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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홀로선 버드나무

< 홀로 선 버드나무 > 41< 세빌리야의 이발사>

by 영숙이 2020. 1. 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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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빌리야의 이발사>

 

    분홍 모직 새 옷.   

   

    3월 훈풍이 불어오면서 영숙이네 집에 세 들어 사는 양장점 주인에게 엄마는 비싼 100% 모직 천으로 봄옷을 맞춰 주셨다.

   

    분홍 모직 투피스는 봄 옷이었고 그 옷을 입고 처음 출근하던 날.

    청성에서 버스를 내려 마을로 걸어 들어가는데 버스에서 방금 전에 내렸던지 보건지소를  향해 가던 선생님과 안양이 마을 입구에 서 있었다.

    멀리 걸어 오는 모습을 봄 볕에 눈이 부신 듯 바라보시던 선생님은

 

       " 세빌리야의 이발사에 나오는 여자 주인공 같네. "

 

    포근한 봄바람이 23살의 영숙이 마음에 가득하였고 처음으로 제대로 맞춘 투피스는 23살의 영숙이에게 날개처럼 느껴졌다.

   

    이제 선생님은 3월 말이면 청성 보건 지소를 떠난다.

    선생님이 청성 보건 지소를 떠난 후에는 선생님의 마음에 이곳의 어떤 모습이 남을까나.

   

    자그마한 면사무소 뜰에 우람하게 홀로 서 있는 버드나무의 그 긴 나무줄기 사이로 머리 감듯  쏴ㅡ아 흔들며 지나가는 바람소리 일까.

    하얀 보건 지소 건물 뒤로 그림처럼 서 있는 초록색의 교회 종탑에서 해 질녘이면 들려오던 그 은은한 교회 종소리 일까.

    버드나무 가지에 앉아 들려 주던 까치들의 울음소리들 일까.

 

    창문 앞에 서성이며 창 밖을 바라 보던 회색 양복의 윤선생님 자신의 모습일까?

    보건지소 건물 뒤 언덕 위에 초록색 뾰족 교회 종탑일까?

    세빌리야의 이발사에 나오는 여주인공 같다고 말한 분홍 모직 새 옷을 입고 장갑을 끼고 손을 모으고 서 있었던 영숙이의 모습일까.

 

    윤선생님은 미술 선생님이신 부인을, 

    개미를 검지로 비벼 죽이는 어린 아들들을 사랑했다.

    아니 그 보다도 더 자신의 생활을 

    안정된 자신의 생활을 사랑했고,

    삭막한 청성 보건 지소에서 영숙이를 만난 것을 다행으로 생각하면서도 

    서울 응암동 뜰이 있는 미니 이층 둘레를 벗어 나지 못했다. 

 

     꿈을 흔들어 깨우고,

     무지개를 손에 쥐어 주면서,

     창 밖에서 홀 ㅡ 로 바람에 흔들리는 버드나무처럼.

 

     추운 어깨로, 

     육개월 전 방금 떠날 듯이 오신 모습 그대로,

     가방 하나에 반생의 결혼 생활을 챙겨 훌훌 가버릴 수도 있다는 부인 곁으로 

     미래를 함께 하기 위하여

     새장에 노랑 잉꼬새 한쌍을 넣어

     무심히 그렇게 가버릴 것이다.   

 

    창 밖의 날씨는 참으로 푸근하게 풀려 버드나무는 거의 움직이지 않고 조용히 가라앉아 있다.

     허브 차가 아직까지 난로 위에서 여전히 끓고 있다.

     봄바람과 더불어 울려오는 마지막 음악처럼

     

     봄바람이 불기 시작한다.

     홀로 선 버드나무.

     바람 때문에 버드나무 긴가지들이 바람에 이리저리 휩쓸리고 있다.

 

     언제나 처럼 바람은,

     느티나무는,

     서로에게 이끌리지도,

     독립하지도 않은 체,

     부드러운 일체가 되어 있다.

 

     사무실 안에 비발디의 사계가 흐르고 있다.

     영숙은 창 앞에 서서 봄바람에 휩쓸리는 느티나무의 가지들을 내다보면서 

     슬퍼하고 있다.

     봄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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