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베이비붐 세대 탐구 생활/또순이 어렸을 적에

또순이 어렸을 적에 112

by 영숙이 2020. 7. 11.
728x90
반응형

 

216. 앨범 이야기 A

 

  22살 때 보건지소에 근무할 때부터 엄마한테 매달 생활비를 드렸었다.

  어떤 때는 월급 전부를 보내기도 하고 계돈을 타서 목돈을 드리기도 하고 아파트 한 채 값도 드려 본 적이 있다.(이제 84세의 어머님은 아파트 한채 값 드린 것을 기억 못 한다.)

 

  어느 날 대전 엄마 집을 갔더니 엄마 냉장고가 텅 비어 있었다.

  돈이 아까워서 천 원 한 장 못쓰고 보내주는 생활비는 그대로 은행에 모아 놓고 당신은 돈이 없어서 반찬 하나 없이 식사를 하고 계셨다.   

  굶주리는 수준으로 드시고 계셨다.

 

  생활비도 그대로 드리고 2달에 한 번씩 올라가서 시장을 봐서 냉장고를 채워 드렸다.

  냉장고 채워진 것만 드시고 여전히 돈은 아까워서 한 푼도 꺼내 쓰지 않으셨다.

  은행에 모아진 돈은 돈 없다고 징징거리는 동생들 누군가에게 목돈으로 주셨다.

  그러지 말라고 평소에 맛있는 것도 사 먹고 같이 사는 동생과 외식도 하고 하래도 소용이 없었다.   

 

  자식들을 위해서 조금이라도 보태주려고 하는 엄마 심정을 이해는 한다.

 

  엄마는 자식들을 위해서 

  지금도,

  날마다,

  밤마다,

  몇 시간씩 기도를 하신다. 

 

  또순이는 지금도 이런저런 문제가 있으면 기도해달라고 기도 부탁을 한다.

  늘 기도를 하시니까 그런지 치매도 안 오시고 건강하셔서 정말 감사하다.

  

 

  이제 한 달에 한 번씩 엄마 냉장고 채워 드리러 간다.

 

  지난달에 갔을 때 책장에서 앨범을 찾았다.

  엄마네 베란다에는 또순이가 고등학교 때 시를 써서 액자에 넣어 전시했던 것까지 걸려있다.

  엄마는 하나도 못 버리고 모으는 병이다.

 

  몇 번 이야기해보고 버리려고도 해봤지만 소용이 없었다.

  부화만 돋울 뿐이어서 이젠 포기하고 그러려니 하고 엄마 집에 대해서 받아들이고 있다.

  베란다에 잔뜩 있는 화분 뒤쪽 먼지 쌓인 책장 아래쪽에 앨범들이 다 있었다.

 

  찾아 놓은 앨범을 들여다 보니 파노라마처럼 지난날들이 스쳐 간다.

 

  충남여자고등학교 앨범 첫장의 이인영 교장 선생님은 잘 기억이 안 난다.

  체육교사 출신의 민교식 교감 선생님.

  덕분에 여고 시절 1, 2학년때에는 점심시간마다, 3학년 때에는 저녁 먹은 후에 체력 증강을 위해, 체력장을 위해 전교생이 체조와 각종 운동을 하게 했던 분이다.

 

  민교식 교감 선생님은 2학년 때 친한 친구가 된 보영이와 경아 아버지와 아버지들끼리 친구여서 우리가 하교할 때 교감 선생님을 만나게 되면 친구들한테 아는 척을 했었다.

  지금은 만약 그렇게 하면 성추행으로 신고를 당할텐데 그때는 민교식 교감 선생님이 경아 옆으로 쓰윽 다가오면서 경아와 보영이 손을 잡고

 

  "아버지 잘 계시니?"

 

  그러면 경아와 보영이는 부끄러워 하면서 웃고는 하였다. 

  보영이는 재빨리 손을 빼서 주머니에 넣었고 경아는 손이 잡힌 채로 배시시 웃고는 한 기억이 난다.

  또순이는 경아가 교감 선생님이 아버지와 친구라고 자랑하면 부러웠다.

 

  다음장에는 국어과 이석인 연구과장님 사진이 있다.

  선생님에 대해 생각나는 것은 선생님이 한 달 동안 수업에 안 들어오셨다.

  소문에 의하면 아들이 우리와 같은 고등학교 2학년 학생이었는데 무슨 암인가에 걸려서 죽었다고 했다.   

  선생님이 다시 수업에 들어오셨는데 선생님의 초췌해지고 허무한 표정 때문에 수업에 집중하지 못했다. 

 

  "정말 안됐구나. 마음이 얼마나 아플까. 그런데도 저렇게 아무런 표시 없이 계속 수업을 하고 있어야 하다니 정말 안됐구나."

 

  소문의 진위여부는 알 수 없었지만 아이들도 선생님의 눈치를 보면서 수업시간에 숨소리조차 안 내고 조용히 공부를 했던 기억이 난다. 

 

  이석인 국어 선생님 옆에 김용우 체육과장님 사진이 있다.

