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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City life of JINNSSAM

Marriage life of JINNSSAM 5

by 영숙이 2020. 3.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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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평생에 선하심과 인자하심이 반드시 나를 따르리니 내가 여호와의 집에 영원히 살리로다(시편 23 : 6) - 내가 변하지 않으면 내 삶은 변하지 않는다. 나의 시야. 관점. 가치관. 생각을 변화시킬 분은 오직 예수님 뿐이시다.

< 디스크 >

 

  벌써 11월의 싸늘한 날씨에 음식물을 냉장고 안 넣고 다음날 아침에 먹을 것은 그냥 뒷베란다에 내어 놓아도 되는 날씨가 되었다.

  그러다 보니 뒷베란다에는 크고 작은 압력밥솥이랑 프라이팬과 스텐냄비들이 자리를 차지하고 앉아 있게 된다.

  냉장고에 음식을 넣어 두면 음식 맛이 덜해지고 그냥 실내에 두면 쉬이 상하기 때문에 늦가을부터는 종종 베란다에다 두는 것이다.

  벌써 음식을 밖에 두어도 신선한 계절.

 

  9월과 10월은 흔적도 없이 사라진듯, 남편이 아파서였기 때문이다.

 

  7월, 8월 두달을 공장 증설 때문에 무척 바쁘게 지냈다.

  거의 하루 내내 서 있었다고 집에 오면 힘들다며 투덜거렸고, 그려면서도 늘 부지런하게 움직여서 그런가 보다 했었다.

 

  피곤하다고, 힘들다고 투덜대면

 

  "나는 직장생활 안하나? 꼭 자기만 하는 것처럼 그래."

 

  하면서 들은척도 안 했지만

  얼굴색이 까맣게 타는 것 같아서 신경이 쓰였고 9월 초 허리 삐끗했다고 하길래 한의원에서 침 맞으라고 하니 열심히 맞으러 다녔다.

 

  한약 좀 먹으라 하니 들은 적을 안 해서 살짝 한약을 지어 놓고서 약값을 미리 지불했다고 말하고는 사실은 외상이지만 먹으라고 몸에 좋다고 하니 먹기는 먹었다.

  그래도 얼굴색이 컴컴하니 좋아지지 않았다.

  한 번씩 폭음에 과로가 겹치고 거기에 피로를 풀지 않고 계속 바쁘게 일하기 때문이 아닌가 싶었다.

 

  줄담배와 과로 그리고 음주.

  안 좋은 것은 전부 하고 있는 셈.

 

  게다가 여름에 유난히 땀을 많이 흘려 기가 몹시 허하고 약해 보이는 데다가 힘에 부쳐도 자기 할 일을 다하니 드디어 추석에 새댁 다녀오고 마침 내가 화상을 입어서 쉴사이 없이 바쁘더니 덜컥 골반께 가 아프다면서 꼼짝을 못 했다.

 

  처음엔 예사로 받아들였는데 아니었다.

 

  밤엔 아파서 끙끙거리며 잠도 못 자고, 겁이 난 우리는 정형외과와 신경외과를 전문으로 보는 병원에 가서 물리치료와 엑스레이 그리고 시티 촬영을 하고 진찰을 받았다.

  결과는 경미한 디스크였다.

  그러나 본인의 통증이 너무 격심해서 병원에서 준 진통제를 먹고는 하였다.

 

  밤에는 통증 때문에 잠을 못 자고 집안을 돌아다녔다.

  잠을 못 자고 신경을 쓰니 얼굴이 벌게지면서 혈압이 올라가는 듯싶었다.

 

  그렇지만 옆에서는 어쩔 도리가 없었다.

  그냥 집안을 돌아다니거나 아이들 그네에 있는 철봉에 매달려 있는 것을 멀거니 바라 볼뿐.

  어떻게 해줄 수 있는 것도 아니었다.

 

  그러면서도 진쌤은 진쌤대로 피곤하고 잠이 왔다.

  그동안 남편이 거들어 주던 일을 진쌤 혼자 바쁘게 해내야 하는 데다 남편 시중까지 전부 들어줘야 하기 때문.

