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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이비붐 세대 탐구 생활/또순이 어렸을 적에

또순이 어렸을 적에 87 - 선생님 1,2,3,4,5

by 영숙이 2019. 11.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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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6. 선생님 1,2,3,4,5

 

1. 선생님 1 - 배석칠 선생님

 

 

    선생님은 군서 초등학교에 초임 발령을 받으셨다.

    생각해보면 교육대학이 그때에는 2년제 였으니까

    졸업하고 군대 갔다오면 23살. 아니면 21살.

    결혼하셔서 바로 오셨다고 했다.

    정확히는 모르지만 20대 초반이셨다.

    그러면 지금 살아 계시면 70대 중반의 연세.

 

 

    선생님은 젊은 선생님이셔서

    여러가지 신식 정보를 많이 알고 계셨다.

    그중에서 기억에 남는 것은

    사회 시간 이었는데

    미국에서는 돈 대신에

    카드라는 것을 가지고 쓴다고 하였다.

    우리나라도 앞으로 그런 카드를 쓰게 될 것이라 하였다.

 

 

    카드라는 것은 명함만한 크기로

    플라스틱으로 만들어져 있는데

    거기에  돈에 대한 정보가 있어서

    물건을 살 때

    기계에다 넣고 결재하면 된다 하였다.

 

 

    또순이는 아무리 상상하여도

    조그만 카드로 물건을 산다는게

    정말 정말 이해가 안되었다.

    돈이 아닌 명함만한 플라스틱으로 결재한다니

    그런게 어떻게 돈을 대신 한다는건지

    1969년도의 또순이에게는 정말 이해불가였다.

 

 

    소비를 부추기기 위하여

    외상으로 미리 물건을 주고

    돈은 나중에 받는다는 말씀도 하셨다.

    돈이 생길 때 사면 되지 

    뭐하러 돈도 없는데 미리 사놓을까나?

 

 

   선생님 말마따나 그건 우리나라와는 상관 없는

   멀고 먼  태평양 바다 건너

   미국에서나 있을 법한 일인 것 같았다.

 

 

   또 하나 하이타이라는 비누 가루를 쓰는데

   이건 물에 분해가 안되고

   물속에 그대로 남아 물을 오염시킨다고 하였다.

   그렇기 때문에 하이타이를 쓰면 안된다고 하셨다.

 

 

   선생님 말씀대로 지금 우리는 카드를 쓰고 있다.

   우리 세상에 있을 법하지 않았던 이야기가

   현실이 되어 있다.

   

   물건도 미리 사서 쓰고 있다.

   소비를 부추기기 위하여 물건을 미리 주고 돈은 나중에 받는다.

   소비자를 위한게 아니고

   진짜는 생산자를 위한 것이라는게 맞는 말인 것도 같다.

 

   하이타이류로 물도 많이 오염 시켰다.

   공장 폐수도 있지만

   생활오수도 만만치 않다.

   아는 사람이 주택에 사는데

   하수도가 막혀서 열고 보니

   녹지 않은 하이타이가 배관을 메워서 물이 내려 가지 않았다고 했다.

 

   얼마 전에 영국에서는

   하수도를 메운 기름덩어리에  대한 보도가 있었다.

   길이 64m 오물덩어리 ' 팻버그 ' 발견

   ' 팻버그 '는 기름을 뜻하는 단어 ' 팻(fat) ' 과 빙산을 뜻하는 단어 ' 아이스버그(iceberg) ' 의 합성어 .

 

 

2. 선생님 2 - (수학 공부 안하게 된 일)

 

   

   중학교 들어 가서 얼마 지나지 않았을 때 였다.

   수학 시간에 또순이가 떠든다고 수학 선생님이 불러 내서 손바닥을 때렸다.

   또순이는 정말 떠들지 않았는데  나가서  맞은게 너무 억울했다.

   그냥 옆에 앉아 있는 애가 수학 필기 하는 것을 들여다 본것 밖에 없는데

   갑자기 나오라고 하여 왜 나오라는지 얼떨떨 한데

   떠들었으니 손바닥 내놓으라 했다.

   얼결에 손바닥을 내 놓았고 막대기로 2~3대 맞았다.

 

 

   정말 떠든게 아니었다.

