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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이비붐 세대 탐구 생활/편지글

편지글 6

by 영숙이 2020. 2.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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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누님에게

 

  창밖으로 내리는 보슬비를 지겨운 줄 모르고 한참이나 쳐다보다가 이렇게 누님에게 몇 자 적어 보냅니다.

  무서운 여름의 기온이 물러 갔구나 생각했으나 여름에 무슨 미련이라도 남았는지 사흘째 계속 대지위에 빗줄기를 퍼붓고 있군요.

  이 비가 그치면 결실의 계절, 완숙의 계절 가을을 맞이하겠죠?

  어서 이 비가 그치길 바라지만 기상대의 말로는 중순 때부터 또다시 큰 폭우가 예상된다고 하여 이러한 속단을 내리는 것은 아직은 이르다고 생각되어집니다. 

  매형과 누님 모두 몸 건강하신지요? 두 분의 염려 덕분으로 저는 맡은 바 최선을 다하며 주어진 임무를 완수하기 위하여 오늘도 바쁘게 시간을 보내고 있답니다.

  하루 해를 마치고 근무를 서고 있는 이 시간 풀벌레 소리가 유난히 크게 들리는 것 같군요.

  이제 다음 주면 유격을 갔다 오게 되고 곧바로 구월 20일에 휴가를 가는데 요번 추석은 집에서 보내게 될 것 같군요.

  두 분의 건강을 바라며 짧은 글 이만 줄일까 합니다. 

  안녕히 계십시오.(휴가 가서 봐요)

 

                                       1985. 9. 5

                                                          의정부에서 동생 민이가.

 

 

2. 누님에게 

 

  차츰 따뜻한 마음과 온정이 필요한 때가 다가오는 것 같습니다. 그와 더불어 우리들은 따뜻한 곳과 따뜻한 것을 찾을 수 있는 행복한 사람들이라고 생각되는군요. 육체는 외부의 기온에 의하여 움추려들지만 우리의 마음은 바닷가를 날고 있는 기러기의 날개와 같이 따뜻한 마음이 넓게 많이 있어야 할 것입니다. 

  누님 몸 건강히 지내시는지요? 매형과 조카도 잘 있으리라 믿습니다.

  벽에 걸려 있는 두장 남은 달력을 바라보니 허전한 마음을 금할 길 없지만 1년이란 긴 세월이 모두 가고 이제 마지막  달이 남아 있다고 생각하니 어딘지 모르게 어깨가 으쓱해지는 기분이랍니다. 이제 가을도 다 지나가고 마지막 자취만 남아서 우리들의 마음을 위로하지만 이 가을이 지남으로써 4계절을 모든 군에서 맞이해 보았다는 생각이 나로 하여금 즐겁게 만드는군요.

  누님은 이 가을 무엇을 하였는지요?

  매형도?

  아마 내 짐작으론 행복을 위해 사랑을 꽃피웠고 가정의 화목을 위해 두 분이 노력했으리라 확신합니다.

  저도 사회에 있었다면 1년 동안 가꾸고 다음은 것을 수확하기 위하여 바쁜 날들을 보냈을 텐데 지금은 군이라는 특수 신분이기에 가을이라는 한 계절을 방관의 자세로 무의미하게 보냈지요.

  그러나 모든 것이 끝나면 더 큰 것을 이룩할 것을 마음속으로 되새김질하면서 가을비 내리는 하루를 즐거운 마음으로 보냈고 앞으로 남은 가을의 자취와 겨울도 기꺼이 즐거운 마음으로 보내고 맞이하리란 생각 합니다.

  이제 내일을 위해 하루의 지친 몸을 쉬게 하여야 할 시간인 것 같군요.

  두 분의 행복이 영원히 지속되길 바라며 다음 소식 전할 때까지 안녕히 계십시오.

                                              1985. 11. 9

                                                                      의정부에서 민

 

 

3. 누님 받아 보십시오.

 

  계절의 여왕 5월도 어느덧 절반 이상이 흘렀군요.

  점점 여름이 다가옴인지 오후 강의 시간은 조름과 한바탕 혈전을 벌여야 하죠.

  매형과 조카는 몸 건강히 잘 계시고 크고 있는지요.

  집안 식구들의 염려 덕분으로 3년 간의 군생활을 무사히 마칠 수 있었던 것 같아.

  특히 누나의 염려는 부모님 다음인 것 같아 고맙게 생각하고 있지.

  제대하는 즉시 복학하여 중간고사다 하여 정신없이 시간을 보내다 이제 한시름 놓아도 될 정도지. 복학하자마자 교내 무너 제로 데모하는 학생들을 보고 비통함을 참을 수 없었던 현상 등 여러 가지 바뀐 대학의 모습을 익히는데도 무척이나 힘들더군.

  그래도 같은 83학번들이 5명이나 되어 많은 도움을 받았지.

  요즈음은 학교 공부하면서 영어 공부를 조금씩 해나가는데 졸업한 애들 이야길 들어보면 대부분이 취직 문제로 고민하더군.

  좌우지간 결과가 어떻게 나오든 열심히 주어진 환경에서 최선을 다할 뿐이야.

