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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이비붐 세대 탐구 생활/어린시절 이야기

또순이 어렸을 적에 22 - 반장 네 집에 가는 길

by 영숙이 2019. 9.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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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5. 끼리끼리 한쌍 

   

     학교가 끝나면 또순이는 상지리 아랫동네에 사는 명숙이와 차순이와 같이 집에 갔다. 

     같은 길로 뚱땡이 이모 사돈네가 사시는 아름찬 느티나무가 서있는 마을 앞길을 지나 강위에 있는 긴 다리를 건너는데 곽봉호, 이상배, 김기남 이렇게 3명이 갔다,

 

     

     지나가던 조무래기들이

         "끼리 끼리 한쌍! "

     하고 놀려 대었다.

     특히 부반장이 된 얼굴이 하얗고 통통한 시골과는 어울리지 않는 서울에서 전학 왔다는 이름도 시골에서는 튀는 손현재가 다리 입구에서 아래 학년 아이들하고 기다리다가 목소리 높혀 놀려 대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관심이 있어서 놀려 댄거지만 그때는 왜 그렇게 그게 챙피 했는지

 

      그때 손현재랑 같이 놀려 대던 아래 학년 아이를 학교 끝나고 혼자 내려 오다가 학교 담 끝나는 곳에서 만난 적이 있었다.

        " 너 지난 번에 나 놀렸지? 끼리 끼리 한쌍이라고? "

        " 안 놀렸는데요? "

        " 거짓말 하지마! 한번만 더 그러면 너 가만 안놔두줄 알아! "

       

      아이는 도로 옆 비탈길로 비켜 갔지만 또순이 한테 목덜미를 잡혀서 꼼짝 못하고 또순이 말에 고개를 끄덕끄덕 하였다.

       " 자식들 가까이 있을 때는 꼼짝도 못하면서! " 

          

    손현재가 자기네 집이 있는 서울로 전학 가고  아이들이 놀리는 일은 사라졌다.

 

66. -1 반장 네 집에 가는 길<꿈이 있는 곳에 길이 있다.>

 

     얼마 전에 초등학교 동창생 모임에서 메시지가 하나 날라 왔다.

       - 경축 : 김영길 옥천군수 전화번호 -

 

     누구든지 대단한 사람이 될 수 있고 사회적으로 출세 할 수도 있다. 하지만 이아이가 옥천 군수가 됐다는 것은 정말 대단한 일이다.

 

    초등학교 5학년 때 우리 반 반장이었는데 학기초에 얼굴을 보이고 내내 결석을 하였다.

 

    아침에 등교할 때 마다 진달레 꽃을 한 아름 꺾어 와서는 꽃병에 꽂아 놓던 아이는 아파서 병원에 있다고 하였다.

   

    가정 형편이 어렵다고 반 아이들끼리 쌀을 모아서 병문안을 하기로 하고 어느 토요일 날 학교 끝나고 그 아이네 집을 찾아 갔다.

   

    산고개 굽이굽이 몇 개의 산을 넘어서 그애 집에 도착하니 조그마한 초가지붕의 외딴집에 엄마와 누나가 있었는데 병원 갔다고 지금 집에 없다고 하였다.

 

    가져간 쌀을 내려놓고 산길을 내려오는데 저멀리 그림 엽서 같은 초가지붕 외딴집 앞에 자그마한 인형처럼 보이는 엄마와 누나 두 분이 서서 우리가 가물 가물거리며 보이지 않을 때까지 손을 흔들고 있었다.

    작은 초가집 앞에 두 여인의 모습이 작은 점 처럼 보일 때까지 ~

 

    다시 돌아 내려오는 골짜기 골짜기 마다 개울가에 진달레가 그렇게 흐드러지게 피어 있었다.

    이 길을 그 아이는 아침마다 진달래를 꺾으며 등교했고 그 꽃을 꽃병에 꽂았었다.