   나갈 이유도 없었는데 선생님이 나오라 하니까 나갔고

   손을 내밀라고 말해서 내밀었고

   결국 손바닥을 맞았다.

 

 

   또순이가 할 수 있는

   수학 선생님에 대한 반항은

   수학시간에 수학 공부를 안하다는 것이었다.

   어리석음의 극치를 생각해 낸 것이다.

   

 

   공부를 안한다는 것은

   배워야 할 것을 배우지 않는 다는 것이고

   배우지 않으면 배우지 않은 자의 손해인 것을.

   아직 어리고 깊이 생각할 줄 모르는 어린 소녀의

   매우 어리석고 치기어린 결정이었다.

   

 

   그 이후 수학 시간에는 수학공부를 안하고

   딴 짓을 하고 놀았으며

   결국 중 2 때 꼭 배우고 넘어가야 할 수학을 건너 뛰어서

   그 덕분에 기본적으로 알아야 할 수학을 몰라

   아무리 노력 해도 나중에는 회복 불능 수학이 되었다.

 

 

3. 선생님 3 - 체육 선생님의 때 검사

 

 

    체육 선생님은 공부 시간에 손과 팔에 때 검사를 하였다.

    손과 팔이 까맣거나 때가 있다고 생각하면 손에 든 막대기로 ' 찰싹 ' 때렸다.

    맞는 게 아프다기 보다 모두들 긴장하면서 선생님을 바라 보고 있는데

    때가 있다고 맞으면 엄청 자존심이 상하는 일이었다.

 

 

    체육시간이 있기 전 날에는 목욕탕에 갔었다.

    목욕탕에 가면 같은 반 친구들도 만났다.

    분단 건너 옆 친구를 만났는데

    때 검사에서 그 친구가 체육선생님 손에 있는 작은 막대기로 ' 찰싹 ' 맞았다.

       " 너 어제 목욕 했잖아? "

       " 아! 몰라! "

    생각해 보면 겨울이라 건선 피부인 아이들은 목욕을 해도 피부가 하얗게 피어 있었다.

    그런걸 때가 있다고 오해해서 ' 찰싹 '  맞았으니 아이 기분이 어땠을까?

    아이는 화가 난 우울한 얼굴로 창앞에서  밖을 바라보고 있었다.

    약간 피부가 까무잡잡하고 쌍커플진 눈이 커다란 아이였다.

   

 

    체육 선생님은 또순이네 학교로 초임 발령 받아 온 젊은 선생님이셨다.

    또순이네 첫 수업에 오셔서

    또순이가 옆의 친구랑 무슨 이야기를 하고 있었는데

      " 너 왜 웃어? 선생님이 이야기하고 있는데 웃어? 나와. "

    짝지랑 말하면서 잇몸을 보인 것도 같다.

    나가서 손바닥으로 머리를 ' 찰싹 찰싹 ' 두번 맞았다.

    그 이후  체육 선생님이  무식해 보였다.

    수업하면서 칠판에 좀 쓰고는 어제 밤새 외운거라고 말할 땐

    정말 무식해 보였다.

    때 검사도 체육 선생님은 즐기는것 같았다.

    웃음기 머문 얼굴로 손등과 팔을 검사하고

    아이 얼굴을 보면서 막대기로 ' 찰싹 ' 때렸으니까.

 

 

    10년이 지난 후 처음 교련 교사로 또순이가 발령 받아

    1학년 6반 담임이 되었다.

    고등학교 와서 얼마 안 되었던 때라서

    아이들도 긴장하고 무척 열심히 하려고 했었는데

    어떤 선생님이 또순이한테 얕잡혀 보이면 안된다고

    애들을 잡으라 하였다.

    애들 트집 잡을게 없어서

    교무실에서 교실로 아침 조회 하러 갈 때

    언덕 쪽에서 보면 교실 안이 보였었다.

    교실 안에서 일어나서 돌아다닌 애들 나오라 하고

    그때 나온 애들이 교실에서 평소 활발하고 자기 주장이 강한 애들이었는데,

    누가 아침 자습시간에 교실 안을 돌아 다니랬냐며

    손바닥 내 놓으라 해서 때렸던 기억이 난다.

