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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홀로선 버드나무

< 홀로 선 버드나무 > 20. 풍성한 눈

by 영숙이 2020. 1.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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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성한 눈>   

 

   푸짐한 눈 내리는 소리.

 

   눈을 받아들일 준비가 없는 영숙이에게는 정말 쓸쓸하고 차갑기만 한 눈발들이다.

   창 밖에는 여전히 바람 소리가 몰려다니고

   홀로 선 아름드리 버드나무에 그 긴 가지들이 바람에 맞추어 눈송이 사이사이에서 춤을 춘다.

   

   창문 앞에서 영숙이는 여전히 가슴을 앓고,

   무엇인가 목마르게 기다리며 그러나, 아무것도 없는 가슴으로 텅 비어 쓰라린 가슴으로 자신의 작은 숨소리를 듣는다.

   

   저쪽 길로 잔뜩 웅크린 선생님의 모습이 나타났다.

   땅을 보며 급히 걷는 걸음으로

   면사무소 문을 들어서서도 이쪽은 바라 볼 생각도 안 하고 여전히 땅을 내려다보며 걷는다.

   

   그 모습을 유리창을 통해 바라보며 미소 짓고는

   돌아서서 영숙이는 책상 앞에 가 앉았다.

   책을 들고 이쪽 사무실로 건너온 선생님은 난로 앞에 앉아서 책을 펴 들었다.

 

       " 김양, 점심 먹었어? "

       " 네! "

   

   선생님 얼굴은 아무리 들여다 보아도 싫증이 나지를 않는다.

   하기는 사람들 얼굴은 다 달라서

   가만히 들여다보면 들여다볼수록 많은 것을 알게 한다.

   

   결코 띵하거나 둔해 보이지 않는 적당한 크기의 눈에 쌍꺼풀이 졌다.

   긴 속눈썹이 눈동자를 그림자로 덮는다.

   짙은 눈썹이 남자답고

   입은 약간 작지만 꼭 다물려서 의지가 있어 보인다.

   

   영숙은 저 입을 바라보면 이상하게도 입안에 침이 마르는 것 같은 느낌을 받고는 한다.

   선생님이 만든 선생님의 성이라고 할까?

   아니면 선생님의 가면이나 껍질이라 해도 좋다.

   그 앞에 초라한 모습으로 서 있는 듯한 그리고 그 문을 노크할 것 같은 영숙 자신 때문일 것이다..

 

   치아는 또 얼마나 희고 쭉 고르며 가지런 한지 웃을 땐 정말 보기가 좋다.

   얼굴의 전체적인 윤곽은 표준이다.

   그렇다고 무개성 하지도 않다.

   저 얼굴에 185cm의 키.

   75kg의 몸무게

 

       ㅡ 왜 배우가 되지 않고 답답하고 쫓기기만 하는 의사가 되었을까?

           이상하기만 하다.

           학교 다닐 때는 몸이 더 좋았다고 한다.

          지금은 안정된 분위기지만 학생 때는 플래시 했을 테니 아무리 연상해 봐도 수준급 이상이다. ㅡ

       

   영숙은 난로 불빛에 하얗던 얼굴이 조금씩 상기되어 가는 선생님의 얼굴을 바라보며 생각에 잠겨 있다가 갑자기 웃음이 나왔다.

 

          ㅡ 갑자기 내가 삼류 소설 작가가 되려나? 하기는 중학교 때 박** 작가의 소설을 엄청 읽어 대면서 그런 소설을 쓰고 싶어 하기는 했지 ~ 그녀의 커다란 동공에 빠져서 헤어 나올 수가 없었다. 어쩌고 저쩌고 ~ 그땐 그게 왜 그렇게 멋있고 좋아 보였는지 몰라 ㅎ~ 남의 얼굴을 빤히 들여다보며 혼자 온갖 생각을 읊고 있네. ㅡ

 

   시선을 거두는데 문득 이쪽을 바라보는 선생님의 시선에 또 목이 마르는 느낌이다.

   일어나서 커피 잔에 설탕을 담고 허브차를 따라 들고서 창가로 갔다.

   

   여전히 창 밖에는 바람 소리가 몰려다니고 차분히 쌓여 가는 눈 위로 민원서류를 해 가기 위해서 시골 사람들이 목에 털 목도리를 두르고 털 신을 신고 동그마 하게 먼 곳에서 온 느낌을 묻힌 체 종종거리며 면사무소 안으로 들어갔다.

 

   아침에 일어나 봉창 문을 열고

   눈부시게 빛나는 눈빛에

   실눈을 뜨고

   하얗게 잠든

   숲속 난쟁이네 집을 바라본다.

 

   허리를 구부린 할머니가 부엌에서 나오고

   방문이 빠끔 이 열리더니

   일하러 가는 아들.

