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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홀로선 버드나무

< 홀로 선 버드나무 > 26. 푸근한 겨울

by 영숙이 2020. 1.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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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푸근한 겨울>   

 

   허브 차가 난로 위에서 끓고 있다.

   사무실 안에는 따뜻한 기운이 감돌고

   이제 창 밖의 날씨는 푸근히 풀려 있어서 버드나무는 거의 움직이지 않고 조용히 가라앉아 있다.

   영숙이는 문학사상 책을 읽고 있다가 선생님을 보니 무릎에 있는 도스토예프스키의  " 죄와 벌 "은 여전히 아까와 같은 page로 펼쳐져 있었다.

   

   선생님은 책을 읽는 대신 창 밖을 보고 계셨다.

   정말 조용하다.

   오늘은 환자도 전혀 없고

   곽 양과 안양은 출장 명령부를 써 놓고 각기 집으로 들 가서 내일 아침에나 나온다.

   

   조용한 공간 속으로 한줄기 새소리가 침묵 끝으로부터 흘러들어온다.

   네댓 살 됨직한 몇몇 동네 꼬마 아이들이 면사무소 문으로 몰려들어오더니 버드나무 밑을 지나서 저희들끼리 재잘재잘 거리면서 우리들이 보고 있든지 말든지 사무실 앞으로 오고 있다.

 

   알록달록한 옷을 입은 아이

   무릎까지 바지를 걷어 올린 아이

   손에 막대기를 쥐고 있는 아이

   흙이 묻은 아이들.

 

   꼬마들 차림과 태도는 한결같지 않았지만 그네들 얼굴 표정 만은 호기심과 천진함과 열중이 곁들인 한결같은 표정들이었다.

   형, 누나들이 모두 학교에 가버린 텅 빈 집안에서 놀다가 여기까지 나들이들을 왔나?

   무엇 때문에?

 

       " 선생님 어렸을 때 꼭 저랬죠? "

   

   영숙이는 무릎까지 바지를 걷어 올리고 코를 흘리며 막대기를 휘두르는 아이를 가르쳤다. 

   

       " 아냐! " 

 

   강하게 부정하는 큰 목소리다.

   영숙은 입가에 웃음을 머금었다.

 

       " 조기 저 여자애 꼭 김양 닮았다. 김양 어렸을 적 모습하고 똑같을 것 같은데? "

 

   영숙이는 초록색 원피스 주머니에 손을 잡아넣은 체,

   선생님은 바지 옆 주머니에 두 손을 깊숙이 넣은 체 미소를 머금고.

   어느새 나란히 창문 앞에 서서 아이들이 노는 모습을 내다보고 있었다.

 

   꼬마들은 저희들끼리 둘러 서더니 뭐라 뭐라 이야기하고는

   우리가 서 있는 유리창 앞으로 가까이 까지 와서

   여름에 봉숭아 꽃이 피어 있던 화단으로 올라서서 사무실 벽을 따라 옆으로 돌아간다.

 

   맨 뒤에 선생님이 이야기하던 여자 애가 걷어 올린 소매에 흙을 묻힌 체 조그만 막대기를 손에 들고 벌어진 앞섶으로는 배꼽이 보일 것도 같고 올라간 치마 밑으로 맨다리에 앙증맞은 고무신을 신고 있다.

   지나가다가 우리를 한번 올려다본다.

   

   사라져 가는 그 애들의 모습에서

   윤선생님과 영숙은 거기에 서서 놀고 있는 윤선생님과 영숙이의 모습을 본다.

   윤선생님과 영숙이는 가장 천진한 아이들이 되어 흙장난을 하고 있다.

 

   창 밖에는 여전히 바람이 불고 버드나무는 휩쓸려 다니면서 바람의 모습을 보여 주고 

   영숙이는 이렇게 옆에 서서 같은 생각을 하는 사람이 있음으로

   창 밖의 버드나무 노래를 훨씬 더 쉽게 읽어 낸다.

 

 

   며칠 후 월요일 오전

   옥천군청에서 행정 지도차 군내 순회 방문으로 군수님이 오셨다.

 

   청성면사무소 면장님과 부면장님 행정계장님이 군수님을 모시고 점심을 먹으러 갔다.

   월요일 오전이라 멀리서 온다고 아직 아무도 출근하지 않은 사무실을 혼자 지키고 있던 영숙이도 불려 가 군수님이 타고 온 지프차를 타고 만명리로 갔다.

   만명리 이장님 집에 점심을 준비한 것이다. 

 

   이장님 집은 지붕 이엉을 올해에 추수한 새 짚을 써서 올려 깔끔하게 단장해 놓아서 보기에도 좋았고 새로 만든 지붕에서 풍기는 새 짚 냄새가 기분을 좋게 하였다.

   사랑방에 상이 차려져 있었다.

   군수님이 오셔서 인지 면장님과 부면장님도 일상적인 이야기를 하면서도 긴장하고 계셨다.

     

        ㅡ  주위에 식당도 별로 없고 만명리 이장님 댁에 음식 솜씨가 좋아서 군에서 손님이 오시면 여기로 모십니다. 오늘 아침 오신다고 연락을 받고 점심 준비하라고 했습니다.ㅡ

 

   하얀 종이를 깐 네모난 2개의 앉은뱅이 탁자에 옥천군 군수님, 군에 행정계장님, 차를 몰고 오신 군청 기사님, 만명리 이장님. 청성 면장님, 청성 부면장님, 청성 행정계장, 영숙이 이렇게 8명이 앉아 점심을 먹었다.

   뚝배기에 돼지 찌개가 탁자 가운데 빨간 기름을 띄우고 놓여 있었다.

   청성 행정 계장님이 뚝배기를 가리키면서 영숙이에게

     

      ㅡ 저 뚝배기에 있는 돼지 찌개 보기에는 안 뜨거워 보여도 엄청 뜨거우니까 먹지 마요 ㅡ

     ㅡ 옛날에 군수님이 오셨는데 지난번 행정 계장이 군수님 바로 앞에 앉아서 수저로 뚝배기에 돼지 찌개를 푹 떠서 입에 넣었는데 그게 엄청 뜨거웠던 거야. 기름이 위에 떠 있어서 안 뜨거운 줄 알고 그걸 입안 한가득 넣었는데 앞에 군수님이 계시니까 뱉지도 못하고 어쩔 줄 모르다가 그냥 삼켰는데 너무 뜨거워서 기절했다가 죽었어요. ㅡ

    ㅡ 에이 설마요. ㅡ

    ㅡ 아냐. 진짜여. 나도 같이 있었다니까 ㅡ

    ㅡ 말도 안 돼. 그걸 어떻게 삼켜요. 하기는 커피에 거품 잔뜩 올라가 있으면 안 뜨거워 보여서 홀딱 마시다가 뜨거워서 팍 뱉을 때가 있기는 있어요 ㅡ

   

 

   그 말이 사실인지 아닌지는 영숙이는 알 수 없었지만 이런 분위기라면 충분히 있을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맛있는 음식을 앞에 두고 모두들 긴장되어 있으니 영숙이도 맛있게 못 먹고 영숙이 앞에 있는 음식들만 주워 먹었다.

 

   그 이야기를 들은 이후부터 영숙이는 거품이 올려져 있는 커피를 보면 자기도 모르게 살짝 입술을 축여서 온도를 측정하는 버릇이 생겼다.

< 숙소 주변의 아름다운 강과 주택들 ~ 찍는 곳마다 사진이 되고 절로 그림이 그려질 듯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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