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소설/홀로선 버드나무

< 홀로 선 버드나무 > 10. 만남

by 영숙이 2019. 12. 27.
728x90
반응형

   

<만남>   

 

   지금 오는 비는 가을비.

   외로움에 맞는 비

   

   고요함 너머에 있는 기다림

   지금 무엇을 기다리나.

 

   아무도 없다는 쓸쓸함

   

   누군가가 기다리는 곳으로 향하는 사람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눈물이 나도록 외로워 했다.

   

   외로움.

   외로운 가을.

   홀로 선 버드나무만큼이나 외로운 가을.

 

   외로운 가을날. 

   창문 앞에 서서

   창 밖의 홀로 선 버드나무가 된다.

 

 

 

   농촌 지도소.

   첨단 농업기술과 영농 방법을 보급하고 농촌 생활을 개선하는 농촌 지도 사업을 시, 군 수준에서 담당하는 농촌 지도기관.

   

   중앙의 농촌진흥청, 도 수준의 도농촌 진흥원, 시. 군의 농촌지도소의 3단계로 1975년 이후에는 각 읍. 면마다 지소를 두었다가 군 농촌지도소에 통합되었다.

   농촌지도소의 직원은 전국 평균 17명, 지소에는 3명이 있으며 전국적으로는 7600명에 달하였다.

   

   1998년에 군 농촌 지도소는 지방자치제에서 지휘. 감독을 받고 이름도 농업기술센터로 바뀌고 그 전의 지소 격인 상담소를 두고 있다. 과거에 획일적이었으나 지방 정부의 필요에 따라서 농촌지도소는 크게 변화하고 있다.

 

   퇴근 후에 농촌지도소 청성 지소가 있는 마을 끝까지 가보았다. 

   술도가가 있는 곳을 지나 논밭이 시작되는 마을 끝쯤에 농촌지도소 청성 지소가 있었다.

   너무나 작아서 눈에 안 띄었기 때문에 잘 몰랐었다.

   옆방에 농협에 다니는 주양이 농촌지도소가 있다기에 일부러 찾아본 것이다.

 

   보건 지소 보다 훨씬 작았다. 정말 작은 사무실 하나에 숙직이나 할 수 있는 작은 방 하나가 전부였고 책상도 1개뿐이었다.

   그래도 그곳에서 농사짓는 일이나 기술을 지도한다고 하니 농촌에는 꼭 필요한 곳이었다..

    그곳에 근무하는 직원도 공무원이었다. 

      

   

   

   가을.

   라이너 마리아 릴케의 가을이 아니라도 조금쯤은 시인의 마음이 되게 하는 계절.

   

   벌써 가을이다.

   여기 청송에 온지도 석 달이 넘었다. 

   

   7월 1일 자로 새로 바뀐 보건 요원들에게 아직 정도 들지 않았고 이곳 무료 진료 파견의 로 근무 오기 직전에 결혼하셨다는 보건 소장님은 신혼이신지라 종만 치면 나가는 선생님처럼 5시 퇴근 시간이 되면 땡 하고 보건소 사무실 문을 닫고는 퇴근을 하였다.

   누군가가 기다리는 곳으로 향하는 사람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더욱 진해지는 외로움.

 

    때로는 눈물이 나려 했지만 마음속에 자리 잡은 공간을 밀어 내고 자아를 채우려,

   먼 곳을 바라보며 세상에 아부하지 않고

   영숙이의 조그만 자존심을 만족하며 살아야겠다는 생각을 새삼 하고 있었다.

 

   가을은 고요함 속에 외로움에 맞는 비를 가끔 뿌리고 있었다.

   외로움에 어울리는 비.

   아무도 없다는 쓸쓸함과 고요함 너머엔 무엇이 있나.

   영숙이는 지금 무엇을 기다리고 있을까.

 

   외로움은 사람의 기쁨과 사랑을 깎아 먹는 벌레였다..

 

   문학 책을 읽고 글을 쓰면서도 완벽하게 외로운 것은 정말 힘이 들었다.

   누군가 대화를 할 사람이 없다는 것은,

   사랑할 사람이 없다는 것은 정말 못 견딜 일이었다.

 

   영숙이의 쓸쓸한 젊음.

   청춘이 기다리는 그 무엇..

   

   영숙은 이즈음 간간히 통증이 오는 오른쪽 가슴과 한두 번 나오는 기침에 왠지 모를 불안과 두려움을 느낀다.

   자신이 환자라는 것을 잊고 있었음을 깨달았다.

   환자.

   병든 사람.

