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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이비붐 세대 탐구 생활

<동산 같았던 교실과 부모 같았던 선생님> 을 읽고

by 영숙이 2020. 5.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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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산 같았던 교실과 부모 같았던 선생님 <글. 문태준(시인) >

 

  나는 경상북도 김천시 봉산면의 한 시골 초등학교에 다녔다.

  내가 다닐 적에만 해도 전교생의 수가 이백여 명에 이르는 1912년에 개교한 오랜 전통의 학교였다.

  그러나 이제는 3 학급 편성에 전교생이 열두명뿐인 작은 분교가 되고 말았다.

 

  내게 초등학교 교실은 동산과 같은 느낌이었다.

  염소와 강아지를 몰고 가서 또래들과 어울려 놀다 해가 떨어지면 뿔뿔이 흩어져 집으로 돌아가던 동산과 같은 곳이었다.

  학교에 가는 길에는 보리밭이 있었고, 개울이 흐르고 있었고, 비가 오는 날에는 질척거리는 흙길이 있었고, 하교 후에는 나른한 볕이 쏟아져 내렸다.

 

  교실은 시끌시끌했다.

  여학생 스물여섯 명, 남학생 열다섯 명이 빼곡하게 앉아서 글을 배웠고, 셈을 했으며, 운동장을 뛰어다녔다.

  모두가 가난한 개구쟁이였다.

  대개는 걸어서 등하교를 했는데, 어떤 친구는 한 시간 남짓 걸리는 먼 길을 오갔다.

  같은 학교에 다니는 누나 난 형, 혹은 동생이 있어서 그 가족들이 교실을 찾아오는 일도 많았다.

  명절이 되면 나는 아직도 초등학교 친구들을 만난다. 만나서 얼굴을 보고, 안부를 묻고, 밥을 먹는다.

 

  시골에 살면서 농사를 짓는 친구도 있고, 타지로 가서 생활하는 친구도 있다.

  한 번은 시골집에 가려고 기차역에서 내려 시외버스를 탔는데, 그 운전기사가 초등학교 친구여서 이런저런 얘기를 한참 동안 나누기도 했다.

  처음에 초등학교 남학생들과 만나던 모임이 근년에는 여학생 동기들도 함께하게 되어 규모가 커졌다. 그 계기가 된 것은 초등학교 동기들과 함께 총동창회 체육대회를 담당해야 했기 때문이었다.

  총동창회 체육대회는 졸업생들이 각 기수별로 해마다 열었는데, 때마침 작년이 우리 동기들이 맡아서 열어야 하는 해였다.

  가을에 열리는 체육대회는 초등학교 선. 후배들을 초대해서 미리 준비한 음식을 나눠 먹고, 몇 종목의 가벼운 운동을 한다.

  물론 비료 포대 오래 들기 같은 시합에서는 서로 힘을 자랑하기도 한다.

  그러나 대개는 즐거운 한때를 보내는 데에 의미가 있다. 필요한 비용은 조금씩 나눠 냈다. 작년에 이 체육대회르 준비하면서 그동안 사십 년 가까이 만나지 못했던 친구들을 참으로 오랜만에 만났다.

  어떤 친구는 개명을 하기도 했으나, 동기들과의 만남에서는 별로 중요하지 않아서 옛 이름을 불렀다.

 

  학교의 교실은 동산과도 같았고, 담임선생님은 부모님과도 같았다. 

  선생님은 늦게까지 공부가 뒤처진 친구 옆에서 지도하셨고, 좀체 화를 내는 경우가 없었다.

  밥상 둘레에 가족이 둘러앉아 함께 밥을 먹을 때처럼, 도시락을 싸오지 못한 친구를 불러 선생님께서 갖고 오신 도시락을 함께 나눠 드신 적도 있었다.

  아파서 학교에 오지 못한 친구의 집을 일일이 찾아가는 일도 마다하지 않으셨다.

  나는 웅변대회에 나간 적이 있었는데, 면단위 대회여서 면사무소의 면장이 직무를 보던 방에서 웅변 실력을 겨뤄야 했다.

  면사무소까지는 선생님의 오토바이를 함께 타고 갔다.

  선생님께서 매우 긴장해 있던 내 머리를 쓰다듬어 주시면서 안심시켜 주신 덕분에 입상권에는 들지 못했어도 시 단위 대회까지 진출할 수 있었다.

  축구 대회를 앞두고 축구 연습을 했던 일도 기억이 새롭다. 전교생을 대상으로 후보까지 포함해 열다섯 명 정도를 선발했는데, 나도 그 선발 인원에 간신히 낄 수 있었다.

  그러나 집안 형편이 어려워 축구화를 마련할 수 없었다.

  축구팀 감독을 6학년 담임 선생님이 맡으셨는데, 선생님께서는 어느 날 내가 신을 축구화를 구해서 주시기도 했다.

  공을 차고, 멀리 저수지까지 뛰어갔다 돌아오는 훈련을 했는데, 아쉽게도 시합에 나가서는 좋은 성적을 내지 못했다.

  선생님께서는 시합에서 패한 우리들을 격려하시면서 자장면을 사주셨다.