  그래도 결과가 안 좋다면 그때는 할 수 없는 거겠지.

  다음 주엔 축제기간인데 그 기간 동안 무얼 할까 생각 중인데 좋은 생각이 떠오르질 않는군.

  저번 주에 형과 형수님 왔다 가셨는데 난 어디 좀 갔다 오느라 얼굴을 못 뵈었어. 매형에게도 서신으로나마 인사드린다고 누나가 대신 전해줘.

  누님의 집안에 건강과 행복과 행운이 항상 흘러넘치길 바라며 이만 다음 소식 전할 때까지 안녕히 계십시오.

 

                                                 1987. 5. 18.

                                                                      대전 민 보냄

 

4. 나의 언니, 나의 언니에게

 

  언니의 글은 언제나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진한 전율을 느끼게 합니다.

  그러한 점 때문에 언니의 현 상황을 더 심각하게도 또는 덜 심각하게도 하는 마력을 가지게 하는 글재주를 가졌다고도 볼 수 있겠죠.

  언니의 동생 숙이가 무슨 말을 해야 할지 참으로 난감해질 때가 많습니다. 왜냐하면 언니는 이미 무슨 말을 하든지 꿰뚫을지도 모른다는 선입견이 들기 때문이죠. 

  오히려 이런 생각들이 언니에게 부담이 될 수 있을지도 모르지만요. 언니는 천재가 아니기 때문이죠(?)

  아마 천재가 둔재보다 불행하다면 이런 이유에서 일거라고 생각해요.

  날씨가 무척 맑아요.

  옆 국민학교에서는 운동회로 한참 바쁘군요. 그런데 나이 탓인지 날씨 탓인지. 영 흥겨운 기분이 나지 않는군요. 하긴 내 잔치가 아닌 탓도 있겠지요.

  하긴, 허긴 ㅡ 은 우리 학교 학장님 성함이에요. 허긴 그려 할 때 유감없이 부를 수 있는 이름이랍니다.

  참 언니는 작명하는 솜씨가 대단하더군요. 박완숙 씨를 흠모한 나머지 완찬씨가 됐더군요. 원찬. 원 찬, 완 찬이라 한번쯤 바꿔 보는 것도 괜찮네요. 지루하니까.

  조카는 요즘 쫑숙이가 사준 잠바 입고 외출 좀 많이 하는지요.

  형부도 잘 계시겠지요. 노사문제가 잘 타결되었는지요. 그것으로 인한 실수입의 증가가 있으면 한턱내세요.

  언니.

  난 이렇게 생각을 해봅니다. 물론 언니의 아집 비슷한 것이 언니를 둘러싸 완전한 형체를 이루고 그 어느 사상도 모습도 받아들이지 않을지 모른다는 생각도 있지만 그러나 종숙 동생이 하는 얘기도 그냥 들어 두는 샘 치고 들어 보세요. 마음을 다해 써봅니다.

  노사 분교도 서로가 서로를 모르고, 이해하려 하지 않았기 때문에 생긴 것처럼 인간이 서로를 이해하려 하지 않는다면 인간 고유의 능력을 말살하는 것이며 또한 사랑할 수 없어요.

  사랑의 원자탄 손양원 목사님을 아세요.

  그는 자기 자식을 죽인 원흉의 공산당을 자기 자식으로 맞아들인 사랑 그 자체의 잉태자입니다.

  그리고 언니

  이 세상에서 자기 자신만큼 행복한 사람은 없어. 하며 자신하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요.

  언니는 이미 언니가 사랑하고자 이미 선택한 사람이 바로 형부가 아닌가요.    결혼식장에서 성스러이 약속한 그 맹세들은 앞으로 어떤 불리한 입장이 되더라도 그 하나만을 믿고 의지하고 살아가겠다는 것 아니었나요.

  그리고 언니

  우리의 어머니를 보세요. 그 어려운 상황들을 이겨내신 엄마께 지금은 영광이 있잖아요. 변한 아버지의 회심이 가끔은 연민이 생겨지는 어머니의 모습을 느낄 때 부부는 미워할 수 없는 존재라는 걸 생각해보아요.

  이던 소설 문학작품도 부부의 애정 혈연관계는 태초로 돌아가는 것 같더군요.

  우리는 악마도 사랑할 수 있는 그런 훈훈한 마음을 갖게 되는 것을 목표로 삼고 살면 어떨까요.

  구약의 선지사 호세아는 창녀인 아내를 위해 끝까지 기다리고 기다리며 가도 하고 또 끝내는 돌아온 아내를 따듯이 맞이하였다는군요.

  이 일이 역사의 장속에서 이루어진 걸 보면 아마 조만간에 역사의 또 한 장면을 장식하게 될 우리도 못할 건 없다는 생각입니다.

  우리 사람들은 끊임없는 욕구와 희망이 있기에 현상태에 대한 불만을 갖는  것 같아요.

  나에게 부여된 그것을 부여잡고 순수히, 소박히 기뻐할 순 없는 걸까요.

