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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홀로선 버드나무

< 홀로 선 버드나무 > 14. 장수리 무의촌 진료

by 영숙이 2019. 12. 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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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수리 무의촌 진료>

 

   보건소에서 차량 지원을 받아 장수리로 무의촌 진료를 나갔다.

   

   장수리는 면사무소에서 50여 리나 떨어져 있는 곳이다.

   다행히 고속도로가 지나가게 되어서 금강 유원지에서 2개의 산을 넘어 들어가면 도보로 2시간밖에 안 걸리는 곳이 되었다.

 

   경운기가 겨우 다닐 수 있도록 강을 따라 아슬아슬하게 닦여진 좁은 농로를 보건소의 김기사는 잘도 달린다.

   

   강변에는 물레방아도 돌고 강변을 따라 펼쳐진 모래밭이 초겨울 햇볕에 눈부시도록 하얗게 빛난다.

   모래 밭은 마치 성처녀처럼 파란 강물을 배경으로 순수하게 하얀빛으로 빛나고,

   사람의 손이 전혀 안간 순수한 자연의 상태는 이상한 감동으로 영숙이의 가슴을 적신다.

   이 세상에 더 이상의 깨끗함은 존재하지 않을 것 같은 느낌이다.

   

   장수리 이장 집에서 진료와 기생충 보유 현황을 파악하기 위해서 채변 수집을 하였다.

   산채가 주 반찬인 정성스러운 점심을 막 끝내고 돌로 쌓아서 만든 담 앞에서 돼지며 닭들을 들여다보고 있는데 촌부 한 사람이 대문을 들어섰다.

   

       " 저, 여기 보건소에서 선생님이 나오셨다믄서요. "

 

   이장이 아는 체를 한다.

       

        " 아랫말 천서방이 웬일 이우? 어디 편찮으셔? 아, 참 부산서 딸이 왔다믄서? "

        " 어제 그제 왔는디, 아, 글씨 몸이 아파서 왔는데요. 선생님이 좀 봐주셨으면 해서요. "

        " 그럼, 이리로 대려 와야지요. "

        " 데려 올수만 있다면 왜 안 데려 왔겠어요. 꼼작을 못하고 누워 있으니. 유사 장티푸스 래나? 식중독 이래나? 뭐래나. 죄송하지만 잠시 저희 집 좀 다녀 가셨으면 해서요! "

   

   아랫말 까지는 제대로 만들어지지 않은 길을 따라 30여분이나 걸어 들어가야 한다.

   우리는 모두 난처한 얼굴로 촌부의 얼굴을 바라 보기만 하였다.

   이장이 우리를 대신 해서 말을 건넨다.

 

        " 아, 여기서두 사람들 진찰하고 해야 하는데, 게 들어갔다 나오면 해거름이 다 되잖아요. 그러지 말고 딸을 이리로 퍼뜩 데려오우. "

        " 다 큰 처녀를 어떻게, 걸음도 제대로 못 걷는데! "

        " 리어카에라도 싣고 와야지유. 퍼뜩 댕겨 오우. "

       

   머뭇머뭇 하던 촌부가 바쁜 듯이 돌아 나갔다.

   그 모습을 딱한듯이 바라보던 이장이 혼자 중얼거린다.

 

       " 곱게 생긴 딸아이 인디  돈 벌어 부친다고 좋아하더니만 명절에나 오는 아이가 왔다기에 웬일인가 했더니만 병들어 왔구먼. 쯧쯧! "

 

   누구 집에 랄 것 없이 젊은 사람들은 도시로 나가서 학생이거나 공장에 거나 도시 생활을 하는 시골 사정이기에 이장도 자기 일인 양 가슴이 아픈 모양이다.

   이장 집에도 한둘은 공장으로 한둘은 학생으로 대처에 나가 있을 것이다.

   

   오후에는  영숙이 보고 채변 수집을 좀 해달라고 부탁하기에 여자들의 채변 수집을 하였다.

   정확히 말한다면 채변 수집이라기보다는 요충 검사를 위하여 면봉으로 항문 근처를 요충 알이 묻도록 문질러서 면봉을 유리 대롱 안에 넣는 것이다.

   거의 환갑이나 환갑이 다 돼 가는 할머니들이 속 내의를 내리기를 부끄러워하면서,

   주저하다가 영숙이에게 등을 돌린 채로 속바지를 내린다.

   면봉으로 항문 근처를 문지르며 놀란 사실은 대부분의 할머니들이 자궁 탈장이란 사실이다.

   아마도 최소한 6~7명의 아이나 많으면 11명이나 12명의 아이를 낳은 데다, 산후조리나 뒤처리를 제대로 하지 않은 탓으로 자궁 탈장이 생긴 모양이다.

   심한 사람은 작은 애호박만 한 자궁을 덜렁덜렁 달고 있었다.

   그것은 마치 그곳에 젖소의 그것이 달린 모양이었다.

   물론 세월이 흘러서 신체의 일부인양 쪼글거리고 피부와 같은 색을 띄우고 있지만 처음에는 얼마나 아팠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오후 진료가 끝나서 모두들 마당으로 나서서 벌통 앞에 서 있었다.

