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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이비붐 세대 탐구 생활/또순이 어렸을 적에

또순이 어렸을 적에 114

by 영숙이 2020. 7. 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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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21. 방랑 시인 >   

  대단한 각오를 했던 봄이 지나고 슬슬 긴장이 풀어질 때쯤부터 담임 선생님들은 자율학습이라고 했지만 저녁에 교실로 오셔서 아이들이 있는지 어떤지 출석을 부르고는 하였다.

 

  수업이 끝나고 저녁시간에 도시락을 먹고 나면 자율학습 시작 전에 교감 선생님 지시대로 운동장에 나가서 한바탕 체력장을 하였다.

  생각해보면 체력장 점수 차이는 얼마 안날 뿐 아니라 거의 다들 만점을 맞기 때문에 그렇게까지 열심히 할 필요 없었는데도 아이들의 건강을 위해서 체육과 출신의 교감 선생님의 특별 지시 사항으로 체육복으로 갈아 입고 저녁마다 운동장에 나가서 체조를 하고 달리기를 했었다.   

 

  저녁먹고 운동장 뛰고 오면 자연히 졸리다.

  자율학습 한다고 앉아서 책상에 머리를 대고 졸기 일수이고 선생님이 지켜볼 때에는 공부하는 척하고 머리에 손을 대고 살포시 잠이 들기 일수이다.

 

  또순이는 해가 길어지면서 저녁 자율학습 시간이 되면 운동장 저쪽 편에 있는 부속 건물로 갔다.

  사범대학 시절에 풍금을 배우게 하기 위해서 만든 작은 칸들이 있었다.

  건물 양쪽으로 한쪽은 미술실로 한쪽은 음악실로 사용하고 그 가운데에 있었던 자그마한 칸칸 교실들이 또순이는 마음에 들어서 자주 갔었다.

 

  아무도 없는 부속 건물에 칸칸 교실은 파란 페인트로 칠해진 미닫이 문으로 잠기지 않아서 아무때나, 아무나 들어가서 책상에 앉아 공부를 할 수 있었다. 

  또순이는 그렇게 차지한 자그마한 교실에서 공부는 하지 않고 읽고 싶은 소설책이나 잡지책 같은 것을 보았다.

  물론 책은 가지고 다녔지만 공부가 머리 속에 들어오지는 않았다.

 

  먼지가 수북히 쌓인 책상 위를 먼지를 치우고 가지고 간 교과서나 참고서를 올려놓으면 마치 또순이가 교수가 되어서 자신의 교수실에 앉아 있는 것처럼 느껴지거나,

  아니면 훌륭한 시가 펑 ~ 펑 ~ 펑 써질 것처럼 느껴졌다.

  실제로 글을 끄적이기는 했다.

 

  그렇게 한다고 훌륭한 글을 썼다면 벌써 시집을 여러권 냈을 터.

  그 건물 분위기가 좋았고

  먼지 냄새가 좋았고

  아무도 없는 그 건물을 차지하는게 기분이 좋았다.

 

  여름 날 긴긴 해가 다 넘어가고 사위가 조용하게 회색으로 바뀌어 가면 그 건물을 나와서 교실로 갔다.

  교실에 가면 아이들이 묻는다.

 

  "어디 갔다 왔어?" 

  "응, 음악실 풍금 있는 칸에"

  "아까 담임이 와서 출석 체크 했어."

  "그래? 선생님이 뭐라셔?"

  "음악실 건물에 가 있을 거라고 했더니 선생님이 '방랑시인'이네 하시더라."   

 

  '방랑시인.'

 

  그렇게 불리는 게 마음에 들었다.

  김현일 선생님은 2학년 때 담임이었던 이강일 선생님과 친했다.

  나이도 또래이고 또 교무실에서도 책상이 가까이 있어서 두 분이 이야기를 하시는 모습을 교내에서 자주 보았었다.

 

  2학년 때 말도 안 되는 시를 써가지고 이강일 선생님 괴롭혀 드리는 것을 보았을 것이다.

  덕분에 얻은 별명

 

  '방랑시인'

 

  김삿갓처럼 방방곡곡을 떠돌아다니면서 시를 쓰는 게 아니고 교내 곳곳을 돌아다니면서 시를 쓰는 또순이

  ~ 아니 정확히 말하면 시를 쓰는 사람 흉내를 냈었던 또순이.