  언니, 이해인 씨가 가장 순수한 시를 쓸 수 있던 것은 그의 마음을 다 비웠기 때문일 것입니다.

 

  불만 덩어리, 불안, 초조, 마음으로 얼룩진 모습도 악마보다 더 흉한 모습일 것 같아 두렵습니다. 나에게 부여된 이 생애를 왜 흉측하게 그려야 하나요

  우리가 하나님에게로부터 귀한 생명 즉 호흡을 불어넣어 처음으로 인간이 탄생하던 그 무아의 시점으로 돌아가 우리 자신을 전부 털고 처음으로 돌아갑시다.

 

 

  욕심 많은 혹부리 영감처럼 취하려고 하는 태도가 아닌 나 자신이 누군가 위하여 무엇인가 해줄 수 있다는 그 모습이 얼마나 뿌듯하고 고운지요. 그것이 내가 바로 생명을 부지하는 귀한 이유가 아닐까요.

언니 

  지금 이 시간도 차가운 병실에서 꺼져가는 목숨을 붙잡고 조물주께 눈물로 기도하는 생명 연장에 대한 갈구를 생각해 보셨나요.

  살아있는 자는 그들을 위해 그들 몫까지 아낌없이 살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생명을 나머지에게 더 크게 나눠주셨기 때문이지요. 하나님의 그 오묘한 진리에 대항하기보단 순응으로 기쁨을 가져 보세요.

  참으로 나에게 있는 모든 것을 다 내어 던지고 가장 똑똑한 체하는 것이 아닌 가장 비천하고 모자라는 사람쯤으로 살아보면 어떨까요.

  그 상급은 다 하늘나라에 있을 테니까요. 아니 하늘나라까지 들먹이지 않아도 내 마음에 참 평화가 그것을 증명하겠죠.

  언니의 이전 헌 옷을 모두 벗어버리세요. 그리고 과감히 새 옷을 입으세요.

  언니 곁에는 늘 주님이 보살피시고 그리고 사랑하는 동생이 큰 소리로 응원하고 있답니다. 언니는 서 씨 집안의 장녀가 아니신가요. 우리 형제들의 우상(?!)입니다. 파이팅 언니.

   또 쓸게요. 쓸데없는 감정은 이젠 안녕 안녕. 살아 있는 것으로도 행복하고 바쁘답니다.

    9월 어느 날 사랑하는 언니께 동생 씀

                                                                      87. 9.17.

 

 

5. 혜경이에게. <보내지 않아서 보관하고 있는 편지>

 

  어저께 일직 하면서 서랍의 편지를 정리하다가 보니 낯익은 필체가 있어서 들여다보니 역시 혜경이의 편지더군.

  그런데 왜 지금까지 못 읽었을까?

  뛰는 가슴으로 이리저리 보니 역시 미개봉 편지더군.

  아마도 일하는 아이가 서랍 속에 넣어 넣은 채로 방학이 끝나고 ㅡ.

  1년 6개월이 지났지만,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답을 써본다.

  객지에 홀로 와 있으니, 너도 객지 생활을 해봐서 알 테지만, 옛날 친구들이 그리워질 때가 종종 있단다.

  어디서든 다 무엇을 하며 살고 있을까?

  이제 33살의 나이로 여전히 무엇인가 해보려 한다는 게 우습기도 하구 ㅡ.

  나의 가족 사항은 회사 다니는 남편과 5살 난 아이 나 이렇게 셋이야.

  대전 너희 집 주소가 없어서 행여나 하는 심정으로 보낸다만, 과연 네가 받아 볼 수 있을는지.

  정들면 고향이라고 근 10여 년을 이곳 울산에서 살다 보니 그런대로 적응이 되어서 아이는 할머니 한분이 오셔서(출퇴근) 죽 봐주고 있는데 우리 아이에게는 그 할머니가 매일 우리 아이를 좋아하는 그냥 "할머니"이고 시어머니는 "대구 할머니" 친정엄마는 "뚱뚱한 할머니"라고 한단다.

  산다는 일 "희비극으로 짠 양탄자"라고 했나?

  어디서든 건강하게 내가 사랑하는 이들이 잘 있다는 서신을 받을 때가 제일 반갑고 기쁘단다.

  나는 여전히 책은 열심히 읽고 있어.

  그리고 띄엄띄엄이지만 나날의 일상을 글로 남기려고 노력하고 있고.

  너의 남편은 잘 있는지,

  아이들은 잘 큰지,

  그리고 네 모습은?

  여전하겠지?

  영롱했던 너의 눈빛이 떠오르는군.

  왠지 난 그런 너의 모습에 이끌리고는 했었지.

  언제까지나 순수했던 너의 모든 것들도 속세에 파묻힌들 변함없으리라.

  오늘은 유난히 보고 싶구나. 언제 한번 만나봐야 할 텐데 ㅡ.

  아니 내가 편지라도 써 보낸다는 게 이렇게 오늘은 좋을  수가 없어.

  언제나 건강하고 가족들과 함께 주님의 축복과 사랑이 항상 차고 넘치길 바라면서

                                        1989.   8.  25. 울산 영숙이 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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