 

  아침 챙기고 점심때 학교가 다행히 가까운데 있어서 점심 챙겨주러 와야 하고 끼니마다 약을 챙기고 과일, 간식 챙기고 웬 빨래는 그리도 많은지.

  그동안 남편이 거들어서 그렇게 많은지 모르고 지낸 듯하다.

  청소는 아무리 해도 청소한 건지 안 한 건지.

  하루가 어떻게 가는지도 모르게 가고 있었다.

 

  거기에 남편의 짜증은 어떻게 할 수 없었다.

  물론 본인도 다리가 아프니까 짜증이 나겠지만 담배는 또 왜 그리 피워대는지.

 

  병원에서 시티 촬영을 하고 진찰받고, 물리치료하는 것을 지켜보자니 통증만 심해지고 또 진통제를 남용하기 때문에 결코 남편 치료에 유리하지 못한 듯.

 

  진통제를 못 먹게 하니 잡아먹을 듯 퍼부어 댄다.

 

  하루는 병원에서 물리치료받고 나와 저 멀리에서 담배 피우는 얼굴 모습이 아득하니 보여서 저래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너무 기운이 없고 기가 쇠한 모습이어서 일단 2년 전에 조금 아플 때 효과를 본 한의원에 문의해본 결과 무책임한 한의의 대답에 시내 침을 잘 놓는 곳에 가보기로 하였다.

 

  첫날 침을 맞고 나오면서 많이 좋아졌다고 하였다.

  한의사가 일주일이면 나을 수 있다는 장담에 위로를 받는 듯.

  그곳에서 지은 한약을 열심히 먹고 치료도 열심히 다녔다.

  그러나 그곳의 침은 보통 한의원에서 놓은 작은 입침이 아니라 굵고 긴 대침이어서 약한 몸이 더욱 약해지는 듯싶어 어머니가 해주신 솔잎가룰르 열심히 먹였다.

 

  한의원에서 혈압이 190까지 올라갔다고 해서 청심환을 10개 샀지만 집에서 재보니 160이었다.

  시내 한의원에서 지은 약을 먹는 내내 몸에 열이 나고 더워서 땀을 뻘뻘 흘렸다.

  그러면서 혈압이 올라 가는지 170에서 오르락내리락하면서도 기운이 약해 보이는 것은 마찬가지.

  회사에 출근은 해야 하는데 몸은 계속 아프고 결국 휴가원을 보름 냈다.

 

  모든 병은 근본 치료를 해야 한다.

  증상만을 치료하고 근본 원인을 치료하지 않는다면 결국은 제자리걸음일 뿐.   

  증상만 조금씩 호전되다가 말다가 악화되다가 할 뿐인 것이다.

 

  근본 치료를 위하여 뼈 맞추는 곳에 가자고 하였다.

  활법이라고 한다.

  경주 무영탑이라는 소설을 태어난 영지 못 근처의 영지 마을에 있는 벙어리 뼈 쟁이네 집에 가서 뼈를 맞추자고 하였다.

 

  그 집은 이전에 진쌤 큰 애를 길러 주시던 할머니 허리가 안 좋아서 큰애를 업고 할머니 모시고 가서 허리 치료를 받아 할머니 허리를 완치한 곳이었다.

 

  남편은 펄펄 뛰었다.

 

  더 악화된다면서 난리가 났다.

  아무리 말을 해도 화만 낼뿐.

  도저히 말이 통하지를 않았다.

  그렇게 아픈 것보다는 한번 해보는 게 어떠냐고 아무리 이야기해도 소용없었다.

 

  뼈를 맞추는 도장하고 다르다 해도, 조금치의 양보도 없이 이해하고 받아 들이 고를 하지 않았다.

  드디어는 시어머니에게 전화를 하였다.

  당신 아들 좀 설득하여 달라고.

  그러고 학교 갔다 오니 가겠다고 한다.

