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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홀로선 버드나무

< 홀로 선 버드나무 > 25. 겨울 사람 이야기

by 영숙이 2020. 1.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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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 사람 이야기>

   

   마치 겨울의 한 끝에 서서 도시의 찬 바람을 온몸으로 받아들이고 있는 것처럼 황정두 씨는 신문 뭉치를 옆구리에 끼고 직행버스 터미널 입구에 서 있었다.

   자색 잠바에 동일한 색의 바지로 그의 얼굴을 보완하려고 했음에도 불구하고 그의 얼굴빛은 자색 잠바 보다도 진한 자색이었고, 특히 뺨에서부터 목까지는 한층 진한 자색 얼룩이 피부를 팽팽히 잡아 다니고 있었다.

 

   

   청산 면으로 가는 고속도로 변 둔덕에는 아직 덜 녹은 눈들이 보이고 마른풀 위로 따뜻한 햇볕이 소복이 내리고 있었다.

   저쯤일까?

   단발머리 소녀 때 어쩌다 고속도로를 지나는 차들을 세어보며 한 낮의 햇볕이 기울어가는 양을 지켜보고는 하던 곳이?

   이젠 한사람의 사회인으로서 굳어 버렸지만 이 곳을 지날 때면 그때의 꿈과 이상이 떠오르곤 하여 가슴이 따스하여지고는 한다.

   

   정말 올겨울은 유난히도 따뜻하다.

   10년 내의 이상 기온으로 예년 같으면 한창 동장군이 기승을 부릴 때인데도 따뜻한 초가을 날씨가 계속되고 있었다.

   동생들은 얼음이 얼지 않아 스케이트를 못 탄다고 야단들이다.

   창 밖 따뜻한 햇발 사이로 황정두 씨의 추워하던 모습이 어둡게 서 있다.

   

   

   처음 그를 발견하게 된 것은 간호학교 2학년 초 대학 병원에 실습 나갔을 때였다.

   첫 날.

   내과 병동의 간호원이 빙긋이 웃으며 130호 실에 가서 환자 밥 좀 먹이라고 하여 즐거운 마음으로 환자 방문을 열고 들어섰다.

   환자 3명이 맞은편에 다리며 머리에 하얀 붕대를 둥둥 감고는 누워들 있었다.

   

      " 어느 분 식사를 도와 드릴까요? "

   

  가운데 환자가 턱짓으로 앞쪽을 가리킨다.

  그러고 보니 그들은 전부 보호자들이 옆에서 밥을 먹여 주고 있었다.

  돌아서 보니 들어올 때는 눈에 띄지 않았던 환자 한 사람이 문 바로 옆의 침상에 누워 있었다.

  그 사람에게 다가가면서 밥상을 집어 들었으나 어떻게 할 줄 몰라 바라보고만 있으려니 뒤쪽에서 여자 목소리가 들린다.

   

       " 거기 턱 밑에 놓으세요! "

 

   얼떨떨한 채 누워 있는 턱밑 이불 위에 놓고 수저를 들어 밥을 떠서 그의 입에 가져가니 누운 채로 얼른 받아먹었다.

   그다음은 국을 떠서 입안에 넣어 주고, 그때서야 그의 얼굴을 자세히 살펴볼 수 있었다.

   

   그의 얼굴은 마치 자색 계통의 헝겊을 모아 연결한 위에 쪼그라진 눈과 코와 입을 그린 것 같았다. 눈썹 부분은 굵은 주름과 흉터로 이루어져 있고 얼굴 전체는 아직도 덜 나은 상처와 다 나은 빤질빤질한 둥근 흉터로 덮여 목은 아예 없고 진한 자색 피부가 오른쪽 뺨에서부터 목을 직선으로 잡아당기고 있었다.

 

   사실 그의 모습으로는 나이조차 짐작할 수 없을 지경이었으나 유난히 반짝이는 검은 눈동자와 힘차게 밥을 씹는 모습에서 생명에 대한 강한 집착을 볼 수 있었다.

   

   뜨악한 시선으로 그가 밥 씹는 것을 지켜보자니 이 반찬 저 반찬 달라고 가리키는 손은 마치 쇼윈도 위에 있는 마네킹의 손 같았다. 쓰기 편리하도록 구부러져서 주름 하나 없이 빤질빤질하게 굳어 있었고 다른 한 손은 아직도 하얀 붕대를 감고 배 위에 놓여 있었다.

   

   두리번거리며 다른 사람들을 돌아보니 모두들 무관심한 척하면서 식사를 하고 있었다. 그때 간호보조원이 빼꼼히 방문을 열었다.

 

      " 제가 밥 먹일게요. "

      " 아, 네. "

 

   얼른 대답하고 그 병실을 나설 때는 어지러운 꿈을 꾸다가 깨어난 것 같았다.

   생각해 보니 간호원이 입가에 빼물은 웃음을 이해할 것도 같았다.

   

   처음 실습 나오면 일부러 놀라게 하려고 온 몸에 붕대를 하얗게 감은 환자 방에 들여보내기도 한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간호원 실로 오자 마자 그 사람의 chart를 찾아 펼쳤다.

   이름은 황 정두, 나이 32세. 입원 일은 약 898일째. 약 2년 5개월 됐다.

   70% 화상. 신체 중에서도 상체는 2도 화상, 손은 3도 화상, 다리는 1도 화상이다.

   3도 화상이기에 손가락들이 붙어 버리고 오그라져 굳어 버렸는가 부다.

   직업은 미장이.

   석유난로 과열로 불이 나서 집은 전소되고 아이는 죽고 부인은 도망갔다고 한다.

   

   

   차가 영동읍 인터 체인지로 들어 서고 있었다.