   물론 완전히 치료되었다고는 하지만 아직은 조심해야 했다.

   

   정말 실감이 나질 않는다.

   영숙으로 하여금 지치고 병들게 한 것은 무엇이었을까?

   무엇이라고 꼬집어 얘기할 수도 없고 굳이 억지를 써서 말하자면 도시라고 말할까?

   

   도시는 사람을 시들 시들하게 만드는 마법을 부리는 걸까?

   생기를 빼앗아가 무력하고도 피곤한 그림자로 만들어 버린다.

   영숙이는 생기를,

   생명을 파먹고 있는 벌레를 생각했다.

   하얀 밤톨 속에 하얀 벌레처럼 자신의 생명을 조금씩 파먹고 있는 벌레.

 

   바람이 더 세게 분다.

   영숙이는 바람 한가운데서 바람이 되는 소리를 듣고 있었다.

   영숙이는 이미 언제부터인가 바람을 닮아 가고 있었다.

   

   바람.

   부는 바람.

   그 누구도 바람을 잡을 수 없다.

   바람 속에 영숙이 바람이 되어 섞인다 해도 바람의 색깔이 변할까?

   바람의 냄새가 변할까? 

 

   오늘은 눈이 시리도록 파란 가을 하늘이 유난히도 맑고 드높아 보인다.

   도시에서 보는 하늘과는 비교할 수 없이 깨끗하고 파아란 가을 하늘.

   파아란 하늘이 가을을 알리고 있었다.

   

   영숙은 문득 마음속으로 파고드는 바람의 냄새를 맡는다.

   아침 햇살만큼이나 투명하고 아린 바람의 냄새.

   고독과 우울한 어두움이 스쳐 지나간 자욱은

   바람이 영숙이의 마음을 스치고 지나갔을 때처럼 아무 표시 없이 아리고 아프고 그리고 텅 빈 공백 만이 남을 것이다. 

 

   창 밖으로 버드나무는 그 긴가지들을 바람에 내어 맡긴 체 수없이 많은 나뭇잎들을 떨어 트리고,

   힘 없이 책상 앞에 앉아 창밖을 바라보던 영숙은 그 긴가지들과 함께 비인 공간을 이리저리 쓸려 다니고 있었다.

   

   그때 면사무소의 정원수 사이로 군 보건소 진료차가 오고 있는 것이 보였다.

 

      " 보건소 진료차가 오는데요? "
      " 웬일이지? "

   

   안양은 의자 위에 발을 올려놓고 바늘로 무좀 물집을 터트리던 손을 멈추고는 고개를 빼고 내다보았고 이양은 뜨개질하던 손을 멈추고 의자에서 내려와 신을 신고 있었다. 

 

      " 아마 지소장님 오시나 봐요! "

 

   영숙은 거울 앞에 얼른 다가서서 자신의 얼굴을 들여다 보고 창문 앞에 붙어 섰다.

   

   순간 서늘하게 멈추는 심장.

   영숙이의 심장이 멈추었다.

   

   숨 쉬는 것조차 잊은 체,

   회색 양복과 하얀 와이셔츠가 썩 잘 어울리는 온몸을 바람 속에 내어 맡긴 체 차갑고 이지적인 단정하고 창백한 얼굴을 내다보고 있었다.

 

      " 이쪽은 김양! "

      " 안녕하세요? "

     

   당황한 영숙이는 소개하는 대로 인사를 하며 진료실 한 옆으로 선다는 것이 한가운데를 가로지르면서

   초록색 원피스 옷자락을 펄럭이고 있었다.

   

   윤선생님은 무표정하고 창백한 얼굴을 약간 숙이고 싸늘하게 힐끗 바라보았을 뿐.

   시선을 아래로 떨군 체 계속되는 다른 사람들의 소개만 듣고 있었다.

   영숙이는 윤선생님의 멋진 모습 앞에서 자꾸만 자꾸만 땅 속으로 땅 속으로 잦아들어가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청산으로 점심을 먹으러 가자는 말이 나와 사무실 문만 잠그고 밖으로 나서는데 마침 선생님과 나란히 걷게 되었을 때 선생님이 물으셨다.

 

      " 집이 어디죠? "

      " 대전인데요? "

      " 그럼 대전에서 다녀요? "

      " 아니 여기에서 자취해요."
      " 이 동네에서 해요? "

      " 네. 저 아래에서요. "

 

   영숙이의 목소리는 흥분으로 인하여 약간 떨리고 있었다. 

     

<청량함의 끝판왕 스위스 ~ 태어나면 꼭 가봐야할 곳>

728x90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