  육상대회, 축구대회, 혹은 사생대회나 과학 경진대회에서 우리 학교는 우수한 성과를 거두지는 못했지만, 선생님께서 풀이 죽어 있던 우리들을 늘 곁에서 위로하고 응원하신 덕택에 우리의 도전은 계속 이어질 수 있었다.

 

  선생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가장 큰 선물은 더 큰 세상에 나가서 당당하게 살아갈 수 있는 의욕을 갖게 해 주신 것이 아니었나 싶다.

  그리고 스스로의 삶을 소중하게 가꾸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가르침 덕분에 우리 동기들은 마치 들꽃처럼 자신만의 고요한 삶의 향기를 가꾸면서 살 수 있게 된 것인지도 모른다.

  작년 가을에 친구들과 함께 교실의 작은 책상에 앉아 본 기억은 아주 오래 남을 것 같다.

 

<문태준 시인 >

 

  1994년 「문예중앙」 신인문학상에 시 「처서 」 외 9편이 당선되어 문단에 나왔다. 시집으로  「 수런거리는 뒤란 」 「맨발 」 「가자미 」 「그늘의 발달 」 「먼 곳 」 「우리들의 마지막 얼굴 」 「내가 사모하는 일에  무슨 끝이 있나요 」등이 있다. 노작문학상, 소월시 문학상, 애지 문학상, 정지용 문학상 등을 수상했다.   

 

  ◐ 이분이 초등학교를 다니던 때 하고 또순이가 초등학교 다니던 때가 비슷한 시기이다.

      사실 또순이가 글을 쓰게 된 동기가 초등학교 5학년 때 옥천읍내에서 군서면으로 이사를 갔는데 6학년 올라가서 학기 초에 담임선생님이 방과 후에 글쓰기 연습을 시키셨다.

      군에서 하는 글쓰기 대회에 내보내려고 주변에서 일어나는 일을 인생에 비유해서 써보라고 하셨다.

      그리고 원고지에 쓸 때 맨 앞 한 칸을 꼭 띄우고 쓰라 하셨다.

     

      어느 날 선생님이 원고지를 주면서 여기에 글을 쓰면 쓴 글을 읽어보고 같이 연습을 하던 반 아이와 또순이 둘 중 하나만 군에서 여는 대회에 내보낼 거라고 말씀하셨다.   

      가슴을 두근 거리며 무슨 내용인지는 모르지만 열심히 썼었다.

      원고지를 가져가셨던 선생님이 한참 후에 오셨는데 우리 둘을 교탁 앞에 부르시더니 교탁을 연필로 톡톡 치시면서 할 말을 고르고 계셨다.

 

      " 또순이는 원고지에 쓸 때 한 칸 띄우고 쓰라했는데 안 띄웠지? 그래서 군에서 여는 글쓰기 대회에 못 나가게 되었어. 그동안 연습하느라 수고했는데  여기 상으로 백로지 줄테니까 가져가."   

 

      종이가 귀하던 시절 A3 백로지를 제법 많이 담임 선생님이 주셔서 두 손으로 종이를 받으면서 풀이 팍죽어 인사를 하고 교실문을 나서는데 눈물이 났다.   

      그 후 평생 문장을 쓸 때는 어떠한 경우라도 원고지에서는 한칸, 그냥 A4지로 쓸때는 두 칸을 띄운다.

 

     또순이와 같이 연습을 했던 아이는 군대회 글쓰기에서 장려상을 받아 전교생이 모인 전체 조회에서 이름을 불리고 상을 받았다.

     

     '또순이도 나갔으면 저 자리에 서서 상을 받을 수 있었을지 모르는데...'   

 

     많이 아쉬웠지만 언제인가는 저 애보다 훨씬 더 좋은 글을 쓸 거라고 상상하면서 스스로를 위로했다.   

 

     '두고 봐, 언제인가는 누구나 다 읽는 글을 쓸 테니까...'

 

    생각해보면 선수를 뽑는다고 하면 무조건 선수를 하겠다고 했고 방과 후에 남아서 연습을 했었다.

    밴드, 육상, 배구 등등

   

    밴드부에도 안 뽑혔고 달리기 선수도 탈락, 배구 선수도 안됐지만 뭐든지 열심히 하는 버릇은 그때 키웠지 않았나 싶다.

   

    밴드부는 못했지만 어디서나 드럼 치는 방법으로 박자를 맞추었고 달리기도 기초를 배웠기 때문에 보통 아이들보다는 잘 뛰었으며 배구공 날아오면 받아치는 일에도 겁을 먹지 않았던 거 같다.

 

  그때 초등학교 담임 선생님이셨던 젊은 선생님들은 뭐든지 열심히 하셨던 거 같다.

  이제 이렇게 글을 쓰기 시작했으니까 비록 출발선이지만 은퇴 이후 남은 시간을 글쓰기로 메운다면 100세 시대 ~ Megabest Seller Writer가 됨을 의심치 않는다.

   

  너의 행사를 여호와께 맡기라 그리하면  너의 경영하는 것이 이루리라.(잠언 16:3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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