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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홀로선 버드나무

< 홀로 선 버드나무 > 12. 왕자와 거지

by 영숙이 2019. 12.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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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자와 거지>   

 

   이튿날. 

   점심 먹으러 영숙이 집에 갔다 왔을 때

   선생님은 동생인 듯싶은 군인하고 짐을 가지고 왔다가 먼저번 지소장 방으로 내려갔다고 하였다.

   

   곽 양 언니 한 데서 오늘 아침 선생님이 결혼하셔서 애기가 둘이며 32세의 일반외과 2년 차라는 것을 들었기 때문에 일찍 집으로 점심 먹으러 갔고 늦게 왔었드랬는데,

   군인 아저씨하고 같이 왔다?

 

   그나저나 큰 문제는 선생님이 전혀 32살처럼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언니들은 오후가 되자 집에 들 가버렸고 선생님은 이쪽으로 가끔 건너오셔서 주사 바늘이랑 주사기를 가지고 갔다가 가지고 오시기도 하였다.

   

   다음날은 토요일.

   언니들은 아예 안 나오고 빈 사무실을 지키고 있던 영숙이는 진료실로 건너가 선생님이 환자를 보고 계시는 것을 구경했다.

   사무실을 지키고 있는 영숙이에게 모르는 것을 물으러 올 때 처음에는 김양이라고  부를 때마다 말꼬리를 흐리시는 것 같았다.

   아마도 병원에서 간호사라고 부르는 것에 익숙해져서 간호사라고 불러야 할지 아니면 김양이라고 불러야 할지 말꼬리를 흐리시는 것 같더니 조금 지나니까 곧 김양이라고 익숙하게 불렀다.

 

   환자가 오면.

   이름?

   나이?

   사는 곳?

   어디 아파요?

 

   청진기를 귀에 꽂고 환자의 가슴에 대어 보기도 하고 배를 만져 보기도 하고 약을 지어 주고.

   환자가 가고 난 후 주사기를 씻으려 하기에 영숙이는 대야에 물을 떠다가 씻어서 소독기에 넣었다.

 

      " 간호학교 나왔어요? "

      " 예. "

      " 어떻게 아셨어요? "

      " 보건소에서 그러던데요. 간호학교 나온 사람 있다고. "

 

   그 말이 전부였다.

   거의 말을 하지 않다가 겨우 꺼낸 말은 그것으로 끝이었다.

   환자도 없고 할 일도 없고 하여 다시 이쪽 가족계획실로 건너와 책상 앞에 앉아 문학 사상을 읽기 시작하였다.

   

   월요일 아침.

   사무실을 청소하고 자리에 앉아 창 밖을 바라보니 보헤미안처럼 걷는 선생님이 발끝을 내려다보며 걸어오고 있었다.

   서울에서 이제야 도착하였나 부다.

   지난주까지 입고 있던 회색 양복 대신 겨자색 잠바를 걸친 키 큰 모습으로 이쪽으로 오시고 계셨다.

 

      " 여기 있을 동안 늘 양복만 입기도 뭐하고 잠바 하나 샀지! "

      " 참 좋아 보이는 데요? "

      " 맥그리거 야! 여기 상표가 있지? 겉보다는 안이 좋아, 이 안에 털이 붙어 있는 조끼가 받쳐져 있잖아? "

     

   잠바를 입은 윤선생님은 훨씬 부드러워 보였지만 양복을 입었을 때의 냉정하면서도 이지적인 모습이 조금 감해진 것 같았다.

   

      " 누가 샀어요? "

      " 집사람하고 같이 갔었는데 집사람이 골라 줬어. "   

 

   영숙은 잠바를 사서 입힐 이렇게 멋진 사람이 있는 얼굴도 이름도 모르는 부인에게 묘하게 신경질적인 느낌이 들었다.

   

   입가에 찌그러진 웃음을 빼물고는 다시 한번 오늘은 평소의 굳은 표정이 풀어져 있는 선생님 얼굴을 바라보다가 창밖으로 시선을 돌렸다.

   

   창밖의 버드나무는 조금도 변함없이 흔들리며 여름 내내 푸른 녹음으로 가볍게 자신을 애무해 주던 잎새들을 눈송이처럼 흩날려 버리고 있었다.

 

   안양과 곽 양 언니는 아직도 출근하지 않고 있었다.

   영숙이는 창문 앞에 서성이고 있었고 윤선생님도 환자가 없어서 심심했는지 가족계획실로 건너와 창밖을 바라보면서 서 있었다.

 

      " 여기 참 좋다고 하던데. "

      " 여기 오기 전에 병원에서 지난번에 근무했던 닥터리를  만났거든? 거기 어떠냐고 물었더니 웃으면서 거기 참 좋다고 말하던데. "

 

   창 밖으로 가을바람이 소리를 내어 불며 지나가고 있었고 불어오는 바람에 따라 눈송이처럼 잎새들을 날려 버리고 있는 버드나무의 긴 가지들이 머리카락처럼 쏴아 소리를 내며 이리저리 흔들리고 있었다.

 

   영숙이는  이제 도시를 떠났고 한적한 시골에서 영숙이가 하고 싶은 글을 마음껏 쓰면서 조그마한 보건소를 지키고 있는 것이다.. 