    멀리 사는 애도 많았고 또 진달래 꽃이 핀 곳도 많았을 것이다. 그렇지만 그렇게 꽃을 꺾어 와서 꽃병에 꽂아 놓는 것을 본 것은 그 애가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다.

 

    누구나 꽃을 꺾어서 꽂아 놓을 수도 있었지만 누구나 다 그렇게 하지는 않았던 것이다. 마르고 얼굴이 까무잡잡하던 그 아이는 그렇게 꽃을 꺾듯이 자신의 마음에 꿈을 가꾸었을 것이다.

 

    중학교 진학은 하였지만 형편이 어려워서 읍내 농고에 전학년 장학금으로 진학 해서 입학금을 준비하였는데 형이 입학금을 들고 서울로 튀었다고 하였다.

    결국 고등학교를 못 갔는데 그 뒤 공무원 시험공부를 하여 면사무소 서기로 근무하였다고 한다.

    얼마 전 감사실에 근무한다는 소리를 들었는데 이번에 군수가 되었다고 하니 마음속 꿈을 계속 가꾸었다고 볼 수 있다.

 

     - 누구나 긍정적이 되지 않고는 꿈을 꿀 수 없다. 어떻게 꿈을 꿀 수 있을까?

    모든 일이 불만 이고 못마땅한 한데 마음 속은 오죽할까?

    그런 마음에 아름다운 정원이 가꾸어 지리라곤 생각 되어 지지 않는다.

    마음속에 정원이 가꾸어지지 않는데 더더군다나 어여쁜 장미 꽃송이를 피울 수 있을까?

 

     - 아이가 꿈을 꾸게 하려면 먼저 아이의 생각이 긍정적이 되도록 생각의 전환을 할 필요가 있다.

     처음에는 작은 차이지만 점점 더 거리가 벌어질 것이고 작은 씨앗이 떨어져 싹이 트고 자라고 커다란 나무가 될 것이다.

 

      - 긍정적인 생각을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쉽지는 않다.

     생각보다 내가 긍정적인 생각을 해야지 하고 마음먹는다고 금새 긍정적이 되어 지지는 않는다.

     긍정적인 생각을 하도록 하는 훈련이 필요하다.

     짧은 문장도 좋고 성경 구절도 좋고 어떤 상징적인 그림도 좋고 긍정적인 생각을 할 수 있는 모티브를 만들어서 수시로 들여다보며 또는 수시로 생각하며 잠재 의식 속에서도 긍정적인 생각을 할 수 있도록 훈련을 해야 한다.

 

     텔레비젼 신문 영화 요즘 사람들이 주로 하는 웹 써핑 까지 긍정적인 내용이 별로 없다.

     도처에 나쁜 이야기, 나쁜 뉴스, 나쁜 말과 나쁜 내용의 소설과 영화까지 깔린 게 거의 나쁜 내용 들 뿐이다.

 

     이런 나쁜 말, , 말들 속에서 긍정적인 내용을 찾고 긍정적인 마음과 긍정적인 마음의 평정을 유지하기란 쉽지 않다.

    아무 생각도 하지 말라지만 아무 생각 안하기는 더더욱 어렵다.

 

     이런 때 한번 씩 혼자 있으면서 자신만의 긍정적인 생각과 잠재의식 가꾸기를 해야 한다.

    긍정적인 것에 도움이 되는 것을 일부러 찾아 가는 것도 좋다.

    그런 것을 찾으려는 노력이 긍정적인 마음을 유지하는데 도움이 된다.

 

66 - 2 반장네 집에 가는 길. <두번째 반장 이야기>

 

     면소제지에 있던 초등학교 5학년 때입니다.

    가정 형편이 넉넉지 못한 우리 반 반장이 3월 이후 오랫동안 아파서 학교에 나오지 못했습니다.