   일단 용산 읍내로 들어갔다가 돌아 나와 청산면 정류장으로 가는 것이다.

   면사무소 앞을 지나가다 보니 용산 보건 지소가 버스 창문으로 비쳤다.

   영숙은 용산 보건 지소 앞을 지날 때마다 꿈을 꾸었었다.

   소설의 한 장면을 읽듯이, 갑자기 비집고 들어 오는 목소리.

 

      ㅡ 만약에 여기 용산 보건 지소에 배치되었더라면 김양을 못 만났을 텐데, 청성에 배치되고 용산 보건 지소에 배치되지 않은 게 얼마나 다행스러운지. ㅡ

 

   그랬다.

   청성 면에 파견되는 무의촌 의사는 6개월의 근무가 기한이라니 다음번에 오는 의사는 멋진 총각 의사 일지, 허긴 레지던트 2년 차면 아직 결혼하지 아니한 사람도 많이 있으니까ㅡ, 영숙이의 머릿속으로 나란히 버스 좌석에 앉아 지금 지나가고 있는 용산면 보건 지소를 내다보고 있을 모습이 현실적으로 감각이 가능한 것처럼 가깝게 느껴졌었던 때도 있었다.

 

   

   첫날 이후 황정두 씨 방에는 들어가지 않았다기보다 들어갈 수가 없었다.   

   놀란 것도 놀란 것이지만 그 사람을 간호하는 게 싫었다는 것이 더 정직한 이유일 게다.

   

   그 날은 오후 근무로 간호원실에서 나와 106호실 환자 링거를 뽑아 주러 가는데 저쪽 복도 끝에서 부터 외국인 아줌마가 이족으로 걸어오고 있었다.

   깨끗한 몸차림과 건강한 모습으로 미루어 볼 때 환자는 아닌 것 같다.

   옆에 서 있는 보조 간호사에게 물었다.

   

       " 저 외국인 누구여요? "

       " 저 사람요? 선교사인데 황정두 씨 간호해 주러 일주일에 한 번씩 와서 시트도 갈아 주고 이불도 갈아 주고 해요. 황정두 씨 입원비도 저 사람들이 내고 있잖아요. "

 

   가슴에 뜨끔하게 와 닿는 게 있었다.

   이역만리 외국에서 건너와 낯설고 힘든 객지 생활을 하면서 간호사들까지도 꺼리는 환자의 시중을 들러 다닌다니.

   부끄러운 기분이었다.

   

   근무 나오면서 교회에 잠깐 들러 기도를 하였는데 이유는 간호를 잘하도록 도와 달라는 것이지만 진짜 이유는 선배 언니가  급성 간염에 전염되어 사망한 데서 오는 죽음에 대한 두려움 때문이었다.

   그 외국인 아줌마를 만난 이후로는 기도하는 것과 함께 간호하기에 좀 괴로운 환자도 조금은 쉽고 편안한 마음으로 간호에 임할 수 있었다.

   

   

   1년이 지나 소아과 병동에서 실습할 때였다.

   503호에 있는 14살짜리 경석이는 선천성 당뇨병으로 자라지 못해 몸집이 꼭 8살짜리 정도밖에 안됐다.

   

   경석이 방에는 꼭 자기만 한 인형이 있어 친구가 되고 있었는데 하루는 사랑의 요정이란 책을 빌려 주러 들어가니 황정두 씨가 와 있었다. 그동안 수술대에 놓여 수술실에 들어가는 것을 여러 번 보았고 피부이식으로 허벅지의 피부를 얇게 떠서 팔에다 붙이는 것도 보았었지만 이렇게 경석이의 방에 놀러 온 것을 보니 새삼스럽게 황정두 씨가 바라보였다.

   

   경석이가 붕대를 잡아 주면서 그 병실에서 붕대를 풀어 다시 감는 것이었다.

   생에 대한 의욕으로 희망에 가득 찬 눈빛.

   그 기대에 맞추려 노력하는 어색한 손놀림.

   영숙을 빗껴보며 웃어 보인다.

 

       " 이젠 많이 좋아졌어요. "

       " 네, 내년 봄이면 퇴원도 가능하데요. "

 

   영숙은 수술실에서 본 황정두 씨를 생각했다. 크고 적은 수술을 합해서 수술실에 들어간 것이 130여 회.

   온몸이 흉터로 뒤덮여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아무튼 저렇게 웃고 이야기하는 그의 모습에 그늘이라고는 보이지 않았기 때문에 영숙이도 기분이 좋았다.

 

   

   창 밖에 눈이 쌓이고 있었다.

   날씨가 갑자기 쌀쌀하여진 데다가 진료실 연탄불을 아직 안 피운 탓인지 선생님은 웅숭거리면서 이쪽 사무실로 건너와 난로 앞에 서서 창 밖을 내다본다. 

   사무실 바닥에 물을 뿌린 후 빗자루로 쓸고 밖의 청소도 마치고 면사무소에서 가져온 허브 차가 난로 위에서 기분 좋게 끓고 있었다.

   청소를 마친 영숙은 말끔한 기분으로 방금 막 씻어 온 컵에다 결명자 차를 따라 설탕을 타던 손을 멈추고는 선생님의 노래에 귀를 기울였다.

 

       ㅡ 다정한 연인이 손에 손을 잡고 걸어가는 길. 저기 멀리서 우리에 낙원이 손짓하며 우리를 부르네 ㅡ                                                                

   

   따뜻하고 포근한 느낌.

   얼마 전만 해도 선생님은 저 창문 앞을 어슬렁 거리며 꼭 창살 없는 감옥 같다고 투덜거리곤 했는데......

<앙징맞은 스위스의 초등학교 ~ 똑같은 표정은 하나도 없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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