 

      ㅡ왕자와 거지의 기회 (다시 읽는 동화) ㅡ란 짧은 글을 썼다.

 

   왕자가 된 거지는 정말로 행복하였답니다. 처음에는 어색하기만 하고 들킬까 염려되어 걱정스러웠지만 갈수록 왕자 놀이가 신이 났어요.

   

      " 아. 이런 세상도 있구나. 정말로 신이 나는 세상이야. "

 

   정말로 신이 난 왕자가 된 거지는 다시는 거지로 되돌아 가고 싶지 않았습니다. 

   여러 가지 생활을 겪어 본 자신은 정말로 좋은 왕자가 되어 정말로 훌륭한 임금이 될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실제로 거지 왕자는 열심히 공부하였으며 무술도 열심히 익혔습니다.

   신하에게 대신 매 맞게 하는 일도 절대로 일어나지 않도록 하였으며 주위의 사람들에게 친절하게 작은 일에도 신경을 쓰면서 행할 일은 척척 해 내는 능력 있는 왕자가 되었답니다.

 

      " 요즘 우리 왕자님은 정말 기특해. 절대로 남을 괴롭히는 일도 없을뿐더러 게으름을 피우는 일도 절대로 없으니까, 우리 왕자님이 저토록 변하시다니 정말로 놀랍고 또 다행스러운 일이야! "

 

  한편 거지가 된 왕자는 너무너무 괴로웠습니다. 매일매일 도둑질을 해야 했으며 먹을 것 입을 것이 제대로 없어서 항상 고통을 당해야 했으며 주위의 거지 왕초나 형들로부터 말할 수 없이 게으르다는 말을 들어야 했습니다.

  자칫하다가 명령하는 말이라도 튀어나오면 가차 없이 매질을 당하였으며 거지가 된 왕자는 나날이 따뜻한 물에 깨끗이 목욕하고 깨끗한 침대에서 하루라도 편안히 잠자는 게 소원이 되었으며 그리고 배불리 먹어 보는 게 진자 커다란 소원이 되었습니다.

 

   다시는 잠자리나 먹을 것에 대해서 주위의 신하들에게 신경질을 부리지 않을 것을 맹세하였습니다.

 

      " 궁궐로 돌아 가면 정말 이제부터는 훌륭한 왕자가 될 거야. 훌륭한 임금이 될 공부를 절대로 게을리하지 않을 거야. 아, 세상에는 이토록 비참하고 어려운 사람들이 많이 있구나. 나처럼 행복했던 사람은 어쩌면 이 세상에 몇 안 되는데도 여태껏 그것을 모르고 있었다니 나보다 더 어리석은 사람은 없을 거야. "

 

   왕자는 정말로 간절히 다시 왕자로 돌아가기를 원하였습니다. 

   왕자로 돌아가기 위하여 궁궐에도 여러 번 접근하였으나 그때마다 무지막지한 문지기 병사에게 쫓겨났으며 왕자가 된 거지의 곁으로 다가가는 일은 결코 쉽지 않았습니다.

   다행히 어찌 어지 하여 겨우 겨우 왕자가 된 거지 곁으로 다가갔지만 철썩 같이 믿었던 왕자가 벽력 같이 소리 지르는 것이었습니다.

 

      " 웬 거지냐! 저놈을 당장 끌어내지 못할까! "

      " 여봐라. 난 왕자니가. 날 몰라 보겠느냐. 저 말 위에 앉아 있는 놈이 거지니라. 나와 왕자의 자리를 바꾸었던 거지니라! "

      " 저 거지 녀석이 미치기까지 했구나, 당장 끌어내지 못할까! "

 

   왕자는 비참하게 끌어내어져 골목길에 내동댕이 쳐졌으며 병사들의 수많은 발길질을 당했습니다.

   왕자도 살아야 했습니다.

   먹고살기 위해선 거지 왕초가 시키는 대로 하여야 했으며 죽는다면 결국 왕자로써 죽는 것이 아니고 한 초라한 거지로써 죽는 것이기에 열심히 살아 있기 위하여 최선을 다하였습니다만 거지가 된 왕자님에게 남아 있는 길은 결국은 거지로써의 길 밖에 없었습니다.

 

   평생 왕자가 되지 못한 거지 왕자는 가슴속에 왕자로 돌아갈 수 없었던 자신의 처지를 고통스러워하다가 일생을 마쳤으며 왕자가 된 거지는 훌륭한 왕비를 얻었으며 훌륭한 임금이 되기 위하여 열심히 노력한 결과 백성들의 칭송이 드높은 훌륭한 성군으로서 일생을 마쳤습니다.

 

   " 여러분, 기회란 자주 있는 게 아닙니다. 인생의 기회가 있을 때 잡으세요. 그것이 어쩌면 단 한 번의 기회가 될는지도 모릅니다. 여러분의 일생은 단 한 번 뿐입니다. 여러분에게 기회가 왔을 때 그것이 결정되기 전에 확실히 잡으세요! "

 

              ㅡ 끝 ㅡ

<청량함의 끝판왕 스위스 ~ 행복을 알고 싶으면 꼭 가봐야 할 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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