 

    학급회의에서 돕기로 하고 쌀을 일주일 동안 모아서 토요일 일과 후 가고 싶은 아이들이 모여 쌀 한말이 담긴 쌀자루를 들고 반장네 집을 찾았습니다.

 

     두 개의 산과 골짜기를 지나서 10여명의 아이들이 골짜기에 흐르는 시냇물 소리처럼 재잘거리며 산중턱 외딴 초가지붕의 반장 집으로 갔습니다.

     가는 길에 있는 골짜기 시냇물 가에는 진달래꽃이 지천으로 흐드러지게 피어 있었고 그래서 반장은 아침마다 제일 먼저 진달래꽃을 한 아름씩 꺾어 가지고 와서 교실에 꽂았었나 봅니다.

 

     반장은 병원에 있고 집에는 누나와 엄마가 있었습니다.

     우리는 마루에 쪼르르 앉아서 진달래로 울긋불긋한 앞산을 잠깐 바라보다가 어두워질까 봐 곧바로 일어났습니다.

 

    지금도 선명합니다.

    그토록 예쁘게 산 어디에나 특히 골짜기 시냇물 가에 진짜 많이 피어있었던 진달래꽃과 우리가 한 개의 산등성이를 넘어서 안보일 때까지 초가집 앞에 서서 우리를 바라보며 손을 흔들고 계셨던 두 여인의 모습.

 

     아이는 군소제지 중학교에 진학했습니다.

     우리 면 출신의 기업가에게서 장학금을 받아서 다녔습니다.

     고등학교 역시 군내에 있는 농고에 장학금을 받고 다니기로 했지만 입학금은 준비해야 했는데 입학금을 형이 들고서 튀는 바람에 결국 고등학교에 진학하지 못했습니다.

 

    우리가 학교를 마칠 때쯤에 학력제한이 없는 9급 공무원에 합격하여 면서기로 출발해서 현재 그 군에 감사실을 거쳐 군수로 재직하고 있습니다.

   일요일 아침 가족 노래자랑에 참가한 그 군 출신의 가족이 군수자랑을 하더군요.

 

     우리가 지금 가르치고 있는 이 아이들이 우리 나이 쯤 되면 어디서 어떻게 활약하고 있을까요?

 

    얼마나 오래전 이야기인지 말하면 기절 할까봐 말 못하는 그 옛날에 보았던 진달래꽃을 마음속에 지금도 선명하게 기억하고 있듯이 이 아이들 마음속에 선명하게 기억하게 될 것은 무엇이 될까요?

 

     좋은 일, 착한 일, 옳은 일을 하시는 선생님들의 교육적 확신이 아이들에게 신뢰감을 형성하고 그 신뢰감을 바탕으로 참을성과 배려심이 생긴다고 하네요.(프랑스 육아를 보고...)

    힘내세요.

    우리 선생님들 옳은 일을 하고 계신다는 확신을 가지세요.

        - 크리스마스 씰을 팔면서 -

     

  

67. 부반장 복임이네 집

 

     복임이네 집은 강을 건너서 들판을 지나서 ......

 

     가을 날.

     복임이가 자기네  집에 놀러 가자고 했다. 

     복임이와 둘이서.

   

     복임이가 자기네 집은 선비 집안 이라고 했던가? 

     아니면 할아버지가 서당을 했다고 했나?

     그렇게 생각해서인지 복임이네 집은 여느 그냥 시골 집 처럼 느껴지지 않았다.

     널찍하고 깨끗한 집 안에 오래된 느낌이 드는 정갈한 한옥 집이었다.

 

     예나 지금이나 또순이는 오래 된 것에 대해서 왠지 모를 경외감과 부러움과 향수가 있다.

     아마도 우리 집이 항상 여기 저기 이사도 자주 갔었고 남의 집 살이도 오래 하고 그래서 였는지도 모르겠다.

 

     오래된 기와 집에 반들 반들 윤이 나는 마루와 뒷마당에는 우물이 있는 집이였다.

