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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이비붐 세대 탐구 생활

부부싸움

by 영숙이 2020. 3.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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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부부싸움이란?

 

  보통 싸움이란 가까이 하는 사람들과의 갈등을 말한다. 말하자면 한국에 있는 어떤 이하고 미국에 있는 모르는 어떤이 하고는 싸우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해 관계가 얽혔든지, 이웃하면서 어떤 문제가 생겼다던지, 가까이 있으면서 사소한 일이 문제가 되어 갈등을 일으키게 된다.

 

  부부싸움이란? 보통 결혼을 해서 두사람의 사회에도 서열이 있으니까 서열이 정해지기 전까지의 다툼이 있기 마련이다.

  서열이 정해진 이후에도 서로에 대한 이해 부족이라던지, 대화 부재라던지, 이런 저런 여러가지 문제로 갈등을 일으키던지 한다.

 

  최근에 읽은 책 중에서 '개리 패프먼'이 쓴 "5가지 사랑의 언어"(생명의 말씀사)에서 '당신의 사랑, 소통되게 하라! 사랑하지만 언어가 다른 두 사람, 사랑하는 마음이 전달되지 못하고 오히려 오해와 상처가 쌓인다. 심한 경우는 결별에 이르기까지 한다. 사랑하지 않기 때문이 아니라 사랑이 소통되지 않기 때문이다.'란 말이 표지에 씌여 있다. 

  역자 서문에는 결혼 생활은 부부가 함께 살아가는 것이다. 크리스천 카운슬링 센터를 운영하면서 느끼는 것은, 아무리 좋은 사람들이 만나 결혼했더라도 함게 살아 가는 데는 또 다른 기술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무작정 노력한다고 되는 것이 아니다. 바로 '함께 살아가는 기술'이 필요한 것이다.

  사람들이 사랑하는 방식에도 독특한 언어 체계가 있고 이를 통해 사랑의 감정을 전달한다. 저자는 사랑의 언어를 '인정하는 말', '함께하는 시간', '선물', '봉사', '스킨십' 5가지로 분류한다. 그러면서 부부가 서로 같은 사랑의 언어를 사용해야 사람이 소통되어 행복한 결혼 생활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남편에게 무작정 잘해 주기보다 남편의 제1의 사랑의 언어를 바로 알아 구사하니 결혼 생활이 이전보다 더욱 활기차졌다. 사랑의 언어는 단순한 이론이 아니라 실제임이 증명되었다. 

  이 책은 다음 몇 가지를 기본적으로 전제한다.

  첫째로, 연애 감정은 일시적이며, 따라서 사랑을 지속하기 위해서는 의지적 노력이 필요하다.

  둘째로, 사람마다 고유한 사랑의 언어가 있다.

  셋째로, 사랑을 소통하려면 상대방의 사랑의 언어를 구사해야 한다.

 

  이 책은

  파트 1. 결혼 후 사랑이 사라진다?

  파트 2. 5가지 사랑의 언어.

  파트 3. 사랑은 선택이다.

  부록

  이렇게 나누어져 있다.

 

  객관적으로 자신의 결혼 생활을 돌아 보는 데 좋은 도움이 될 것이다.

  이책의  뒷면에는 이렇게 씌여 있다.

   

  사랑은 배우고 익혀야 할 기술이다.-에리히 프롬

   

    서로 사랑하면서도 사랑을 느끼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이유는 단순하다. 서로 다른 사랑의 언어를 사용하기 때문이다.

   

    사랑의 언어가 다르면 소통되지 않는다.

    외국어를 배우듯이 사랑의 언어는 배워야 한다.

 

    사랑을 확실하게 전달하는 방법은 상대방의 사랑의 언어를 사용하는 것이다.

    수많은 사람들이 이 간단한 원리를 통해 결혼 생활의 기쁨을 찾았다.

 

    사람들은 5가지 사랑의 언어를 사용한다.

    인정하는말, 함께하는 시간, 선물, 봉사, 스킨십이 그것이다.

    50년 가까운 결혼 생활과 40여년의 결혼 상담 경력의 게리 체프먼이 전하는 내용이다.

