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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City life of JINNSSAM

City life of JINNSSAM 3

by 영숙이 2020. 9.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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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ity life of JINNSSAM 3>>

 

1. 정선생 이야기 A

 

  어제는 ' 게이샤의 추억 ' 이란 영화를 쿡 티브이로 불러서 봤는데 재미있었다.   

 

  영숙이는 '홀로선 버드나무'를 쓰고 저 멀리 42년 전 이야기를 쓴 게 좀 그런가 싶었는데 '게이샤의 추억'이란 영화는 우연히 다리에서 8살 때 친절히 대해준 아저씨를 사랑하는 이야기라서, 홀로 선 버드나무에 대해 고무되는 느낌적인 느낌. ㅋㅋㅋ

 

  아침에 일어나서 농협으로 신용카드 비번을 바꾸러 갔다.

  밤새워 글을 썼더니 목이 뻣뻣해져서 맛사지 샵이 있는 목욕탕에 가서 마사지를 받고 자동이체하려고 폰을 잡았는데 자다 일어나서 이체하려니까 정신이 없어서 그랬는지 비번을 3번이나 틀려서 바꿔야 했기 때문이다.

  그렇지 않아도 일처리가 빠르지 않고 더듬더듬 하는 편인데 나이가 들면서 이렇게 틀리는 게 정말 불편하다. 

  농협 일을 끝내고 나오니까 좀 이른 점심을 먹을 수 있겠다 싶어서 이왕 나온 김에 점심 먹고 사우나를 가기로 했다.

  요즘 대공원 옆 동아 횟집에서 점심 특선으로 회덮밥과 매운탕을 1인 분에 8000원으로 저렴하게 먹을 수 있고, 더 좋은 건 1인 상도 주기 때문이다.

  동아 횟집으로 가는데 약간 쌀쌀한 바람이 부는가 싶었는데 쌀쌀한 바람에 눈발이 한두개씩 섞여서 뿌려진다.

 

  첫눈이다.

  울산에 첫눈이 내리고 있다.

  탁자 위에서 끓고 있는 매운탕의 뜨거운 국물을 훌훌 떠먹으면서 뜨끈한 점심을 먹고 나서는데 제법 하늘이 뽀얗게 눈이 내리고 있었다. 

  그래도 길 위에는 쌓이지 않고 있다. 서울에는 전날 부터 눈이 많이 내려서 길에 눈이 수북이 쌓여 있다고 한다.

 

  천천히 눈발 사이를 걷고 있는데 갑자기 처음 울산에 왔을 때 있었던 일들이 떠올랐다.

 

  그랬다.

  정선생의 이야기가 떠올랐다.

 

  그 먹먹하고 두렵고 무의식에 가라 앉혀 놓았던 이야기들.

  이제는 입을 꼭 다물고 있지 않아도 될 것 같고 쓸수 있을 것도 같다.

 

  정선생의 이야기를 써야 겠다. 

 

  사우나 끝나고 미장원에 가서 머리를 볶아보고 싶었다.

  사우나가 있는 건물에 미장원에 들어가니 너무 비싸게 부른다.

  다시 나와서 보통 때 머리에 헤나 물을 들이는 미장원을 찾으니 어디 간다고 바빠서 미장원 문을 닫아야겠다고 말한다.

  그 맞은편에 가서 머리 파마 하러 왔다 하고 한자리 차지하고 앉았다.

  가격도 보통가격이다.

  파마약을 뿌리더니 헤나 염색하느냐고 물었다.

  그렇다고 했더니 곤란한 얼굴을 하다가 그냥 파마를 계속한다.

  헤나 머리를 하면 파마가 잘 안 나오기 때문이다.

 

  편지글을 쓰면서 사이사이에 울산으로 온 영숙이를 쓰면서 그 속에 정선생 이야기도 쓰기로 한다.

 

  23살에 영숙이가 울산으로 왔을 때 원래 부산에서 경력이 있는 선생님이 오시기로 되어 있어서 1학년 5반 담임을 배정해 놓고 있었다.

  그런데 영숙이가 근무하게 되어서 그냥 1학년 5반 담임을 하게 되었다.

 

  옆반인 1학년 4반 담임 선생님은 정선생이었다.

  정선생의 고향은 대구였고, 노랑 머리칼에 뽀얀 피부를 가진 상과 선생이었다.