  체육시간마다 또순이가 수업하는 것을 유심히 지켜본다는 생각이 들었던 어느 날 교무실로 불러서 필드하키를 할 생각이 없느냐고 권유했던 선생님.

  입학시험 체력장에서 만점을 맞아서 체육 잘 학생들을 뽑느라고 그러셨던가 보다.

 

  체육특기생을 받아야 하는데 교감 선생님이 필드하키를 좋아하지 않으셔서( 교감 선생님 표현을 빌리면 아궁이 앞에서 여자들이 불 때면서 솔방울을 부지깽이로 톡톡 쳐 넣는 운동이라고 혹평하셨다고 한다.) 체육특기생을 못 받아 재학생 중에서 운동 좀 잘하는 학생들을 뽑아서 권유하셨던 것이다.   

 

  여름방학 때 학년별 야외활동을 가서 얕은 강물에서 수영을 배웠는데 또순이가 잘한다고 학교 대표로 수영대회에 참석하라는 바람에 시합에 나갔는데 끝까지 완주하지 못하고 중간에 꼬르륵 ~

  수영 시합하러 가느라 운동하러 안왔다고 평소 5바퀴 돌던 운동장을 10바퀴 돌던 기억이 난다.

 

  여름 방학 내내 운동장을 돌며 운동을 하고 필드하키 연습을 했는데 선배 언니들이 필드하키 스틱으로 운동실 창고에서 엎드리게 한 다음 10대씩 때린 다음날로 또순이는 운동을 그만두었다. 

 

  때린 이유가 이제 막 훈련을 시작한 1학년 신입생에게 감독이 센터포드를 주었다는 것이었다.

  감독이 센터포드를 준 것은 또순이가 달리기를 잘했기 때문이었다.

  센터 포드는 이끝에서 저 끝까지 달리기를 해야 하는 포지션이라서 달리기에 강한 또순이를 선택했던 것뿐인데 감독의 그 결정에 선배들이 불만을 품고 때렸던 것이다.

 

  또순이는 체육 특기생이 아니고 시험 쳐서 들어왔기 때문에 하고 싶지 않으면 그만두면 되었다.

  1학년 봄방학이 끝나고 체육 선생님이 교무실로 불러서 물어보았다.

 

  "운동 계속해 볼 생각 없어?"

  "네. 안 하겠어요."

 

  앨범 다음 장에는 가정과 곽경희 선생님 사진이 있었다.

  선생님은 그때 막 개설된 "산업일반"이란 교과를 가르쳤는데(산업사회가 되어가던 시기라서 개설된 과목이었다.) 시험도 안치는 데다 수업내용도 재미없어서 아무도 듣지 않았다. 

  수업은 일주일에 한 시간 5교시에 있었는데 연세가 제법 드신 선생님은 점심을 먹고 나신 다음 루즈를 다시 칠하지 않고 수업에 들어오셔서 항상 입술 라인만 남은 채 수업을 하셨다.

 

  아이들 위쪽 허공을 바라보면서 한시간 내내 교과서 내용을 혼자 열심히 말하고서 종 치면 나가셨다.

  또순이가 선생님이 되고 50대 때 5교시 수업에 들어가서 졸고 있는 아이들을 바라볼 때에는 곽경희 선생님이 수업하던 광경이 떠올랐다.

 

  그래서 또순이는 점심을 먹으면 반드시 입술을 재정비(?)하였다. 최소한 입술 라인만 남은 얼굴로는 수업 들어가면 안 된다라는 생각을 했기 때문이다.

 

  생각해보면 또순이가 그렇게 공부를 잘한 것도 아닌데 어떻게 선생님이 되었을까.

  처음에는 또순이가 똑똑해서 선생님이 된 줄 알았었다.

  스스로가 엄청 똑똑한 줄 알고 살다가 어느 날 하나님이 부르셔서 주님 앞에 나아갔을 때야 비로소 알게 되었다.

 

  선생님을 하도록 인도하신 분도 하나님.

  선생님이 되게 해 주신 분도 하나님의 은혜.

  그 사실을 깨닫게 된 것이다.

 

  또순이보다 훨씬 공부도 더 잘하고 또 또순이보다 훨씬 더 좋은 학교를 나온 사람이 그렇게도 많았는데도 자격미달인 또순이를 사용하신 하나님.

 

  모든 것은 다 하나님의 은혜이다.   

  앞으로의 모든 것도 다 하나님의 은혜로

  앞으로,

  앞으로 나아갈 것이다.   

 

 

217. 3-6반 친구들.

 

  여고 3학년 때.

  3학년 6반이었다.

 

  여고 2학년 때 1,2반은 대학 진학 안 하고 취직을 하기 위한 실업반 3,4,5반은 열등반 6,7,8반은 우수반이었기 때문에 3학년 때에는 우열반이 사라졌어도 6반이 된 것이 기분이 좋았다.

 

  담임선생님은 국어과 이강일 선생님만큼이나 젊은 지리과 김현일 선생님. 

 

  전체 사진이 찍힌 다음 장에는 친구들 얼굴이 있는데 얼굴들은 기억이 나는데 얼굴과 이름이 매치가 안 되는 친구들이 있다.