 

 일요일 일찍 시동생 차를 타고 경주 영지 마을에 가니 그 집에 어떤 아주머니가 누워서 이미 치료를 받고 서울서 왔는데 서울 가는 기차를 기다린다며 누워 있었다. 

  비교적 이른 시간이라 그런지 조용하였다.

 

  허리를 발로 밟고 다리를 뒤로 젖혔다.

  그곳에서 두어 시간 누워 있다가 집에 와서 그곳에서 들은 대로 조리를 하였다.

  목욕은 안 하고 샤워만 하고 가만히 누워 있으면서 허리를 조심하였다.

 

  첫날 다녀와서는 아프다고 더 아프다고 난리를 쳤다.

  더욱이 다음날 일찍부터 한의원에 가서 반나절을 기다리다가 침을 맞고 와서는 아프다고 난리를 치는데 곤란하였다.

 

  그러다가 조금 좋아지는 것이었다.

  한번 더 가자고 설득하였다.

  싫다고 하다가 옛날부터 내려오는 치료법은 무시할 수 없다.

  또 결혼 전에 영남대 의과 대학에서 배운 허리 치료 운동법 하고 같은 내용이다 하고 설득하니 간다고 한다.

 

  갔다 온 날은 아프다고 신경질 부렸지만 다음날은 진쌤이 볼 때 조금 더 좋아지고 있었다.

  한의원에서 기다리는 게 힘드니까 침 맞으러 가지 않고 집에서 허리 조리를 하였다.

 

  한의원에 가기로 한날, 반구동에 한의원을 병문안 오신 분이 추천을 하였다.

  남편이 물었다.

 

  "거기에 갈까?"

  "가고 싶은 데로 가세요."

 

  결국 반구동 한의원으로 갔다.

  언제인가 체육관에 체육대회 있어서 갔다가 반구동 한의원이 약을 잘 짓는다고 하여서 억지로 왔었던 적이 있었다.

 

  그때는 유행이 알 카리니 산성체질이니가 유행하여 체질개선 기계가 10대쯤 있어서 한약 지으러 온 사람들이 양이온, 음이온으로 나뉘는 기계에 한참씩 앉았다가 가곤 하였었는데 이번에는 없어지고 대신 디스크에 관한 기계가 있었다.

 

  추나요법이라나?

 

  원래 한의사는 아래층에서 약국을 경영하였었는데 그만두고 한의대를 가서 한의학을 공부한 다음 한의사가 된 사람이었다.

  한의사로 유명해졌고, 끊임없이 연구하고 공부하는 사람이었다.

  이번에는 "기"공 불르 하여 진찰도 "기"를 이용하여 하고 환자의 상태도 환자의 "기"를 읽고 있었다.

 

  침도 마찬가지.

  "기"를 이용한 침.

 

  한의원의 분위기를 읽는 순간.

  이 한의원이 남편의 상태에 맞는, 남편을 호전시킬 수 있는 곳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남편은 "기"가 많이 쇠약해져 있었고 마음이 불안정하여 "기"의 흐름을 바로 잡아 줘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었다.

  30여분에 걸쳐 섬세한 진찰을 하고 환자의 "기"의 흐름을 읽고 상태를 정확하게 파악한 다음 환자에게 맞는 약을 지어주고 추나요법을 하였다.

 

  추나요법이라는 것은 기계는 미국에서 들여왔지만 결국 운동부족과 불완전한 자세에서 오는 허리의 뒤틀림을 교정해 주는 기계로 사실 경주의 뼈 맞추는 곳과 일관된 치료법으로 남편의 신뢰를 얻을 것 같았다.

 

  한의원 샘은 천주교 신자로 하나님을 믿으라고 설교하고 환자의 상태를 열심히 파악하고 치료하는데 성심을 다하고 있었다.

 

  남편은 그날 밤부터 잠을 푹 자기 시작하였다.

 

  시어머니가 오시더니 부적을 태우고 촛불을 켜고 북적북적 새벽마다 남편하고 둘이서 어쩌고저쩌고.

  시어머니가 새벽에 부적을 태우러 가면 집안에 하얀 연기가 가득 찼다.