  

  정선생은 영숙이처럼 마르지도 않았고 그렇다고 통통한 체격도 아니고 적당히 보기 좋을 만큼 부드러운 분홍색 살결을 가지고 있었고 눈을 게스츰레 뜨는 섹시한 여선생이었다.

  아이들 표현을 빌리면 느끼한 표정에 느끼한 분위기의 여선생이었다. 

 

  지금은 어떤지 몰라도 당시의 상업 교과에는 타자, 주산, 부기, 등등이 있었던 시절인데, 정선생은 부기 과목을 맡아서 가르치고 있었다.

 

  정선생이 옆반 담임이라고 해서 특별히 영숙이랑 친했던 것은 아니었다. 정선생은 서울에서 왔다는 영어과 최 선생하고 가까웠다.

 

  그냥 옆반 담임이니까 아침 조례하러 갈 때 교실로 가기 위해 같이 복도를 걷는 정도였다.

  그래도 매일 같이 아침마다 복도를 걷다 보면 이런 이야기, 저런 이야기를 했었다.

 

  정선생이 병 휴가 일주일 냈을 때에는 영숙이가 5반과 4반 조종례를 같이 했었던 기억이 난다. 

 

  반 아이들이 담임 성격을 따라간다고 4반 아이들의 수업 분위기는 느끼하다고 하면서 웃었던 기억이 난다. 

 

 

2. 정선생 이야기 B

 

  겨울 방학 시작되는 날 전 교사들이 모여서 강릉으로 여행을 갔었다.

 

  대형버스를 대절하고 1년을 무사히 마쳤다는 분위기에 모두들 즐겁게 1박 2일의 여행을 했었다.

  영숙이는 주로 선배 언니와 선배 언니와 친한 경애 선생님과 함께 다니고 또래였던 김 선생과 지 선생과 함께 다녔다.

 

  버스에 앉을 때는 주로 지선생과 함께 앉아서 왔는데 울산으로 오는 길에 음악과 30대 후반의 박 선생이 영숙이 앉아 있는 옆 자리에 와서 앉더니 영숙이에게 여행 끝나고 헤어질 때 다음날 밖에서 만나자고 하였다. 

 

  여행 중간에 영숙이 앉아 있는 자리로 와서 머리를 빗고 있는 영숙이에게 머리 빗겨 달라고 해서 무심코 빗겨 주었었는데 그것 때문에 영숙이가 가볍게 보였었는지는 몰라도 밖에서 만나자고 하다니 깜작 놀라고 분했다. 

 

  영숙이는 바로 '대전 집에 가야 해서 안된다고 거절'했고 그 이야기를 지 선생한테 박 선생 욕을 하면서 '사람을 뭘로 보고 그런 소리를 하느냐'라고 했더니 지 선생이 묘한 표정을 지으면서 '그래?' 하고 대답했었다.

 

  영숙이는 수업 들어가면서 처음 선생님이 되어 울산으로 오는 버스 터미널에서 만났었던 고등학교 2학년 때 담임 선생님이셨던 이강일 선생님을 떠올리고는 했다.

 

  고등학교 때 선생님이 했던 말과 했던 행동들.

  칠판에 판서하던 모습들.

  눈 앞에 있지는 않았지만 멘토로서 선생님이 했었던 학교에서의 모습을 닮아가려고 노력했다.

 

  또 학교에 같이 근무하는 모든 선생님들을 존경했었다.

  영숙이가 학교 다닐 때 뵈었던 선생님들을 떠올리면서 한분 한분 존경의 마음을 가질 수밖에 없었다.

 

  처음 학교에 와서 날씨가 점점 따스해지던 5월.

 

  아직 밝은 어느 토요일 오후,

  학교 일직을 마치고, 

  울산여상에서 공업탑 로터리를 40대 후반의 상업과 남선생님이신 김 선생님과 같이 무슨 이야기를 하면서 걸어 내려오고 있는데 갑자기 그 남 선생님이 벌겋게 웃는 얼굴로 걷고 있는 영숙이의 다리 쪽을 우연을 가장하여 자신의 다리를 바짝 밀착시켜 비비는 것이었다.  

 

  영숙이는 깜짝 놀라서 멀리 떨어져서 걸었고 선생님들이 다 존경할만한  선생님들이 아니라 것과 남선생님들에 대해 조심해야 한다는 것 그리고  그 선생님하고는 그 다음부터 말도 섞지 않고 거리를 두고 조심하고 있었더랬다.