 

   할머니가 데워서 댓돌 위에 놓은

   따뜻해진 운동화를 신는다.

   

   눈이 많이 쌓이면 쌓일수록

   더 작아지는 숲 속 난쟁이네 집.

   

   봉창 문만큼 작아진 난쟁이네 집에서

   아궁이에 불 때는 소리가 들려온다.

 

 

   아침에 출근하니 난로에 연탄 불이 꺼져 있었다.

   어제 갈고 갔는데 불구멍을 너무 막아 놓아서 인지 불이 붙지 않고 그대로 꺼져 버렸다.

   번개탄으로 불을 붙여 놓고 추워서 따뜻한 면사무소 사무실에 있는 난로를 찾아갔다.

 

   어제 펑펑 쏟아진 눈이 녹기 시작한다.

   하얀 눈 ㅡ 만약 눈이 하얗지 않고 까맣다면 어떨까?

   사람들이 좋아할까?.

 

 

   난로 앞에 의자를 끌어당겨 놓고 선생님과 앉아서 불을 쬐고 있는데 민원서류를 하려고 시골 사람 한 사람이 들어오더니 민원서류를 신청해 놓고 난로 앞으로 왔다.

   영숙이와 선생님은 따뜻한 난로 불에 몸을 녹이면서 면사무소 안을 둘러보다가 창밖으로 시선을 던지다가 면사무소에서 일하고 있는 직원들을 바라보다가 하였다.

   

   난로 앞에 서 있던 시골 아저씨가 선생님을 보면서 앞으로 크게 될 사람이라고, 얼굴 상이 굉장히 좋다고 말하였다.

 

      ㅡ 아 그래요? 얼마나 좋아요? 어떻게 좋은 데요? ㅡ

 

   선생님은 빙글빙글 웃으면서 대답했고 영숙이도 웃는 얼굴로 평범한 시골 아저씨를 바라봤다.

   지금도 의사 선생님이신데 앞으로 얼마나 더 잘 된다는 거지?

   우리가 쳐다보니까 아저씨는 어떻게 말할까 생각하는 얼굴로 우물쭈물하다가

 

     

      ㅡ 음, 아무튼 크게 출세할 상입니다. 제가 관상을 좀 보거든요. 관상이 정말 좋아요. ㅡ

 

  시골에서는 볼 수 없는 얼굴 상이 기는 하다.

  저렇게 잘 생기고 도시적으로 생겼는데 시골에서 저런 얼굴을 만나기가 쉽지는 않지.

  거기에다가 공부도 잘하고 많이 했으니까 당연히 좋겠지.

 

  아저씨는 영숙이 이야기는 안 한다.

  아마도 여자라서 그럴 것이다.

  그때만 해도 여자는 시집을 잘 가는 게 여자로서 태어난 지상 최대 최고의 과제였으니까.

  그래도 기분이 좀 그랬다. 

 

   선생님은 모르는 아저씨에다 시골 아저씨 말인데도 무척 기분이 좋은 모양이다.

   하기는 앞으로 출세할 상이라는 데 기분 나빠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보건 지소의 난로에 불이 붙어서 따뜻해졌기 때문에 다시 사무실로 돌아와서 월말이라 영숙이는 군 보건소에 보고할 서류를 정리하고 윤선생님도 보건소에 보낼 진료 내역서를 정리하였다.

   의외로 글씨를 못 썼다.

   보통 말하는 졸필인가? 악필인가? 였다.

   그런데 보고에 필요한 종이를 여러 장 가져와서 정성스럽게 몇 번이고 제대로 써질 때까지 쓰고 또 썼다.

 

      ㅡ 뭐하러 그렇게 여러 번 써요? 그냥 보내고 나면 그만인데요. ㅡ

      ㅡ 아냐 이런 서류가 얼마나 중요한데, 서류를 얼마나 잘 작성하느냐에 따라 그걸 쓴 사람에 대한 평가가 달라진다고. 그러니까 깨끗하게 쓸 수 있으면 여러 번 쓰더라도 깨끗이 써서 보내야지. ㅡ

     

   틀린 말은 아니었지만 똑같은 서류를 그토록 열심히 여러 번 다시 쓰기도 어려울 만큼 쓰고 또 쓰는 것을 보고 영숙이는 놀랐다.

   아무리 사소한 것이라도 최선을 다하는 모습은 보기에 좋았다.

   또 못쓰는 글씨라도 여러 번 정성 들여 쓰니까 보기에 좋아 보인다.

 

      ㅡ 선생님은 정말 사소한 것이라도 저렇게 열심히 하는구나. ㅡ

<융플라우 유럽의 Top이라고 써있다, ~ 융플라우를 가기 위해 뚫어 놓은 얼음 터널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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