  정말 무서운 일이었다.

  그렇게 해서 건강해진다면 세상에 아플 사람이 어디 있을까.

  아니라는 걸 알면서도 시어머니가 하는 일을 막을 수 없다는 게 너무 싫었다.

 

  "시어머니가 밖에서 부적을 태우는구나."

 

  어머니는 토요일 날 대구 집으로 가셨다.

  다음 주에 오신다고 하는데, 남편이 안정을 취해야 해서 조용히 요양해야 한다고 오시지 않아도 된다 했더니 언양 반천으로 해서 대구로 가셨다.

 

  추나요법을 받은 날과 다음 날은 허리 운동을 하지 않도록 하고 매일 아침저녁으로 허리 운동을 하도록 하였다.

  진쌤도 생리 후 허리가 아픈 듯하여 남편 운동할 때 다라서 허리 운동을 하였더니 안 아팠다.

 

  사실 어머니가 오셔서 헌신적으로 집안일을 도우셨고 부엌 일도 하셔서 진쌤이 몸살이 안 났지 아니면 몸살이 났을 것이다.

 

  그렇지만 부엌을 장악하면서 조금씩 잔소리도 살아 나시는 것 같아서 불안하고 지금까지 유지되어 오던 균형이 깨지는 것 같아 신경이 쓰였다.

  사실 안 오셔도 된다 하면 좀 섭섭하시겠지만 지금 조금 섭섭한 게 좋지 또 오셔서 어쩌고 저쩌고 시끄러우면 더 손해다.

 

  일주일 전부터 진쌤은 운전을 시작하였다.

 

  남편이 허리가 아파서 운전은 당분간 보류 상태였고, 차를 세워 놓을 바에야 진쌤이라도 운전을 배워서 한다면 여러 가지로 편리할 것 같아서였다.

 

  처음 며칠은 무엇을 하는지도 모르고 옆에서 운전 교습 선생님이 시키는 대로 했지만 일주일쯤 지나니까 짐 선생님이 무엇을 하고 있는지 알 것 같았다.

  10일쯤 지나니 조금씩 운전을 할 수 있었다.

  익히기 위해서 운전 연습차로 5일을 더하고 자차로 5일을 하고 나니 조금 할 수도 있을 것 같았다.

 

  처음 혼자 차를 끌고 학교에 간 날은 8시 15분 전에 집에서 나와서 학교엔 8시 25분에 도착하였다.

  원래 10분 거리이다..

 

  아파트 주차장에서 차를 꺼낼 때 차 옆구리를 긁혔고 학교 교문을 못 들어가고 학교 교문에다 차 앞머리를 대고 오도 가도 못해서 체육 선생님이 학교 교문을 통과해 주었다.

  이번에는 아무리 밟아도 차가 안 나가길래 보니까 사이드 키를 풀지도 않고 열심히 밟아 대고 있었다.

  사이드 키를 풀려니 힘센 체육 선생님이 세운 거라서 잘 풀리지도 않아 두 손을 가지고 겨우 풀었다.

 

  시장 골목에서 나오면서 보니까 진쌤이 천천히 가는 바람에 뒤에 차가 일렬로 죽 늘어서 있었다.

  급한 마음에 일 차선으로 해서 좌측 차선으로 들어가야 하는데 갑자기 이차선에 넣었더니 놀란 나이 드신 할아버지 자가 운전자가 화를 내며 욕을 하는 것이  보였다.

  옆에 서 기다리던 트럭 운전자 녀석들이 웃으면서 놀린다.

 

  "백 해서 나가셔야 되겠네요."

  '자식들. 여기서 어떻게 백을 해. 그럴 바에 그냥 앞으로 가는 게 훨씬 괜찮지.'

 

  결국 학교 도착 시간이 엄청나게 늦어졌던 것이다.

 

  차를 운전하다 보면 핸들을 막 잡아 뽑고 있다.

  아니 브레이크를 밟아야지 핸들을 꽉 잡고 뽑아 댄다고 차가 멈추어지나?

  우회전하면 진쌤 몸이 먼저 그쪽으로 기울고 있다. 