 

  여행 끝날 무렵 있었던 이야기를 들은 지 선생이 말했다.

 

  "조심하라고 요새 남선생님들이 객지에서 혼자 사는 여선생님들한테 만나자고 하고 또 그렇게 밖에서 만나고 있는 선생들도 있다"

 

  고 했다.

  그 여선생이 정선생인 줄은 정말 꿈에도 몰랐다.

 

  하늘하늘 비치는 예쁘고 고운 옷을 입고,

  잘 웃고,

  친절하고,

  웃을 땐 게슴츠레 웃는 눈으로 사람을 쳐다보던 정선생이 나이 많은 40대 후반의 남자 선생님을 만나고 있다는 생각은 상상도 못 했었다.

 

  영숙이만 몰랐지 아는 선생들은 다 알고 있었나 보다.

 

  원래 그런 면에 둔감한 편이기는 했다.

  눈치도 없고 다른 사람 기분에 민감하지도 않았다.

 

 

3. 정선생 이야기 C

 

  처음 울산에 왔을 때는 선배 언니인 문 선생님이 자취하던 집에서 함께 생활했었다. 

 

  울산은 집 구하기가 어려웠다. 

  차츰 집을 구하기로 하고 임시로 선배 언니와 같이 살고 있었다.

 

  선배 언니는 남자를 사귀고 있었다.

 

  언니가 응급처치하는 방법을 회사에 가르치러 갔을 때 그 회사 안전과에서 그 일을 주관하던 담당자 분과 사귀고 있었던 것이다.

 

  어느 날 언니는 학교 일에 바빠서 아직 퇴근을 안 했었고,

  일찍 퇴근한 영숙이는 저녁을 먹고 책을 읽고 있는데 그분이 선배 언니를 만나러 왔다가 영숙이를 보고 누구냐고 물었다.

 

  "이번에 울산여상 교련교사로 오게 되어서  방 얻을 때까지 문 선생님이랑 같이 지내고 있는데요?"

  "그래요?"

  "저는 한전 안전과에 근무하는 지상철입니다."

  "아, 그래요?"

  "언니 만나러 왔는데요."

  "언니 바빠서 늦게 오신다고 하던데요?"

  "아, 연락을 안 하고 왔더니..."

 

  그날 그렇게 선배 언니 남자 친구는 잠시 앉아서 언니를 기다리다가 그냥 돌아갔다.

 

  그때는 폰이 있었던 시절이 아니니까 학교로 전화 연락을 해야 하는데 연락하기가 쉽지 않아서 집으로 찾아왔었나 보다.

 

  선배 언니는 늘 바빴고 영숙이는 집순이로 늘 집에 붙어 있으니까 거의 매일 선배 언니를 찾아오던 지상철 씨와 부딪힐 수밖에 없었다.

 

  그 날은 아마도 어린이날 같은 무슨 공휴일이었나 부다.

 

  선배 언니는 아침부터 걸스카웃 행사 때문에 밖으로 나갔고 영숙이는 집에서 책을 읽으면서 늘어져 있는데 역시나 지상철 씨가 찾아왔다. 

 

  언니랑 연락을 못했느냐고

  ~ 안 했다고

  ~ 마음이 바뀐다고.

 

  "오늘 날씨도 좋은데 할 일 없음 나랑 놀러 갈래요?"

  "어떻게 선배 언니 남자 친구랑 놀러 가요?"

  "언니랑 무슨 약속을 한 사이도 아니고 그냥 심심한데 놀러 가자는 건데 못 갈 거 뭐 있어요?" 

 

  묘하게 설득력이 있어서 결국 영숙이는 따라나섰고 부산으로 버스를 타고 갔었다.

 

  냉면을 사 먹었었나?

  돼지고기를 먹었었나?

  어디를 갔었지?

 

  기억이 오락가락한다.

  분명한 건 그날 갔다 온 다음에 선배 언니한테 말했다.

 

  "언니 오늘 지상철 씨하고 부산 놀러 갔었어요. 언니도 집에 없고, 심심하다고 하도 같이 가자고 그래서 같이 버스 타고 갔다 왔어요."

  "무슨 얘기 했어?"

  "뭐 별 이야기 안 했어요."

  "나한테 계속 결혼하자고 말하고 있는데 망설이고 있거든."

 

  언니는 말할까 말까 망설이다 결심한 듯 말했다.

