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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이비붐 세대 탐구 생활/또순이 어렸을 적에

또순이 어렸을 적에 89 - 냇가 빨래

by 영숙이 2019. 11.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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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8. 냇가 빨래

 

   추운 겨울.

또순이 엄마가 냇가에 가서 빨래를 해가지고 오라고 하였다.

이유는 또순이가 여름에 가출했을 때 초경을 한 이후

1년 동안 불규칙적 이기는 했었지만

겨울 즈음에는 배가 아프면서 본격적인 생리를 하였기 때문이다.

위에 위에 집에 있는 펌푸물에서 하지 말고

냇가까지 가서 하라고 하였다.

 

 

스텐 대야에다 아기 기저귀 생리대를 담고

또순이 엄마가 보인다고 

수건으로 덮은 스텐대야를 옆구리에 끼고

냇가를 찾아 갔다.

 

 

냇가는 또순이가 다니는 옥천 여자 중.고등학교를 지나

학교 뒤로 나 있는 길을

고아원을 지나고 길을 따라 

논과 밭사이로 한참 가면

벌판 가운데 냇물이 흐르고 있었다.

 

 

큰 냇가는 아니어도

냇가를 건너기 위한 조그만 다리도 있었고

제법 물도 많이 흐르는 냇가였다.

 

 

추운 겨울

햇볕은 명랑했지만

벌판에는 아직 눈이 다 안 녹고 히끗 히끗 무늬를 이루고 있었다.

 

 

논이 어디까지인지 저 멀리 산밑이 보이는 벌판에는

사람은 한명도 안보였지만,

혹시나 다리에 사람이 지나갈까봐

다리에서 제법 떨어진 냇가 빨래터로 걸어 내려 갔다.

 

 

냇가에는 흐르는 물이라서 살얼음이 얼어 있고

투명한 살얼음 사이로 냇물이 흐르고 있었다.

 

 

주먹만한 돌을 들어 얇게 얼어 있는 얼음을 깨고

스텐 대야에서 빨래를 꺼내어 물에 담그었다.

비누로 대충 문대 가지고 삶은 거라서

비눗물이 하얗게 투명한 냇물로 번져서 흘러 내려 갔다.

 

 

눈부시도록 밝고 명랑한 햇볕에

아무도 없는 너른 벌판.

짚동가리나 논둑에서 투명한 햇살에 녹아 가는 남아 있는 눈들

 

 

바닥에 모래 한알 한알까지 비쳐 보이는

맑고 투명한 냇물

냇물은 무심하게 졸졸졸 소리를 내면서

물 밖에 있는 조금이라도 큰 돌을 비껴서 흐르고 있었다.

 

 

물속에서 꺼낸 빨래를

문지를 수 있는 넙적한 돌에 비벼대고

다시 물에 넣어서 흔들고 꺼내서 비벼대고.

 

 

손이 시려웠다.

너무 너무 시려웠다.

빨갛게 된 손을 호호 불어 보았지만 소용이 없었다.

 

 

무릎 뒤에 손을 넣고 꾹꾹꾹 눌러

조금이라도 덜 시려우면

냇물 밖에서 빨래를 잡고 흔들고

빨래하는 돌 위에서 대충 눌렀다.

 

 

그래도 손이 시려웠다.

눈물이 날 정도로 손이 시려웠다.

 

 

투명하고 이쁜 물이 다 좋은 건 아니다.

추운 겨울날

투명하고 이쁜 물에 손을 담그면

날카로운 얼음같은 차가움이 뼈속까지 전달 된다.

 

 

나중에는 감각이 없어져 갔다.

손이 시려운걸 못느낀는 것이다.

 

 

마지막까지 빨래를 다 꼭꼭꼭 짜서

스텐 대야에 담고

손이 시려우니까 상의 소매로 손을 감싸고

스텐 대야를 옆구리에 끼고

아까보다는 따스한 햇살을 따라서

집으로 돌아 왔다.

 

 

엄마는 집안에서 그 큰 키로 서성이고 있었다.

   ' 딸내미가 빨래를 잘 해가지고 올까나! '

걱정되었을 것이지만 

또순이가 빨갛게 된 얼굴로 화를 내면서

  ' 빨래 여기 해왔어! '

스텐 대야를 방문 앞 좁은 마루 위에 탁 놓을 때에도

아무 말도 없이 생각에 잠긴 얼굴로 또순이를 바라 보았다.

 

 

힘들기는 했지만

그래도 냇가까지 가서

빨래를 해 왔는다는 뿌듯함과 자부심은 있었다.

뼈속까지 차갑던 날카로운 고통과 함께.

 

 

다행히 중학교 3학년 때

물에 담그기만 하면 불순물이 빠져 나가는 천기저귀를

상인들이 학교에 들어와서 교실마다 몰래??? 팔았다.

당연히 또순이는 샀다.

돈이 있었을까? 외상으로 샀을까?

하여튼 구입해서 썼기 때문에 덜 고생하였다.

 

 

요즘 생리대의 환경 파괴가 심하다고

물에 담그기만 하면 불순물이 빠져나가는 천기저귀를

학교 양호교사들 중심으로

다시 사용하는 운동이 일어나고 있다.

좋은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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