  2학년 때는 짧은 단편 동화가 이강일 선생님이 만드셨던 교지에 실렸었다.

  친정집에 가면 찾아봐야겠다.

  엄마는 또순이가 45년 전에 졸업한 충남여고 교지를 버리지 않고 지금도 가지고 계실 것이다.

 

  그 음악실 부속 건물은 교문에서 들어오는 길옆 히말라야 시타 나무가 서 있는 그 옆으로 있었던 건물이다.

  길 건너 맞은편 작은 산꼭대기 쪽으로는 커다란 강당을 세워서 각종 대회가 그곳에서 자주 열렸고 부속 건물은 주위로는 초록색 잔디밭이 깔려 있었다. 

  초록색 잔디밭 위에 세워진 하얀 건물에 초록색 지붕은 여고생의 눈에는 예뻤었다. 

 

  또순이는 그 건물을 방과 후 저녁 시간에 차지한 

 

  '방랑시인' 

  

 

< 222. 소설 쓰고 싶어요. >

 

   3학년 때 들어오신 국어 선생님은 마르고 키가 작은 선생님이셨다. 

   국어에 관심이 많았고 소설을 쓰고 싶어 했기 때문에 국어 선생님들한테 말을 자주 걸었었다. 

   공부 중에서는 유일하게 국어 성적이 좋았고 또 재미있어했었다. 

 

  하루는 강당으로 올라 가는데 국어 선생님하고 같이 올라가게 되었다. 

 

  "선생님. 소설을 쓰려면 어떻게 해야 해요?"

  "소설을 쓰려면 일단 소설에 나올 인물들을 종이에 다 적어 놓고 서로 연결해서 이야기 줄거리를 만들어가야지."

 

  선생님 이야기를 모르는 건 아니지만 그건 너무 어려웠다.

  소설이 무언지도 모르는데 인물은 어떻게 만들어내고 그 인물들을 연결해서 어떻게 이야기를 꾸며 낸다는 건지 그냥 막연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선생님은 그렇게 글 쓰는 기술을 말씀하실 것이 아니라 무조건 다독, 다사, 다작을 해보고 처음에는 쉬운 책을 가져다가 모방해서 써보라고 했어야 했다.

  또순이는 시를 쓰는데 그렇게 배워서 썼기 때문이다.

  아무것도 모르는 여고생의 머리에서 무슨 시가 써질까.

  그냥 주변에 있는 시집에서 흉내내기 쉬운 시를 골라서 비슷하게 흉내 내서 쓰고는 했었다.

 

  축제 때 시화전을 했는데 그렇게 쓴 시를 액자에 넣어서 전시를 한적도 있다.

  지금도 그 액자가 친정집 베란다 책장 위 베란다 벽에 걸려 있다.

 

  교지에 써냈던 글은 외갓집에서 읽었던 단편 동화를 흉내 내어 써가지고 제출했는데 교지를 만드시던 이강일 선생님이 말도 안 되는 동화이지만 교지에 실어 주셨었다.

  그때 그 국어 선생님이 이론으로만 소설 쓰는 법을 아시는 게 아니고 정말 소설을 써보셨다면 이렇게 말해 주셔야 했다.

 

  "아주 얇은 소설책 한 권을 가져다 놓고 그 책 비슷하게 써봐. 몇 권 그렇게 쓰다 보면 너 나름대로 너만의 방법으로 책을 쓸 수 있을 거야." 

 

  뭐든지 이론으로 말하기는 쉽다.

  그것도 모른다면 할 말은 없지만 그래도 실제 경험한 것보다는 못하다.

 

  신앙생활도 마찬가지.

  특히 기독교는 체험의 종교이다.

  실제 체험해 보지 않으면 기독교도 하나의 종교 생활에 불과하다.

 

  그래서 예수님을 인격적으로 만나야 한다. 만나서 깨닫고 예수님 말씀에 따라 순종하고 말씀대로 살려고 애를 써야 한다.

 

  "주님. 순적하게 날마다 예수님을 인격적으로 만나게 해 주셔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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