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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홀로선 버드나무

< 홀로 선 버드나무 >9. 지소장의 떠남

by 영숙이 2019. 12.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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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소장의 떠남>    

 

   가뭄을 달래는 오랜만의 단비로 이 작은 산골도 무척이나 바빠졌다.

   모심으랴 물 대량 농사일들이 태산이다.

 

   사무실로 면사무소의 한서기가 면장님이 안양과 곽 양 언니를 부른다고 데리러 왔다가 아직 출근하지 않은 것을 보고 영숙이랑 면사무소 이야기를 하다가 갔다.

   새롭게 알게 된 사실은 영숙이랑 초등학교 동창인 김기남이가 여기 청성 면사무소에서 근무하다가 군대를 갔다는 것이다.

   아직 결혼은 안 했지만 이 동네 아가씨랑 사귀다 군대 갔는데 이번에 그 아가씨가 떡두꺼비 같은 아들을 낳았다고 한다.

 

      ㅡ 기남이가 여기 면사무소에 근무했구나. 아들을 낳았구나. ㅡ

 

   기남이는 옥천군 군서 초등학교 5학년 때 같은 반 반장이었는데 그 애가 아파서 3월 한 달 내내 학교에 안 나와서 우리 반 아이들이 모여서 깊은 산골 외딴집에 사는 그애네 집에 병문안을 갔었다.

   그애네 집에 가는 골짜기 골짜기 냇가 냇가마다 진달래가 정말 흐드러지게 피어 있었다.

   기남이를 생각하면 언제나 골짜기의 진달래와 함께 떠오른다.

   형이 기남이 고등학교 입학금을 들고 서울로 튀어서 고등학교를 못 갔다는 것은 알고 있었다.

   그럼 그 이후에 어떤 일이 있었는지는 모르지만 어쨌거나 지금은 여기 청성 면사무소 면서기로 근무하다가 군대를 갔다는 거다..

   

   보건 지소 옆에 펌프로 지하수를 퍼 올리는 우물이 있고 그 뒤에 커다란 자두나무 두 그루가 있는데 상당히 많은 열매가 달려 있었다.

   열매를 따서 겉 표면에 얇게 퍼져 있는 것을 닦으면 반짝이는 진짜 표면이 나온다.

   

   몇 알을 따서 펌프가에 있는 아이들에게 나누어 준 며칠 후 자두나무에 열매가 하나도 남아 있지 않았다. 

   아이들이 자두를 따간다고 용인 아저씨가 몇 번이나 야단쳤는데도 어느 사이 한알도 안 남기고 따갔나 보다.

   아니면 용인 아저씨가 전부 따버렸을 지도.

 

   창문 밖을 내다보고 있는데 이 선생님이 건너오셨다.

 

      " 지금 어디에서 있어요? "

      " 할머니 집에요. 농협 다니는 주양 옆방이에요! "

      " 그 방 옆방에서 밥 먹는 소리까지 다 들리지 않아요? "

      " 어떻게 아세요? "

      " 처음 이 곳에 왔을 때 거기서 살았거든요! "

 

   지소장님이 난처해하는 얼굴로 말했다.

   

   부인은 가끔 사무실로 와서 냉장고에 고기를 가져가거나 맡기거나 한다.

   또 가끔 치료실에 와서 지소장이 귀를 후벼 준다든지 하는 모습은 참 보기에 좋았다.

   부인이 퇴근 무렵 데리러 와서 둘이 나란히 반바지를 입은 부부가 면사무소 문을 빠져나가는 뒷모습을 빈 사무실 석양이 내려오는 창문 앞에 서서 바라보면 영숙이의 가슴에서 바람 빠져나가는 소리가 들리고는 하였다.

 

  외로움.

  시골의 고요함 속에서 자신의 심장 소리를 듣고 서 있으려면,

  집으로 향하는 신혼부부의 정다운 뒷모습을 바라보노라면,

  외로움이라는 이름의 바람이 스며들어 왔다.

  장모가 일주일에 한 번씩 와서 반찬이며 부엌을 치워 주고 간단다.

