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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홀로선 버드나무

< 홀로 선 버드나무 > 39. 배려

by 영숙이 2020. 1.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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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려>   

 

   사무실 바닥에 물을 뿌린 후 빗자루로 쓸고 밖의 청소도 마치고 면사무소에서 가져온 허브차는 난로 위에서 기분 좋게 끓고 있었다.

   창 밖에는 부드럽게 버드나무 가지가 춤을 추고 있었다.

 

   영숙이는 창문 앞에 서서 창밖을 보았다.

   부드럽게 춤추는 버드나무 가지들.

   윤선생님과 영숙이는 헤어져야 한다.

 

   날씨가 풀리면서 환절기 때문인지 아침부터 환자가 계속 이어졌다.

   영숙이는 건너가서 선생님을 도와주기도 하고 또 환자 진료하는 것도 지켜보았다.

   오전에 올 환자들이 다 다녀 갔는지 진료실이 조금 한가 해졌다.

   영숙이는 진료실 난로 연통을 슬쩍슬쩍 만지면서 난로 옆에 서 있었다.

   선생님은 다녀간 환자들의 진료 카드를 정리하면서 영숙이한테 말을 걸었다.

 

       " 김양 내 비서 할래? 나중에 내 비서 하면 어떨까? "

       " 비서요? "

       " 응. 비서. "

       " 사실은 선생님. 저 임용 시험 치르고 발령 날 때까지 여기서 근무하는 거예요. "

       "  임용? 무슨 임용? "

       " 고등학교 임용 시험 쳤거든요? 합격했는데 발령 날 때까지만 여기서 근무하면서 기다리고 있는 거예요. "

       " 고등학교 선생님? 고등학교 선생님이 된다고? "

       " 네. 고등학교 교련 선생님요. "

       " 와우. 김양이 고등학교 선생님이 된다고? "

 

   선생님은 영숙이가 이 보건지소에서 나가야 한다고 생각했나 부다.

   이 작은 사무실에서

   볼 거라고는 창 밖의 홀로 선 버드나무 밖에 없는 이 황량한 곳에서 어떻게 하면 나갈 수 있을까를.

     

      ㅡ 비서 하겠느냐고 ㅡ

   

   벌써 여러 번 물으셨다.

   그때마다 영숙이는 빙글 ~ 빙글 ~ 웃다가 드디어 오늘 선생님에게 사실을 이야기한 것이다. 

  

   

   며칠 후 토요일 오후.

   보건지소를 퇴근하고 선생님이랑 같이 대전으로 나왔다.

   선생님은 영화 보여 주겠다고 ~

   진짜 영화 보러 가자고 여러 번 이야기하였었다.

   그 날은 드디어 윤선생님이 영화 보러 가자고 한 날이다. 

   

   선생님은 망설이고 계셨다.

   

   손님이 거의 없는 다방 앞쪽 자리에 앉아 두 명의 다방 레지가 열심히 혼자 앉아 계시는 선생님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어떻게 할까를 생각하고 계시는 선생님의 얼굴을 화장실에서 나오면서 발견하였을 때 어쩌면 선생님의 저런 면 때문에 더욱 마음이 이끌리지 않았나 싶다.

   

   영화 구경시켜 준다고 ~ 그것을 어쩔까 주저하고 계시는 분.

   

   자리에 앉으면서 시선을 아래로 깔고 생각에 잠겨 계시는 선생님이 바라 보기를 기다렸다.

   만약 선생님이 망설임이나 거리낌 없이 선생님의 감정을 그대로 노출하셨더라면 어쩌면 영숙은 거부 반응을 나타냈을지도 모른다.

   

   드디어 선생님이 시선을 들어 영숙이의 얼굴을 바라보자 영숙이는 슬며시 장난스럽게 웃었다.

   그 순간,

   결정을 하셨는지 망설이던 기색을 떨구어 버리 듯,

   그러나 선생님은 여전히 심각한 얼굴로 대단한 이야기를 하듯 말을 꺼내었다.

     

      " 어디 갈까? "

 

   영숙은  그 말과는 상관없이 중얼거리듯 이야기를 하였다.

 

      " 장난 좀 쳐야겠는데요. "

      " 선생님 우리 있잖아요. 나이트클럽에 가요. "

 

   선생님은 그 말에는 아무런 대꾸 없이 가만히 영숙이의 얼굴을 바라보며 생각에 잠기더니 의자 깊숙이 허리를 묻고 앉아서는 천천히 말하였다.

 

      " 김양 ㅡ 그런데 가면 못써! "

 

   영숙이는 그 말을 듣고 조그맣게 헤헤거렸다.

 

      " 놀라시기는요! "

 

   선생님은 시선을 탁자 위로 떨어 뜨리며 여전히 굳어 있던 얼굴이 이제는 그늘까지 내리는 것이었다.

   선생님의 얼굴 표정 하나하나를 세어 보던 영숙이는

 

       " 장난이라고 안 했으면 진짜인 줄 알고 큰일 날 뻔했잖아요. "

 

   웃고 있는 영숙이를 바라보던 선생님의 표정이 그제야 풀리면서 말을 건네었다.

 

      " 김양, 집에 전화 해. "

      " 예! "

   

   집에 전화를 하니 엄마가 받으셨다.

   전화를 하면서 선생님을 바라보니 담배를 피워 무시고 영숙이 무슨 이야기를 하고 있는지 알아낼 듯 시각과 청각을 기울여 이쪽으로 보내고 있는 따뜻한 시선을 느낄 수 있었다.

 

      " 뭐라고 전화했어? "

      " 좀 늦게 들어간다고요. "

      " 누구하고 있는지 안 물어보셔? "

      " 뭐 하느라고 늦게 들어오느냐고 물으시던데요. "

      " 그래서? "

      " 그냥 영화 보고 들어 간다고 그랬죠. 뭐. "

      " 뭐라고 안 하셔? "

      " 알았다고 하면서 일찍 들어오라고 하시네요. 제가 평소에 얼마나 신용을 얻어 놓았는데요. "

 

   선생님은 밝게 빙긋 웃으면서 영숙이의 얼굴에 시선을 고정시킨 체 희미하게 고개를 끄덕이셨다.

   그리고 마지막 담배 연기를 깊게 들여 마셨다가 천천히 내뿜으면서 재떨이에다 담뱃불을 비벼 끄시고 환한 모습으로 일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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