    우물 뒤쪽으로는 커다란 감나무가 있었고 단풍나무도 있었고.......

 

    복임이가 감을 따자고 하였다.

    기다란 대나무를 가지고 와서 감 가지를 대나무 벌어진 틈에 넣어서 비틀어 따는 것이었다.

    멍하니 입을 벌리고 서서 복임이가 감 따는 것을 바라 보고 있었다.

 

    그 때 생각나는 귀절은 국어 교과서에 있던 이 귀절이었다.

      " 오메! 단풍 들었네! "

    아님 

      " 오메! 누이야! 단풍 들겄네! "

    였을까?

 

     감따는 것도 신기했고 그 보다는 그 감나무 주위에 그득하고 풍성하게 넘쳐나는 빠알갛고 선명한 단풍 잎은 또순이에게는 차라리 경이였다.

 

    시골인지라 단풍을 보지 못한 것은 아니였지만 대부분 멀리 있는 산이나 집 앞 말허리 같은 앞 산에 을긋 불긋 하게 물드는 것을 지켜보거나 가로수나 교정에 나무들이 전부인 줄로만 알았다.

 

     그렇게 집 안에 단풍나무가 예쁘게 물들어서 자리매김 한 것을 본 적이 없었다.

     복임이는 늘 보던 것이어서 별 느낌 없이 생활 할지도 모르겠지만 또순이에게는 충격이었다.

 

    고목 나무가 된 감나무,

    단풍 나무

    그리고 각종 나무들이 뒷뜰에 무성하게 숲을 이루고 있다는 것은 그만큼 오래 된 집이란 뜻이었다.

 

    우리 집에도 벚나무가 몇 그루 심어져 있었지만 아직 어린 나무여서 뒷뜰을 커버하지 못해 앙상하게 뒷뜰이 드러나 있었다.

    또순이가 학교를 오며 가며 도로 가에  있는 코스모스 씨앗을 따다가  뒷

뜰에 뿌려 놓았는데, 

   가을이면 코스모스가 뒷뜰 안 가득 흐드러지게 피어 있었지만,

   옛날 집에서 저절로 스며져 나오는 선비 집안의 품격과는 거리가 있었다.

 

   복임이네 뒷뜰에서 또순이는 국어 교과서에 나오는 그 귀절을 절감하고 있었다. 

      "오메! 단풍 들겄네! "

 

   먼 세월이 흘러서 이젠 한 사람의 중년으로서 기업을 이루어야 하지만 아직도 아파트 생활에서 벗어 나질 못하고 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우리 아파트에는 커다란 고목을 베어 버리지 않고 그대로 두어서 보기가 좋고 비교적 아파트 화단을 보기 좋게 가꾸어 놓았다는 것으로 위안을 삼는다.

    학교에서 나누어 주는 농협 봉숭아 씨앗을 가져다 뿌려 놓았더니 올해에는 봉숭아 꽃이 많이 피었다.

 

    언제인가는 또순이도 옛 추억 속에 복임이네 집 처럼 멋진 단풍나무 들이 있는 집을 이루고 살게 될 것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한가지,

    언제 만나게 될지는 모르겠지만 복임이에게 미안한 일이 있다.

    장난치기 좋아하던 또순이가 복임이가 일어 서서 책을 읽을 때 연필을 의자 위에 올려 놓아서 뾰족한 연필 심지에 찔리게 했던  일이다. 

    지금 생각해보믄 엄청 끔찍한 일이지만 그때 또순이가 낄낄거리며 복임이를 보니까 뒤돌아 보던 복임이의 험악한 얼굴이 무서워서 찔끔 했던 기억이 난다. 

 

    복임아아!

    니 잘 살고 있재?

    내는 여기 경상도에서 벌써 40년 살았다 아이가!

    내 그래서 내 말할 때 경상도 말 한다카이!

    니 요즘도

        "오메! 누이야! 단풍 들겄네! "

    그러믄서 살고 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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