   

 

    체육선생님도 기선 제압 때문에

    또순이 웃었다면서

    ' 찰싹찰싹 ' 때렸던게 아닐까?

   

 

        "그때 맞았던 애들아! 선생님이 미안하다! "

   

 

   지금 그 아이들은 57세 전후의 할머니들이다.

   손자 본 아이들도 여럿일 것이다.

   또순이는 아직도 초임 발령 때 썼었던 교무수첩을 가지고 있다.

   거기에는 아이들 사진이 다 붙어 있다.

   가끔 길에서 50대 후반의 할머니들이 또순이를 쳐다보면서

   알듯 말듯한 미소와 표정을 지으면

   저 애도 혹시 초임때 1학년 6반 이었을까? 생각하고는 한다.

 

 

   교련 시간에 제식 훈련 때문에 운동장에 학생들 세워 놓고

     ' 움직이면 3대, 웃으면 3대, 말하면 3대 '

   실제로 움직이면 3대

   웃으면 3대

   말하면 3대를

   불러내서 막대기로 손바닥을 때렸었다.

   지금 생각하면 ' 말도 안되는 정말 부끄러운 일 ' 이다.

 

 

   지난 번 동네 사우나 갔는데

   저쪽에서 아줌마 둘이 샤워기 앞에 붙어 앉아서

      ' 움직이면 3대, 웃으면 3대, 말하면 3대 '

   그러면서 ' 큭큭큭 ' 웃고 있었다.

   또순이도 들으면서 ' 쓴 웃음 ' 이 났었다.

   사실이었으니 뭐라 할말도 없었지만

   아는척 안해서 감사할 뿐 이었다.

 

 

4. 선생님 4. - 음악 선생님 ( 장녀가 잘해야지! )

 

 

   음악실은 학교 건물 끝에 널찍한 강당에서 수업을 했었다. 

   음악 선생님은 아주 활발하게 생활을 할  중년 아줌마 선생님이셨다.

   수업 시작 종이 치기 전에 음악실에 앉아 있어야 했는데

   그날은 4명의 아이들이 선생님이 들어 오셔서 출석 체크 한 후에 들어 왔었다.

   

 

   선생님은 그 아이들을 선생님이 앉으신  피아노 옆에 나란히 세워 두고 훈계를 하셨다.

 

 

     ' 왜 늦게 들어 왔느냐! 어디 갔다가 늦게 왔느냐! '

  가 아니고

     " 너 몇째 딸이야? "

  하고 한사람 한사람 물어 보셨다.

  한 아이가 ' 맏딸 ' 이라고 하자

    " 장녀가 잘해야 동생들이 본을 받아서 다 잘하는 거야! "

 

 

  또순이는 뒤 쪽 자리에서 듣고 있었는데

     " 장녀가 잘해야 동생들이 본을 받아서 다 잘하는 거야! "

  이 말에 번개를 맞은 거 처럼

     " 아! 장녀가 잘해야, 동생들이 따라서 잘하는구나! "

  하고 생각하게 되었다.

 

 

  음악 선생님은 분명 무심코 평소에 자기 아이들한테 하듯이

  늦게 온 아이들에게 훈계를 하셨을 것이다.

  그렇지만 또순이 주위에서 그 누구도 그런 소리를 해준 적이 없었다.

  음악 선생님이 말씀 하신 순간

  또순이 한테 하는 소리처럼 들렸다.

  아니 또순이가 앞으로 해야 할 일을 말씀하시는 거 같았다.

 

 

  그 이후 음악 선생님의 말씀을 명심하게 되었는데 

  문제는 잘한다는 것을 물질적인 면에서만 생각 해서 했다는 것이다.

  영적인 문제는 생각도 못했지만

  영적인 일이 그렇게 중요한 일이라는 것을 알지도 못했다.

     ' 사람은 아는 만큼 보이고, 생각하고, 아는 만큼만 변할 수 있다! '

  장녀로서 미치는 영향이 그저 잘 먹고 잘사는 것 만을 알았으니까

  잘 먹고 잘 사는 일에 만 집중 시켰던 것 같다.

 

 

  행복과 기쁨이 무엇인지 몰랐다고 할 수 있다.