  친구이기보다는 같은 반 급우로 기억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김태자 ~ 중학교부터 고등학교까지 동기생이었고 고3 때는 같은 반이기도 했었다.

  간호학교 졸업하고 보건지소에 발령받아 갔을 때 또순이 바로 앞에 근무하던 보건지소 가족계획실 요원이었다.

 

  이명희 ~ 우리 집 골목 끝 도로가에 살던 예쁘장한 아이다. 이 아이가 우리 반이었는지는 전혀 생각이 안 났었다. 그냥 같은 동네 사는 예쁜 아이로 기억하고 있었다.

 

  강미경, 송재정 ~ 둘 다 한 번씩 짝지를 했었던 사이.

  또순이가 가고 싶었던 학교는 공주사대 국어과였는데 성적이 안되어서 학교에서 정해주는 대로 충남대학 간호학과를 갔는데 입학시험에서 떨어졌다.

 

  충남대학 간호학과를 떨어지고 홍명상가에 가서 하늘색 치마와 흰색 블라우스와 초록색 조끼를 사 입고 친구인 보영이네 집에 놀러 갔었다. 

  보영이도 같이 시험 쳤다가 떨어졌는데 보영이가 말했다.

 

  "나 간호학교 원서 썼어."

  "그래? 원서 마감 언제까지인데?"

  "몰라. 아직 원서 쓸 거야."

  "어떻게 썼어?"

  "간호학교 가서 원서 사 가지고 충남여고 교무실에 가서 썼어." 

 

  다음날 또순이는 간호학교 가서 입학원서를 사 가지고 충남여고 교무실로 가서 원서를 썼다.   

  교무실에는 겨울 방학이라서 담임 선생님은 안계시고 숙직 선생님이 계셨는데 원서 쓰러 왔다니까 숙직 선생님이 써주셨다.

 

  그날이 간호학교 원서 접수 마지막 날이었다.

  원서 접수하고 나서 보니까 시험 치는 과목이 국.영.수.생물이었다.

 

  충남대학 간호학과도 똑같이 국. 영. 수. 생물이었는데 생물 시험을 칠 때 주관식 문제를 하나도 못 썼다

  떨어진 것은 당연지사.

  짝지였던 강미경한테 전화해서 생물 참고서를 빌려 달라고 하였다. 

 

  버스를 타고 종점이었던 미경이가 사는 동네로 가서 버스 정류장에서 생물 참고서를 받았다.

  참고서는 얇고 핵심만 잘 요약정리된 책이었다. 

  얇아서 일주일 만에 공부할 수 있는 분량이었다.

 

  영. 수는 어차피 그때부터 공부한다 해도 소용이 없고 국어는 좀 자신이 있으니 생물 참고서를 가지고 공부를 했다. 

  딱 일주일.

  일주일 동안 공부하면서 보니까 충남대학 입학시험 때 시험 문제로 나왔던 문제가 다 있었다.

  하나도 못 썼으니  ~

 

  일주일 후 드디어 간호학교 시험.

 

  생물 시험문제는 전부 일주일 동안 생물 참고서를 보고 공부했던 내용이었다.

  모든 단답형 문제를 맞힐 수 있었고 객관식 문제도 쉽게 맞힐 수 있었다.

 

  보영이는 떨어져서 보영이 엄마가 아가씨 때 다니던 은행에 취직을 했고 보영이를 찾아갔다가 마지막 날 간호학교 원서를 썼던 또순이는 합격했다.

  그때 충남여고에는 간호학교 반이 따로 있어서 기반에서는 중점적으로 간호학교 입시공부를 했었기 때문에 많은 아이들이 합격했었다. 

  간호학교에 A반 B반이 있었는데 그중 절반은 충남여고 출신 었던 것 같다. 

 

  아버지는 대학 떨어지면 주유소에 취직시킨다고 말했었다.

 

  어떻게 간호학교 입시 마감 날에 입학원서를 쓰게 되었을까나.     

  보영이네 집에 원서 마감 지나고 놀러 갔더라면 쓸 수 없었을 텐데 어쩌면 간호학교 시험 치는 것도 몰랐을 수도 있었다.   

  그럼 주유소 카운터에 앉아 있었을까나?

 

  또 짝지한테 빌린 생물 참고서에 어떻게 그렇게 시험문제가 쏙쏙 드리 나와서 공부할 수 있었을까나. 

  참고서가 너무 두꺼웠으면 다 공부 못했을 거다.

  전체적으로 다 못 보고 시험 치거나, 포기하거나    

  제대로 핵심을 다 파악해 놓은 참고서가 아니고 비껴 같더라면 맞추지 못할 수도 있었다..

  

  이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면 무엇이었을까나. 

  무엇으로 설명할 수 있을까나

  하나님을 알기 전에는 그냥 운이 좋아서 그런 줄 알았다.

 

  하나님은 우리를 인도하시고,

  지금까지 우리를 인도하신 분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었다면,

  어떻게 여기까지 올 수 있었을까나.

충남여고 1974학년도 제5회 3~6반 졸업생

728x90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