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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과의사3

스물세살의 수채화 32. 크리스마스 ♣ 영숙이는 아침부터 싱글 ~ 싱글 ~ 진료실에 건너가서 윤선생님에게 말 붙일 시간을 기다렸다. 친구들하고 이야기를 하다가 재미있는 이야기를 들어서 윤선생님에게 꼭 써먹어야겠다는 생각을 했는데 그 생각을 하니까 저절로 웃음이 입가에서 떠나지 않았다. 드디어 아침 일찍 방문하는 환자들이 다녀가고 진료실이 한가해진 11시쯤에 건너갔다. 선생님은 보고서를 작성하고 계셨다. 글씨를 못쓴다면서 여러 번 다시 쓰고 ~ 다시 쓰고 ~ 매번 얼마나 정성을 다해서 작성하는지 모른다. 글씨를 못 쓰기는 못 쓴다. 아무렴 어떠려고. 그런데도 이런 사소한 것으로 성의가 있네 ~ 없네 ~ 일을 잘하네 ~ 못하네 ~ 평가받는다면서 정말 정성을 다한다. 난로 옆에 서서 영숙이는 생글생글 웃으면서 윤선생님을 바라보.. 2022. 9. 9.
스물세살의 수채화 19. 만명리 치과 진료 월요일 아침. 바람이 몹시 부는 아침이다. 출근하는 몸이 바람에 불려 어디로 인가 날아갈 것만 같은 그런 아침이다. 영숙은 전날 밤 마신 술 때문에 아직도 띵한 머리로 부지런히 사무실을 향하여 걸었다. 술이 자신을 위로해 줄까! 기대했던 어리석음을 후회하지 말자. 생활의 쳇바퀴를 돌리다 보면 자연스럽게 쓸데없는 고통 따위는 사라지리라! 영숙은 문득 마음속으로 파고드는 바람의 냄새를 맡는다. 아침 햇살만큼이나 투명하고 아린 바람의 냄새. 고독과 우울한 어두움이 스쳐 지나간 자욱은 바람이 영숙이 마음을 스치고 지나갔을 때처럼 아무 표시 없이 아리고 아프고 그리고 텅 빈 공백 만이 남을 것이다. 치과 진료차가 와서 모두들 만명리로 출장을 갔다. 지금 지난밤과는 상관없이 까닭 없이 기분.. 2022. 8. 27.
< 홀로 선 버드나무 > 30. 크리스마스 크리스마스 캐럴 송이 다방 안을 가득 메우고 있었다. 영숙은 친구 보영이와 함께 음악 소리에 장단을 맞추고 있었다. 오늘 올 나이트를 할 친구들을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한참 보영이와 수경이와 함께 입방아를 찧던 영숙이는 문득 시선을 느끼고 다방 저쪽을 바라보니 그곳에는 목 전체에 상의 깃을 높이 세우고 의자 깊숙이 몸을 파묻은 사람이 이쪽을 건너다보고 있었다. 털목도리와 모자를 쓴 그는 바로 황정두 씨였다. 우울함 자체 인듯한 그의 시선을 망연히 쳐다보았다. 사실 그는 딱히 이쪽을 향한 것 같지도 않고 이쪽을 바라보는지 어떤지도 잘 모르겠지만, 다만 어두운 실루엣처럼 검은색 복장으로 코와 눈 부분만 내놓은 채 혼자 팔짱을 끼고 시간 속으로 가라앉고 있는 것 같았다. 영숙은 가슴이 아팠다. 그의 고독과 .. 2020. 1.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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