 

      " 사모님은 어떻게 만나셨어요? "

      " 중 매지 뭐! 중매쟁이들이 두툼한 서류철을 가지고 매일 오거든. 선 본건 76번인가? 한 번은 호텔 카페 쇼에서 오전에 선 보고 오후에 같은 장소에서 다른 사람 보는데 저쪽에서 오전에 선 본 여자가 다른 남자하고 맞선을 보고 있더군! 요지경 속이라니까! "

 

      " 나중에는 선을 너무 많이 보니까 그 여자가 그 여자 같고 잘 모르겠더라고! 이래서는 안 되겠다 싶어서 선본 여자 중에서 아직 시집을 안 간 그래도 괜찮다 싶었던 사람에게 연락했지! 그때 고른 사람이 바로 집사람이야! "

     

      " 내가 구제해 줬지. 장인이 부산에서 산부인과 local을 하고 있어. 혼인 신고하려고 호적등본을 떼 보니까 집사람 출생 신고보다 부모님 혼인 신고가 늦게 돼 있더군. "

     

      " 무의촌 근무는 해야지. 혼자 오기는 싫고 어떻게 해. 부리나케 결혼을 했지. 여기 오기 한 달 전에 했으니까. "

     

      " 우리 아버지는 대구에서 조그만 공장을 하고 있어. 삼 남매라서 형님이 도와주고 있고 난 셋째야. "

     

      " 보건지소에 결혼 안 하고 오면 안 된다 하더라고. 보건지소 아가씨들한테 발목 잡힌다고. "

 

   이선생님은 먼저번 영숙이 전임으로 있던 태자 이야기를 많이 하였다.

   영숙이는 얘기하면 듣고, 말 걸면 대답하고 그리고는 이선생님은 퉁퉁한 모습 그대로 사무실에 신문을 참 풍성하게도 남겨둔 체 떠나갔다. 

   

      ㅡ 김양 내가 가서 편지할게 혹시 병원의 일자리도 있는가 알아보고. ㅡ 

   

   이선생님 부부는 9월 말에 떠나갔다.

   영숙이가 감나무 가지로 꺾꽂이를 하여 빈 사무실을 채우고,

   들꽃을 방안의 물병에 채워 위로로 삼고 보냈던

   9월 말에.

 

       " 이선생님은 아침마다 일어나서 마당을 쓸었어요! 참 착실하고 사람이 좋아요! "

       " 장모가 일주일에 한 번씩 다녀 갔어요! "

       " 부지런하지 않은 여자가 남편 복이 있는가 봐요! "

 

   시골 사람들은 그 부인을 이해 못했다.

   도시의 부잣집 숙녀를.

   시골 여자들은 남자보다 더 많은 일을 해야 한다.

   집안일, 가축 기르기, 밭일, 농사짓기 등등

   그러니 부인의 처지를 이해 할리가 없었다.

   

   부인은 심심하다면서 영숙이에게 문학사상 책을 빌려 갔었다.

   다 읽었다고 가지러 오라는 연락이 와서 책을 가지러 이선생님 집에 가니 부인은 방문 앞에 대발을 치고 화문석 돗자리 위에 앉아서 책을 읽고 있었다.

   하얀 모시옷이 시원하고 깨끗하다.

   시골 사람들은 비치는 옷 입었다고 야단들이었다.

   시원한 자리 위에서 영숙이는 녹차를 한잔 대접받았다.

   칙칙한 청바지의 영숙이는 조심스러웠다.

 

   그리고 보건소 랜드로바 차에 이런저런 모든 것을 싣고 떠나갔다.

   반바지와 강낛시와 먹을 것이 있는 여름과 함께.

   보건 지소장을 떠나보내는 영숙이의 머리는 커트로 짧아 있었다.

   

   여름의 땀과 고뇌와 영숙이의 결핵으로 아팠던 가슴과 함께 긴 머리를 잘라 버리고 커트로 가을을 맞이하고 있었다.

   

   외로운 가을은 가끔가끔 비를 뿌리고 있었다. 

<북유럽인지 스위스인지 모르겠음 ~ 사진위치 찾으면 바꾸겠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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