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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이비붐 세대 탐구 생활/또순이 어렸을 적에

또순이 어렸을 적에 112

by 영숙이 2020. 4.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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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3. 독서실 

  대흥동 테미 시장을 지나 테미 고개 가기 전에 도로가로 독서실이 있었다. 

  테미 독서실.

                             

  2층은 여학생용  3층은 남학생용 독서실 1층은 가게였다.

  건물을 빌려서 독서실을 만든게 아니고 주인 건물인데 독서실을 만들었다고 하였다.

  주인은 50대 초반의 아저씨였는데 무척 성실하게 독서실을 관리하였다.

  항상 새벽이면 청소를 하였고 난로를 피워야 할 경우에는 불을 꺼트리는 법이 없었다.

 

  주택은 난방이 잘 안되어서 연탄이 있는 방바닥은 따뜻했지만 대체적으로 추웠었다.

  옷을 많이 입고 내복을 입고 있어도 외풍이 세어서 바람이 쉬이 지나갈 정도니까 추운 건 어쩔 수 없었다.

 

  독서실은 외풍이 심한 주택과는 달리 바닥이 따뜻하지는 않았지만 연탄 난로를 하루종일 피워 놓으니까 실내가 항상 따뜻한 훈기가 있었다.

  낮에 환기도 잘 시켜 놓아서 기분 좋게 공부에 집중할 수 있었다.

 

  충남여고 2학년 때 공부를 하기 위하여 책을 싸들고 독서실로 갔다.

  엄마가 용돈같은 쓸돈을 주지 않아서 항상 여유가 없었지만 공부하는데 필요한 건 다 할 수 있게 해 주셨다.

 

  학교에서 집에 오면 저녁을 먹고 독서실로 와서 다음 날 아침까지 있다가 아침에 집에 가서 밥을 먹고 학교를 갔었다.

  특히 시험 기간에는 학교가 끝나면 바로 독서실로 와서 공부를 하였고 저녁은 동생들이 도시락 싼 것을 3개 가져다 주어서 저녁, 아침 먹고 학교에서 점심을 먹고 바로 독서실로 오기도 하였다.

 

  영어와 수학은 여전히 따라가기 힘들었지만 그외의 과목은 1~2개 틀리고 다 맞출 수 있었다.

  성적이 나오니까 재미가 있어서 더 열심히 했던 것 같다.

 

  지금도 독서실이 있는 것을 보면 공부에 독서실이 필요하기는 한가보다.

  요즘 처럼 집안 환경이나 시설이 좋을 때에도 독서실은 공부만을 하기 위한 공간이기 때문에 공부를 하기 위해서는 그런 분위기가 필요한 가보다.

 

 

214. 고등학교 입시 원서

 

  초겨울이 되면서 입시 원서를 쓰는 계절이 되었다.

 

  또순이와 2년 차인 동생 또돌이가 고등학교 원서를 써야 했다.

 

  대전 고등학교를 쓴다고 원서좀 사오라 하여서 아침에 엄마한테 원서비를 받아 가지고 학교를 갔다. 

 

  그날 따라 학교 수업이 일찍 끝나서 원서를 산다고 일찍 나와서 대전고등학교에 가서 원서를 사서 다른 날보다 집 대문을 일찍 들어섰다.

  막 대문을 들어섰는데 자전거를 타고 다니는 또돌이가 대문 안에 자전거를 탄 채 서 있었다.

  엄마는 또돌이 앞에 서서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어? 일찍 왔네?"

  "응, 충남고등학교 원서 사려고 원서비 가지러 왔어. 선생님이 충남고등학교 원서 쓰래."

  "그래? 대전고등학교 원서 사왔는데?"

  "그럼 대전고등학교 원서 줘. 그냥 대전고등학교 쓰지 뭐." 

  "원서비 받아가."

  "아냐. 그냥 대전고등학교 쓸래.".

 

  또돌이는 대전고등학교 합격선에 아슬아슬 걸려 있어서 담임 선생님이 안전권인 충남고등학교 원서를 쓰라 하여 원서비를 가지러 왔던 것이다.

 

  어제는 대전고등학교 시험을 친다고 아침에 엄마한테 원서비를 받아서 사 왔던 건데 대문 앞에서 딱 마주친 것이다. 

 

  만약 또순이가 5분만 늦게 왔어도 또돌이는 원서비를 받아 갔을 것이고 충남고등학교 원서를 썼을 것이다.

 

  그렇게 대문 안에서 딱 마주치기도 쉽지 않을 것이다.

  평생 그 일이 마음에 걸렸다. 

 

  운명이라는 게 있다면 이런 것일까?

 

 "조금만 늦게 사 왔더라도, 아님 동생이 원서비를 가져갔더라면, 대전고등학교 원서 사 왔다 해도 충남고등학교 원서를 사서 썼더라면....." 

 

  또돌이는 후기였던 서대전고등학교에 입학해서 잘 다녔고 엄마가 원하던 해군사관학교를 합격해서 눈부신 해군사관학교의 하얀제복을 입고 외박이 가능할 때면 울산에 있던 또순이에서 영숙이로 진화한 영숙이를 만나러 오고는 하였다.