 

    무려 130주나 뉴욕타임스 베스트셀러엥 오른 기록을 가졌고 또 기록을 갱신하고 있는 이 책은 영어판으로만 1,000만 부 이상 판매되었고 세계 40여개 언어로 번역되었으며, 매년 판매 부수가 증가하는 지기록 행진을 하고 있다.

ㅡㅡㅡㅡㅡ

 

  우리 모두들은 사랑하고 싶어 한다.

  우리 모두들은 사랑받고 싶어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랑하거나 사랑 받는게 쉽지 않다는 것도 안다.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사랑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실천하기가 가장 어려운 것이라는 것도 안다.

 

  영숙이 부모님은 어땠을까?

  사랑하는 모습?

  '인정하는 말', '함께하는 시간', '선물', '봉사', '스킨십' 5가지 중 기억나는게 있을까?

  5살때부터의 기억을 시작으로 베이비붐 세대에 대해서 적어 보았지만 단연코 서로 사랑하는 모습 특히 '인정하는 말', '함께하는 시간', '선물', '봉사', '스킨십' 5가지 중 한가지도 없었다. 

  기억의 갈피 갈피를 뒤져도 두분이 부부 싸움 하는 장면과 아버지가 술주정하는 장면만 오버랩 되어 온다.

  없는 기억을 꾸민다던지, 소설가란 없는 것을 있는 것처럼 하는 거라지만 영숙이가 부모님에 대해서 없는 것을 꾸며낼 생각은 1도 없다. 

  기억 나는 것만 다 쓰는 것도 힘이 드는데 굳이 없는 사실을 쓸 필요까지는 없다고 생각한다.

  아름답게 꾸며낸 가식적인 글을 쓸 필요도 없다고 생각한다.

  우리 삶의 진솔한 있는 그대로의 인생을 쓰는 것이 더 소설 같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다음은 우리 부모님이 어떻게 부부싸움을 하셨는지에 대한 이야기이다. 수 없이 많았지만 그중에서 특히 기억에 남는 것만 써보기로 한다.

 

 

2. 부부 싸움 1.

 

  부모님의 이 부부 싸움은 영숙이 자신이 직접적으로 관련되어 있어서 일을래야 잊을 수 없는 싸움이다. 

 

  영숙이가 고 1 그러니까 16살 때의 이야기이다.

  엄마하고 영숙이 나이차이가 20살이니까 엄마는 36살이다.

  엄마로써는 아직 한창 나이이고 예쁜 시절이었다.

 

  어느 날 저녁을 먹고 엄마가 이쁜 한복을 입으면서 놀다 올테니까 집에서 동생들하고 잘 놀고 있으라고 하였다.

  누구하고 가냐니까 그 동네에 이사 와서 사귀게 된 현승이네 엄마랑 놀러 간다고 하였다.

  현승이네 엄마는 강원도에 산다는 무슨 사업을 한다는 이의 세컨드 였는데 영숙이와 동갑인 현승이를 낳고 키우면서 엄마랑 친해져서 현승이네 엄마랑 인동에 있는 중앙호텔 나이트 클럽에 간다는 것이었다.

 

  영숙이가 보아도 젊은 엄마가 이뻐 보였다.

  낮에도 사람들 모여서 영숙이네 이층 넓은 큰방에서 춤을 추는 걸 알게 되었다.

  우리가 학교 가고 나면 측음기를 틀어 놓고 춤추며 논다는 것이었다.

  동생 중 누군가가 이야기 해 주었었다.

  낮에 큰 방에서 사람들 모여서 노래 틀어 놓고 춤춘다고.

 

  물론 막내 여동생이랑 불도 끄고 어두컴컴한 큰 방에서 하루 종일 둘이 아랫목에 앉아 있는 것도 보기 좋은 것은 아니었지만 측음기를 켜 놓고 북적북적 사람들 모여서 춤추는 건 더 아니었다.

 

  영숙이는 생각했다.

  아버지는 원래 우리 형제 자매들에게 관심이 없다.

  애들이 입학하는지, 졸업하는지, 옷을 입는지, 밥을 먹는지, 그냥 엄마한테 필요한 생활비를 그때 그때 주는 걸로 끝이었다.

