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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홀로선 버드나무

< 홀로 선 버드나무 > 23. 눈이 주는 행복

by 영숙이 2020. 1.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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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이 주는 행복>   

 

   창 밖으로 하얀 눈이 소담스럽게 쌓였다.

   면사무소로 사람들이 등을 바짝 조여 안은 체

   종종걸음으로 들어가는 모습이 가끔 시야를 잠식할 뿐.

   모든 것은 반짝이는 색으로 조용히 가라앉아 있었다.

   

   눈이 그친 뒤의 그 고요함.

   햇볕이 내리쬔 듯한 그 맑음.

   무엇으로 대신할 수 있을까?

   아무것도 가진 것 없어도

   곧 사그라져 버릴지라도

   눈의 모습을,

   진정함 그 참모습을 사랑하지 않을 수 없다.

   갑자기 눈의 예찬을 하다니 참 알다가도 모르겠다.

 

   밟으면 뽀드득 소리 나는 저 눈처럼 

   내 마음은 반짝이지도 맑게 개어 있지도 아니하고

   텅 비어 있을 뿐이다.

   눈을 받아들일 준비가 전혀 되어 있지 않은 상태로

   눈 내리는 모습을 보고

   내린 눈을 본다는 것은 쓸쓸하다고나 할까?

   소슬하다고나 할까?

   

   면사무소 벽 한 귀퉁이에 작은 햇볕이 얼룩이는 듯 싶었다.

   영숙이의 마음 한 귀퉁이로 슬쩍 파고드는 떨림

   

   그러나 영숙이는 완전히 그것을 무시하고 거부하며

   스스로의 안정감 만을 유지하려 한다.

   그래서 유지되는 안정감.

   

   그러나 애써 의미를 찾으려 노력하면 노력할수록 의미 없음을 알지만

   영숙이가 할 수 있는 최대한의 모습이란 여전히 창 안에 서성이며 자신을 일으켜 세우려,

   홀로 서 있으려 노력한다는 일뿐이다.

   

   곽 양 언니가 장부 정리하는 것을 들여다보면서

   온통 몸에 달린 시선이란 시선을 잠깐씩 밖으로 향하게 하는 것이다.

   모든 인간사가 어쨌든 인간의 애증과는 관계없이 눈이 오니까 마음이 한결 밝아지는 것은 사실이다.

   

   텅 빈 마음이건 무엇이건 제쳐 놓고 우선 눈만 보아도 눈 그 자체 때문에 강아지처럼 들뜨고 괜히 좋아할 기분이다.

   밖으로 뛰어 나가 눈싸움이라도 한바탕 휙.

   함성을 지르며 눈 속에 뒹굴면서,

   학교 운동장 한가운데서 눈 사람이라도 만든다면.

   

   그러나 영숙이는 이제 그럴 나이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고,

   곽 양이나  안양 언니 같은  무표정한 얼굴이나 행동처럼

   저 정도로 되어서도 안 되겠지만,

   강아지처럼 나가 뒹굴고 그래서도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때 갑자기 조그만 눈 뭉치가,

   뭉치라고 할 것 까지는 없는 조그만 돌 만한 눈송이가 날아와

   영숙이의 초록 원피스에 맞아떨어지고

   책상 위에,

   장부 위에 떨어져 미끄러졌다.

   

   날아온 곳을 쳐다보니 아무도 없었다.

   다시 장부를 들여다보려니 또 날아왔다.

   난로의 연통 내놓으려 열어 놓은 케비넷 옆 창문 사이로 들어오는 것이었다.

   

   그때 씩 웃으시면서 윤선생님이 그쪽에서 나타나셨다.

   창을 돌아 사무실 안으로 들어오신 선생님은

   시침을 뚝 떼고 주머니에 손을 넣은 체

   난로 앞에 서성이며 창 밖을 내다본다.

   

   오늘은 눈이 너무 와서 사람들도 안 올 것이고

   아무리 어른이라지만 선생님도 서울서 보던 도시의 눈과는 전혀 다른 느낌이 전달되어 오는

   이 눈 쌓인 모습을 보니까 기분이 무척 좋으신 모양이다.

   얼굴이 다른 때처럼 가라앉아 있지 않고 반짝이고 있었다.

   시선에는 맑은 기운이 넘쳐흘렀다.

 

       ㅡ 그래,

           눈은,

           자연은,

           사람을 사람이게 만드는가 보군. ㅡ

   

   그 어떤 운명이거나 예감하는 미래와 상관없이

   현재의 윤선생님은 이 작은 사무실 안에서 아무런 잡념 부스러기도 없이 텅 빈 가슴과 시선으로

   창밖을 내다보며 어슬렁 거리고 서성이는 것이다.

   

   윤선생님 때문에 가득 차 버리는 사무실 때문일까?

   영숙이는 마음 귀퉁이로부터 포근하게 퍼져 나가는 온기를 무의식 중에 느낀다.

   윤선생님 때문에 가득 차 버리는 사무실 안에서

   난로의 따스함 때문도 있겠지만

   포근하게 감싸이는 느낌을

   마음에 퍼져 나가는 온기를 느낀다.

 

   참새가 보건지소 맞은편에 있는 창고 지붕 위로 부터 시끄럽게 짹짹 거리며 날아오른다.

   창고 지붕이 오래된 짚으로 엮여 있는데 그 속이 따뜻하니까 들어 가 있다가 한 번씩 날아오르는 것이다. 

 

      ㅡ 옛날에 참새 잡으려고 짚으로 만든 지붕에 참새가 들어갈 만한 곳에다 그물을 걸어 놓으면 참새 눈에는 그물이 안 보이나 봐. 참새가 걸려서 못 빠져나가 ~ 그물을 걷어 내어 참새 잡아서 참새구이 해 먹었어. ㅡ

      ㅡ 시골 외갓집에 가면 시골 마당에 참새가 엄청 모여. 삼태기에 나뭇가지 걸어  놓고 그 아래 겨나 좁쌀 같은 거 뿌려 놓으면 참새가 들어가서 먹거든. 삼태기를 세워 놓은 나뭇가지에 줄을 매어 놓았다가 참새들이 정신없이 먹을 때에 확 잡아 다니는 건데 참새가 얼마나 재빠른지 잘 안 잡혀 몇 번 해봤는데도 안 잡히더라고 ㅡ

     ㅡ 참새 조그마하잖아요? 먹을게 뭐 있다고 참새를 잡아요? ㅡ

     ㅡ 왜 참새구이 맛있어. ㅡ

 

   눈이 내린 후에 따뜻한 날씨와 햇볕 때문인지 여전히 창고 지붕 위로,

   홀로 선 버드나무 위로 참새 여러 마리가 짹짹 거리며 날아오르는 날이다. 

< 융플라우로 올라가는 철도를 만들기 위해 10년이상 불가능에 도전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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