 

  "사실은 지상철 씨 학력 때문에 대답 안 하고 있어. 고등학교 졸업이거든."

 

  다음 날 저녁,

  지상철 씨를 만났다면서,

  늦게 ~ 늦게 들어와서 영숙이에게 말했다.

   

  "너 내일이라도 이사해줘야겠다."

  "알았어요. 내일이라도 구해서 나갈게요."

 

  부동산에 찾아가서 말했더니,

  방이 나온 곳은 없고,

  지금 아파트 짓고 있는 곳에서 살고 있는 사람이 아파트 방 한 칸을 내놓았는데 가서 살겠느냐고 말했다.

 

  지금도 있는 신정동에 넝쿨 아파트 짓고 있는 현장에 우선 아파트 한 채를 꾸며서 아파트를 짓고 있던 감독이 살고 있었는데 그 아파트에 2칸 있는 방에서 문간에 있는 작은 방으로 이사를 들어갔다.

 

  그 아파트는 22평이었고 큰방은 제법 큰데 현관 바로 옆에 작은 방이 있었다.

 

  주인아주머니는 곱게 생긴 20대 후반의 젊은 여성으로 임신해서 만삭이었다. 

  

  부엌은 주인아주머니와 같이 썼다.

 

  영숙이는 점심은 학교에서 먹고,

  저녁만 해 먹었는데 밥은 전기밥솥에다 하고 반찬은 주로 밑반찬이라서 방에 두고 먹었었다.

 

  주인아주머니 하고 부딪힐 일도 없었다.

 

  그래도 한 집에 사니까 그 집 남편을 아침에 세수하러 가다가 슬쩍 본 것도 같다.

 

  키가 작고 안경을 쓴 똥똥한 남자였다.

 

  어느 날 공휴일인가?

  그날은 아파트에 아무도 없었다.

 

  냉면을 좋아해서 퇴근하면서 냉면을 사 가지고 들어왔는데 삶아 먹고 감기 기운이 있어서 감기약으로 항생제 한 알을 먹었었는데 목에 걸려 체했었나 보다.

  밤새 토하고 아침에 학교에 가는데 정말 그렇게 힘든 날은 자주 있었던 날이 아니었던 기억이 난다.

 

  어느 날 퇴근했는데 아주머니가 말했다.

 

  "지금 배가 아파서 병원에 가려고 해요. 애가 나오려나 봐요. 남편하고 아직 연락이 안 되었는데 오면 병원 갔다고 얘기해줘요."

  "네 알았어요."

 

  그날 그 집 남편이 밤늦게 집에 들어오는 소리가 났다.

  내다 보고 부인이 아기 낳으려 병원에 갔다 하고 방에 들어와서 문을 잠갔다.

 

  객지 생활하면서 밤에는 무조건 방문을 잠그는 게 습관이 되어 있었다.

  안방에 들어갔던 그 집 남편이 조용하더니 갑자기 영숙이 방문을 두드렸다.

 

  "무슨 일인가요?"

  "방문 좀 열어 보세요."

  "왜요? 부인이 아기 낳으러 병원 갔다고 했잖아요? 병원 가보셔야 하는 게 아닌가요?"

 

  갑자기 남자가 방문 손잡이를 잡고 비틀고 흔들기 시작하였다.

  영숙이는 놀래서 방문 손잡이 잠그는 걸 손으로 꼭 누르고 있었다.

  남자가 방문을 흔들다가 열릴 기미가 안보이니까 단념하고 큰방으로 가는 소리가 들렸다.

 

  영숙이는 베란다 쪽에 있는 창문도 얼른 잠그었다.

  큰방에 조용히 있던 남자가 갑자기 거실로 나오더니 부엌 쪽에 있는 문을 열고 베란다로 가는 소리가 들렸다. 

  베란다 쪽으로 가서 창문을 흔들기 시작하였다.

 

  "아니, 왜 그러세요?"

  "선생은 개뿔, 무슨 선생이라고? 어디서 뭐하는지 알게 뭐야."

 

  남자는 술에 취해서 횡설 수설 하면서 창문을 흔들다가 안 열리니까 큰 방으로 갔다. 

 

  아직 아무도 안 사는 건축 중이던 아파트 단지에,

  부인은 아기 낳으러 병원 갔다고 생각하니까 저렇게 함부로 후안무치한 행동을 할 수 있었던 남자였던가 보다.

 

  영숙이는 밤새 잠이 들 수 없었다. 