  이런 상황에 엄마가 춤바람 나서 우리 형제 자매들에게 관심을 끊어 버린다면 우리 형제 자매는 그야말로 끈 떨어진 연들이 되는 것이다.

  아무도 돌봐 주지도 않고 관심도 없고 그야말로 오갈 데가 없는 것이다.

 

  어느 일요일 날 아버지가 오셔서 저녁을 드시고 계셨다.

  영숙이는 아버지한테 엄마가 춤바람 났다고 일렀다.

 

  "요새 엄마 저녁마다 춤추러 나가요. 낮에는 큰방에 사람들 모여서 춤추고 놀아요. 남자들도 온대요. 밤에는 한복 입고 호텔 나이트 클럽으로 현승이 엄마랑 춤추러 가요."

  "그래? "

 

  하면서 바라보는 아버지의 눈빛.

  영숙이는 아버지가 알게 된 이상 큰일 났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월요일 아침.

  영숙이는 6교시 정규 시간이 끝나자 마자 담임 선생님한테 가서 몸이 아파서 조퇴를 해야 겠다고 말했다.

  아무래도 엄마가 걱정이 되어서 조퇴하고 일찍 집에 간 것이다.

  모질기만 한 아버지가 엄마한테 어떻게 하고 있을지, 역시나 아버지는 엄마를 쥐잡듯 하고 있었다.

 

  출근한다고 하면서 시청을 결근하고 집 근처에 숨어 있다가 사람들이 모여 들었을때 집으로 올라와서 현장을 덮친 것이다.

  엄마는 정말 찍 소리도 못하고 당하고 있었다.

  아버지는 엄마 머리를 벽에 밀어 붙여 쿵쿵 소리를 내고 있었다.

 

  "이혼하자! 이혼 해. 이혼하자구!"

  "......"

  "각서를 써. 여기 각서를 쓰라고. 다시 한번만 그런 짓하면 이혼한다고 써."

 

  영숙이는 문 앞에서 가만히 서서 아버지가 엄마한테 하는 것을 듣고 있었다.    듣고 있다가 다른 방으로 조용히 들어 갔다.

  참 지겹게도 오랫동안 같은 말을 반복하고 같은 짓을 반복하고 있었다.

  그러다가 잠이 들었었나?

  저녁이 되었고, 밥을 먹고 잠을 잤을까?

  어쨌던 다음날 새벽 아버지는 청주 시청으로 출근하셨고 엄마의 춤바람은 끝장이 났다.

 

 

2. 부부싸움 2

 

  영숙이는 그 사건으로 인해서 부부 사이의 일은 부부만이 해결 할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엄마 아버지가 아무리 싸우고 난리를 쳐도, 우리가 울고 불고 매달려도, 결국은 부부 사이의 일은 부부가 해결해야 하는 것이었다. 

  우리가 울고 불고 한다 한들 그냥 더 시끄럽기만 한 것이다.

 

  엄마의 춤바람이 끝장 나고 얼마 있다가 이층에서 아랫 층으로 이사를 했다.

  아랫층 아주머니가 이사를 나간 것이다.

  학교 끝나고 집에 오면 엄마가 큰 방에 길게 누워서 자고 있을 때 엄마한테 물었다.

 

  "엄마. 자?"

  "아니?"

  "그럼 왜 누워있어?"

  "누워서 기와집을 지었다 부셨다 하고 있지."

 

  한동안은 부부 싸움이 없이 조용히 지나갔다. 

  어느 토요일 아침을 먹고 나서 엄마가 말했다.

 

  "엄마 보은에 좀 다녀 올테니까 동생들 잘 데리고 있어."

 

  일요일 오전 골목 끝에 택시가 한대 와서 섰고 이런 저런 살림이 실려 있어서 우리들더러 가지고 오라 하였다.

  아버지가 보은 군청에 발령이 나고 보은까지는 출퇴근하기가 힘드니까 하숙을 하신다고 하였었다.

  그 사이 아버지가 바람을 피우고 보은에서 하숙을 하신게 아니라 어떤 여자랑 살림을 차리고 있었던 것이다. 