   윤선생님 장인이 당뇨병인데 혹시 꿀 받아 놓은 것 없느냐고 물었기 때문이다.

   딸을 데리러 간 촌부가 오지 않기에 아마도 그만 안 올 모양인가 부다 생각하면서 철수할 준비를 하고 있는데 돌담 너머로 아까 그 촌부가 리어카를 끌고 오는 모습이 보였다.

   늙은 아낙이 리어카 뒤에서 밀고 있었다.

   

       " 어떻게 아파요? "

       " 자꾸, 먹은 것을 토하고 설사를 했대요. "

       " 언제부터 그랬어요? "

       " 열이 나기 시작한 것은 벌써 구 토하고 설사를 시작한 건 한 너 댓새 된대요. "

       " 회사에서 병원에 안 갔었어요? "

       " 병원에 갔었는데, 하룻밤 재우고 나더니 글씨, 집에 가서 몸조리 하구병 나은 다음에 오라고 하드래유. "

       " 병원에서는 무슨 병이라고 합디까? "

       " 식중독 이래나? 유사 장티푸스 래나? 뭐래나? 그랬대요. "

       

   아가씨는 보기에도 딱하리만큼 마른 데다가 탈수증으로 인하여 전혀 풀기가

없어 보였다.

 

      " 우선 링거를 좀 맞아야겠어요. 몸속에 물이 부족해서 힘이 하나도 없잖아요? 그리고 링거를 며칠 더 맞아야겠는데요. 우리가 이리 올 수도 없고 내일 보건지소로 나오세요. 보건 지소 근처에 방을 얻어서 며칠 있으면서 링거도 맞고 주사도 맞고 해야 해요. "

      " 보건소 근처에 먼 친척 뻘이 있긴 있는데 ㅡ

      " 그럼 잘 됐네요. 우선 오늘은 여기서 주사 맞고서 집에 가서 쉰 다음 내일 보건지소로 꼭 나오세요. "

      " 알았구먼요!  이거 참 지송 해유. 폐를 끼치는구먼유. "

     

   이장 댁 윗방에 아가씨를 눕히고 vit B comflex를 Mix 한 링거를 꼽아주고 주사를 놓아 준후 링게르 빼는 법을 일러 준 다음 우리 일행은 이장댁을 떠났다.

   회사에서는 아마도 유사 장티푸스가 발생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 곤란해지니까 아가씨를 병원에서 곧장 퇴원시켜 고향으로 보냈던 것 일게다.

   가난한 시골집에서 아가씨를 병원에 입원시켜 치료할 형편이 될 리가 없다.

   평상시에는 보건 지소의 존재를 잘 못 느끼지만 이런 경우에는 보건지소의 절실함을 깨닫게 되는 것이다.

 

   오늘 장수리에서 D.P.T 예방접종을 한 아기들이 15명이나 된다.

   보건지소가 가까운 곳에 사는 아기들은 예방 접종 시기를 놓치지 않고 하게 되지만 이곳 아기들은 우리들이 출장을 와야만 예방 접종을 하게 되기 때문이다.

   다음 달 이 날에 또 출장 와서 2차 예방 접종을 해야 한다.

 

   돌아오는 길은 합금강을 따라서 청마 국교 앞으로 빙 둘러 왔다.

   지금은 청마 국교 앞으로 다리가 놓여 있지만 처음에는 건너갈 배도 없어서 비만 조금 많이 오는 날이면 작은 배로는 건너지 못하고 학교를 쉬고는 했다고 한다.

  그러다가 옥쳥청년회와 자매결연을 맺었고 옥천 청년회에서 기증한 50인승 배를 놓고서 저 강가에서 아이들과 청년들이 서서는 목멘 목소리로 교가를 불렀었다고 한다.

   그동안 국회의원 선거 때마다 다리가 조금씩 놓이다가 지난번에 다리가 완성됐다고 한다.

   

   집에 돌아와 씻고서 지리에 누우니 피곤이 몰려온다.

   그러나 가슴에 담아 온 합금강과 병풍 바위 그리고 그 깨끗한 강변을 내 작은 방에다 쏟아 놓는다.

   굽이치는 강물.

   한쪽 귀퉁이에 나룻배가 놓이고,

   물레방아는 돌아 보릿방아 찧고......

 

   치마폭에 감싸 온 파랗게 녹아난 하늘을 펼쳐 덮고 합금강 청돌을 깔고 내 작은 방 강가에서 잠이 든다.

   한 사람의 꿈을 꾸면서.

 

   

      < 합금강 >

 

가슴에 담아 온 합금강과 병풍 바위

내 작은 방에 쏟아 놓으면

굽이치는 강물 한 귀퉁이에 나룻배 놓이고

물레방아는 보랫방아 찧고

 

청마 초등학교와 옥천 청년회

기증한 50인승 배에 아이들을 태우고

강가에 서서

목메인 교가 불렀었다.

 

강 건너 청마 초등학교에서.

가을 운동회 준비하느라

부챗살들이 춤을 추고

 

치마폭에 감싸 온

파랗게 녹아 난

가을 하늘 펼쳐 덮고

내 방 강가에서 잠이 든다.

<청량함의 끝판왕 스위스 ~ 갈 수 있어서 행복한 땅 호수에 비친 풍경도 아름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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