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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홀로선 버드나무

< 홀로 선 버드나무 > 11. 윤선생님

by 영숙이 2019. 12.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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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선생님>   

 

   윤선생님이 오셨다고

   청산으로 모두들 점심 먹으러 나갔다.

   

   청산면에서 음식점을 찾아 걷는데 뒤에 오는 일행들의 시선 중에서 유독 선생님의 시선이 영숙이의 줄 나간 스타킹을 바라보는 것 같아서 할 수만 있다면 땅 속으로 스며들든지,

   아니면 어디에라도 숨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줄 나간 스타킹이나 남의 시선 따위에는 무감각하던 영숙이가 갑자기 스타킹에 신경이 쓰이다니.

   음식점을 알아 놓고 양품점에 가서 스타킹을 사서 갈아 신고 돌아와 보니 음식은 아직 나오지 않았고 커다란 감나무가 있는 음식점 뒤뜰에서 한가한 농담들만 주거니 받거니 하고 있었다.

   뒤뜰에는 커다란 개 한 마리가 감나무에 매여 있었다.

   영숙이가 아무 생각 없이 나무 곁으로 다가섰더니 개가 짖으면서 달려드는 바람에 어찌나 놀랐는지 높은 소프라노로

 

      " 엄마야! "

 

   를 외쳤다.

   군 보건소에서 오신 분이 개 머리를 어루만지면서 말했다.

   

        " 개를 다룰 때는 뒷모습을 보이면 자기보다 약하다고 생각해서  달려들어요. 개 하고 눈을 마주치고 바라보면 꼬리를 내리 거든. ".

 

   음식이 나왔을 때 선생님과 대각선으로 마주 앉게 되었다.

   창백한 얼굴을 숙이고 방바닥을 내려다보는 선생님을 바라보면서 영숙이는 어떤 예감으로,

   아니 예감했던 어떤 일이 시작되고 있다는 생각을 했다.

   

   보건소 차가 안양, 이양, 영숙이, 이제 이곳 지소장님이 되신 윤선생님을 보건 지소에 내려놓고 가버린 후       

   진료실을 점검하던 윤선생님이 건너오셔서 어디 방 구할 데가 없느냐고 물으셨다.

   

   시선을 책상 위에 떨어트린 체 바지 옆 주머니에 양손을 찌르고 서 계시는 윤선생님의 창백하고 이지적인 모습을 바라보며

   이쪽 책상 앞에 서서 장부를 정리하고 있던 영숙이의 마음은 떨리고 있었다.

   

   그냥 무심코 이 곳을 바라보시는 선생님의 얼굴을 똑바로 정시하여 받아 내지 못하고

   시선을 떨어트려 손을 보니 손톱이 너무 길고 더러워 얼른 등 뒤로 감추었다.

   등 뒤로 돌린 손을 의식하게 되자 당황하여 손가락을 구부려 손톱이 보이지 않도록 애쓰면서 재빨리 장부를 들어 책상 서랍에 넣었다.

   시선을 들어 재빨리 선생님을 올려다보니 차가운 얼굴이 창밖을 향해 있었다.

 

   회색 양복이,

   하얀 와이셔츠가 저처럼 잘 어울리는 분은 처음 뵌 것 같았다.

   사무실이 꽉 차서 숨쉬기가 답답하고 곤란한 것 같았다.   

 

   185센티.

   수려한 외모.

   하얗다 못해 창백해 보이는 피부.

   외과 의사.

   남자로서 최고의 시절인 32살.

   

   머릿속이 복잡해진다.

   아무튼 너무 멋진 남자다.

   저 무표정하고 무관심한 얼굴.

   

   창 밖에  수없이 많은 가늘고 긴 가지들이 바람에 흔들거리면서 수많은 나뭇잎들을 바람결에 따라 떨어 트리고 있는 커다란 버드나무.

   선생님의 홀로 서계신 모습이 창 밖의 버드나무만큼이나 영숙이의 마음을 뒤흔들고 있었다.   

   알고 계시는지,

   모르고 계시는지. 

   

   선생님은 안양 언니가 얘기하는 먼저 번 지소장님이 계시던 방을 보러 안양 언니와 버드나무 밑을 지나 면사무소 정문으로  뒷모습을 보이며 약간은 고개를 숙인 성실해 보이는 모습으로 나가고 계셨다.

 

      " 버드나무야! 저분이 글쎄 총각이란다! "

      " 버드나무야! 너는 아니? 이 떨림을? "

 

   곽 양 언니가 청산에서 보건 지소로 돌아왔을 때 말했었다. 

 

      " 보건소 이주사가 그러는데 아직 미혼이라든데? "   

 

   영숙이의 가슴은 왜 이렇게 드높게 뛰고 있는지.

 

       ㅡ 버드나무야 너는 아니? 이 흥분을? ㅡ

 

   모두들이 가버린 비인 사무실에서 창밖이 어두워질 때까지 창 앞에 서서 밖을 내다보고 있었다.

   아까 저녁 먹으러 청산으로 나가기 위해서 보건지소 사무실을 대충 닫은 다음 랜드로바 자동차를 타기 위해 보건지소 현관문을 나서서 버드나무 아래를 지나갈 때 선생님이 하시던 말을 몇 번이고 다시 생각해 보고 있었다.

 

      ㅡ 집이 어디예요? ㅡ

      ㅡ 대전요 ㅡ

      ㅡ 그럼 대전서 통근해요? ㅡ

      ㅡ 아, 여기 집요? 이 동네예요. ㅡ

      ㅡ 어디인데요? ㅡ

      ㅡ 저 위예요. ㅡ

 

   영숙이가 들뜬 표정으로 받아 내고 있었던 말들.

   선생님이 처음으로 영숙이에게 건네 오던 말들.

   사무실 사방의 창문에 묶었던 하얀 포플린 커튼을 내리고는 다른 날과 다른 기대감으로 사무실을 벗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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