  아버지가 일요일마다 집에 안오시니까 엄마가 토요일날 아버지 사는 곳을 몰래 쳐들어 가서 현장을 급습 한 것이다.

  한바탕 난리를 치고 아버지 살림을 택시에 싣고 집에 온 것이다.

 

  그날부터 아버지와 엄마의 싸움이 시작되었다.

  아버지가 군청을 퇴근하시고 오시면 아버지가 엄마한테 소리소리 지르고 대꾸하느라 엄마가 소리 소리 지르면 무슨 할말이 그리 있는지 엄마보다 더 크게 소리 소리 질렀다.

  그렇게 소리 지르다 아버지가 열이 나면 일어서서 삿대질을 하고 엄마도 일어서서 같이 삿대질을 해댔다.

  그럼 아버지는 엄마의 멱살을 잡고 엄마는 멱살 잡힌채로 '때려 때리라고' 하면서 악다구니를 썼고 아버지는 주먹만 불끈 쥐고 '에이, 에이'하면서 공중에 주먹을 날렸다.

  동생들이 울며서 매달렸다.

 

  "싸우지 마세요. 아버지 싸우지 마세요. 엄마 싸우지 마세요!"

 

  영숙이는 그 소리를 영숙이 방이었던 문간방에서 들으면서 책을 읽었다.

  바로 밑에 동생 '석'이가 울면서 오더니 '왜 엄마 아버지 싸우는데 안말리느냐고' 항의를 했다.

 

  "냅둬. 부부 싸움은 부부가 해결하는거야! 니가 말린다고 해결 되는 거 아니니까 가서 공부나 해."

  "아니 저렇게 싸우는데 어떻게 안말리고 보고만 있어? 저렇게 싸우는데 공부가 돼? 공부가 돼냐구! 누나는 누나는 냉혈한이야 냉혈한!"

  "오. 냉혈한. 피가 차가운 파충류. 파충류처럼 차갑다는 소리네."

 

  그렇게 일주일이 지나고 그럼 어느 순간 조용해 졌다.

  엄마는 그런 아버지를 위해서 그때 이쁜이 수술을 했다. 얼굴에 돈을 들인게 아니라 아래에 돈을 들여서 보수공사를 하신 것이다. 

  그 옛날에 야매로 안방에서.

  평생 술과 여자를 가까이 하셨던 아버지.

  70 넘었을 때도 여전히 아버지랑 같이 주무시는 엄마한테 물어 보았다.

 

  "엄마. 요새도 부부생활해?"

  "얘는 징그럽게."

  "왜?"

  "못혀. 얘는 니 아버지 정말 싫타.  기침 소리도 듣기 싫구. 왠 가래는 맨날 그렇게 캑캑거리는지. 술 마시는 것도 보기 싫고."

 

  부부로서 사신게 50년.

  살아 계실 때 아버지는 엄마한테 정말 싫은 사람이었는데, 아버지가 76세에 돌아가시고 한 3년쯤 되니까 아버지의 나쁜 점은 잊어 버리고 좋은 점만 생각이 날뿐더러, 아버지 부재로 오는 힘듦이 새삼스러우신 것 같았다.

 

  "왜 그렇게 우리 볼때마다 아버지 욕을 했어?"

  "나 욕한적 없는데?"

  "했거든?".

 

  하여튼 엄마는 아버지가 60이 넘어서 조그만 사무실을 차리고 개인 자영업자이실때도 사무실에 나이 어린 20살 된  아가씨가 있었는데 어느 날 아가씨를 내 보냈다. 왜 내보냈느냐고 물었더니

 

  "얘 니 아버지가 그애 조물락 거릴까봐."

  "크 말도 안돼."

 

 

3. 부부싸움 대타

 

  영숙이가 대학생이 되고 아이들도 사춘기가 되어 가고 있었다.

  엄마는 무척 바쁘게 생활 하면서 또 한달동안 아팠다.

  아마 이쁜이 수술하느라 아물 때까지 집에 계시면서 힘든 일을 못했었던 같았다.

  엄마가 아파서 부엌 일을 못하게 되어 영숙이가 대신 하였다.

  아침 밥을 하고 동생들 도시락 싸주고 학교 가고 한 한달동안 무척 바빴었던 것 같다.

