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소설/홀로선 버드나무

< 홀로 선 버드나무 > 40. 연애세포

by 영숙이 2020. 1. 26.
728x90
반응형

   

<연애세포>

 

   극장을 가기 위해 대전 역 앞을 지나가는데 토요일 오후라서 지나가는  사람들이 서로 부딪힐 것처럼 많았다.

   윤선생님과 영숙이는 사람들과 부딪히지 않도록 이리 저리 비껴 걸으면서 너무 멀리도, 너무 가까이도 아닌 적당한 간격을 띄우고 걷고 있었다. 

   선생님이 혼자 말하는 소리가 들렸다. 

 

      " 사람들이 우리를 쳐다 보고 있는 것 같아도 그렇지 않아. 다른 사람한테 관심이 없어서, 우리를 보고 있는 것 같아도 실은 보고 있는 게 아냐. 우리를 쳐다본다고 느끼는 건 그냥 우리 생각일 뿐이지. "

 

   윤선생님은 다른 사람들의 시선이 부담 스러웠었나 부다.

   우리를 바라 본다고 생각해서.

 

   하긴 윤선생님이 처음 오시던 날 생각해보면 사람들이 선생님한테 집중해서 바라보고 있었고 또 그렇게 사람들이 집중해서 바라보는 것을 회피하던 시선을 생각해보면 아무 의미 없이 그냥 바라본다고 해도 그런 시선들이 부담스러울 수도 있겠다. 

 

   그런 면에서는 영숙이가 좀 더 자유로운 것 같다.

   물론 사람들의 집중이나 관심을 받아 본 적이 없기는 하지만 바라본다 해도

     

      ㅡ 바라보면 어때? 무슨 상관이람 ㅡ

   

   평소에 사람들의 시선에 굳이 의미를 부여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는 편이라서 사람들의 시선에 좀 더 자유로웠던 것 같다.

 

   윤선생님은 결혼한 남자가 젊은 여자랑 거리를 걸어 다니는 게 부담스러웠고 영숙이는 윤선생님처럼 멋진 남자랑 거리를 걸어가는 게 자랑스러웠나 부다.

 

   극장에 가서 윤선생님이 표를 끊는데 제목이

 

      ㅡ 디어 헌터 ㅡ

 

   러시안 룰렛 게임으로 유명한 영화.

   꽤 유명한 영화인데 솔직히 영숙이는 저런 영화를 왜 보는지 모르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냥 윤선생님이랑 같이 영화 보는 게 좋아서,

   선생님 옆자리에 허리를 세우고 동그마니 앉아서 영화를 보다가 선생님의 얼굴을 지켜보다가 영화를 보다가 하였다.

   윤선생님은 미색 잠바를 입은 모습으로 의자 깊숙이 자리를 잡고 환한 얼굴로 영화를 보고 있었다.

 

      ㅡ 영화가 정말 재미없구나. 저런 영화를 왜 돈 주고 보는 거야. ㅡ

 

   영화를 보다가 가끔 슬쩍 고개를 돌려 선생님의 얼굴을 훔쳐보기도 하였지만 영화 후반부에 가서 무서운 장면에서는 저절로 집중이 되었다.

   영숙이 좀 더 연애를 해본 사람이라면 러시안룰렛 할 때

 

       " 엄마야! "

 

   하면서 좀 더 선생님 쪽으로 몸을 기울이거나 무서워하거나 연약해 보여야 했어야 하는 건 아니었을까?

   

   그냥 무서웠고 저런 영화를 왜 보여 주는 거지?

   그러다 영화가 끝났다.

 

   선생님은 유명한 영화라서 그런지 참 재미있었다고 말하면서 극장 밖으로 나섰다.

   시계를 들여다보더니 서울로 가는 마지막 버스가 10시 30분인데 10시라면서 좀 빨리 걸어야겠다고 했다.

 

   빠른 걸음으로 다시 대전역 앞을 지나 영숙이는 집으로 가는 버스를 타는 시내버스 정류장으로 가고 선생님은 서울로 가는 고속버스가 있는 고속 터미널로 버스를 타러 갔다. 

   

   그날 밤.

   선생님이랑 함께 영화를 보았다는 그 단순한 사실 때문에 들떠서였는지 쉽게 잠이 들지 않았다.

 

   이튿날 아침.

   아침밥을 먹는데 아버지가 말했다.

 

       " 너 요새 연애하냐? "

       " 예? 누가 그래요? "

       " 옥천 보건소 사람들이 그러던데? 너 요새 연애한다고. "

       " 아니 그 사람들이 내가 연애하는 걸 본 적 있대요? 보건소 누가 그런 말을 해요? "

       " 아니 너 보건소장이랑 연애한다고 해서. "

 

   대전 역 앞을 지날 때 아버지가 보았는지, 누가 보았는지, 뭐라고 말했는지, 아니면 평생 바람을 피운 아버지의 연애 세포가 각별했는지는 알 수 없다.

   더 이상 아버지도 묻지 않았고 영숙이도 묻지 않는 걸 굳이 더 말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ㅡ 연애한다는 증거가 어디 있담. ㅡ

 

   그렇다 해도 영숙이는 속으로 뜨끔 했다.

   영숙이 스스로 요즘 내내 자신이

 

      ㅡ붕붕 떠다니고 있다. ㅡ

   

   는 생각을 했었으니까.

   그걸 뭐라고 꼬집어 말할 수 있을까나

   

   그냥 영숙이의 연애 세포가 깨어나서 영숙이의 일상이 평소와는 다르다고 하면 될까나.

   세상이 달리 보이고 있었다고 하면 될까나.

728x90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