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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City life of JINNSSAM

Marriage life of JINNSSAM 3

by 영숙이 2020. 3.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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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평생에 선하심과 인자하심이 반드시 나를 따르리니 내가 여호와의 집에 영원히 살리로다(시편 23 : 6) - 내가 변하지 않으면 내 삶은 변하지 않는다. 나의 시야. 관점. 가치관. 생각을 변화 시킬 분은 오직 예수님 뿐이시다.

 

1. 봄나물

 

  2월말

  벌써 봄이 오고 있다.

  날씨가 별로 춥지도 않았는데 벌써 봄이라니.

   

  이곳 울산은 눈이 오지 않는 탓에 여고생들이 좋아하는 하얀 눈이 쌓인 겨울의 정취를 제대로 느끼지 못하고 지나가고 만다.

  좋아하는 스케이트도 제대로 타보지 못하고.

 

  억지로 한 번 이곳 울산이 고향이 되버린 아이와 함께 스케이트를 타보았지만 아이는 재미를 느끼지 못한다.

  그맛을 억지로 알게 할 수는 없는 일.

  환경에 적응하며 살기 마련이기에 내가 어렸을 적에 그토록 스케이트며 썰매를 즐겼다고 아이에게 그것을 다 알게 해줄 수는 없다.

  어느정도의 체념이 가미되선 혼자 중얼거리고 만다.

 

  "억지로 돼는 일은 없지."

 

  아무튼 이상기후 탓인지 지구 온난화 탓인지 점점 더 겨울이 겨울답지 못하고 날이 따뜻해진다는 생각이 든다.

  제철이 아닌 딸기니 토마토니를 제철인지 아닌지도 모르고 먹고 살고 있는 것처럼 겨울이라고 추워야 되는지, 추운지 어쩐지 모르고 그냥 흘려 보냈는지도 모른다.

 

  더욱이 아파트 생활이랴.

  겨울방학 내내 사각 시멘트에 꼭 들어 앉아 생활하니 더욱 그런거 같다.

  어른인 나는 그런대로 추억이나마 간직하고 있지만 추억을 만들어 가는 아이들에게 그런 것을 느낄 수 없게 하는 것이 안타까울 뿐이다.

 

  내가 안타깝게 여기던 말던 세상의 모습은 자연을 거스르며 편리 또 편리 문명 또 문명을 외치면서 흘러 가고 있으니 일개 범부인 나로서는 그런 세상을 바꾸거나 개조 하기는 커녕 눈부시게 변화하는 세상에 적응하면 살아내기도 바쁘니.

 

  아무리 그렇다 해도 계절이 바뀔때면 특히 봄이 오는 느낌은 본능적으로 감지하게 마련이고 그러면 자연스럽게 봄나물을 케러 가고 싶어진다.

  어렸을 때도 난 자주 봄나물을 케러 가지는 못했었다.

  잠시 국민학교 저학년 때 외갓집에서 살았었는데 그때 동네 아이들을 따라 다니면서 케본 일이 전부였다.

  그래도 들을 쏘다니면 따뜻한 봄볕아래서 나물을 케는 것은 얼마나 신명나는 일이었는지

 

  나는 다른 아이들보다 적게 뜯는게 싫어서 무조건 큰걸로만 캐서 바구니를 체우고, 다른 아이들 바구니에 들은 것을 비교해가며 비슷하게 들어 있는 것에 만족을 했다.

  외할머니에게 칭찬 받고자 마실 오신 다른 할머니들과 마루에 앉아 계시던 외할머니에게 자랑스럽게 드렸지만, 칭찬은 커녕 먹을 만한 것은 하나도 없다고 퉁명스럽게 투덜대는 지청구만 들어야 했다.

  나는 왜 먹을 것이 하나도 없냐며 못먹는다고 옆에 수북히 쌓아 놓은 나물을 들어 올리며 이걸 왜 못먹느냐고 항의하던 기억이 난다.

 

  어쨌든 바구니를 들고 밭자락이나 논두렁을 다닐 때면 이제 막 따뜻한 햇병아리같은 볕살들은 얼마나 따뜻하고 기분이 좋았는지.