  인생은 한번 지나가면 돌이킬 수 없으니

  물질적인 풍요만이 행복과 기쁨이 아니란 것을

  진즉에 알았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5. 선생님 5 - 이강일 선생님 (또순이 생애에 영향을 준 선생님)

 

 

몇 년 전 금강 휴게소에서 이강일 선생님을 만났다.

 

 

정확히 말하면 만난 것이 아니고 먼거리에서 식사 하시는 모습을 뵈었다. 

왜 그랬는지 모르지만 인사하러 가지 않았다.

 

금강 휴게소 2층에 롯데리아에서 커피를 사서 그 앞에서 마시고 있는데 자꾸 누군가가 바라보고 있는 느낌이 들었다.

 

금강 휴게소 2층에서 금강과 휴게소 안에 사람들을 둘러 보면서 자연스럽게 또순이를 바라보고 있는 시선을 따라 이층 한식 전문 식당으로 시선을 옮겼는데 거기에 이강일 선생님이 식사를 하고 계셨다.

 

-정년퇴직 하셨을텐데-

 

선생님은 아까부터 또순이를 바라보고 계신 것 같았다.

 

얼굴 모습은 그대로였지만 무슨 일인지 거의 식사를 하지 않고 계셨고 옆에는 따님이신지 선생님을 꼭 닮은 젊은 여성이 일어서서 식사 시중을 들고 있었다.

 

선생님이 좋아하는 반찬을 앞으로 옮겨 놓고 있었지만 선생님은 거의 먹지 않는 것처럼 보였다.

 

이쪽을 보고 계시는 선생님은 눈으로 많은 말씀을 하고 계셨다.

 

또순이도 그냥 조용히 선생님의 움직임을 바라보고 있었다.

 

처음 교사 발령을 받고 울산으로 출발하던 날 고속버스터미날 표 끊는데서 뵈었고 25년 만에 뵙는데 왜 달려가지 못했을까?

 

여제자들이란? 

다른 사람은 안그렇겠지만 또순이는 무언가 이끌리듯 이층에 와서 커피를 마셨고 선생님을 발견했지만 인사하러 가지 않았다.

 

10년 전 쯤에 시집과 편지를 보내 드리고 이제 바로 저쪽에서 식사 하고 계시는데 인사도 안하고 있다니 참 ㅠㅠㅠ

 

아마도 또순이는 또순이가 하고 싶었던 일과 달리 다른 길로 너무 멀리 달려 와서 그랬을지도 모른다. 

굳이 변명하자면 그냥 왠지 또순이 자신이 초라해보이고 전혀 별개의 또순이를 보고 있었던 것처럼 여겨져서랄까?

 

 

선생님은 고등학교 2학년 때 담임선생님이시다.

 

고등학교 입시 시험에서 체력장을 볼 때 선생님이 달리기 측정을 하시기 위해 의자에 앉아 계셨다.( 그시절에는 가고 싶은 학교에 가서 입시 시험과 더불어 체력장을 했었다.)

 

옆에 있는 학생들이 시간을 부르고 적는데 확인하느라 들여다 보시면서 조용히 웃고 계시는 약간 까무잡잡한 선생님의 잘생긴 모습이 눈에 들어 왔었다.

 

입학 후 선생님은 국어 선생님이시고 우리 학교 유일한 총각선생님이라는 것과 아이들의 소리 없는 인기를 독차지 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1학년 때 학교 하키부에서 선수를 모집하는데 또순이가 운동을 잘 한다고 체육선생님이 불러서 두달 간 하키 운동을 한적이 있었다.

 

어느 날. 선배들이 후배들 교육이 안되어 있다고 하키 스틱으로 돌아가면서 엉덩이를 때렸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또순이가 달리기가 된다고 코치가 센타에 배치하는 걸 못마땅하게 생각한 선배들이 코치에 대한 항의로 때렸다고 한다. 체육 특기생으로 들어 간 것도 아니고 굳이 맞아 가면서 운동을 할 이유도 없었다. 

 

다음날부터 하키 연습 안 가고 그만 두었는데 2학년 때에는 우열반으로 반을 나눈다고 하여 그때부터 공부에 신경을 쓰기 시작하였다.