  정말 웃기는 일이다.

 

  학교 주차가 어려워서 티자로 된 학생들 출입문 쪽에 차를 두었는데 한쪽 옆으로 아무리 가져다 붙이려고 해도 안되어서 드디어 배테랑 샘이 하라는 대로 하니까 금방 되었다.

 

  진쌤은 왜 붙이려 하는데 자꾸 벌어지고 그 샘은 간단히 붙일 수 있었을까?

  모를 일이다.

  진쌤도 한참 지나면 좋아지려나?

  희망을 가져 보는 수밖에.

 

  남편이 호전되면서 진쌤 말도 조금씩 듣기 시작했다.

 

  너무 바빠서 책은 읽어지지 않아서 월간 에세이를 읽었더니 어떤 부부가 일주일에 한 번 밖에서 만나 외식도 하고 커피도 마신다고 하여 아픈 거 나으면 일주일에 커피 한잔씩 사달라고 하니 집에서 끓여주면 주었지 사주지는 못하겠단다.

 

  토요일 날 한의원 가기 전에 양말 신겨 주면서

 

  "그럼. 나으면 커피 한잔만 사주세요."

  "알았어. 사줄게."

 

  일요일 날

 

  "한잔은 너무 한 거 같으니까 세잔만 사주세요."

 

  피식 웃고 만다.

  많이 좋아진 어느 날 한의원에 갔다 왔다.

 

 "몇 잔 사줄 거예요?"

 "세잔 사줄게."

 

  로터리 리비아 카페가 창문의 풍경이 근사한데 즉 창문 가득 은행나무가 서 있는데 그 은행나무 잎이 다 떨어지기 전에 남편이 커피를 사준다면 좋겠다.

 

  어머니는 오시던 날부터 저렇게 아파서 어쩌냐는 둥 왜 하필이면 내 아들이 아프냐는 둥 난리.

  병문안 오는 분들에게 그런 말 하려고 해서 말렸다.

  본인도 아파서 얼마나 신경질을 내고 속이 상해 있는데 어머니라도 괜찮다고 이까짓 병은 아무것도 아니라고 하시라 했더니 더 이상 병 이야기는 하지 않으신다.

 

  그런데 사실 진쌤 속생각을 말하라면 그동안 너무 술을 마셔댔고, 또 바쁘기도 했고, 성격적으로 일을 보고 못 참는 사람이라서 이런 기회에 술도 안 마시고 또 무리하게 일을 하지도 않을 것이고 억지로라도 쉬게 되는 것이다.

 

  사실 현대인들은 얼마나 쉬고 싶어 하는지.

  심한 병만 아니라면 억지로라도 쉬고 싶은 것이 현대인들.

 

  그런 의미에서 술도 2달이나 끊었고, 보약도 열심히 먹어대서 몸도 좋아졌고, 앞으로는 허리와 자신의 건강에 조심할 테니 오히려 득이 된 듯.

 

  현대인들은 운동을 안 하고 무리하게 일을 하여서 디스크가 많이 온다고 한다.

  만약 이런 디스크가 안 오고 몸에 이상이 없다면 누가 쉴 수 있을까.

  그런 의미에서 현대인들에게 디스크는 문명의 병이면서도 결국 자신을 위해서는 건강을 재정비하고 재충전할 수 있는 기회가 될 수도 있다.

                                  1997. 11. 월 < 예수 믿기 전에 있었던 일 >

 

    하나님이 불러 주시기 전에 진쌤은 그냥 세상의 보통 아낙네였다.

    영적으로 나약하고 어리석은 인생.

    하나님이 불러 주신 이후에 진쌤은 하나님의 사람으로 살아가는 아낙네이다.

 

  내 평생에 선하심과 인자하심이 반드시 나를 따르리니 내가 여호와의 집에 영원히 살리로다(시편 23 : 6) - 내가 변하지 않으면 내 삶은 변하지 않는다. 나의 시야. 관점. 가치관. 생각을 변화시킬 분은 오직 예수님 뿐이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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