  진달레 꽃잎을 따먹으며 그야말로 가곡에 나오는 대로의 장면이 사긋 ㅁ한귀퉁이에 낙인 되어 있지만 지금의 아이들이 그런 것을 알턱이 없다.

 

  덕분에 내 주위에는 나 빼놓고는 봄나물을 케러 가고 싶어 하는 사람이 하나도 없다.

  남편은 물론 이곳에 사는 여동생도 나물을 캐러 가자고 하면 특히 울산에 많이 불어오는 봄바람 탓도 있지만 얼굴부터 찡그리며 싫다고 한다.

  아이들은 말해 무엇하랴!

  큰애는 큰애대로 컴퓨터 오락하고 싶은데 아까운 시간을 빼앗긴다고 투덜거리고 작은 아이는 작은 아이대로 백화점이나 플레이키즈 클럽에 가지 않는다고 징징 거린다.

 

  그래서 몇번 말을 꺼내지만 결국은 양보하고 마음 속으로만 무척 가고 싶어 한다.

  혼자서 갈 용기는 없고, 또 혼자 가면 무슨 재미랴.

  밝은 햇볕, 맑은 공기 그리고 막 솟아 나오는 봄나물의 싱그러운 생명력이 얼마나 환희에 가득 차는지 왜 사람들은 모르는 것일까.

 

  이곳 사람들은 이른 봄철에 가장 먼저 먹는 벌금다지를 모른다.

  먹을 줄도 모르고.

  우리나라가 이렇게 좁은데도 이렇게 다른 습관이 있다는 것을 생각하면 신기하다.

 

  막 겨울을 지나 가장 먼저 솟아 오른 아담한 파아란 싹은 황홀하다.

  그 싱싱한 생명력은 옛날 고기를 못먹던 시절에도 고기보다 낫다고 했다.

  이즈음에 이르러서야 더 말해 무엇하랴.

  공해에 찌들고 더욱이 사료와 항생제로 길러진 흔한 고기보다 얼마나 좋은 것인지.

 

  충청도에선 이 벌금다지를 이른 봄에 제일 먼저 뜯어다 먹었다.

  이 나물은 쑥이 봄비에 젖어 통통하게 살이 오를 즈음에는 양지녘의 것은 벌써 세어지고 너무 웃자라서 못먹는다.

  어렸을 적에 벌금다지를 캐어서 참기름과 깨소금에 무쳐 먹으면 얼마나 맛이 있었는지 지금은 그때처럼 신선하다든지, 고소하다든지 하는 맛을 덜 느끼지만(일년 내내 싱싱한 채소를 먹을 수 있는 입맛  탓이다.)

  그래도 김치만 먹다가 벌금다지를 먹으면 꼭 새봄의 봄기운을 입안 가득 씹는 느낌이 들곤 한다.

 

  그러나 아이들이 그 맛을 알랴.

  억지로 수저 위에 올려 놓으면서 몸에 좋다고 여러번 강조하면 할 수 없이 엄마 얼굴을 봐서 한두번 먹어 주는 척 할 뿐이다.

  되도록이면 자연식을 해주려고 했는데도 어느사이 아이들은 인스탄트 식품의 감칠맛에 중독이 되어 그런 맛이 있어야먄 맛있는 것인줄 안다.

  물론 다 내 책임이지만 어느사이 나도 문명의 편리함에 길들여져서 그것을 따라가는데 급급하니 아이들을 나무랄 일도 아니다.

 

  올해도 벼르고 별러 일요일 날.

  남부 도서관에 가서 책을 빌려 가지고 너는 나물 안뜯어도 좋으니 차안에서 책이나 읽으라고 꾀어내서 청량면 새로 지은 농촌 지도소 근처로 나물을 뜯으러 나갔다.

 

  그래도 작은 애는 엄마를 쫄랑쫄랑 따라 다니며 이것 저것 묻기에 바쁘다.

  처음에는 벼 베어낸 자리가 그대롤 있는 논바닥을 무서워 했지만 그것이 무서운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는 이리 저리 내 뒤를 쫓아 다닌다.

 

  벌금다지는 양지쪽 논둑이나 물없는 논바닥에 얼마든지 예쁘게 옛날에 지청구를 듣던 할머니가 말하던 못생긴 모양이 아닌 먹을 만한 깔끔한 모양새로 그야말로 지천으로 널려 있다.