 

  엄마가 집안에서 가내 수공업으로 축구공을 꿰매는 일을 하였고, 이층 큰방은 세를 주고 남는 방에는 하숙생을 치기 시작하였다.

  엄마가 경제적으로 여유를 갖게 되고 엄마가 이쁜이 수술을 하시고 아버지가 40대 중반이 되시면서 부부싸움을 하는 일이 적어졌다. .

 

  아버지가 술마시고 들어 오셔서 술주정을 하셔도 엄마가 아버지 술주정하는 걸 대꾸하거나 받아 주지 않고 그러려니 하기도 해서이다. 

 

  어느 토요일인가? 아니면 일요일인가? 

  아버지가 청주 시청으로 출퇴근을 하실 때니까 토요일이나 일요일이었을 것이다.

  다 같이 큰 방에서 저녁을 먹고 있었다.

  한참 먹고 있는데 무엇인가로 영숙이가 아버지 비위를 거슬렸던 것 같다.

  아버지가 일어서서 영숙이를 붙잡고 한대 때리려고 손을 뻗고 있었고 온가족이 아버지를 말린다고 아버지를 붙잡고 있었다.

  순간.

  영숙이는 손을 뻗어 아버지 뺨따귀를 힘껏 갈기고 "엇" 할 새도 없이 밖으로 뛰쳐 나갔다.

 

  그즈음 아버지는 술만 드시고 오면 이제 다큰 5남매를 아버지 앞에 세워놓고 술주정을 하고는 했었다.

  세미나를 참석하시면 세미나에서 있었던 일을 우리에게 시키고는 했다.

  한참 새마을 운동을 하던 때니까 우리는 술마시고 술주정 하시는 아버지 앞에서 나란히 서서 새마을 노래를 오른 손을 흔들며 불러야 했다.

  못마땅했지만 영숙이는 아버지가 시키는 대로 하고는 했는데 아무래도 불평 불만이 많았었던 것 같다. 몇번 쥐어 밖히기도 해서 울면서 연탄창고에 가서 눈물로 연탄창고 벽에 낙서를 하고는 했었다. 

  언제까지 이렇게 살까나 하는 생각에 이렇게 힘들게 살바에야 아예 일찍 이런 생각도 했었던거 같다.

 

  그날 아버지 뺨을 후려치고 무서워서 아마도 한달 동안은 아버지가 토요일날 집에 오시면 집안 어딘가에 가서 숨었던 것 같다.

  그래도 한번도 밖에 나갈 생각은 못하고, 장롱 속에 숨거나 연탄광에 숨거나 뒤뜰에 가 있거나 했던 것 같다. 아니면 잠들 때가지 대문 밖으로 나가서 담밖을 서성거리다가 들어 왔었다. 

  한달 쯤 지나니까 더이상 아버지는 영숙이에게 관심을 두지 않았다. 

  대신 사춘기에 들어선 남동생들이 밥먹다가 아버지가 치는 고함소리를 듣고 대꾸하다가 주먹에 맞고는 하였다. 

  영숙이는 동생들에게 주먹질하는 아버지를 말리지도 못하고 동생들이 피하게 도와 주지도 못했다.   

  그냥 영숙이는 해당 안되니까 생각하고 그러거나 말거나 밥을 먹었던 것 같다.

  지금 생각하면 미안하다.

  '아버지한테 대꾸하지 말고 뭐라고 말하거나 말거나 가만 있으라"고 하긴 한 것 같은데 사춘기에 있던 동생들이 참지 않았던 것 같다.

  아버지는 어른이 말하는데 '싸가지 없이 대꾸하는 못된 놈들'을 혼내야 하는 어른(?) 이었다.

 

   '인정하는 말', '함께하는 시간', '선물', '봉사', '스킨십' 

   아버지나 엄마가 조금이라도 이런 내용을 빨리 깨달았으면 좀더 화기애애한 가족이었을까? 좀더 화기애애한 가정이었을까?

  흘러간 것은 흘러 간대로 ~

  지금이라도  나부터라도 '인정하는 말', '함께하는 시간', '선물', '봉사', '스킨십'을 하려고 애써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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