 

2학년 개학 하는 날 2학년 7반 담임이 부르더니 우수반인 7반에서 열등반인 3반으로 가야 한다고 또순이가 바로 경계선에 있는데 어쩔 수 없이 가야겠다고 했다. 1,2반은 진학을 하지 않는 실업반이고 3,4,5,6반은 열등반 7,8,9,10은 우수반이었다. ( 박정희 대통령의 처남인 육영수 여사의 배다른 남동생이 제주도 초등학교에 가서 공부가 우수한 아이들을 우수반으로 만들어 우수반 리본을 가슴에 달게 했다는 그래서 우열반 배치를 한다는 소문이 있었다.) 

 

울면서 상담실 창문 앞에 서서 조례를 하고 있는 밖을 바라 보고 있는데 조회대에서 담임 선생님 발표하는 소리가 들렸다.

열등반인 3반 담임 선생님은 이강일 선생님이셨다.

 

교무실에 가서  - 저 3반 가겠습니다. - 했더니 깜짝 놀라서 선생님이 안경을 잡고 위로 치켜 올리면서 바라보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홀어머니에 외아들이었던 이강일 선생님은 우리가 입학 하자마자 결혼해서 벌써 딸이 하나 있었지만 우리들이 선생님을 좋아했던 마음이 떠난 것은 아니었다.

 

여전히 선생님의 조용한 성품이 좋았고 조용하게 미소 짓는 모습이 멋있고 항상 변함없는 모습인 단정한 용모에 마음이 이끌렸다.

 

또순이는 선생님 덕분에 문학소녀가 되었다. 

중학교 때 게시판에 친구가 쓴 비에 관한 시 를 보고 막연히 ' 난 저 시보단 더 잘 쓸 수 있을 것 같다 ' 는 생각을 했었는데 그렇게 글을 쓰기 시작하였다.

 

이강일 선생님이 좋아서, 

이강일 선생님에게 잘 보이고 싶어서, 

글 쓰는 문학소녀가 되어 있었다.

 

한번은 집에 세를 들어 사는 다른 학교 다니는 언니가

또순이가 하도 이강일 선생님을 자랑하니까

앨범 좀 보여 달라고

어떻게 생겼는지 좀 보자고 하여서

졸업생인 사촌 언니 앨범까지 빌려와서

이강일 선생님을 보여 주었는데

그 언니 단칼에

   " 뭐가 잘생겼어? 별루네 "

이 말 한마디에 혼자서 찔찔 짜다가 하루 종일 우울해 하던 기억이 난다. 

또순이가 우는 모습을 보고 어이 없어 하던 셋방 언니도 ...

 

하키 선수 정말 그만 둘거냐는 체육 선생님의 말에 단호하게 그만 둘거라고 말하고 정말 열심히 공부했었다.

 

매달 보는 시험에서 항상 우수상을 타고 여름 방학 때 보는 국..수 과목에서는 국어과목에서 학년 전체 최고점을 받아서 메달을 받기도 하였다.

 

같은 학년에 국어 선생님이 두분이셨는데 한분은 7반 담임이셨고 한분은 3반인 우리 반  담임 선생님 이셨다.

 

담임 선생님이셨던 이강일 선생님이 얼마나 좋아 하셨던지 ㅡ  열등반에서 메달을 탈 최고 점수가 나왔으니 얼마나 좋으셨을까나!

국어과 매달을 또순이가 타게 된 것을 알게 된 날 종례 시간에 오셔서 또순이 책상을 조그마한 자 같은 걸로 톡톡톡 치셨다.

왜 그러시나 했는데 그게 선생님이 표현하신 최고의 기분 좋음이셨을 것이다. 칭찬의 말은 안하셨다. 그냥 환하게 미소 지으셨을 뿐이다.

 

가끔 가끔 지금 생각하면 말도 안되는 시를 원고에 써서 가져가면 선생님은 항상 성의 있게 교정을 봐 주시고는 하셨다.

 

 

학년 말에는 선생님이 교지를 발간 하셨는데

그때 또순이는 글을 써서 교지에 실었었다.

언제 친정에 가면 혹시나 고등학교 교지가 있나 찾아 보고 있다면 그글도 여기에 올려야 겠다.

 

2014 6 29 10

대전행  KTX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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