 

  대전고등학교 원서 사간 일을 이야기 했더니 또돌이 왈   

 

  "대전고등학교에 최선을 다해서 시험을 쳤고 떨어져 봐서 후회나 미련이 안남았지, 만약 그냥 충남고등학교에 갔더라면 대전고등학교에 갈 수 있었는데 하면서 미련이 남았을거야. 시험 쳐 보길 잘한거야."   

 

  서대전 고등학교 다니는 동안 또돌이는 집 바로 옆에 있는 대흥교회 주일학교 중고등부를 다니다가 고등부 회장까지 했었다.

  그렇게 주일학교 학생부 회장까지 했었지만 사관학교 다니면서 교회를 떠났고 지금도 주님한테서 멀리 떨어져 있다.

  언제인가는 진정한 주님의 사람이 될 것임을 의심치 않는다. 

 

 

215. 입학시험을 치는 날.

 

  대전고등학교 입학시험을 치는 날.

  학교 교문에는 학부형들이 가득 있었다.

  또순이도 아침부터 또돌이랑 같이 대전고등학교로 가서 교문 앞에 서 있었다.

 

  기도를 했을까?   

  기도를 할 줄 알았을까? 

 

  간절했었던 건 사실이다.

  왜냐하면 3개 틀리면 합격이고 4개 틀리면 불합격으로 한 개 차이로 합격과 불합격이 달라지기 때문이었다.

 

  실수로라도 틀리면 안 되었다.

 

  점심을 집으로 먹으러 갔다.

  집이 가깝기도 하고 주변에 식사하기에 마땅치도 않고 추워서 집으로 먹으러 갔었던 것인데 시간이 빠듯해서 시간을 맞추느라 학교까지 뛰어 왔고 종이 울리는데 교실로 뛰어 들어갔다.

 

  결국 당황한 상태에서 시험을 치렀고 그 시간에 한 개 정도만 틀려야 합격인데 두 개를 틀려서 다른 과목에서 2개 더 틀리고 해서 대전고등학교에 떨어졌다.

 

  또순이는 하루 종일 추운데 교문 앞에 서 있다가 시험이 끝나고 같이 집으로 돌아왔다가 독서실로 갔다.

  그런 날은 독서실에 가지 말고 그냥 집에서 잤으면 좋았을 텐데,

  독서비는 한 달씩 끊었기 때문에 그날도 독서실을 갔다.

 

  추위에 시달리고 긴장해서 너무 피곤했었나 보다.

  본인도 모르게 잠들어 있다가 느낌이 이상해서 깨었다.

 

  아마도 긴장해서 화장실 가는 걸 잊고 있었나 보다.

  피곤한 상태로 잠이 들어서 자기도 모르게 흘러나와 바닥을 흥건히 적시고 있었다.

 

  일어나서 집에 왔으면 될 텐데 너무 놀라고 창피해서 울고 있었다.     

 

  "흑흑흑"

 

  그 바람에 독서실에 잠들어 있던 학생들이 다 깨어서 소란했다.

 

  "뭐야. 뭐야."

 

  얼른 보따리를 싸서 집에 왔지만 너무 창피해서 그 후 독서실에 한동안 갈 수가 없었다.

  한참 위에 오빠들이기는 하였지만 의대 본과 다니는 우리 집 하숙생들이 독서실에 있었기 때문에 정말 너무 부끄러웠다.

 

  지금까지도 누구한테도 말한 적 없고,

  엄마한테도 말하지 못하고,

  한동안 자괴감에서 벗어나기가 어려웠지만,

  세월이란 게 신기해서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고 나서 다시 독서실에 다니기 시작하였다.

 

  지금은 이렇게 블로그에 쓰고 있다.

 

  물론 이런 부끄럽고 창피한 일을 굳이 쓸 필요가 있느냐고 하겠지만 또순이는 그런 사람이었다.

  여고 시절 독서실에서 독서실 의자에서 앉은 체 실례한 적이 있는 사람이다.

  그게 바로 또순이다.

 

  이렇게 세월이 흐르고 나니,

  부끄러울 것도 없고,

  창피할 것도 없고,

  그저 그냥 47년 전의 이야기가 되어 있었다.

 

  죽을거 처럼 힘들거나 죽을거처럼 부끄러웠던 일이라도,

 

  혹 지금 낯 뜨거운 일이 있었을지라도,

  세월이 지나면 아무것도 아닌 일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때로 살다 보면

 

  "어떻게 그런 일이"

 

  할 수도 있지만 그냥 거기까지일 뿐이다.

  이미 일어난 일을 자꾸 되새김질해가며  자신을 부끄러워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삶의 한 과정일 뿐이다.

 

  중요한 것은 이렇게 부끄러운 또순이의 삶을 하나님이 써주셨고 써주신다는 사실이다.   

  보잘 것 없는 인생을 들어서 써주시는 하나님께

 

  "찬양의 제사 드리며 성소로 나아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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