  무서워서 달~달~달 떨었다.

 

  다음날 학교 가서 선배 언니한테 사정을 말하고 집 구할 때까지 하루나 이틀만 있게 해달라고 말하고 저녁에 퇴근해서 애기를 낳아 집으로 돌아온 아주머니한테 말했다.

 

  "저 이사 나가겠어요."

  "왜요? 갑자기?"

  "아니 그냥 사정이 생겨서요."

  "무슨 일 있었어요? 이 인간이 ~ ~ ~".

 

  선배언니 집에 하루인가 이틀을 지내고,

  부동산에서 소개해주는 근처 골목 끝에 있는 주택 본채에 연이어 붙어 있는 방 한 칸에 부엌이 있는 셋집으로 이사를 갔다.

 

  들어가는 입구도 따로 있고 마당도 있는 집이었다.

  화장실은 마당에 따로 있던 시절이다.

 

  그 집에서는 꽤 오래 살았다.

 

  해를 넘겨 살았으니까,

  초저녁에 일찍 잠이 들면 늘 새벽에 잠이 깨고는 했었다.

  다시 잠이 들기 힘들었고,

  잠이 깨이는 시간이 새벽기도 시간이었으니까, 그때부터 새벽기도를 나갔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나.

 

  그렇지만 교회는 어쩌다 심심하면 나가는 곳이었고 예수님은 교회에 나가면 만나는 교회에 사시는 분이었다.

 

  해를 넘기고 학교에 적응이 되고 나니 역시 혼자 사는 건 외로웠다. 늘 5명의 동생들과 북적북적 부대끼며 방에서 부비적 ~ 부비적 거리며 성장한 탓인지도 모른다.

 

  너무 외로워서 해결하려고 정선생 문을 두드린 게 정선생을 가까이 알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정선생한테 말했다.

 

  "정선생 어디 살아?"

  "신정동 주택에 세 들어 사는데?"

  "혼자 사니까 너무 심심해서 그러는데 정선생이랑 같이 살면 안 될까?"

  "글쎄 좀 곤란한데 음 생각 좀 해보고 ~ " 

 

  며칠 있다가 정선생이 답을 했다. 

 

  "같이 사는 것도 괜찮을 거 같네. 이사해요."

  "응 알았어. 이번 주 토요일 이사할게요.'

 

  정선생 집은 지금 울산여고 앞에 있는 주택이었다.

 

  그 집은 마당에 꽃과 나무가 많이 있었고, 울산 여상하고도 가까운 공업탑 로터리에 있었다.

  방과 부엌은 그리 크지 않았지만 본채와 연이어 붙어 있고  영숙이가 신정동에서 살던 집처럼 출입구가 본채와 따로 있어서 좋았다.

 

  그때는 어차피 화장실은 전부 마당에 따로 있었던 시절이고 그 집에는 거실 쪽으로 방문이 있었지만 잠가 놓고 쓰지 않고 있었다.

 

  주인집 식구는 아주머니와 중학교 다니는 아들이 있었고 아저씨는 없었다.

 

  정선생은 냉장고가 있었는데 냉장고에는 진짜 맛있는 반찬이 많이 있었다.

 

  지금도 기억나는데 양념을 한 맛깔난 새우젓은 얼마나 맛있는지, 먹으라 소리는 안 했지만 밥 먹을 때 조금씩 표시 안 나게 먹고는 했었다.

 

  그리고 정선생은 퇴근 후에도 집에 일찍 들어오지 않았고 영숙이가 한참 자고 있는 오밤중에 들어오고는 하였다.

 

  혹시 일찍 집에 들어오더라도 집에서 옷을 갈아 입고 곧바로 외출을 하였다. 

 

  정선생은 토요일이면 대구 집에 갔었고, 혼자 있었던 영숙이는 일요일 날 심심해서 근처에 있던 대흥교회를 찾아가서 주일 예배를 드렸다.

 

  그때부터 예배를 잘 드리고 교회 생활도 제대로 하고 선생님 시켜 주시면 십일조를 한다고 약속했었으니까 십일조도 하고 청년부도 참석했더라면 어떤 일이 생겼을까?

 

  아니 무엇보다도 예수님을 만났더라면,

  예수님을 제대로 알았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지금이라도 예수님을 알게 되었고

  얼마나 우리 삶에 중요한지 알게 되었으니

  얼마나 감사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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