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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홀로선 버드나무

< 홀로 선 버드나무 > 13. 홀로 서서

by 영숙이 2019. 12.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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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홀로 서서>   

 

   비를 든 면사무소의 용인 아저씨가 그 잎들이 숨 쉬며 대지 위에 향기를 맡을 사이도 없이 쓸어 모으고 있었다.

   참 부지런 한 아저씨.

   벌써 16년 동안이나 하루도 빠짐없이 새벽에 면사무소 구석구석을  청소하는 일을 시작으로 해서 한시도 쉴틈이 없이 밤늦게 까지 일하시고 문단속하시는 아저씨를 뵐 때마다 아무 일도 하지 않고 이렇게 앉아서 노닥거리다가 월급날 되면 보건소에서 월급이나 타는 영숙이는 부끄러워지고 꼭 죄짓는 느낌이 든다. 

   나라에서 상을 주실 분은 16년 동안 한결같다는 바로 저런 분이지.

   면장님 말씀대로 우리는 미안해서 어떻게 월급을 타는지.

   

   특히 영숙이가 감명을 받은 것은 항상 노래하듯이 즐겁게 지내는 모습 때문이다.

   언제 보아도 기쁘게 일을 하고, 언제 만나도 웃음기 가득한 그 얼굴은 발그레 하니 순박한 모습 그대로이다.

   그 건강한 웃음으로 굳어진 얼굴, 그 배어 나는 듯한 건강한 웃음을 대할 때마다 

   영숙은 자신이 나태하고 무기력하게 자신의 삶을 그저 흘려보내고 있는 것 같은 생각이 들어서 부끄러운 느낌이 든다.

 

   면장님은 마르고 머리가 벗어진 단신의 체구에 작은 고추가 맵다는 말 그대로 빈틈없는 모습이셨다.

   이곳이 고향이고 청렴결백하기로 소문이 나 있었다.

   자신의 따님은 초등학교 밖에 보내지 못해서 늘 가슴이 아프셨다가 이번 가을 추수를 마치고 국민학교 선생님에게 결혼시키면서 얼마나 기뻐하셨든지,     늘 가슴 한 구석이 찡하던 것이 사라지신 느낌이 드셨을 것 같다. 

 

   우리가 혼난 사람은 면장님 뿐이 아니었다.

 

   곽양 언니는 이곳에 발령받기 직전인 이번 봄에 결혼하였기 때문에 시댁이니 친정이니 늘 나돌아 다니고 그나마 출장 명령 부도 쓰지 않았기 때문에 또 안양 언니도 늘 늦게 출근하고 얼굴만 반짝 비치고 퇴근하는,

   늦게 강의실에 와서는 종 치기 전에 일찍 강의실을 떠나가는 반짝 교수님 같았다.

   

   행정 계장의 호통으로 경위서를 쓰기도 했고,

   작은 키에 둥글 둥글 늘 사람 좋아 보이는 미소를 띠신 부면장님께서도 표정을 굳히고 몇 번이고 나무라셨으니까.

   하긴 오죽 하였으면 군내에서 가장 좋은 곳이라는 군북 보건지소에 있다가 가장 오지인 이곳으로 왔으려고 그것은 일종의 추방이었다. 

 

   안양 언니와 곽양 언니는 보건소에서 보건 지소에 나가 있는 보건 요원 중에서 가장 나이가 많은 축들에 속했다.

   보건소에서 영숙이를 이곳으로 처음 보내면서 걱정을 했던 일을 이제야 이해할 것 같다..

   

   창 밖으로 바람이 흐르고 있다. 이 작은 네모난 공간을 둘러싸고 있는 바람은 영숙이의 가슴속으로 흘러들어오고 그리고 심한 소리를 내면서 빠져나가고 있다.

   저 창 밖에 홀로 바람 속에 서서 바람과 함께 휩쓸리고 있는 버드나무.

   여름의 사랑을 기다리고 있을까?

   이 서늘한 바람.

   누가 알까.

   그냥 혼자 일뿐이니까.

 

   영숙은 침묵과 대화를 한다.

   바람과 나뭇잎과 버드나무가 주는 대화

   침묵 속에 영숙은 창 밖에 홀로 서 있는 버드나무처럼,

   한그루 버드나무가 되어 침묵의 한가운데 서 있다.

