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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홀로선 버드나무

< 홀로 선 버드나무 > 18.만명리 진료와 우산

by 영숙이 2020. 1.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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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만명리 진료와 우산>  

 

   그날 밤 영숙이는 꿈을 꾸었다.

   

   선생님이 바지 주머니에 손을 넣고 쌀쌀한 얼굴로 서 계셨고 그 선생님한테 영숙이는 빨간 사과가 달린 사과나무 가지를 주었다.

   아마도 딸인가 부다.

   윤선생님은 화요일 아침에 오셨다.

   안양이 물었다. 

     

       " 딸이에요? 아들이에요? "

       " 딸 낳았어요! "

       " 언제 낳았는데요? "

       " 어제 퇴원했어요. 올라가던 날 저녁에 낳았거든요! 여기 태어날 때부터 찍은 사진을 가져왔어요! "

     

   곽양과 안양은 사진을 돌려 보고 있었다. 

   영숙이는 멍한 얼굴로 바라보았지만 사진 좀 달라고는 하지 않았다.

     

        " 사모님이 선생님하고 많이 닮았네요! "

 

   영숙이는 사진을 보고 싶었다. 그렇지만 보여 달라기도 싫었고 그리고 볼 용기도 없이 일어나서 창문 앞을 서성이다가 도로 제자리에 주저앉았다.

   무척 궁금하였지만 사진을 정신없이 들여다보고 있는 곽 양과 안양 얼굴만 쳐다보았다.

   자랑스러운 얼굴로 사진을 내밀었던 윤선생님은 얼굴 표정이 점점 굳어지더니 보란 말도 없이 사진을 받아 챙기고는 창 앞에 서서 밖을 내다보며 서성이기 시작하였다.

 

   곽 양이 누구에게랄 것도 없이 혼자 중얼거렸다.

     

       " 아들 둘에 딸 하나면 딱 알맞은 데요? ".

   

   윤선생님과 서먹 서먹한 채로 또 일주일이 지났다.

   월요일 아침.

   보건소에서 진료차가 와서 만명리로 무의촌 진료를 나갔다.

   선생님은 아직 서울에서 내려오시지 않았기에 군 보건소 소장과 우리끼리 먼저 출발했다.

   만명리 이장 집에서 보건소 소장이 진료를 하는데 답답하도록 더듬거리고 자신 없어했다.

   

      " 지소장 왔나 전화해보고 이리로 오라고 해요! "

   

   옆에 있던 이장이 말했다.

   

       " 전화가 버스 서는 곳에 있는 가게 집 밖에 없어요! "

 

   그곳까지는 10여 분이나 걸린다.

   밖에는 늦가을 비가 뿌리고 바람까지 몹시 불고 있었다. 

   선뜻 나서는 사람이 없어 영숙이 자청했다.

 

      " 제가 갔다 올게요! "

   

    논 사이로 난 빨간 흙길이 빗속에서 무척이나 질척 거리는 시골길을 걸어가 가게에서 보건지소에 전화를 했다.

    전화기 저쪽으로 조급한 비음이 울렸다.

   

        " 여보세요! "

        " 청성 보건 지소입니다. "

        " 여보세요? 저 김양인데요. "

        " 모두 어디 갔어요? "

 

    튀어나오던 비음이 갑자기 낮은 톤으로 무뚝뚝 해졌다.

    기어 들어가는 목소리에 힘을 주어 대답했다. 

 

         " 여기 만명리예요! 보건소에서 무의촌 진료를 나왔는데요! 지금 보건소 소장님이 진료를 하시는데 빨리 오시래요! "

         " 어떻게 가지? "

         " 이쪽으로 오는 버스 타고 만명리에서 내리면 여기에서 제가 기다리고 있을게요! "

         " 알았어요! "

   

   가게에서 고개만 내밀고 버스에서 내리는 사람들을 바라보았다.

   시골 아주머니 몇 사람이 버스 뒤쪽에서 나오고 조금 있다가 키 큰 윤선생님의 회색 양복이 보였다. 바지 주머니에 두 손을 찌른 채이다.

   영숙이는 우산을 펼치면서 가게를 나섰다.

   선생님의 창백한 얼굴이 영숙이를 발견하고는 싸늘한 시선을 아래로, 자신의 발끝을 내려다본다.    

   말없이 지나치려는 윤선생님에게 손에 쥔 우산을 내밀었다.

 

   

        " 우산 여기 있어요! "

 

   아무 말 없이 우산을 받아 펼친다.

   

       " 저쪽이에요! "

 

   영숙이가 가리키는 농로에는 조금 가늘어진 빗줄기가 바람에 휘날리고 있었다.

   농로를 한번 건너다본 선생님은 말없이 우산을 앞으로 내려쓰고 여전히 고개를 숙인 체 걷기 시작하였다. 

 

   바람이 몹시 불어 영숙이의 초록색 원피스 옷자락을 휘날린다.

   영숙이는 허리를 구부리면서 우산을 앞으로 끌어당겼다.

     

      ㅡ 윤선생님의 우산 속으로 들어갈 수만 있다면, 저 차가운 공간 안에 설 자리가 있다면 ㅡ

   

   영숙이는 높다란 윤선생님의 우산 밑으로, 그 날개 아래로 들어서는 착각을 한다.

   마음속으로 간절히 원하면서도 마음뿐.

     

      ㅡ 같이 쓰고 가요! 선생님! ㅡ

   

   입술로 새어 나올뻔한 말소리를 삼킨다.

   여전히 영숙이는 혼자 우산을 쓰고 걷고 있었으며 몹시 추웠다.

 

   자신의 우산을 접고 선생님의 날개 아래 쉬고 싶으면서도, 여전히 영숙이는 혼자 우산을 쓰고 걷고 있었다.

   선생님의 얼굴을 힐끗 거리며 쳐다보니 선생님은 차갑고 흰 얼굴을 무표정하게 숙인 체 걷고 있었다.

   옆에 누가 있는지조차 의식하지도 않는 얼굴이다.

   

   몹시 추웠다.

   바람이 치마 말기를 감고, 가슴속으로 파고들었다.

   이 붉은 흙길이 영원할 것처럼 춥다.

   선생님은 언제나 저렇게 추운 얼굴로 혼자 걸어갈 것이다.

   자신의 길을 묵묵히.

   영숙이와는 전혀 상관없는 길을.

   영숙이도 역시 자신의 길을 혼자 걸어갈 것이고......

 

   이장님 집 댓돌에는 사람들의 하얀 고무신들이 빼곡히 놓여 있었다.

   진찰 받으려고 모인 마을 사람들 사이에서 청진기를 들고 

   진땀을 흘리던 보건소장은 지소장을 보더니

 

       " 살았다. "

 

   하는 표정으로 홀가분하게 무거운 짐을 벗듯이 얼른 일어섰다.

   윤선생님이 청진기를 귀에 꽂고 환자를 보기 시작하니까 비로소 진료를 제대로 하는 분위기가 된다.

   안심이다.

   

   오후부터는 비가 개였다.

   다리가 아프다고 하는 디스크 환자가 여럿이다.

   보건소 치료실에 김간호사는 내내 영숙이에게 좋지 않은 얼굴을 하고 있었다.

   곽 양이나 안양이 전화 심부름을 하지 않고 간호사인 영숙이가 한 때문이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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