오듯 흐르고 힘이 들었다. 아무리 좋아하는 여름이라도 힘이 드는 건 어쩔 수 없었다. 

   

   이장님 댁에서 피임 약과 콘돔을 주고 마루에 앉아 저녁을 먹었다.

   그때는 몰랐지만 늘 들리는 면사무소 사람들에게 일일이 식사 대접하는 것도 여간 일이 아닐 것 같았다.

   

   가족계획 홍보지를 나누어 주고 아줌마들과 얘기 좀 하다가 돌아오려고 자리를 터는데 면서기 한 사람이 마당으로 들어섰다.

   얼굴이 벌겋게 달아 올라서 땀을 비 오듯 흘렸다.

   장수리까지 걸어갔다 걸어오는 길이란다.

   

   면에 오토바이가 2대 있기는 하지만 그것은 다른 곳에 가고 자전거도 없어서 할 수 없이 40리나 되는 그곳을 땡볕 속에 걸어갔다 오는 길이란다.

   농약 배부가 늦었다고 면장님에게 호통을 들어서라 했다.

   

   물 한 그릇 마시고는 다리가 아파 못 걷겠다면서 마루에 털썩 걸터앉아 영숙이가 용인 아저씨에게 빌려 타고 온 자전거를 같이 타고 가자고 한다.

   이장님에게 농약 사용법과 보급에 대해 이야기 해준 김서기가 탄 자전거 뒤에 실려 영숙이는 마을을 떠났다.

   

   시골길.

   논에는 비단처럼 부드러운 모가 바람에 흔들리고 해가 져가는 하늘에는 붉은 석양이 곱게 무리 져 부드러운 빛으로 흐르고 있었다.

   멀어져 가는 마을은 저녁연기로 잠겨 들고 사위는 침묵의 옷자락에 덮여 조용히 내려앉고 있는 정말 아름다운 저녁이었다.

   

   사무실에 돌아오니 아무도 없는 빈 사무실은 캄캄하게 밤의 커튼이 내려져 있었다.

 

   그것으로 영숙이가 농촌을 위해 무엇인가 해보겠다고 생각했던 봉사 정신,     책임,

   의무는 끝장이 났다.

   진정한 의미에서 처음이자 마지막 출장 가방을 챙긴 영숙은 집에 가서 발을 씻고 저녁을 먹었다.

 

   오늘따라 일찍 돌아온 협동조합의 주양과 출장 갔다 온 이야기를 하였다. 

   먼저 번 태자는 왕복 80리나 되는 길을 갔다 왔는데 한밤 중에 집에 도착했다고 한다.

   발에 물집이 생겨서 며칠이나 고생했다고 한다.

   먼저 번 이 소장님이 말하던 장수리까지 환자 진료 차 태자와 다녀왔다던 그 이야기인가 보다.

   영숙은 그날 출장으로 출장의 고됨과 또 한 달에 1/2인 15일을 출장 다녀야 하는 보건 지소의 힘든 일을 이해하였다. 

 

   이튿날 보건 지소에 출근했을 때

   수고했다는 말 대신

 

      ㅡ 어제 출장 정말 갔다 왔어? ㅡ

      ㅡ 바보처럼 이 더운데 뭐 할러 출장 다녀? ㅡ

      ㅡ 우리는 너 정말 출장 갔다 오나 보려고 기다리다가 안 와서 아마 다른 곳에 갔나 보다 생각하고  퇴근했어. ㅡ

 

   영숙이는 출장 갔다 온 경위를 전부 털어놓고 멍청한 바보가 되어 있었다.

   안양과 곽양 언니는 고양이였고 영숙이는 고양이 앞의 쥐라는 느낌이 들었다.

     

   이 사람들이 먼저번 근무지인 군북에 있었을 때 간호사가 발령 오자 마자 그곳에서 제일 먼 곳으로 출장을 데리고 갔더니 이튿날 온다 간다 말도 없이 사라졌다는 이야기에서부터 시작해서 이 산골에 무엇하러 있느냐는 둥 대학 나와서 이 고생이 무어냐는 둥 영숙이의 기를 완전히 확 죽여 놓는 이야기들 뿐이었다.

 

   문제는 계속이었다. 안양과 곽 양 언니는 사무실을 비우고 낮잠 자러 가기 일쑤였다.

 

   7월 1일자로 새로 바뀐 보건 요원들에게 아직 정도 들지 않았고 이곳 무료 진료 파견의 로 근무 오기 직전에 결혼하셨다는 보건 소장님은 신혼이신지라 종만 치면 나가는 선생님처럼 5시 퇴근 시간이 되면 땡 하고 보건소 사무실 문을 닫고는 퇴근을 하였다.

   

   누군가가 기다리는 곳으로 향하는 사람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더욱 진해지는 외로움.

   때로는 눈물이 나려 했지만 마음속에 자리 잡은 공간을 밀어내고 자아를 채우려,

   먼 곳을 바라보며 세상에 아부하지 않고 영숙이의 조그만 자존심을 만족하며 살아야겠다는 생각을 한다.

 

   사관학교에 다니는 동생한테 보너스 타면 책과 테이프를 사서 보내야겠다는 생각을 한다.

   누나 노릇 좀 해야지.

   무엇인가를 누구에겐가 줄 수 있다는 것은 행복한 일 중의 하나이다. .

 

   그 후 면사무소 김서기가 출장 가자고 왔을 때 고개를 절래 절래 흔들 만큼 영숙이는 청성 보건지소에 이미 길들여져 있었다.

   혼자 사무실을 지키고 있다가 정 심심하면 진료실의 이 선생님에게 가서 도와주고는 하였다.

   이 선생님은 먼저 번 태자와의 생활을 틈틈이 이야기했다.

 

   사모님은 마르고 신경질적으로 생긴 하얀 얼굴의 전형적인 도시 여자였다. 

   부산 아가씨라나?

   중매쟁이의 중매로 처음에는 선을 봤다가 그만두었는데 나중에 너무 많이 봐서 누가 누구인지도 모르겠고 그래도 그중에 참 이쁜 아가씨 하나가 있었는데 그 아가씨가 싫다고 하길래 이제껏 선 본 사람들 중에서 다시 훑어보니까 이 사람이 아직 결혼 안 하고 있길래 구제해줬다나?

 

   영숙이는 위에서 떨어지는 물을 그대로 머리에 맞듯 이선생님은 선생님의  배경이니 그런 것들을 이야기하고 영숙이는 잠자코 대답 없이 귀를 기울였었다.

   영숙이에게 무슨 할 말이 있을까나.

   

   그렇지만 영숙이가 단 한 가지 부럽게 생각하는 일이 있었다.

   부인이 퇴근 무렵 데리러 와서 둘이 나란히 면사무소 문을 빠져나가는 뒷모습을 바라볼 때에는 레알 그 두 사람이 부러웠다. 

<청량함의 끝판왕 스위스 ~ 태어나면 꼭 가봐야 할 곳 이곳의 음식은 정말 맛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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