   침묵 위로 나뭇잎을 떨어 트리며 바람의 삶과 사랑에 귀를 기울인다.

   영숙은 점점 침묵의 한 가운데로 침잠하여 가는 한 잎, 버드나무 잎사귀로 팔랑이며 가라앉아 간다.

 

   신선하고 달기까지 한 공기를 마시면서 창밖을 내다보니 어쩌다 영숙이 이곳에 와 있는지.

   신체적, 정신적으로 성숙하고 경제적으로 완전히 독립해야만 한 사람의 온전한 성인이 된다면 영숙은 이제 성인으로서 걸음마의 몸짓으로 사회에 참여하는 비로소 혼자 만의 생활에 한 단면을 열고 있는 것이다. 

   지금 이 시간들은 영숙이의 날들이기에,

   어떤 이유에도 불구하고 혼자 만의 길을 걸어야 한다.

   생각해 보면 자신의 초라한 모습이 눈에 뜨이지만 뒤돌아 볼 것 없이 꿈의 크기를 스스로의 현실에 비추어 더 가까이 느껴야 하는 것이다.

   

   영숙은 창 앞에 서서 무표정한 얼굴로 여전히 창 밖 만을 내다보고 있었다.

   윤선생님은 점심을 먹으러 갔다가 버드나무 밑을 지나 시멘트로 된 길을 올라서서야 비로소 고개를 들고 이쪽을 바라보았다.

 

   거기 회색빛으로 채색된 무표정한 한 사람의 낯선 남자의 얼굴.

   창백하고 영원히 변할 것 같지 않은 냉정한 표정.

   추운 사람.

   눈사람처럼 차갑고 창백한 사람.

   얼굴에 인간의 따뜻한 입김,

   감정을 불어넣어 주고 싶은 사람.

   그 눈동자에 무엇인가가 떠오르게 하고 싶다.

   단지 그뿐.

   점유하고픈 욕망도 영원히 떠나고 싶은 욕망도 없이 머물러 있을 뿐으로 만족하고 싶다.

   

   또 가슴이 텅 비어 바람 소리가 난다.

   가슴이 비어 바람 소리가 나는 이 기분 나쁜 경험.

   바람이 지나가고 있다.

   이 작은 네모난 공간을 둘러싸고 흐르고 있는 바람은 내 속으로도 여전히 흘러들어오고 그리고 심한 소리를 내면서 빠져나가고 있다.

   

   저 창 밖에 홀로 외로이 바람 속에 서서 바람에 휩쓸리고 있는 버드나무

   여름의 사랑을 기다리나.

   이 서늘한 바람.

   누가 알까.

   그냥 혼자 일뿐이니까.

   영숙은 침묵과 대화를 한다.

   바람과 나뭇잎과 버드나무가 주는 대화.

   

   침묵 속에 영숙은 창 밖에 홀로 서 있는 버드나무처럼,

   한그루 버드나무가 되어 침묵의 한가운데 서 있었다.

   침묵 위로 나뭇잎을 떨어 트리며 바람의 삶과 사랑에 귀를 기울인다.

   영숙은 점점 침묵의 한가운데로 침잠하여 가는 한 잎 버드나무 잎사귀가 된다. 

 

 

< 홀로 선 버드나무 >

 

   화려한 바이올린의 선율도 그치고 ㅡ

   잠자듯 내려오던 눈도 그치고 ㅡ

   초록빛 사랑도 그친체

   빈 가지만 남은 버드나무.

 

   바람 소리 내며 초록 사랑 떨쳐내던

   너를 감싸주는 까치 두 마리

   정다운 몸짓.

 

   네 아래 서면 아름 안겨 오던 바람소리 ㅡ

   너의 전부를 보면 가슴이 떨려 오고 ㅡ

 

   의자에 턱 괴고 앉아

   네 아래 멈추어 손짓할 먼 길 오는 이 찾느라

   고개를 빼고 꿈을 꾸면

   창문을 흔드는 바람 소리.

 

   바람 소리를 몰고 왔다가

   찾아온 바람소리를 몰고 가는 너를

   떨게 한 이 겨울 손님인가

   맞이 할 이 없는 눈발인가.

 

   여름의 사랑과 그리움을

   홀 ㅡ 로 서서

   홀로 서서 기다린다.

.

<스위스 꼭 가봐야 할 곳 ~ 자연을 통하여 행복을 찍어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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