 

  나는 이제 막 솟아 오르는 대지의 기운을 받아내는 자연인이 되어서 발바닥과 머리의 정수리로 봄기운이 가득한 기가 젖어 들어오는 것을 느낀다. 

  행복한 자연인

 

  농사를 짓고 또 전원에서 사는 이들이 듣는다면 소가 웃을 일이라며 흉보겠지만 그렇지 않은 생활을 하는 나이기에 어쩌다 이런 기회가 되면 행복한 자연인의 느낌이 얼마나 좋은 것인지를 몇배로 느낄 수 밖에 없다.

  난 자연의 일부가 되고 그리고 자연의 일부를 소유하는 것이다.

  입맛을 돋구는 향미 좋은 봄나물을 빨아 들이고 있는 것이다.

 

  노동을 천시하고 흙 만지는 일을 싫어 하도록 조성이 된데다가 문명의 편리에만 길들여진 탓에 이렇게 나물을 뜯으면 그것의 아름다움을 보기 이전에 겉모양만을 보면서 구질구질 하다고 뒤 돌아서서 이야기를 한다.

  아니 본인이 듣는데서 시장에 가면 1000원어치만 사면 먹고 남는데 뭐하러 봄볕에 얼굴 태우면서 힘들게 그것을 뜯느냐고 대놓고 이야기 한다.

 

  허긴 피부미용에 아낌없이 투자하는 현대 여성이 피부미용에 절대적으로 나쁜 봄볕을 좋아할 리가 없지만 누구 말마따나 세월 지나면 어짜피 쭈구라질 몸인데 그렇게 아낀다고 늙지 않는 법이라도 있는건지.

  오히려 건강에는 그 싱싱한 대지의 기운을 받아 들이는 것이 훨씬 좋지 않을까?

  음지의 눅눅한 습기보다는 양지녘의 햇볕 아래 자란 식물이 튼튼하듯 우리 인간도 그런 것이 아닐까.

 

  아무리 똑똑한 인간도 결코 자연의 힘은 거역 할 수 없다.

  그렇다면 자연을 거역하고 음지녘의 식물처럼 사는 것보다는 자연의 순리를 따르며 양지녘의 식물이 된다면 그것이 얼마나 건강하고 보기 좋은 것인지.

  그것을 안다면 그렇게 간단하게 비웃을 수는 없으리.

 

  어찌 인간의 건강과 자연의 신비한 기운을 돈 천원으로 살 수 있다고 생각하는지, 난 그렇게 이야기 하는 사람들을 오히려 이해  할 수가 없다.

  그리고 손수 마련한 음식을 가족과 함께 감사한 마음으로 맛있게 먹고 또 그것이 가족의 건강에 좋은 것이라면 그것이 얼마나 축복 받은 것인지를 모르는 사람과는 더 무슨 이야기를 하랴.

 

  나물을 뜯으며 이런 저런 생각을 하고 있는데 차안에서 책을 읽고 있던 큰애가 쫓아 왔다.

  빨리 집에 가서 컴퓨터 오락이 하고 싶은 것이다.

  봄기운을 느끼길 바라지만 내 의도대로 그런 것을 그애가 느끼지 못한다고 하여도 어쩔 수 없다.

  어디 세상일이 제 마음대로 되는건가.

 

  그러려니 하고 흙위에 다 못 담은 내 뜻을 체념하고, 나도 다른 사람들처럼 시멘트 네모칸 안으로 돌아가서 시끄러운 텔레비젼 소리에 뇌신경을 마비 시키고 대신 오늘 저녁 밥상에나 봄기운 한자락을 펼쳐 놓을 수 밖에.

 

  그러나 오늘 잠깐이지만 봄기운으로 뎁혀진 가슴이 당분간은 훈훈하게 마음을 감싸안을 것이라는 것을 믿어 본다.

  비록 꽃이 피고 지는 것을 느낄 사이도 없이 그리고 오직 시계 분침의 움직임에 끌려 다닐지라도 올봄에 내가 조금 껴안았던 봄볔만은 간직하리.

  옛날에 어쩌다 맛본 조청맛처럼.

  두고 두고.

                                                     1996년 봄 저녁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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