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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로4

스물세살의 수채화 21. 난로와 침묵 새벽에 버스를 타고 청산에 도착하였다. 버스 정류장에 내려 거울을 보니 안색이 참 나빴다. 기분이 좋지 않아 소음 밖으로 나와서 길가에 앉아 버스를 기다리다가 지나가는 관광버스를 잡아 탔다. 청성으로 들어가는데 저만큼 앞에서 누군가가 뒤돌아 보고 있었다. 한참을 쳐다보니까 지소장님 같았다. 고개를 돌리길래 잘못 봤나 보다 생각하며 바라보고 있으려니 다시 돌아다본다. 그때서야 지소장님 임을 확인하고 인사를 하였다. 가족계획실에 용인 아저씨가 전에 쓰던 난로를 손질하여 설치하였다. "진료실에도 난로를 놓아야겠어요." "전에는 안 놓고 가족계획실 난로를 같이 썼어요." "추워서 진료를 어떻게 합니까?" "난로도 없는데요? 사 와야 해요." "우선 내 돈으로 사고 나중에 보건소에 이야기하죠 .. 2022. 8. 29.
< 홀로 선 버드나무 > 23. 눈이 주는 행복 창 밖으로 하얀 눈이 소담스럽게 쌓였다. 면사무소로 사람들이 등을 바짝 조여 안은 체 종종걸음으로 들어가는 모습이 가끔 시야를 잠식할 뿐. 모든 것은 반짝이는 색으로 조용히 가라앉아 있었다. 눈이 그친 뒤의 그 고요함. 햇볕이 내리쬔 듯한 그 맑음. 무엇으로 대신할 수 있을까? 아무것도 가진 것 없어도 곧 사그라져 버릴지라도 눈의 모습을, 진정함 그 참모습을 사랑하지 않을 수 없다. 갑자기 눈의 예찬을 하다니 참 알다가도 모르겠다. 밟으면 뽀드득 소리 나는 저 눈처럼 내 마음은 반짝이지도 맑게 개어 있지도 아니하고 텅 비어 있을 뿐이다. 눈을 받아들일 준비가 전혀 되어 있지 않은 상태로 눈 내리는 모습을 보고 내린 눈을 본다는 것은 쓸쓸하다고나 할까? 소슬하다고나 할까? 면사무소 벽 한 귀퉁이에 작은 햇.. 2020. 1. 9.
< 홀로 선 버드나무 > 21. 따스한 겨울 겨울은 여전히 따뜻하기만 했다. 아마도 시간의 흐름을 잊어버린 모양이거나, 밀려 버린 시간 때문에 겨울이 지난봄에나 추워지려나.. 유난히 따뜻하고 포근한 겨울. 영숙이는 무엇인지 잘 알 수 없지만 어렸을 적 외갓집에서 외 할아버지가 소리 하시는 것을 들으며 따뜻한 아랫목에 아슴히 잠들 때처럼 보이지는 않지만 아늑하고 기분 좋게 무엇인가가 영숙이를 감싸 주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창 밖으로 조용히 눈이 내려 온다. 하늘하늘. 영숙이는 창 문 앞에 서서 초록색 원피스 양쪽 주머니에 손을 찔러 넣고는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생상스 첼로 협주곡 1번( Saint - Saens - Cello Concerto No. 1)을 듣고 있었다. 영숙이 가장 좋아하는 곡이다. 섬세하게 떨려 나오는 고은 음색이 창 밖의 눈과.. 2020. 1. 7.
< 홀로 선 버드나무 > 20. 풍성한 눈 푸짐한 눈 내리는 소리. 눈을 받아들일 준비가 없는 영숙이에게는 정말 쓸쓸하고 차갑기만 한 눈발들이다. 창 밖에는 여전히 바람 소리가 몰려다니고 홀로 선 아름드리 버드나무에 그 긴 가지들이 바람에 맞추어 눈송이 사이사이에서 춤을 춘다. 창문 앞에서 영숙이는 여전히 가슴을 앓고, 무엇인가 목마르게 기다리며 그러나, 아무것도 없는 가슴으로 텅 비어 쓰라린 가슴으로 자신의 작은 숨소리를 듣는다. 저쪽 길로 잔뜩 웅크린 선생님의 모습이 나타났다. 땅을 보며 급히 걷는 걸음으로 면사무소 문을 들어서서도 이쪽은 바라 볼 생각도 안 하고 여전히 땅을 내려다보며 걷는다. 그 모습을 유리창을 통해 바라보며 미소 짓고는 돌아서서 영숙이는 책상 앞에 가 앉았다. 책을 들고 이쪽 사무실로 건너온 선생님은 난로 앞에 앉아서 책.. 2020. 1.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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